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22자)
오십 분 걷고 십 분
마흔에 다시 입대했다, 분대장은 스무 살 · 백해원
밤 열한 시의 훈련소 뒷길은 가로등이 백 미터에 하나였고, 그 사이 어둠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군화 소리보다 컸다. 1분대 여덟 명은 소총과 배낭을 메고 두 줄로 걸었다. 배낭은 십 킬로그램이라고 했는데, 만복의 허리는 그 숫자를 믿지 않았다. 빨간 끈 매듭이 걸음마다 등뼈를 한 번씩 눌렀다.
맨 앞에서 이준이 지도와 손전등을 들고 걸었다. 그 뒤로 조금 떨어져 지프 한 대가 바퀴 굴러가는 속도로 따라왔다. 조수석에 마성훈이 앉아 있었고, 지프 지붕 위에서는 조명을 단 드론이 낮게 떠서 아저씨들의 머리통을 하얗게 비췄다.
“분대장님, 나침반 좀 봐 줘요.” 고봉구가 손바닥 위의 나침반을 코끝에서 멀리 뗐다가 가까이 댔다가 했다. “바늘이 두 개로 보여.”
“바늘은 하나예요, 훈련병님.”
“그러니까 하나가 두 개로 보인다고.”
이준이 뒤로 와서 고봉구의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바늘은 하나였다. 이준은 아무 말 없이 나침반을 받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이십 분쯤 걸었을 때 이준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버, 아니, 훈련병님들. 지금 폼 미쳤어요. 이대로만 가면 돼요.”
아저씨들이 동시에 멈칫했다. 배영철이 자기 허리를 내려다보았다.
“폼이 미쳤어? 자세가 이상하다는 거야?”
“아니요, 좋다는 거예요.”
“미쳤는데 좋아?”
“예. 미친 게 좋은 거예요.”
탁기중이 앞사람 등에 대고 중얼거렸다. “우리 땐 미치면 병원 갔는데.”
맨 뒤에서 우형래가 사회자 목소리로 받았다. “자, 신랑 측 하객분들, 지금 폼이 미쳤다고 합니다!” 남궁철이 웃음을 참다 사레가 들렸다. 지프 안에서 마성훈이 무전기를 들었다.
“1분대, 웃음소리 좋아요. 계속 웃으면서 가세요.”
웃음이 뚝 그쳤다.
*
한 시간이 지나자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군대 행군은 오십 분을 걷고 십 분을 쉰다. 이십 년 전에 만복도 그렇게 걸었고, 출발 전 이준도 서류철을 펴 놓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오십 분이 지나도 이준이 멈추지 않았다. 이준의 무전기에서 마성훈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해 뜨는 시각이 여섯 시 사 분이에요. 그때 저 언덕 위에 1분대가 서 있어야 돼. 지금 속도로는 빠듯하니까 쉬는 건 도착해서 하죠.”
이준이 무전기를 입에 대고 뭐라 하려다 그만두었다. 손전등 불빛이 땅바닥에서 조금 흔들렸다.
두 시간째에 탁기중의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그는 걸을 때마다 오른발을 반 박자 늦게 내디뎠다. 남궁철이 옆에서 트레이너 말투로 그를 붙들었다.
“형님, 발 디딜 때 뒤꿈치부터요. 뒤꿈치, 발바닥, 발가락. 굴리듯이.”
“굴리면 물집이 굴러.”
“물집은 안 구르고요.”
“나는 구르는 것 같아.”
배영철은 걸음을 세고 있었다. 숫자를 세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사람이었다. “만이천사백 걸음. 만이천사백하나.” 그 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만삼천 근처에서 끊겼다. 끊긴 자리에서 그는 허리에 손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허리에 손을 짚는 사람이 하나 둘 늘었다.
만복은 걸으면서 시간을 계산했다. 금요일 밤 아홉 시에 주문이 서른 건 밀리면, 그는 알바생 둘을 십 분씩 번갈아 뒷문 밖에 내보냈다. 안 내보내면 열 시 반에 한 명이 기름 솥에 손을 데었다. 열다섯 해 동안 두 번 데었고, 두 번 다 쉬는 시간을 건너뛴 밤이었다.
*
새벽 세 시, 대열이 논두렁 끝 삼거리에 닿았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고, 그 아래 시멘트 바닥에 낮의 열기가 아직 미지근하게 남아 있었다.
만복이 대열에서 벗어나 그 바닥에 주저앉았다. 배낭을 내리지도 않고, 소총을 무릎 위에 가로로 놓고, 다리를 쭉 뻗었다.
“장 훈련병님!” 이준이 달려왔다. “일어나셔야 돼요.”
“분대장님. 지금 몇 시예요?”
“세 시 이 분이요.”
“열한 시에 출발했으니까 네 시간이에요. 오십 분 걷고 십 분 쉬는 거면 우리 사십 분 못 쉬었어요. 그중에 십 분만 쉴게요.”
지프가 멈췄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마성훈이 내렸다. 드론이 그의 머리 위로 따라와 멈췄고, 조명이 삼거리 한가운데를 대낮처럼 밝혔다. 다른 아저씨들은 선 채로 만복과 마성훈을 번갈아 보았다.
“선배님. 일어나세요.”
“십 분만 쉬겠습니다.”
“해 뜨는 그림 놓쳐요.”
“중대장님.” 만복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드론 조명에 부셔 손바닥으로 가렸다. “저 가게에서 금요일 밤에 알바생 쉬는 시간 안 주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다. 다음 날 안 나와요. 아니면 기름에 손을 데요.”
“여긴 알바가 아니라 군대예요.”
“그러니까요. 알바는 안 나오면 새로 뽑으면 되는데, 우리는 나라가 이십 년 만에 다시 부른 사람들이잖아요. 첫날 밤에 허리 나가면 열여덟 달을 누가 채웁니까?”
마성훈의 얼굴에서 웃음이 천천히 걷혔다. 그는 만복을 내려다보다가 이준을 돌아보았다.
“소 상병. 분대장이 분대 통제를 해야지.”
이준이 서류철을 꽉 쥐었다. 손등의 힘줄이 섰다. 그는 만복을 보았고, 마성훈을 보았고, 다시 만복을 보았다. 아저씨 일곱이 숨을 죽이고 그를 보았다.
“……행군 규정상 오십 분마다 십 분 휴식입니다, 중대장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래도 끝까지 나왔다.
“규정은 내가 시간 맞춰서 지키겠다고 했잖아. 해 뜨고 이십 분 쉬게 해 준다고.”
“그건…… 규정에 있는 순서가 아닙니다.”
삼거리에 풀벌레 소리만 남았다. 마성훈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다시 웃는 얼굴이었다.
“좋아요. 십 분 쉬세요. 대신 장만복 훈련병, 지휘관 지시 불이행으로 경고 한 번. 그리고 해 뜨는 장면 놓치면 1분대는 내일 밤에 다시 찍습니다. 오늘 거리 그대로.”
그가 지프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컸다.
아저씨들이 하나둘 바닥에 주저앉았다. 탁기중은 군화를 벗자마자 “아이고, 엄마” 하고 신음했고, 고봉구는 배낭에서 파스를 꺼내 아무 데나 붙였다. 파스 냄새가 삼거리에 퍼졌다. 이준은 앉지 않고 손목시계만 보며 서 있었다.
“분대장님도 앉아요.” 만복이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리 떨리던데.”
이준이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만복에게서 한 사람 건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시곗바늘이 정확히 십 분을 돌았을 때, 이준이 먼저 일어났다.
*
1분대가 언덕에 닿은 것은 여섯 시 십 분이었다. 육 분 늦었다. 그런데 하늘이 잿빛 구름으로 꽉 덮여 있어서 해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동쪽이 희부옇게 밝아 오는 것이 전부였다.
드론이 언덕 위를 한 바퀴 돌다가 배터리가 떨어졌다는 경고음을 냈다. 마성훈이 지프 옆에서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구름 낀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언덕 위에 선 아저씨 여덟이 서로를 보았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러다 우형래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신랑 신부, 해 없이 입장합니다.”
남궁철이 무릎을 짚고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웃음이 옆 사람에게 번졌다. 고봉구가 파스 붙인 목을 붙잡고 웃었고, 배영철이 허리를 짚고 웃다가 허리가 아파 웃음을 멈췄다. 이준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언덕 아래로 그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
행군에서 돌아와 세 시간을 자고 열 시에 기상 호루라기가 울렸을 때, 침상에서 바로 일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눈은 떴는데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탁기중은 모로 누운 채 다리를 침상 밖으로 먼저 내리고, 그 무게로 상체를 끌어 올렸다. 배영철은 천장을 보고 누운 채 “하나, 둘, 셋” 하고 세다가 셋에서 다시 “하나”로 돌아갔다.
이준이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와 그 광경을 보았다.
“기상하셨으면 일어나셔야……”
“분대장님.” 고봉구가 누운 채 손만 들었다. “우리 지금 일어나는 중이야. 마흔 넘으면 일어나는 데도 순서가 있어. 눈 뜨고, 허리 확인하고, 무릎 확인하고, 그다음에 일어나.”
“그럼 지금 어디까지 하셨어요?”
“무릎 확인.”
이준이 시계를 보았다가, 아저씨들을 보았다가, 서류철에 무언가를 적는 척하며 말했다. “……교육 시작까지 삼 분 남았습니다. 무릎 확인 빨리 부탁드립니다.”
*
그날 저녁, 재복무자에게만 주어지는 첫 가족 통화 시간이 왔다. 한 사람에 오 분. 행정반 앞 복도에 아저씨들이 줄을 섰고, 이준이 손목시계를 들고 시간을 쟀다.
만복의 차례는 일곱 시 반이었다. 화요일이어도 저녁 일곱 시 반이면 가게가 제일 바쁜 시각이었다. 신호가 다섯 번 가고 나서야 윤정이 받았다.
“어, 나야.”
“알아. 번호 뜨잖아.” 윤정의 목소리 뒤로 배달 주문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띵, 띵, 띵. “잘 지내?”
“어. 밥 잘 나와. 당신은?”
“잘해. 걱정 마.” 띵. “예진이도 잘 있어.”
만복은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댔다. 알림음 사이로 튀김기 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높이로 기름 온도를 알 수 있었다. 조금 높았다. 180도쯤. 그러다 무언가 철판 위를 끌리는 소리가 났다. 묵직하게, 천천히.
“읏차.”
윤정의 숨이 수화기 속으로 들어왔다. 만복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았다. 열여덟 리터짜리 식용유 통을 혼자 끌어다 튀김기 옆에 세우는 소리였다.
“여보, 그거 무릎으로……”
“알아.”
“눕혀서, 무릎으로 받치고……”
“알아, 만복 씨.” 윤정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났다. “당신이 맨날 그렇게 했잖아. 그 소리 들으면서 열다섯 해를 살았는데 내가 몰라?”
만복은 대답하지 못했다. 띵, 하고 알림음이 또 울렸다.
“주문 들어왔다. 끊어.”
“어.”
“허리 끈 잘 매.”
전화가 끊겼다. 만복은 수화기를 든 채 한참 서 있었다. 수화기에서 뚜, 뚜 소리가 났다. 이준이 손목시계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삼 분 남으셨는데요.”
“괜찮아요. 가게가 바빠서.”
만복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줄 밖으로 나왔다. 이준은 다음 사람을 부르려다 말고 만복의 등을 잠깐 보았다. 군복 위로 허리 보호대의 빨간 끈 매듭이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
그날 밤 열 시, 이준은 중대장실에 불려 갔다.
마성훈은 책상 위 모니터로 어젯밤 영상을 돌려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만복이 삼거리 바닥에 앉아 있었고, 드론 조명이 그를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마성훈은 그 장면에서 영상을 멈췄다.
“소 상병. 이거 그림은 좋아. 지친 아저씨, 길바닥, 불빛. 근데 이야기가 틀렸어. 이 장면 다음에는 아저씨가 다시 일어나서 걸어야지. 분대장이 손을 내밀고.” 그가 의자를 돌려 이준을 보았다. “그 손을 네가 안 내밀었잖아.”
“규정이……”
“알아, 규정.” 마성훈이 웃었다. “너 상병 진급할 때 분대장 평가 내가 썼지? 병장 진급할 때도 내가 써. 이 영상이 잘 나가면 그 평가도 잘 나가. 무슨 말인지 알지?”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니터 속 정지 화면에서 만복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내일 밤 재촬영이야. 이번엔 네가 손 내미는 장면부터 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