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01자)

삼백 인분

마흔에 다시 입대했다, 분대장은 스무 살 · 백해원

재촬영은 다음 날 밤 그대로 했다. 같은 십 킬로미터, 같은 삼거리, 같은 드론 조명이었다. 다른 것은 하나였다. 만복이 바닥에 앉자 이준이 대본대로 손을 내밀었고, 만복이 대본대로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마성훈이 “좋아요, 오케이” 하고 외쳤다. 이준의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만복은 일어선 뒤에도 그 손을 바로 놓지 않았다가, 이준이 먼저 손을 뺐다.

그 뒤로 이준은 만복에게 꼭 필요한 말만 했다. 만복도 그랬다.

*

둘째 주 수요일 열한 시 사십 분, 훈련소 제2식당 앞에 줄이 운동장 끝까지 늘어서 있었다. 스무 살 일반 훈련병과 마흔 살 재복무자가 섞인 줄이었고, 모두 식판을 들고 있었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행정보급관 도미숙 상사가 식당 문 앞에서 무전기를 붙들고 있었다. 중대의 살림과 보급을 맡는 쉰한 살 부사관이었고, 지금은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는 중이었다.

“취사병이 셋 빠졌어. 둘은 독감, 하나는 어제 전출.” 그녀가 1분대 쪽을 보며 말했다. “스무 살이 없어서 아저씨들 불렀다더니, 이제 밥할 스무 살도 없어.”

식당 안쪽 주방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만복의 코가 먼저 반응했다. 튀김옷이 기름 속에서 너무 오래 있을 때 나는 냄새였다.

“상사님. 오늘 메뉴가 뭡니까?”

“닭강정. 천이백 인분.”

만복이 줄에서 한 걸음 나왔다. 이준이 뒤에서 “장 훈련병님” 하고 불렀지만 만복은 이미 도미숙 앞에 서 있었다.

“주방에 몇 명 남았습니까?”

“취사병 둘이랑 조리원 한 분.”

“튀김 솥은요?”

“여섯 개.”

“1분대 여덟 명 들어가면 열한 명입니다. 솥 하나에 둘씩 붙이고, 배식대에 셋.” 만복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삼백 인분씩 네 번 돌리면 열두 시 반에 마지막 줄까지 나갑니다.”

도미숙이 만복을 위아래로 훑었다. “자네 뭐 하던 사람이야?”

“치킨집 점장이요. 금요일 밤에 혼자 이백 마리 튀겼습니다.”

도미숙이 무전기를 내렸다. “들어가.”

*

주방은 열기와 소리로 꽉 차 있었다. 커다란 튀김 솥 여섯 개가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그중 두 개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앳된 취사병 하나가 국자를 들고 어쩔 줄 몰라 서 있었다.

만복은 들어가자마자 연기 나는 솥 두 개의 불을 껐다. 그리고 솥 위에 손바닥을 대고 이 초쯤 있다가 말했다.

“이 솥 기름 버려. 너무 올라갔어. 나머지 넷은 170도에 맞춰.”

“온도계가 고장이라서……”

“온도계 필요 없어. 반죽 한 방울 떨어뜨려서 바닥까지 갔다가 바로 떠오르면 170도야. 바닥에 붙어 있으면 낮고, 떨어지자마자 튀어 오르면 높아.”

취사병이 반죽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방울이 바닥까지 갔다가 톡 떠올랐다. 취사병의 입이 벌어졌다.

만복은 1분대를 돌아보았다. 그때부터 그의 말이 빨라졌다.

“탁 사장님, 닭 손질. 한 조각 크기 똑같이. 크기가 다르면 익는 시간이 달라.”

“그거야 내 전문이지.” 정육점을 하던 탁기중이 소매를 걷고 칼을 잡았다.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이어졌다.

“배 대리님, 재고. 닭 몇 상자, 전분 몇 포대, 소스 몇 통인지 세서 먼저 들어온 것부터 꺼내.”

“세는 거면 자신 있습니다.” 배영철이 창고로 들어가며 벌써 입속으로 숫자를 셌다.

“남궁철 씨, 솥 옆에서 바구니 들어. 넣고 빼고, 넣고 빼고. 허리 말고 다리로.”

“제가 원래 다리 전문입니다.”

“고 사장님은 배식대 줄 관리. 화난 사람 달래는 거.”

고봉구가 다초점 안경을 고쳐 썼다. “집 보러 온 사람 기분 맞추는 게 내 일이었어.”

“우형래 씨, 안내 방송.”

우형래가 주방 입구의 마이크를 집었다. 식당 스피커에서 결혼식장 사회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객 여러분, 아니 훈련병 여러분, 잠시 후 닭강정이 입장합니다. 큰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바깥 줄에서 박수와 웃음이 터졌다.

이준은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 서류철을 든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분대장님.” 만복이 이준을 보지 않고 말했다. 처음으로 꼭 필요한 말 이상이었다. “칼질은 할 줄 알아요?”

“……못 합니다.”

“그럼 소스 저어요. 바닥 안 눌어붙게. 팔 아파도 멈추면 안 돼요.”

이준이 서류철을 내려놓고 커다란 주걱을 잡았다. 소스 솥에서 달고 매운 냄새가 확 올라왔다. 그는 십 분쯤 젓다가 혼잣말을 했다.

“와, 이거 냄새 완전 맛도리인데.”

솥 옆에서 바구니를 흔들던 남궁철이 받았다. “맛도리 나간다!”

“맛도리 나간다!” 탁기중이 칼질을 하며 따라 외쳤다. 배영철이 창고에서 전분 포대를 끌고 나오며 “맛도리 이십 포대!” 하고 외쳤다. 이준이 주걱을 든 채 얼굴이 빨개졌다.

“그거 그렇게 쓰는 말 아닌데요……”

“그럼 어떻게 써?”

“……그냥 맛있다는 건데요.”

“그럼 맞네. 맛도리 나간다!”

*

첫 삼백 인분이 열한 시 오십오 분에 나갔다. 두 번째 삼백 인분이 열두 시 십 분에 나갔다. 만복은 솥 여섯 개 사이를 오가지 않았다. 솥 두 개 사이 한가운데 서서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고, 바구니를 든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만 보냈다. 솥에서 배식대까지는 세 걸음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배식대를 솥 쪽으로 두 걸음 당겨 놓았다.

세 번째 삼백 인분이 기름에 들어갔을 때 주방 문이 열렸다.

마성훈이 촬영병 둘을 데리고 서 있었다. 그는 주방 안의 열기에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가 만복을 찾았다.

“선배님. 여기 계셨네요. 1분대 전원 지금 연병장으로 가셔야 됩니다.”

“지금은 못 갑니다.”

“열두 시 반에 각개전투 촬영이에요. 하나씩 엎드려 기고 뛰며 적진으로 들어가는 훈련, 그 그림 찍으려고 드론 세 대 대기시켰어요.”

“중대장님. 밥 나가는 중입니다.”

“밥은 취사병이 하죠.”

“취사병이 셋 빠졌습니다. 지금 저 줄 끝에 선 애들 아직 밥 못 먹었어요.” 만복이 국자로 주방 창 너머를 가리켰다. 운동장 끝까지 이어진 줄의 뒤쪽은 거의 다 스무 살 일반 훈련병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들이 햇볕 아래 땀을 흘리며 식판을 들고 서 있었다. “이백 명 남았습니다. 손님 밥 나가는 중에 주방 비우는 점장은 없습니다.”

“선배님은 점장이 아니라 훈련병이에요.”

마성훈이 이준을 돌아보았다. 이준은 소스 솥 앞에서 주걱을 든 채 굳어 있었다.

“소 상병. 1분대 데리고 나와.”

이준이 주걱을 내려놓았다. 소스 솥에서 거품이 톡톡 터졌다. 그는 앞치마를 벗으며 만복에게 말했다.

“장 훈련병님. 중대장님 명령입니다. 나가셔야 돼요.”

만복이 이준을 보았다. 화를 내지 않았다. 국자를 든 채 그냥 보았다.

“분대장님. 저 줄 끝에 선 애들, 분대장님하고 같은 나이예요.”

이준의 손이 앞치마 끈에서 멈췄다.

주방 안이 조용해졌다. 튀김 솥만 끓었다. 탁기중의 칼질이 멈췄고, 배영철이 세던 숫자가 멈췄다. 창밖에서 우형래의 안내 방송이 아무것도 모르고 흘러들어 왔다. “다음 하객 입장하실게요!”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앞치마를 다시 묶지도 않고, 벗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마성훈이 그 침묵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 촬영병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찍어.”

“예?”

“땀 흘리며 장병 밥 짓는 재복무자. 이것도 그림이야.” 마성훈이 다시 만복에게 웃었다. “대신 열두 시 사십 분까지 끝내세요. 그리고 1분대는 바로 연병장으로 갑니다. 각개전투는 오늘 그대로 찍어요. 씻을 시간 없습니다.”

*

마지막 삼백 인분이 열두 시 삼십팔 분에 나갔다. 줄 끝의 스무 살들이 닭강정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그중 하나가 배식대 너머의 만복에게 “아버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가 옆 사람에게 옆구리를 찔렸다. 고봉구가 “아버님 맞아, 괜찮아” 하고 웃었다.

1분대는 기름 냄새를 그대로 묻힌 채 연병장 흙바닥을 기었다. 마성훈은 같은 장면을 일곱 번 찍었다. 일곱 번째에 만복은 흙 언덕을 넘다가 미끄러져 얼굴부터 흙에 박혔다. 입안에 모래가 씹혔다. 위에서 드론이 윙윙거렸다.

“좋아요, 그거 그대로 한 번 더!”

이준은 연병장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마성훈이 그에게 무언가를 낮게 말했고, 이준은 고개를 숙인 채 들었다. 이준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만복은 듣지 못했다. 이준의 군화 끝이 흙을 파고 있었다.

*

저녁 점호가 끝나고, 이준이 인터넷 편지를 나눠 주러 생활관에 들어왔다. 훈련소 누리집에 가족이 편지를 쓰면 그것을 종이로 뽑아 훈련병에게 건네 주는 제도였다. 아저씨들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들 각개전투 탓에 일어나는 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장만복 훈련병님. 따님이요.”

만복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팔을 쭉 뻗었다. 좀 더 뻗었다. 글씨가 작았다. 예진은 원래 글씨를 작게 썼다. 그는 종이를 형광등 쪽으로 기울였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가, 결국 고봉구를 돌아보았다.

“고 사장님, 안경 좀.”

“오늘 각개전투 하다 다리 하나 부러졌어.” 고봉구가 테이프로 감은 안경을 들어 보였다.

만복은 종이를 든 채 한참 앉아 있었다. 이준이 다른 편지를 다 나눠 주고 문 쪽으로 가다가 돌아섰다. 그러고는 만복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주일 전 삼거리 촬영 때와 같은 손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찍지 않았다.

“……제가 읽어 드릴까요?”

만복이 종이를 건넸다. 이준이 침상 끝에 걸터앉아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아빠. 분대장 오빠한테 몇 번 혼났어? 엄마는 열 번이라고 하고 나는 스무 번이라고 했어. 진 사람이 설거지야.”

생활관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이준이 귀를 붉히며 계속 읽었다.

“가게는 잘 돼. 엄마가 아빠 양념 비율 까먹어서 대충 했는데, 단골 아저씨가 원래보다 맛있대. 아빠 돌아오면 일자리 없을 수도 있음. 그리고 나 9월 모의고사 국어 올랐어. 수학은 묻지 마.”

이준이 종이를 넘겼다. 마지막 몇 줄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줄을 먼저 눈으로 읽고 잠깐 멈췄다.

“……아빠 허리 끈, 엄마가 아빠 들어가기 전날 밤새 꿰맸어. 손가락 다섯 군데에 밴드 붙였어. 엄마가 아빠한테 말하지 말랬는데 말함. 아빠 허리 아프면 엄마 손가락 다섯 개 생각하고 버텨. 그럼 안녕. 설거지는 엄마가 해.”

이준의 목소리가 마지막 문장에서 한 번 갈라졌다. 그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만복에게 돌려주었다.

만복은 종이를 받아 군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단추를 채웠다. 그리고 손을 등 뒤로 돌려 빨간 끈 매듭을 한 번 만졌다. 생활관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탁기중이 괜히 군화 끈을 풀었다 묶었고, 배영철이 천장을 보았다.

“분대장님.” 만복이 말했다. “오늘 주방에서, 고마웠어요.”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안 나갔잖아요.”

이준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났다. 문고리를 잡고,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다음 주 수요일 화생방입니다. 독가스 공격에 대비해서 최루가스 찬 방에 방독면 쓰고 들어갔다 나오는 훈련이요.” 그가 잠깐 멈췄다. “중대장님이 1분대는 가스실 안에서 방독면 벗고 군가 부르는 장면으로 끝내겠대요.”

생활관이 조용해졌다. 고봉구가 테이프 감은 안경을 코끝에 걸며 물었다.

“군가 가사 아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준이 문을 닫고 나갔다. 닫힌 문 너머 복도에서 그의 군화 소리가 한참 멈춰 있다가 멀어졌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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