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64자)
아버님들, 줄 좀 서 주세요
마흔에 다시 입대했다, 분대장은 스무 살 · 백해원
새벽 네 시의 튀김기는 아직 식어 있었고, 장만복은 기름통 뚜껑을 열기 전에 손바닥을 기름 위에 대고 한참 있었다. 열다섯 해를 이 주방에서 보내는 동안 생긴 버릇이었다. 수원 매탄동 상가 1층의 치킨 가맹점 「치킨대첩」 매탄점은 주방이 세 평 반이었고, 튀김기 두 대와 냉장고 하나와 반죽 통 사이를 오가는 데는 정확히 세 걸음이면 됐다.
“여보, 이거 봐. 기름통은 이렇게 눕혀서 무릎으로 받치고.”
“알아.”
“허리로 들면 안 돼. 무릎.”
“알아, 장만복 씨. 그 말 오늘만 네 번째야.”
아내 오윤정이 반죽 통에 튀김가루를 쏟으며 말했다. 가루가 하얗게 피어올라 그녀의 앞머리에 앉았다. 만복은 그 가루를 털어 주려다 손에 묻은 기름을 보고 그만두었다.
계산대 위 작은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흘러나왔다. 「예비역 재복무법 오늘 첫 입영」. 아이가 적게 태어난 세월이 이십 년 넘게 쌓이자 군에 갈 스무 살이 모자라졌고, 국회는 작년 겨울 서른다섯에서 마흔아홉 사이 예비역 가운데 일부를 추첨으로 뽑아 열여덟 달을 다시 복무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화면 속 기자는 첫해 대상자가 육천 명이라고 했다. 만복은 그 육천 명 안에 들어 있었다.
“계급은 다시 이병부터래.” 윤정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당신 병장이었잖아.”
“이십 년 전 병장이 무슨 병장이야. 유통기한 지났지.”
계단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가게 위층 집에서 고3 딸 예진이 머리를 대충 묶은 채 내려왔다. 수능이 일흔세 날 남은 아이의 눈 밑이 거뭇했다.
“아빠, 나 어제 찾아봤는데.” 예진이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며 말했다. “훈련소 분대장은 거의 스무 살이래. 나랑 두 살 차이야.”
“그래서?”
“아빠 이제 나보다 두 살 많은 사람한테 혼나는 거야. ‘장만복 훈련병, 동작 그만.’ 이렇게.”
“아빠가 사회 경력이 이십 년이야. 그런 애들은 아빠가 오히려……”
“오히려 뭐?”
“……잘 모시지.”
예진이 우유를 뿜을 뻔했다. 윤정은 등을 돌린 채 어깨를 떨었다. 만복은 튀김기 스위치를 올리며 괜히 헛기침을 했다.
*
충남 논산 훈련소 연병장은 아홉 시부터 아저씨들로 들끓었다. 배가 나온 사람, 머리가 벗어진 사람, 안내문을 팔 길이만큼 떼어 놓고 눈을 찡그리는 사람이 뒤섞여 있었다. 스무 살 입영 날이면 부모가 우는 자리에서, 이번에는 고등학생 자식들이 아버지를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다. 누가 “아빠, 각 잡아 봐” 하고 외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머리 위에서 드론 세 대가 윙윙거렸다. 연병장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멘 촬영팀이 줄지어 서 있었다.
윤정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열한 시에 가게 문을 열어야 점심 배달을 맞출 수 있었다. 만복은 조수석 창문 앞에서 더플백을 메고 섰다.
“가.”
“응.”
“기름통 무릎.”
“알아. 들어가.”
차가 떠났다. 만복은 차 꽁무니가 정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보다가 연병장 쪽으로 돌아섰다.
연단에 대위 하나가 올라섰다. 서른넷쯤 되어 보였고, 군복 바지 주름이 빳빳하게 서 있었다. 마이크를 잡는 손목에서 시계가 번쩍였다.
“반갑습니다, 선배님들. 재복무 시범중대 중대장, 대위 마성훈입니다.”
박수가 드문드문 나왔다. 마성훈은 박수가 다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웃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최초의 재복무자입니다. 국방부는 여러분의 열여덟 달을 영상으로 남겨 전 국민께 보여 드릴 예정입니다. 제목은 「다시, 대한민국」. 그리고 그 영상의 주인공 분대를 오늘 이 자리에서 정했습니다.” 그가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1분대. 평균 나이 마흔하나. 우리 중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대입니다.”
만복은 자기 가슴에 붙은 번호표를 내려다보았다. 1분대 3번이었다.
*
촬영팀이 1분대 여덟 명을 연병장 앞쪽으로 불러냈다. 마성훈이 직접 내려와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보며 걷다가 만복 앞에서 멈췄다.
“장만복 선배님. 치킨집 하셨죠?”
“예, 점장이었습니다.”
“좋아요. 얼굴이 친근해요.” 마성훈이 촬영 감독을 돌아보았다. “이분으로 가죠. 가족 이별 장면.” 그리고 다시 만복을 보았다. “아까 사모님 차로 오셨죠? 전화해서 다시 오시라고 해 주세요. 정문에서 포옹하는 장면 한 번만 다시 찍겠습니다. 드론이 각도를 놓쳤거든요.”
“집사람은 가게 가야 합니다.”
“삼십 분이면 됩니다.”
“열한 시에 문 엽니다. 지금 출발해야 점심 장사 맞춥니다.”
마성훈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선배님. 이건 국가 홍보예요.”
“네네, 고객님. 무슨 말씀이신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말이 먼저 나갔다. 열다섯 해 동안 전화로 항의를 받을 때마다 나오던 말이었다. 1분대 쪽에서 누군가 웃음을 참느라 코로 숨을 뿜었다. 마성훈의 눈썹이 한 번 올라갔다.
“고객님이요?”
“……죄송합니다. 버릇입니다. 근데 집사람은 못 부릅니다.” 만복이 더플백 끈을 고쳐 멨다. “오늘 아침에 한 번 헤어졌습니다. 두 번 헤어지라고는 못 합니다.”
촬영 감독이 카메라를 내렸다. 드론 소리만 머리 위에서 윙윙거렸다.
마성훈은 한참 만복을 보았다. 입은 웃고 있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장면은 빼죠. 대신 1분대는 분량을 다른 데서 채워 주셔야겠네요.” 그가 태블릿을 손가락으로 몇 번 눌렀다. “장만복 훈련병. 1분대 대표 얼굴로 하겠습니다. 축하드려요.”
*
생활관은 바닥에서 새 장판 냄새가 올라왔고, 침상 여덟 개가 두 줄로 마주 보고 있었다. 아저씨 여덟 명이 들어서자 방이 갑자기 좁아졌다. 정육점을 하다 온 탁기중은 침상에 앉자마자 무릎에서 뚝 소리를 냈고, 헬스 트레이너였던 막내 남궁철은 서른여덟 살 몸을 자랑하듯 팔굽혀펴기를 열 번 하다가 열한 번째에 같은 소리를 냈다. 은행 대리였던 배영철은 관물대에 붙은 안내문을 팔을 쭉 뻗어 읽다가 결국 포기했다.
“누구 돋보기 있는 사람?”
“나 있어. 근데 이거 다초점이라 아래로 봐야 돼.” 공인중개사 출신 고봉구가 안경을 코끝까지 내리고 턱을 쳐들었다. 그 자세 그대로 안내문을 한 줄씩 읽었다.
문이 열렸다. 앳된 얼굴의 상병 하나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말랐고, 군모 아래로 보이는 귀가 빨갰다. 그가 아저씨들을 한 번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들. 아, 아니. 훈련병님들.” 그가 헛기침을 했다. “1분대 분대장 소이준 상병입니다. 스무 살이고요.”
생활관이 조용해졌다.
“우리 아들이 스물둘인데.” 고봉구가 말했다.
“우리 조카가 스무 살이야. 걔 아직 아침에 혼자 못 일어나.” 탁기중이 말했다.
결혼식 사회를 보다 온 우형래가 손뼉을 한 번 쳤다. “자, 우리 젊은 분대장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아저씨들이 반사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준의 귀가 더 빨개졌다.
그래도 이준은 들고 온 서류철을 펴고 최대한 낮은 목소리를 냈다.
“일단 침상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모포는 각을 잡아서 이렇게 접고요. 바닥에 떨어진 거 있으면 허리 숙여서 바로 줍습니다.”
“허리를 숙여서?” 배영철이 되물었다.
“예.”
“숙이는 건 되는데 펴는 게 안 될 수도 있어서.”
이준은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배영철이 정말로 바닥의 볼펜을 주우려다 반쯤 숙인 자세에서 멈추고 “어, 어, 어” 하는 소리를 내자 그제야 얼굴이 굳었다. 만복이 뒤에서 배영철의 허리를 받쳐 일으켰다. 일으키는 만복의 허리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났다.
“아니, 이거 완전 실화냐…….” 이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실화야, 분대장님.” 만복이 허리를 짚으며 대답했다. “우리 다 실화야.”
고봉구가 손을 들었다. “근데 분대장님, 휴대전화는 언제 줘요? 단톡방에 아침 인사를 못 올렸어.”
“아침 인사요?”
“매일 아침 꽃 그림이랑 ‘좋은 아침입니다’ 올리는데, 내가 안 올리면 동창들이 내가 죽은 줄 알아.”
이준은 대답을 찾지 못하고 서류철만 넘겼다.
*
만복은 관물대 앞에서 허리 보호대를 꺼냈다. 디스크 진단서를 미리 내 두어서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보호대를 펼치자 원래의 검은 고무줄 대신 낯선 끈 두 가닥이 달려 있었다.
빨간 천 끈이었다. 「치킨대첩」 글씨가 반쯤 잘려 나간 채 끈 끝에 남아 있었다. 가게 앞치마 끈이었다. 늘어나 버린 고무줄 자리에 누군가 앞치마 끈을 잘라 대고 꿰매 놓았다. 바늘땀이 삐뚤빼뚤했고, 어떤 땀은 두 번 지나갔고, 어떤 땀은 실이 엉켜 콩알만 한 매듭이 맺혀 있었다. 코에 대 보지 않아도 튀김 기름 냄새가 났다.
윤정은 바느질을 못 했다. 단추 하나 다는 데 손가락을 세 번 찔리는 사람이었다.
만복은 보호대를 허리에 두르고 빨간 끈을 단단히 묶었다. 매듭이 손끝에 걸렸다.
“그거.” 등 뒤에서 이준의 목소리가 났다. 이준이 서류철을 든 채 빨간 끈을 보고 있었다. “규정 외 물품 같은데요.”
만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끈을 만지던 손을 내리지도 않았다.
이준이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서류철을 한 장 넘겨 무언가를 확인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허리 보호대는 의료용이라 괜찮습니다. 끈도 보호대에 붙어 있으니까 보호대고요.”
“고마워요, 분대장님.”
“존댓말 안 하셔도 되는데요. 아니, 하셔야 되나? 제가 분대장이니까……” 이준이 혼자 헷갈려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괜찮습니다.”
*
저녁 점호 시간, 생활관 문이 다시 열렸다. 마성훈이었다. 카메라를 멘 촬영병 둘이 뒤따라 들어왔다. 아저씨들이 침상 앞에 일렬로 섰고, 고봉구의 다초점 안경이 코끝에서 반짝였다.
“편하게들 서세요.” 마성훈이 웃었다. “첫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아까 이별 장면이 빠지는 바람에 1분대 첫날 분량이 좀 비었어요.”
그가 만복 앞에 섰다. 만복은 군복 안에서 빨간 끈이 배를 조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오늘 밤 열한 시에 야간 행군을 찍겠습니다. 1분대만, 가볍게 십 킬로미터. 달빛 아래 걷는 아저씨들, 그림 나오잖아요.”
“중대장님.” 이준이 한 걸음 나섰다. “입소 첫날은 행군 일정이 없습니다.”
“소 상병. 일정은 내가 짜.” 마성훈은 이준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리고 만복에게 다시 웃었다. “장 훈련병님. 고객님한테 하시던 대로, 친절하게 걸어 주세요.”
문이 닫혔다. 생활관에 침묵이 내렸다가 배영철이 먼저 입을 뗐다.
“나 아까 허리 펴는 데 일 분 걸렸는데.”
만복은 침상에 앉아 군화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빨간 끈의 매듭이 등 뒤에서 딱딱하게 만져졌다. 이준은 문 앞에 선 채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곗바늘이 아홉 시 사십 분을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