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91자)
전원 완주
마흔에 다시 입대했다, 분대장은 스무 살 · 백해원
새벽 다섯 시의 연병장에 군장 백이십 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완전군장은 전투에 나갈 때 필요한 짐을 다 꾸린 배낭이었고, 무게는 하나에 이십오 킬로그램이었다. 그 앞에 아저씨 백이십 명이 서 있었다. 누군가 군장을 들어 올리다가 “어이쿠” 했고, 그 소리가 대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잇달아 번졌다.
“오늘은 25킬로미터입니다.” 마성훈이 연단에서 말했다. 뒤로 드론 다섯 대가 떠 있었다. 지난번보다 둘이 늘었다. “오늘 영상의 제목은 「전원 완주」입니다. 재복무 시범중대 백이십 명,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결승선을 넘습니다. 낙오는 없습니다.”
아저씨들이 서로를 보았다.
“구급차는 대열 맨 뒤에 따라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쓰지 않겠습니다. 힘들면 옆 사람이 부축하세요. 부축하는 그림이 이 영상의 핵심입니다.”
이준이 1분대 앞에서 군장 끈을 하나하나 당겨 보았다. 고봉구의 끈을 당기자 고봉구가 “아, 분대장님, 거기 파스 붙은 데야” 하고 엄살을 떨었다. 남궁철의 끈을 당길 때 이준이 멈췄다.
“무릎 괜찮으세요?”
“저요? 트레이너였어요.” 남궁철이 무릎을 굽혔다 폈다 보였다. 뚝 소리가 났다. “이건 원래 나는 소리예요.”
*
처음 10킬로미터는 소풍 같았다. 구월 끝자락의 아침 공기가 서늘했고, 논에서 벼 익는 냄새가 올라왔다. 고봉구는 걸으며 단톡방에 올릴 문장을 입으로 지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행군 중입니다, 폼 미쳤습니다.” 배영철은 지난번처럼 걸음을 세다가 이번엔 만 단위에서 스스로 그만두었다.
“세다가 끊기면 더 힘들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안 세.”
“그게 돼요?”
“안 돼. 지금도 속으로 세고 있어. 칠천이백십.”
우형래는 맨 뒤에서 「자 이제 1분대 하객 여러분, 다음 순서는 오르막입니다」 하고 사회를 봤고, 그 옆 2분대 아저씨들까지 따라 웃었다. 마성훈은 지프 안에서 그 웃음을 드론으로 내려다보며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웃는 거 좋아요. 지금 그 얼굴 그대로.”
10킬로미터 지점에서 첫 휴식이 왔다. 이번에는 마성훈도 쉬는 시간을 건드리지 않았다. 지난번 삼거리 영상이 편집팀 손에서 「규정을 지키는 아저씨들」로 바뀌어 위에서 칭찬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1분대는 길가 둑에 군장을 기대 놓고 나란히 앉았다.
탁기중이 군장 옆주머니에서 비닐 뭉치를 꺼냈다. 육포였다. 정육점에서 직접 말려 입소 날 몰래 챙겨 왔다고 했다.
“이거 규정 외 물품……” 이준이 말을 꺼내다 말았다.
“분대장님 거 제일 큰 걸로.” 탁기중이 가장 두꺼운 조각을 이준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뇌물 아니고 단백질이야.”
이준은 육포를 한참 들고 있다가 한 입 씹었다. 짜고 달고 질겼다. 그가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와, 이거 진짜 개추…….”
“개추?” 고봉구가 종이 쪽지를 꺼냈다. 지난주에 받아 적은 낱말 쪽지였다. “그건 여기 없는데. 개가 추워?”
“추천한다는 거예요. 아주 많이.”
“그럼 개는 왜 들어가?”
“……그냥 들어가요.”
배영철이 사탕을 돌렸고, 고봉구가 파스를 돌렸다. 남궁철은 아저씨들에게 종아리 푸는 법을 가르쳤는데, 시범을 보이느라 무릎을 굽혔다 펼 때마다 아까보다 조금 큰 소리가 났다. 이준이 그 소리를 듣고 남궁철의 무릎을 오래 보았다. 남궁철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12킬로미터부터 웃음이 줄었다. 15킬로미터부터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햇볕이 올라왔고, 군장 끈이 어깨뼈를 파고들었다. 만복의 빨간 끈 매듭이 등에서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그는 걸음마다 허리 아래쪽 한 점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17킬로미터 지점, 내리막 자갈길이었다. 남궁철이 내딛은 오른발이 자갈 위에서 미끄러졌다. 무릎이 안쪽으로 꺾이는 것이 만복의 눈에 그대로 보였다. 뚝 하는 소리가 이번에는 달랐다. 남궁철이 비명을 삼키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철아!”
남궁철이 무릎을 감싸 쥐었다. 얼굴이 하얬다. “형님, 괜찮아요. 잠깐만, 잠깐만요.”
이준이 달려왔다. 남궁철의 무릎을 보더니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그런데 무전기를 입에 대기 전에 지프 쪽에서 먼저 마성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분대, 무슨 일이야? 부축해서 계속 가세요. 지금 그림 좋아.”
이준이 무전기를 든 채 남궁철을 보았다. 남궁철이 고개를 저었다.
“분대장님, 저 걸을 수 있어요. 진짜예요. 저 여기서 빠지면 우리 분대 꼴찌예요.”
*
만복이 남궁철의 왼팔을 자기 어깨에 걸었다. 탁기중이 오른팔을 걸었다. 셋이 한 몸처럼 자갈길을 내려갔다. 남궁철은 오른발을 디딜 때마다 숨을 들이켰다.
“철아, 내가 얘기 하나 해 줄까?”
“예……”
“우리 딸이 일곱 살 때 내가 가게를 열었어. 개업하는 날 아침에 걔가 종이로 왕관을 만들어 왔어. 노란 색종이로. 거기다 크레파스로 ‘사장님 아빠’라고 써서 내 머리에 씌워 줬어.”
남궁철이 걸음을 옮기며 웃었다. “쓰셨어요?”
“썼지. 하루 종일 썼어. 손님들이 다 웃었어. 근데 그날 내가 튀김 솥에 팔을 뎄거든. 처음 해 보는 장사라 기름 온도를 몰라서. 아파서 주방 뒤에서 우는데, 걔가 와서 왕관이 삐뚤어졌다고 고쳐 주더라고.” 만복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사장님은 울면 안 돼’ 그러더라. 일곱 살이.”
“……그래서 안 우셨어요?”
“울었지. 왕관 쓰고.”
남궁철이 웃다가 무릎이 울려 신음했다. 탁기중이 반대쪽에서 투덜거렸다. “아, 이 양반. 지금 울리려고 그 얘기 하는 거야, 웃기려고 하는 거야?”
“걷게 하려고.”
그 왕관은 지금도 가게 계산대 뒤 벽에 압정으로 꽂혀 있었다. 노란 색종이가 기름때에 누렇게 바래서, 이제는 크레파스 글씨가 반쯤만 보였다. 예진은 그 왕관을 떼자고 세 번 말했고, 만복은 세 번 다 못 들은 척했다.
*
20킬로미터 지점에서 남궁철이 멈췄다. 이제 오른발을 아예 땅에 대지 못했다. 무릎이 군복 바지 위로 보일 만큼 부어올라 있었다. 만복이 그의 군장을 벗겨 자기 가슴 쪽에 메었다. 앞뒤로 이십오 킬로그램씩, 오십 킬로그램이었다. 허리 아래 그 한 점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형님, 그러다 형님 허리 나가요.”
“가게에서 닭 열 상자씩 들었어. 한 상자에 십오 킬로야.”
“그거 몇 년 전 얘기예요?”
만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준이 무전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지프가 1분대 옆에 멈춰 섰다. 마성훈이 내렸다. 드론 다섯 대가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좋아요. 아저씨가 동료 군장까지 메고. 이거 그림 좋네.” 마성훈이 만복의 앞뒤 군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5킬로미터만 더 가면 돼요. 결승선에서 구급차 부르겠습니다.”
“중대장님.” 이준이 말했다. “남궁철 훈련병님 무릎은 연골이 다친 것 같습니다. 지금 구급차 불러야 합니다.”
“결승선에서.”
“지금입니다.”
마성훈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소 상병. 오늘 영상 제목이 뭐야?”
“「전원 완주」입니다.”
“지금 남궁철 훈련병 빠지면 제목이 뭐가 돼?”
이준이 대답 대신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의무대, 의무대. 여기는 재복무 시범중대 1분대 분대장. 20킬로미터 지점, 무릎 부상자 한 명, 구급차 요청합니다. 반복합니다, 구급차 요청합니다.”
마성훈이 손을 뻗어 무전기를 잡으려 했다. 만복이 그 사이로 한 걸음 들어섰다. 앞뒤로 군장 두 개를 멘 채였다. 마성훈의 손이 군장에 막혀 멈췄다.
“중대장님.” 만복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제목은 바꾸면 되잖아요. 「거의 전원 완주」. 그것도 괜찮아요.”
뒤에서 우형래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고봉구가 따라 웃었다. 마성훈은 웃지 않았다. 그는 만복을 오래 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무전기에서 의무대의 대답이 들렸다. 구급차가 대열 맨 뒤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좋아.” 마성훈이 지프로 돌아가며 말했다. “1분대는 시범 분대 평가에서 오늘 점수 없습니다. 소 상병, 무전 지휘 체계 위반은 따로 얘기하자.”
*
구급차가 남궁철을 싣고 떠났다. 남궁철은 들것 위에서 고개를 들고 “형님들, 꼴찌 해서 죄송해요” 하고 외쳤다. 문이 닫혔다.
만복은 남궁철의 군장을 벗어 이준에게 넘기려 했다. 이준이 먼저 받아 메었다. 스무 살 어깨에 군장 두 개가 걸리자 이준의 무릎이 한 번 휘청했다.
“분대장님, 그거 내가……”
“제가 메겠습니다. 훈련병님은 허리부터 펴세요.”
만복은 허리를 펴려다 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반쯤 굽은 자세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그 자세로 5킬로미터를 걸었다. 배영철이 옆에서 걸음을 다시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이번에는 만복을 위해 소리 내어 셌다. 고봉구가 앞에서 길의 돌멩이를 발로 치웠고, 탁기중이 뒤에서 만복의 군장 밑을 손으로 받쳤다.
결승선은 오후 두 시 십 분이었다. 1분대는 중대에서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결승선을 넘는 순간 만복의 무릎이 풀렸고, 그는 흙바닥에 모로 쓰러졌다. 허리에서 무언가 빠지는 느낌이 났다. 머리 위에서 드론 소리가 났다.
*
의무대 침상은 소독약 냄새가 났고, 만복은 그 위에 엎드려 허리에 찜질팩을 얹고 있었다. 군의관은 디스크가 조금 더 밀려 나왔다고 했다. 사흘은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옆 침상에 남궁철이 다리에 부목을 대고 누워 있었다. 연골이 찢어졌다고 했다. 수술은 수료식 뒤로 잡혔다.
“형님. 그 왕관 얘기, 진짜예요?”
“진짜야. 가게 오면 보여 줄게. 반쯤 지워졌는데.”
“가 볼게요. 전역하면 치킨 먹으러.” 남궁철이 천장을 보며 웃었다. “거의 전원 완주 기념으로.”
커튼이 젖혀졌다. 마성훈이었다. 그는 손에 종이 몇 장을 들고 있었다. 침상 옆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그 종이를 만복의 베개 옆에 내려놓았다.
“선배님, 고생하셨어요. 오늘 영상은 제목을 바꿨어요. 「서로의 무게」. 아까 그 군장 두 개 멘 장면, 편집팀이 좋아해요.” 그가 종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그리고 이건 수료식 소감문이에요. 장만복 훈련병이 재복무자 대표로 낭독합니다. 제가 다 써 놨어요. 외우시기만 하면 돼요.”
만복은 엎드린 채 고개만 돌려 종이를 보았다. 글씨가 작아서 첫 줄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라가 부르면, 마흔도 스무 살입니다.」
“그리고 이번 수료식에 따님 오시죠?” 마성훈이 웃었다. “따님 대사도 하나 써 놨어요. 짧아요. 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