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94자) · 동반 불가
붉은 방
붉은 방의 초대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문자는 십이월 이십일일 월요일 오후 네 시 정각에 왔다. 번호는 없었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 한 줄.
을지로 이 가 인쇄 골목 끝, 지하 일 층. 일곱 시. 혼자 오십시오.
소은 씨 휴대폰에도 같은 시각에 같은 문자가 왔다.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팔백사 호 식탁에서 그 두 화면을 나란히 놓고 봤다. 소은 씨가 볼펜 뚜껑을 딸깍 닫았다.
“혼자 오래요.”
“관행이라고 하셨죠.”
“엄마가요.”
나는 그 주소를 채 경위에게 보냈다. 선배에게도. 선배는 답장 대신 시계 사진을 보냈다. 저녁 여덟 시 일 분에 알람이 맞춰진 휴대폰 화면. 채 경위는 한 글자로 답했다. ㅇ.
다섯 시에 소은 씨가 옷걸이에서 초록 앞치마를 내렸다. 이 년 동안 안 빤 앞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고무줄로 묶은 영수증 뭉치와 몽당연필 하나. 반찬 가게 외상 장부 대신 쓰던 연필이라고 했다. 소은 씨는 연필을 패딩 안주머니에 넣고 앞치마를 세탁기에 넣었다. 세제를 한 숟가락 넣고 버튼을 눌렀다. 물 차는 소리가 났다. 소은 씨는 세탁기 앞에 서서 그 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다녀와서 널 거라고 했다.
여섯 시 반에 열쇠 가게에 들렀다. 골목은 이미 어두웠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을지로에는 장식 하나 없었다. 인쇄소 셔터에 붙은 달력만 십이월이었다. 인쇄소들은 문을 닫았고 금박 가게 안쪽 주황 작업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정 씨는 가게 불을 끄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유리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문을 열어 주었다. 형광등을 켜지 않았다. 골목 가로등 빛만 유리문으로 들어왔다.
“곽은 벌써 내려갔어. 다섯 시 반에.”
정 씨가 주먹을 내밀었다. 쥔 채로. 내가 손을 펴자 그 위에 주먹을 폈다. 열쇠 하나. 금요일에 받은 아무 열쇠와 모양이 달랐다. 이가 깊고 날카로웠다. 방화문용. 쇠가 차가웠다. 깎은 지 며칠 된 열쇠였다.
“이건 아무 열쇠 아니여.”
“언제 깎으셨습니까?”
“토요일 새벽. 곽 없을 때. 삼십 년 동안 원판 안 버린 거, 오늘 쓰는구먼.”
소은 씨가 정 씨를 봤다.
“아저씨, 이거 들키면.”
“들키면 가게에 불 나지.”
정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해원 씨가 여기 와서 보조키 깎아 갈 때, 나는 그 방 열쇠 원판이 서랍에 있다는 말을 안 했어. 그때 했으면 해원 씨 새벽에 혼자 가게 안 갔을지도 몰라. 모르지. 모르는데 안 한 거는 알어.”
정 씨는 유리문을 열어 주었다. 골목 바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쇳가루 냄새가 흩어졌다.
“안쪽에서 문 열려면 열쇠 구멍이 없어. 밖에서만 돼. 그러니께 그건 밖에 있는 사람이 써야 돼. 안에 들고 들어가면 소용없어.”
나는 열쇠를 봤다. 안에 들어갈 사람은 우리 둘이었다. 밖에 있을 사람은.
“제가 받을게요.”
소은 씨가 아니라 정 씨였다. 정 씨가 내 손바닥에서 열쇠를 도로 집었다.
“여덟 시 반까지 안 나오면 내가 내려가. 곽이 문 앞에 있으면 못 내려가고. 그럼 그 경찰 양반한테 주지. 그 사람 영장 없어도 열쇠 있으면 문은 열 수 있으니께. 사람 갇혀 있다고 하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스물두 칸이었다. 소은 씨가 앞섰다. 한 칸 내려갈 때마다 난간을 한 번 잡았다가 놓았다. 나는 그 손을 세면서 내려갔다. 계단참의 형광등은 여전히 나가 있었다. 내려갈수록 식초 냄새가 짙어졌다. 정지액. 그리고 그 밑에 다른 냄새. 오래된 카펫과 방향제. 계단 끝에 복도가 있었다. 짧은 복도. 천장에 붉은 전구 하나. 그 붉은 빛 아래 곽이 서 있었다. 검은 패딩. 모자는 벗었다. 머리를 짧게 밀었다. 붉은 빛 아래서 그 사람 얼굴은 검었다. 눈만 보였다.
복도 끝에 문이 있었다. 회색 철문. 손잡이가 없었다. 열쇠 구멍이 하나. 바깥쪽에만.
“혼자 오시라고 했는데.”
곽이 말했다. 로비에서처럼 웃지 않았다.
“동반 불가예요. 한 분씩 들어가세요. 기자님 먼저. 아가씨는 여기서 기다리시고.”
“같이 들어갑니다.”
내가 말했다. 곽이 나를 봤다. 붉은 빛 아래서 그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규칙이에요.”
“규칙은 둘뿐이라고 들었습니다. 거절은 한 번. 적어야 나간다. 동반 불가는 그중에 없습니다.”
곽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패딩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문자를 보냈다. 답이 금방 왔다. 곽이 화면을 보고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둘 다. 카메라도.”
나는 목에 건 카메라를 벗었다. 디지털 바디. 십오 년 동안 내 목에 걸려 있던 무게가 곽의 손으로 넘어갔다. 목이 가벼워졌다. 가벼워서 이상했다. 소은 씨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곽이 우리 주머니를 두드렸다. 코트 안쪽, 바지 뒷주머니. 소은 씨 패딩 주머니에서 볼펜이 나왔다. 곽이 볼펜을 집어 들고 딸깍 눌러 봤다. 그냥 볼펜이었다. 곽은 볼펜을 돌려주었다. 패딩 안주머니의 몽당연필은 찾지 못했다. 너무 작아서, 곽의 손가락이 그 위를 지나갔는데도 걸리지 않았다. 곽은 내 카메라를 자기 목에 걸었다. 그 무게가 그 사람 목에서는 가벼워 보였다.
“펜은 안에도 있어요.”
곽이 열쇠를 꽂았다. 돌렸다. 기계식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 둔하고 무거운 소리. 정 씨가 고집했다던 소리.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붉었다.
방 전체가 붉었다. 천장에 안전등 넷. 옛 현상소의 암실 등. 벽을 따라 싱크대가 길게 이어져 있고, 수도꼭지가 여섯 개. 현상 탱크를 올려놓던 선반. 그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방 한가운데 탁자 하나, 의자 둘. 벽 한쪽에 회색 철제 서류함. 서랍 셋. 붉은 빛 아래서 흰 종이는 희게, 검은 글씨는 검게만 보였다. 붉은 것은 하나도 안 보였다. 내 암실과 똑같았다. 이 방을 붉은 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 방에서 붉은 것을 한 번도 못 봤을 것이다. 붉은 빛 아래서는 붉은 것이 사라진다.
공기가 따뜻했다. 난방기가 돌고 있었다. 정지액 냄새가 났다. 싱크대 하나에 물이 조금 고여 있었고, 그 물이 붉은 빛을 받아 검은 거울처럼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누가 아직 이 방에서 무언가를 현상한다. 계단에서 맡은 냄새가 그것이었다.
탁자 건너편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마흔 조금 넘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짙은 색 카디건. 탁자 위에 서류철 두 개와 볼펜 두 자루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 소은 씨 엄마 공책에 적힌 그대로였다.
“임서결 씨. 민소은 씨.”
여자가 우리 이름을 불렀다. 순서대로.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퍼졌다. 방이 작아서 소리가 벽에 닿았다가 돌아왔다.
“서도경입니다. 앉으세요.”
“의자가 둘입니다.”
내가 말했다. 서도경이 나를 봤다. 그러고는 곽을 봤다. 곽이 문간에 서 있었다. 서도경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곽이 복도로 나갔다가 접이식 의자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탁자 옆에 폈다. 붉은 방에 의자가 셋이 됐다.
곽이 나갔다. 문이 닫혔다.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밖에서.
소은 씨가 원래 의자에, 내가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서도경은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 그 눈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붉은 빛 아래서는 안 보였다. 그림자가 짙어서. 이 방의 빛은 늘봄상조 사무실의 빛과 반대였다. 그곳은 그림자가 없어서 표정이 안 보였고, 이곳은 그림자만 있어서 표정이 안 보였다.
“동반해서 오신 분은 처음입니다.”
서도경이 말했다.
“아닙니다.”
소은 씨가 말했다.
“엄마가 네 번 왔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공책에 있어요. 두 번째 봉투 받은 사람 옆에 앉아 주러.”
서도경이 소은 씨를 봤다. 오래. 서류철 위에 얹은 손이 조금 움직였다.
“민해원 씨.”
“네.”
“기억합니다.”
그 말은 서류를 읽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서도경은 그 말을 하고 서류철을 열었다. 다시 서류를 읽는 목소리로 돌아갔다.
소은 씨가 물었다.
“엄마가 여기 네 시간 있었어요. 처음 왔을 때. 뭐 하면서요?”
서도경은 대답하기 전에 볼펜 한 자루를 반듯하게 고쳐 놓았다. 이미 반듯했는데.
“카드를 보고 계셨습니다. 빈칸을요. 세 시간 넘게. 저는 그동안 기다렸고요. 저는 기다리는 게 일입니다.”
“그러다 엄마가 뭐라고 적었어요.”
“윤해원. 처음 보는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름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서도경은 거기서 말을 끊었다. 알았으면 무엇을 했을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 손이 서류철 모서리를 한 번 쓸었다. 손등이 거칠었다. 붉은 빛 아래서도 보였다. 물일을 오래 한 손이었다.
“두 분 앞에 서류가 두 가지 있습니다. 대출 약정서. 오백만 원입니다. 이자는 연 이십 퍼센트. 법정 최고 이자율입니다. 그리고 생명보험 청약서. 사망 보험금 삼억. 보험금 청구권에 늘봄상조가 질권을 설정합니다. 대출 담보로요. 서명하시면 오백만 원은 내일 계좌로 들어갑니다. 쓰셔도 되고 안 쓰셔도 됩니다.”
“안 하면요.”
“하셔야 나가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카드에.”
서도경이 서류철 사이에서 작은 카드 두 장을 꺼냈다. 흰 카드. 빈칸 하나.
“다음에 초대할 분 성함을 적어 주십시오. 한 분.”
“그게 규칙이에요?”
“적어야 나가십니다.”
소은 씨가 카드를 봤다. 흰 카드는 붉은 빛 아래서 하얗게 떴다. 방에서 제일 밝은 것이 그 빈칸이었다.
나는 서류함을 봤다. 서랍 셋. 저 안에 사람들이 적은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사 년 전 내가 적은 이름은 우편으로 갔다. 여기 적은 이름은 저 서랍으로 간다. 그리고 겨울마다 거기서 붉은 봉투가 나간다. 퍼진다. 공만석이 한 말. 좋은 건 퍼지니까요.
벽시계가 있었다. 안전등 아래서 바늘만 검게 보였다. 일곱 시 십이 분. 초침 소리가 방 안에서 제일 컸다. 난방기가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돌았다. 소은 씨가 볼펜을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아직 카드 쪽으로 가지 않았다.
나는 볼펜을 들었다. 서도경이 나를 봤다. 소은 씨도 나를 봤다. 붉은 빛 아래서 두 사람의 눈이 같은 색이었다. 검었다.
사 년 전 나는 모르는 사람 이름을 적었다. 그 이름이 식은 된장찌개를 끓이던 사람이었고, 가스 호스를 비눗물로 점검하던 사람이었고, 딸 오기 전에 문이 두 번 잠겨 있어야 한다던 사람이었다. 모르는 이름은 없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오늘 나는 아는 사람 이름을 적기로 했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이 서랍에 들어가야 할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나는 카드에 이름을 적었다. 세 글자. 획마다 볼펜을 눌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