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61자) · 새벽 편의점
서도경
붉은 방의 초대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새벽 세 시 이십 분에 소은 씨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소은 씨가 받았다. 스피커를 켜지 않았는데도 저쪽 목소리가 조금 새어 나왔다. 낮고 고른 목소리.
“민소은 씨. 서도경입니다. 청약서에 적힌 번호로 걸었습니다. 임서결 씨와 같이 계시죠. 을지로 삼 가 역 이 번 출구 앞 편의점. 사십 분 뒤. 두 분만.”
전화가 끊겼다. 우리는 선배 집에 있었다. 채 경위 말대로 집에 가지 않고. 선배는 거실 소파에서 노트북을 켠 채 잠들어 있었다. 화면에 제보 메일함이 떠 있었다. 스물아홉 통. 소은 씨가 선배를 깨우지 않고 담요를 덮어 주었다. 선배가 잠결에 기사 제목 같은 것을 중얼거렸다.
편의점은 밝았다. 유리문에 크리스마스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눈사람 하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새벽의 편의점은 도시에서 제일 밝은 방이다. 천장 형광등, 음료 냉장고의 흰 빛, 계산대 위 담배 진열장의 조명. 그 빛들 사이에 그림자가 하나도 없었다. 창가에 긴 테이블이 있었고 거기 서도경이 앉아 있었다. 초록 카디건 위에 검은 코트. 앞에 따뜻한 두유 세 개. 우리 몫까지. 계산대 알바생은 이어폰을 꽂고 졸고 있었다.
붉은 빛 아래서 본 사람을 흰 빛 아래서 다시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서도경은 붉은 방에서보다 늙어 보였다. 눈 밑이 검었다. 머리 묶은 고무줄 옆으로 흰머리가 몇 가닥 보였다. 붉은 빛 아래서는 안 보이던 것들. 손등의 튼 자국도 더 선명했다.
“앉으세요.”
같은 말이었다. 방에서와 같은. 그런데 이번에는 의자가 넉넉했다.
소은 씨가 앉았다. 두유를 받지 않았다. 나는 받았다. 따뜻했다. 손바닥 안에서 병이 조금 흔들렸다.
서도경이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구형. 액정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탁자 위에 놓고 우리 쪽으로 밀었다.
“구 년 동안 찍었습니다. 그 방에서 서명받은 서류 전부. 원본이 금고로 가기 전에. 대표님 모르게. 화장실 간다고 나와서 복도에서 찍었습니다. 붉은 전구 아래서 찍어서 다 붉어요. 글씨는 보입니다.”
나는 두유를 한 모금 마셨다. 달았다. 새벽의 단맛은 혀에 오래 남는다. 나는 휴대폰을 열었다. 사진첩. 붉은 사진이 끝없이 이어졌다. 청약서, 약정서, 질권 설정 계약서. 서명, 날짜, 시각. 저녁 일곱 시 이십 분. 일곱 시 사십 분. 여덟 시 오 분. 사진마다 붉은 빛이 종이를 물들였고, 검은 글씨만 또렷했다. 백 장, 이백 장. 나는 스크롤을 멈췄다. 사진기자로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떨리는 손으로 찍지 않았다. 구 년 동안 한 장도 흔들리지 않았다.
“백서른한 명입니다. 그중에 아홉 분이 돌아가셨고요. 민해원 씨까지 열 사람.”
“동그라미는 아홉이었어요.”
소은 씨가 말했다.
“엄마는 자기 동그라미를 못 그렸으니까요.”
서도경이 소은 씨를 봤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서도경이 코트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흰 봉투. 안에 영수증 뭉치. 출장비 정산서. 늘봄상조 명의. 수령인 곽. 날짜와 금액과 행선지.
“곽 씨 출장비입니다. 제가 경리도 봅니다. 대표님이 사람을 안 늘리셔서.”
나는 한 장씩 넘겼다. 날짜들. 나는 공책의 동그라미 옆 날짜들을 외우고 있었다. 이 년 전 십이월 구일. 영수증 하나. 십이월 구일 새벽 세 시 사십 분. 행선지 성북. 교통비와 식대. 식대 영수증은 성북구 한 해장국집. 새벽 네 시 이 분 결제.
소은 씨가 그 영수증을 봤다. 손을 뻗지 않았다. 해장국. 엄마 가게에서 오백 미터 떨어진 해장국집. 엄마가 가스 밸브를 열기 한 시간 전에 곽은 거기서 해장국을 먹었다.
소은 씨가 두유를 집었다. 뚜껑을 땄다. 마시지 않았다. 손에 쥐고만 있었다. 따뜻한 것을 쥐어야 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왜 지금이에요.”
소은 씨가 물었다.
“구 년 동안 찍었다면서요. 엄마 죽었을 때도 있었잖아요. 이 영수증.”
서도경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편의점 문이 열리고 택시 기사 하나가 들어와 컵라면을 샀다. 뜨거운 물 붓는 소리. 기사는 창가 테이블 끝에 서서 면이 불기를 기다렸다. 우리 쪽을 한 번 봤다가, 세 사람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고 자기도 아무 말 없이 라면을 먹었다. 기사가 나갈 때까지 서도경은 말을 하지 않았다.
“구 년 전에 제 아들이 스물둘이었습니다. 대학교 휴학하고 코인 하다가 사채를 썼어요. 제가 모르게. 칠백. 이자가 붙어서 이천. 아들 친구 엄마가 늘봄상조 얘기를 해 줬어요. 거기서 대환대출을 해 준다고. 저는 갔습니다. 첫 번째 봉투를 받기 전에 제 발로.”
그 사람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서류를 읽는 목소리가 아니었고 방에서 곽에게 소리친 목소리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대표님이 대출을 해 주시면서 그러셨어요. 누구 소개로 오셨냐고. 저는 아들 친구 엄마 이름을 댔어요. 그 사람이 다음 해에 봉투를 받았어요. 제가 이름을 댔으니까요. 그 사람은 서명하고, 그다음 해 겨울에 아파트 계단에서.”
동그라미 세 번째.
“그다음부터 저는 그 방 탁자 건너편에 앉았습니다. 아들 이자 대신이요. 대표님이 그러셨어요. 도경 씨가 여기 앉아 있으면 아드님은 괜찮을 거라고.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아드님은 괜찮을 거다. 도경 씨가 여기 앉아 있으면.”
“그래서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앉아 있었습니다. 구 년.”
“엄마가 죽었을 때도요.”
“그때도요. 저는 영수증을 찍었고, 아무한테도 안 보냈습니다. 제 아들은 지금 서른하나예요. 작년에 결혼했습니다. 며느리가 임신했어요. 그 방에 앉아 있으면서 저는 손주 태어나는 걸 기다렸어요.”
서도경이 탁자 위에 두 손을 모았다. 튼 손등.
“그러다 어제 저녁에 민소은 씨가 제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 방에서 처음으로요. 제가 구 년 동안 거기 앉아 있으면서, 제 이름이 그 카드에 적히는 건 처음 봤어요. 그게 무서웠습니다. 제 이름이 서랍에 들어가는 게. 그런데 무서우니까 알겠더라고요. 그 방에 앉았던 백서른한 명이 어떤 기분으로 그 카드를 봤는지.”
서도경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흰 카드 두 장과 몽당연필을 꺼냈다. 어젯밤 들고 나온 것. 카드 두 장을 탁자에 나란히 놓았다. 공만석. 서도경. 그리고 몽당연필을 소은 씨 앞으로 밀었다.
“이건 돌려드립니다.”
소은 씨가 연필을 봤다. 집지 않았다.
“조건이 있어요?”
소은 씨가 물었다. 서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얼굴은 신문에 안 나왔으면 합니다. 아들 가족이 있어서요. 그리고 제가 증언하는 동안 아들 가족이 안전했으면 합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구 년 동안 그 방에 앉아 있었다. 동그라미 열 개 가운데 하나는 이 사람이 이름을 댄 사람이었다. 소은 씨 엄마가 서명한 서류의 모집인 칸에 이 사람 이름이 있었다. 얼굴을 가려 달라는 사람. 사진기자한테.
내 카메라는 지금 곽의 목에 걸려 있다. 메모리카드에는 지난주 법원 사진과 박 여사의 휘는 서브가 들어 있다. 곽은 그 카메라로 무엇을 찍을까. 나는 그 생각을 밀어냈다.
“약속 못 합니다.”
내가 말했다.
“얼굴은 안 찍겠습니다. 제 카메라는 지금 곽한테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려 드린다는 약속은 못 합니다. 기사는 제가 안 씁니다. 재판은 판사가 하고요. 증언하시면 증언석에 서셔야 합니다. 거기 소은 씨가 앉아 있을 겁니다.”
서도경은 한참 나를 봤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못 받았는데도.
“그럼 한 가지만 더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건 조건 없이.”
서도경이 편의점 창밖을 봤다. 을지로 삼 가 사거리. 새벽 네 시의 신호등이 노란 불로 점멸하고 있었다.
“이십사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대표님이 그 방에 오십니다. 해마다 그날 오세요. 서랍을 정리하러. 올해 보낼 봉투를 고르러. 기사가 나갔으니 올해는 고르러 오시는 게 아니라 태우러 오실 겁니다. 서랍 세 칸. 백서른한 장. 그 방 싱크대가 원래 현상소 싱크대라 물이 잘 빠져요. 태우고 물 틀면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그걸 왜 알려 주세요.”
“카드가 증거니까요. 서명보다 카드가. 서명은 본인이 한 거라고 하시면 끝나지만, 카드는 대표님이 다음 사람을 고른 기록이니까요. 제가 찍은 사진은 서류뿐입니다. 카드는 못 찍었어요. 서랍 열쇠는 대표님만 갖고 계세요.”
소은 씨가 그제야 몽당연필을 집었다. 연필 끝이 뭉툭했다. 반찬 가게 외상을 적던 연필. 소은 씨는 연필을 쥐고 서도경을 봤다.
“아줌마 아들 이름 뭐예요.”
서도경의 얼굴이 굳었다.
“왜요.”
“그냥요. 엄마 공책 스물네 번째 줄에 아줌마 이름을 적을 거예요. 이 연필로. 그 옆에 적어 둘 거예요. 아들 이름. 누가 아들을 위해서 구 년 앉아 있었는지. 동그라미는 안 그려요.”
서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두유를 집었다. 처음으로.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말했다.
“준호요. 서준호.”
소은 씨가 가방에서 엄마 공책을 꺼냈다. 스물네 번째 줄. 연필로. 탁자 건너편 여자, 라는 옛 글씨 옆에 둥근 글씨로 적었다. 서도경. 그 옆에 괄호. 서준호.
새벽 네 시 반. 편의점 밖으로 나왔을 때 서도경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을지로 이 가 쪽이 아니라 삼 가 쪽. 늘봄상조 빌딩 쪽. 출근하는 사람처럼. 그 사람은 오늘도 그 방에 앉아 있을 것이다. 이브까지. 공만석이 의심하지 않게.
나는 편의점 앞에서 채 경위한테 전화를 걸었다. 새벽 네 시 사십 분. 두 번 만에 받았다. 잠든 목소리가 아니었다. 영수증 얘기를 하자 채 경위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사진 찍어 보내라고 했다. 해장국집 카드 단말기 기록은 영장으로 받을 수 있다고. 이 년 전 거라도. 그리고 이브 얘기를 하자 한 번 더 말이 없었다.
“이번엔 비번 아니에요. 정식으로 갈게요. 영장은 오늘 치고요. 판사가 웃으면 웃게 두고요.”
소은 씨가 몽당연필을 패딩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이브에 가요.”
“압니다.”
“이번엔 초대 안 받았어요.”
“초대받은 사람 옆에 앉는 거라고 하셨죠.”
“이번엔 초대한 사람 옆에요.”
소은 씨는 그렇게 말하고 앞서 걸었다. 을지로 이 가 쪽으로. 새벽이 오기 전 도시의 빛은 가로등과 편의점과 점멸하는 신호등뿐이었다. 노란 불이 켜졌다 꺼졌다. 우리는 그 불이 꺼질 때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