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02자)
방독면 벗고 웃어 주세요
마흔에 다시 입대했다, 분대장은 스무 살 · 백해원
소이준은 화요일 밤 열한 시에 생활관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닫을 뻔했다.
불 꺼진 생활관 안에서 아저씨 여덟이 침상에 둘러앉아 손전등 하나를 가운데 두고 있었다. 가운데에 앉은 고봉구가 테이프 감은 안경을 코끝에 걸고 종이 한 장을 팔 길이만큼 떼어 들고 있었다. 이준이 손전등 빛을 따라 보니 종이에는 볼펜으로 쓴 낱말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킹받네, 럭키비키, 폼 미쳤다, 맛도리.
“분대장님, 잘 왔어.” 고봉구가 반겼다. “이거 맞는지 좀 봐 줘. 주말에 아들한테 문자 보내려고.”
“아드님이랑 연락 안 하신다면서요.”
“그러니까 젊은 말로 보내야 답장이 오지.” 고봉구가 종이를 내밀었다. “‘아들아, 아빠 군대 와서 폼 미쳤다. 럭키비키.’ 이거 말 돼?”
이준은 종이를 받아 들고 한참 보았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문법은 틀렸는데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아드님이 답장은 하실 것 같은데요.”
“거봐!” 고봉구가 무릎을 쳤다. 다른 아저씨들이 각자 종이에 무언가를 받아 적었다. 탁기중은 ‘킹받네’를 ‘킹 받네’로 띄어 썼고, 배영철은 낱말마다 뜻을 옆에 달았다. 우형래는 그 낱말들로 결혼식 축사를 지어 보겠다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준은 손전등 불빛 아래 둘러앉은 아저씨들을 보다가 열두 살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하던 호프집은 밤 열한 시면 이런 얼굴의 아저씨들로 꽉 찼다. 그 아저씨들은 시끄러웠고, 담배 냄새가 났고, 어린 이준의 머리를 허락 없이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그 시끄러운 가게를 이 년 더 하다가 문을 닫았고, 문을 닫은 그해 겨울 집을 나갔다.
“분대장님?” 만복이 그를 보고 있었다.
“……취침 시간입니다. 손전등 끄세요.”
*
수요일 아침, 가스실 앞 공터에는 최루가스 냄새가 벌써 엷게 깔려 있었다. 눈과 코가 먼저 알았다. 콧속이 따끔거리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시멘트로 지은 낮은 건물 한 채에 철문 하나가 달려 있었고, 그 앞에 드론 세 대와 촬영병 넷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성훈이 태블릿을 들고 분대장들 앞에 섰다. 화면에 그림 몇 장이 순서대로 붙어 있었다. 촬영 순서를 미리 그려 둔 그림이었다.
“다른 분대는 원래 순서대로. 들어가서 방독면 벗고, 이름이랑 군번 말하고, 바로 나와.” 그가 화면을 넘겼다. “1분대만 달라요. 방독면 벗고, 그 자리에서 군가 한 절 부르고, 마지막에 카메라 보고 웃어요. 눈물 콧물 범벅인데 웃는 얼굴, 그게 엔딩이에요.”
이준은 화면을 보았다. 군가 한 절이면 사십 초가 넘었다. 원래 순서는 십 초 남짓이었다.
“중대장님. 군가 한 절이면 노출 시간이 규정보다……”
“알아. 그래서 1분대 아저씨들 체력 검사 결과 다 봤어. 다들 괜찮아.”
“탁기중 훈련병님은 비염 진단서가 있습니다.”
마성훈이 화면에서 눈을 들었다.
“비염?”
“코 막히는 거요. 심하면 숨이 안 쉬어지는 거요.” 이준이 서류철을 펴서 진단서 사본을 보였다. “최루가스에 오래 노출되면 위험할 수 있다고 군의관님 소견이 붙어 있습니다.”
“그럼 탁 훈련병은 빼고.”
“나머지 분도 사십 초는 규정 위반입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옆에 서 있던 다른 분대장들이 이준을 보았다. 이준은 자기 손이 서류철 모서리를 너무 세게 쥐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놓지 않았다.
마성훈이 웃었다. 늘 짓는 그 웃음이었다.
“소 상병. 규정 좋아하지?”
“예.”
“그럼 규정대로 하자. 1분대는 원래 순서대로 십 초. 대신 엔딩 장면은 누가 찍어 줘야 돼.” 마성훈이 태블릿을 이준의 가슴에 툭 댔다. “분대장이 해. 분대원들 다 나오고 나서 네가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방독면 벗고, 한 절 부르고, 웃어. 스무 살 분대장이 아저씨들 대신 버티는 그림. 그것도 좋아.”
공터가 조용해졌다. 바람이 한 번 불어 최루가스 냄새를 실어 왔다. 누군가 기침을 했다.
뒤에서 만복의 목소리가 났다. “중대장님,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선배님은 빠지세요.”
“분대장님은 스무 살입니다.”
“그래서 그림이 되죠.” 마성훈이 만복을 보지도 않고 이준에게 말했다. “할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원래 그림대로 1분대 전원 사십 초.”
이준은 아저씨들을 돌아보았다. 탁기중이 벌써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배영철이 허리에 손을 짚고 있었고, 고봉구의 테이프 감은 안경이 코끝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하겠습니다.”
*
1분대 일곱 명은 십 초씩 들어갔다 나왔다. 나올 때마다 다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비틀거렸고, 남궁철은 “이건 근육으로 안 되는 거네” 하고 콜록였다. 고봉구는 나오자마자 “럭키비키!” 하고 외치고 쓰러졌다. 탁기중은 공터 끝 나무 그늘에서 코를 감싸 쥔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이준이 혼자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가스실 안은 뿌옇고 매웠다. 방독면 너머로도 공기가 따가웠다. 벽에 붙은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이준은 방독면 끈을 풀었다. 벗는 순간 눈에 불이 들어왔다. 코와 목구멍이 한꺼번에 타올랐다. 숨을 들이쉬자 폐가 거부했다.
그는 군가를 시작했다. 첫 소절에서 목이 막혔다. 두 번째 소절에서 콧물이 입술까지 흘렀다. 세 번째 소절은 목소리가 아니라 쇳소리였다. 그래도 그는 부르다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엔딩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눈을 뜨고 불렀고, 눈을 뜨고 있으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마지막 소절을 끝내고 그는 카메라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 얼굴이 웃는 얼굴인지 우는 얼굴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철문이 열렸다. 이준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바깥 공기가 얼굴에 닿자 오히려 더 따가웠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아 나무 그늘로 끌고 갔다. 만복이었다. 만복은 수통을 열어 이준의 얼굴에 물을 부었다. 이마부터, 눈두덩, 콧등 순서대로. 그러고는 자기 손수건을 꺼내 이준의 코를 감싸 쥐었다.
“흥 해요.”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흥.”
이준은 흥 했다. 콧물이 손수건 가득 나왔다. 만복은 손수건을 접어 한 번 더 대 주었다. 예진이 일곱 살 때 감기에 걸리면 그렇게 했다고, 만복이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드론 하나가 나무 그늘 위로 내려왔다. 렌즈가 두 사람을 향했다. 만복이 드론을 올려다보며 손바닥으로 이준의 얼굴을 가렸다.
“이건 찍지 마세요.”
드론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다시 올라갔다.
*
토요일 오후, 휴대전화를 돌려받는 시간이었다. 생활관에 아저씨들의 휴대전화 알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고봉구의 전화에서는 알림이 이백 개가 넘게 울렸고, 그는 그중 하나를 열어 보고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들이 답장했어! ‘아빠 그 말 그렇게 쓰는 거 아님.’ 답장했다고!”
아저씨들이 박수를 쳤다. 고봉구는 그 한 줄을 다섯 번 소리 내어 읽었다.
만복은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이준을 불렀다.
“분대장님, 이거 좀 들고 있어 줄래요? 팔을 뻗어야 화면이 보이는데, 뻗으면 내 얼굴이 작게 나와서.”
이준이 휴대전화를 받아 만복의 얼굴 앞, 적당히 떨어진 자리에 들었다. 화면에 예진의 얼굴이 떴다. 교복 위에 후드티를 입고, 머리를 연필로 꽂아 올린 얼굴이었다.
“어, 아빠. 머리 진짜 밀었네. 대박.” 예진이 화면에 바짝 다가왔다. “옆에 그 사람 누구야? 손만 나오는데.”
“분대장님.”
“아, 그 스무 살?” 예진의 목소리가 장난스러워졌다. “분대장님, 우리 아빠 몇 번 혼냈어요? 엄마랑 내기했거든요.”
이준이 휴대전화를 든 채 굳었다. 만복이 웃었다. “분대장님 곤란하게 하지 마.”
“알았어. 근데 아빠, 쉿.” 예진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엄마 보여 줄게. 근데 소리 내지 마.”
화면이 돌아갔다. 가게 홀이 보였다. 오후 세 시, 점심 장사와 저녁 장사 사이의 빈 시간이었다. 손님 없는 탁자들 너머 구석 평상 위에 윤정이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앞치마를 맨 채였고, 한 손에는 고무장갑을 낀 채였고, 고개가 벽에 기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평상 옆 바닥에 식용유 통 두 개가 눕혀져 있었다.
예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이 조금 흔들렸다. 예진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만복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준은 휴대전화를 든 채 만복의 옆얼굴을 보았다. 만복의 눈이 화면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일 분쯤 지났다. 가게 냉장고가 웅 하고 도는 소리가 화면 너머에서 작게 들렸다.
화면이 다시 돌아와 예진의 얼굴이 떴다. 예진이 속삭였다.
“엄마 요즘 세 시간 자. 어제 백열 마리 나갔어. 아빠 있을 때 최고가 백 마리였잖아.”
“……응.”
“엄마한테 내가 보여 줬다고 하지 마. 그럼 안녕.”
화면이 꺼졌다. 이준은 꺼진 화면을 든 채 서 있다가 휴대전화를 만복에게 돌려주었다. 만복은 휴대전화를 받아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편지가 들어 있던 그 주머니였다.
이준은 아버지가 호프집 구석에서 잠들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 모습을 화면으로 대신 보여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그날 저녁, 이준은 주간 보고서를 들고 중대장실에 들어갔다. 마성훈은 자리에 없었다. 책상 위에 보고서를 놓으려는데 달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0월 11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고, 그 옆에 마성훈의 반듯한 글씨가 있었다.
「소령 진급 심사 — 영상 1차 편집본 제출」.
그 아래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수료식 = 엔딩. 1분대 장만복 + 가족. 눈물 필수.」
이준은 보고서를 내려놓고 한참 그 포스트잇을 보았다.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봤어?”
마성훈이 문틀에 기대 서 있었다.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고, 그중 하나를 이준에게 내밀었다. 이준은 받지 않았다. 마성훈은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다가, 잔을 책상 위 보고서 옆에 내려놓았다.
“가스실 영상 좋더라. 편집팀이 울었대.” 마성훈이 의자에 앉았다. “특히 마지막에 아저씨가 드론 가리는 장면. 그게 제일 좋아. 그건 내가 짜지도 않았는데.”
“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찍지 말라고 한 장면이 제일 잘 팔려.” 마성훈이 웃었다. “소 상병. 넌 오늘 규정을 들었고, 나는 그 규정 안에서 더 좋은 그림을 건졌어. 둘 다 이겼네. 그런데 다음에도 이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어.”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수료식까지 열사흘 남았어. 그날 장만복 훈련병 가족이 와. 그 장면은 네가 만들어. 아저씨 설득하는 거, 분대장이 제일 잘하잖아.”
“제가 안 하면요?”
“분대장은 바꾸면 돼.” 마성훈이 달력의 빨간 동그라미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나는 이 날짜를 못 바꾸고.”
이준은 경례를 하고 나왔다. 복도 끝 생활관에서 고봉구가 아들의 답장을 또 소리 내어 읽고 있었고, 아저씨들이 또 박수를 쳤다. 이준은 그 박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목구멍이 아직도 가스 맛으로 따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