6화(5,265자)
충성, 장 이병님
마흔에 다시 입대했다, 분대장은 스무 살 · 백해원
수료식 날 아침, 우형래는 생활관 한가운데에 만복을 세워 놓고 결혼식 사회 십이 년의 기술을 쏟아붓고 있었다.
“형님, 첫 줄에서 숨을 들이쉬면 안 돼요. 들이쉬면 떨리는 게 보여요. 내쉬면서 말하세요.” 우형래가 손바닥으로 자기 배를 눌러 보였다. “나라가, 부르면.”
“나라가 부르면.”
“너무 빨라요. 신부 입장할 때처럼.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라가…… 부르면…….”
“이번엔 너무 느려요. 형님 지금 신부 아니고 조문객이에요.”
침상에 앉아 있던 아저씨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흘을 의무대에 누워 있다 나온 만복은 허리에 찜질팩을 붙인 채 종이를 팔 길이만큼 떼어 들고 있었다. 마성훈이 쓴 소감문은 두 쪽이었다. 「나라가 부르면, 마흔도 스무 살입니다」로 시작해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끝났고, 그 사이에 「뜨거운 심장」과 「조국의 품」이 세 번씩 나왔다.
남궁철은 목발을 짚고 문틀에 기대 있었다. “형님, 그 ‘조국의 품’ 나올 때 하늘 보래요. 대본에 괄호로 써 있던데.”
“어디?”
“둘째 쪽 셋째 줄이요. ‘(하늘을 보며)’.”
만복이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정말로 괄호가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 종이를 접었다.
*
이준이 만복을 생활관 뒤 빨래 건조대 옆으로 불렀다. 건조대에 걸린 군복들이 바람에 펄럭였고,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났다. 이준은 한참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책상에서 봤는데요. 오늘 엔딩이 훈련병님 가족이래요. 포스트잇에 ‘눈물 필수’라고 써 있었어요. 그리고 다음 주 화요일이 중대장님 소령 진급 심사예요. 오늘 영상이 거기 들어가요.”
만복이 이준을 보았다. 이준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요?”
“……모르겠어요. 그냥 아셔야 될 것 같아서요.” 이준이 군화 끝으로 땅을 팠다. “중대장님은 저한테 훈련병님 설득하라고 했어요. 그거 안 하면 분대장 바꾼대요. 근데 제가 설득을 못 하겠어요. 무슨 말로 해야 될지 몰라서요.”
만복은 건조대에 걸린 자기 군복 소매를 손끝으로 만졌다. 아직 덜 말라 축축했다.
“분대장님. 나 가게에서 열다섯 해 동안 손님이 원하는 걸 드렸어요. 순살 달라면 순살, 맵게 달라면 맵게. 근데 딱 하나 안 한 게 있어요.” 그가 이준을 돌아보았다. “덜 익은 거 달라는 손님한테는 안 줬어요. 배탈 나거든요. 그 손님이 별점 하나 줘도 안 줬어요.”
“그럼 오늘은요?”
“모르겠어요. 덜 익은 건지 아닌지, 가 봐야 알지.”
*
열 시, 수료식장 연병장에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이번에도 아내와 고등학생 자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누군가는 플래카드를 들고 왔다. 「우리 아빠 이병 됐다」.
1분대 가족들도 하나둘 보였다. 탁기중의 아내는 정육점 앞치마를 두른 채 와서 남편보다 이준에게 먼저 육포 봉지를 안겼다. “우리 양반이 분대장님 육포 좋아한다고 해서요.” 이준이 봉지를 받아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배영철의 아내는 남편의 허리부터 손바닥으로 짚어 보고 “펴지네” 하고 안도했다. 고봉구의 가족 자리는 비어 있었다. 고봉구는 그 빈자리를 한 번 보고, 다초점 안경을 코끝으로 내린 채 다른 집 가족들 사진을 찍어 주러 다녔다.
윤정은 회색 점퍼를 입고 왔다. 앞치마가 아닌 옷을 입은 윤정을 만복은 몇 달 만에 보았다. 그녀가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가게 셔터 사진이었다. 셔터에 종이 한 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오늘 하루 쉽니다. 사장님 수료식 갑니다.」
“평일에 닫은 거 처음이다.” 윤정이 말했다. “열다섯 해 동안 명절 빼고 처음.”
“단골들이 뭐래?”
“사장님이 사장님 수료식 가는 거냐고, 사장님이 둘이냐고 물어서 설명하느라 혼났어.”
예진은 교복을 입고 왔다. 수능이 마흔하루 남은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아빠 수료식이면 가라고 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했다. 예진이 만복의 머리를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아빠, 실물로 보니까 더 대박. 두상이 이렇게 생긴 줄 몰랐어. 약간 감자.”
“감자 아니야.”
“찐 감자.”
마성훈이 촬영병 둘을 데리고 가족들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윤정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예진에게 웃었다. 손에 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따님이시죠? 반가워요. 중대장 마성훈입니다. 이따 수료식 끝나고 아버님 만나시는 장면, 여기 이 표시 위에서 해 주시면 돼요.” 그가 바닥에 붙은 노란 테이프 엑스 자를 가리켰다. “아버님 오시면 이렇게 달려가서 안고, 이 대사 한 줄만 해 주세요.”
예진이 종이를 받았다. 「아빠, 자랑스러워요.」
“울어야 돼요?”
“눈물이 나면 더 좋고요.”
만복이 한 걸음 나섰다. “중대장님, 애한테 대사 주지 마세요.”
“따님이 원하시면요.” 마성훈이 예진을 보았다. “어때요? 싫으면 안 하셔도 돼요.”
모두가 예진을 보았다. 예진은 종이를 한 번 보고, 아빠를 한 번 보고, 중대장을 한 번 보았다. 그러고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교복 주머니에 넣었다.
“할게요. 저 연기 한 번 해 보고 싶었어요.”
만복의 입이 벌어졌다. 윤정이 등을 돌렸다. 어깨가 떨렸다.
*
수료식은 군악대 연주로 시작했다. 아저씨 백이십 명이 연병장에 줄지어 섰고, 드론 다섯 대가 그 위를 돌았다. 대대장이 축사를 했고, 이병 계급장이 아저씨들 가슴에 하나씩 달렸다. 계급장을 달아 주는 손이 스무 살 분대장들의 손이었다. 이준이 만복의 가슴에 계급장을 달다가 손이 미끄러져 두 번 만에 달았다.
“재복무자 대표 소감. 장만복 이병.”
만복이 연단에 올라섰다. 접었던 종이를 폈다. 팔을 뻗었다. 연단 조명이 종이에 반사되어 글씨가 더 안 보였다. 그는 첫 줄만은 외우고 있었다.
“나라가 부르면, 마흔도 스무 살입니다.”
연병장이 조용했다. 만복은 다음 줄을 찾으려고 종이를 조금 더 멀리 뗐다. 안 보였다. 그는 종이를 내렸다.
“……근데 제 허리는 마흔입니다.”
가족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저씨들 대열에서도 터졌다. 마성훈이 연단 옆에서 눈을 감았다.
“저는 수원에서 치킨집을 합니다. 오늘 제가 여기 서 있는 동안, 저희 가게는 처음으로 평일에 문을 닫았습니다. 집사람이 열다섯 해 동안 안 닫은 문입니다. 제가 여기 온 뒤로 집사람은 하루에 세 시간을 잡니다. 기름통도 혼자 듭니다.”
웃음이 가라앉았다. 가족석 여기저기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보였다.
“여기 계신 아버님들 집도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저희를 다시 불렀으니 저희는 열여덟 달 잘 채우겠습니다. 그 대신 그 열여덟 달 동안 가게를 지키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나라가 한 번만 불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름이라도 한 번.”
그는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대한민국. 이건 대본에 있어서 하고 내려갑니다.”
박수가 나왔다. 처음엔 가족석에서, 그다음엔 아저씨들 대열에서. 마성훈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는 연단 옆에서 태블릿을 쥔 채 만복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
연단 뒤 천막 그늘에서 마성훈이 만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막 안은 군악대가 두고 간 악기 상자들로 비좁았고, 트럼펫 상자에서 금속 광택제 냄새가 났다.
“대본에 없는 말 하셨네요.”
“대본이 안 보였습니다. 글씨가 작아서요.”
마성훈이 잠깐 말을 잃었다. 그러다 웃었다. “다음엔 크게 뽑아 드릴게요. 한 쪽에 세 줄씩.”
“네네, 고객님.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버릇이 아니었다. 만복은 그 말을 일부러 천천히 했다. 마성훈의 웃음이 얼굴에서 굳었다.
“선배님. 연단 장면은 편집에서 자를 수 있어요. 자르면 오늘 선배님이 한 말은 이 연병장 밖으로 한 마디도 안 나가요.” 마성훈이 천막 밖, 노란 테이프 엑스 자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러니까 저 장면은 잘 부탁드려요. 따님이 대사 하겠다고 했잖아요.”
“애는 애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그럼 선배님이 따님한테 하고 싶게 만들어 주세요.”
만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막 밖에서 가족들을 부르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는 마성훈 옆을 지나 햇볕 속으로 나갔다. 허리 아래 그 한 점이 걸음마다 욱신거렸다.
*
수료식이 끝나고 가족 면회 시간이 되었다. 만복은 노란 테이프 엑스 자 쪽으로 걸어갔다. 촬영병 둘이 카메라를 들었고, 드론이 그 위로 내려왔다. 마성훈이 촬영 감독 옆에 서서 손짓했다. 지금.
예진이 엑스 자 위에 서 있었다. 만복이 다가오자 예진은 달려오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을 들어 이마에 댔다. 손바닥이 앞으로 기울어진, 서툰 경례였다.
“충성. 장 이병님.”
만복이 멈췄다. 예진이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려 만복 뒤에 선 이준을 보았다.
“분대장님. 우리 아빠 몇 번 혼냈어요? 오늘 답 들으러 왔어요.”
이준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카메라 렌즈가 이준 쪽으로 돌았다. 이준이 헛기침을 하고 대답했다.
“……한 번도 안 혼냈습니다.”
예진이 윤정을 돌아보았다. “엄마, 우리 둘 다 졌다. 설거지 아빠가 해.”
가족석 근처에서 웃음이 번졌다. 촬영 감독이 마성훈을 보았다. 마성훈은 손짓을 멈춘 채 서 있었다.
윤정이 만복 앞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만복의 군복 깃을 바로 펴 주었다. 깃이 이미 반듯했는데도 한 번 더 폈다. 만복은 그녀의 손가락을 보았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왼손 엄지 끝에 다 아문 바늘 자국이 작은 점으로 남아 있었다. 다섯 군데였다. 손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가게 문을 닫은 날인데도 났다.
“허리 끈, 다시 꿰매 줄까?” 윤정이 깃을 만지며 물었다. “삐뚤던데.”
“아니. 이게 좋아.”
윤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렸다. 예진이 교복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아빠 손에 쥐여 주었다. 「아빠, 자랑스러워요」가 적힌 종이였다.
“대사는 이거 줄게. 내가 말하면 아빠 울 거잖아. 연병장에서 울면 창피해.”
만복은 종이를 펴지 않고 반으로 한 번 더 접어 허리 보호대의 빨간 끈 사이에 끼웠다.
*
가족들이 돌아간 뒤, 마성훈이 1분대 생활관에 들어왔다. 촬영병은 없었다. 그는 문을 닫고 아저씨들을 둘러보았다.
“수료 축하드립니다. 오늘 영상은, 솔직히 말하면 제가 원한 엔딩이 아니에요. 근데 편집팀은 좋다네요. 연단 장면이요.” 그가 웃었다. 그 웃음이 오늘따라 짧았다. “진급 심사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오고요.”
그가 서류 한 장을 이준에게 건넸다.
“다음 주에 2기 재복무자 천이백 명 입소 준비가 시작돼요. 그걸 맡을 지원중대가 새로 생기는데, 그 중대장이 저예요.” 마성훈이 아저씨들을 하나씩 보았다. “1분대는 자대 배치 없이 전원 지원중대로 옵니다. 분대장도 소 상병 그대로. 장만복 이병님, 열여덟 달 중에 열일곱 달 남으셨죠?”
만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랑 같이 가시죠. 남은 열일곱 달,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