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67자) · 중부서
사선광
붉은 방의 초대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중부경찰서 강력팀 사무실은 토요일 오후인데도 불이 다 켜져 있었다. 형광등 여덟 줄. 그중 두 줄이 조금 푸르스름했다. 교체 시기가 다른 등이었다. 나는 그런 걸 본다. 소은 씨는 안 본다. 소은 씨는 채미령 경위의 책상 위에 엄마 파일을 내려놓고 그 앞에 섰다. 의자를 권받았는데 앉지 않았다.
채 경위는 마흔여덟이었다. 책상 모서리에 딸 사진이 한 장 꽂혀 있었다. 교복을 입은. 사진 모서리가 손때로 까매져 있었다. 짧은 머리에 회색 스웨터. 책상 위에 믹스커피 봉지가 세 개 뜯겨 있었다. 선배가 연결해 준 사람이었다. 선배와 채 경위는 십 년 전 어떤 사건에서 서로를 한 번씩 곤란하게 한 사이라고 했다. 그래서 믿는다고.
“민해원 씨 사건. 이 년 전 십이월 구일. 성북서 관할이네요. 반찬 가게 가스 폭발. 새벽 다섯 시 십 분. 호스 노후로 인한 누출, 점화원은 냉장고 컴프레서. 사고 종결.”
채 경위는 모니터를 읽었다. 읽는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그 사람은 하루에 이런 문장을 수십 개 읽는 사람이었다.
“보험 수익이 상조 회사로 갔다. 질권 설정. 그것도 적법하고요. 기자님, 이게 범죄가 되려면 누가 호스를 건드렸다는 게 나와야 돼요. 그런데 현장은 다 탔고 감식은 노후로 봤어요.”
“아홉 건입니다.”
내가 말했다. 공책의 동그라미 아홉. 선배가 사흘 동안 확인한 것. 공사장 비계 추락 하나, 교통사고 둘, 화재 둘, 가스 하나, 익사 하나, 계단 낙상 하나, 그리고 민해원. 관할이 다 달랐다. 성북, 강서, 노원, 수원, 인천. 연도도 달랐다. 칠 년에 걸쳐 아홉.
“아홉 건 전부 수익자나 질권자가 늘봄상조입니다.”
“그건 확인하셨어요?”
“여섯 건은요.”
“나머지 셋은요.”
“가족이 말을 안 합니다.”
채 경위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늘봄상조. 대표 공만석. 쉰아홉. 전과 없음. 보험 설계사 이십 년, 상조 회사 설립 십이 년. 지역 봉사상 두 번. 구청 경로잔치 후원. 그 사람 이름으로 검색되는 것은 전부 밝았다. 채 경위가 모니터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너무 깨끗하면 나는 더 싫더라.
채 경위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기자님. 상조 회사가 보험 대리점 하는 거, 불법 아니에요. 대출해 주고 보험에 질권 거는 거, 그것도 불법 아니고요. 가입자가 사고로 죽는 거, 그건 슬픈 거고요. 아홉이 칠 년에 흩어져 있으면 그건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도, 범죄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해요. 제가 이걸로 영장을 치면 판사가 웃어요.”
“그 방이 있습니다.”
“방이요.”
“을지로 지하요. 안에서 못 여는 문. 거기서 서명을 받습니다. 이름을 적어야 나갈 수 있습니다.”
“가 보셨어요?”
“이십일일에 갑니다.”
채 경위가 나를 봤다. 그러고는 소은 씨를 봤다.
“둘 다요?”
“네.”
“초대장 받아서요.”
“네.”
채 경위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서랍에서 새 믹스커피를 꺼내 뜯었다. 네 번째. 종이컵에 털어 넣고 정수기 뜨거운 물을 받았다. 막대로 저었다.
“그 방에 가서 서명하고 이름 적고 나오면, 그건 본인 의사로 한 계약이에요. 문이 잠겨 있었다고 하면 저쪽은 창고 문이 원래 그렇다고 할 거고요. 감금이 되려면 나가겠다고 했는데 못 나갔다는 게 있어야 돼요. 녹음이든 뭐든.”
“녹음 됩니다.”
“휴대폰은 뺏을걸요.”
“카메라는요.”
“그것도요.”
소은 씨가 그때 처음 입을 열었다.
“엄마 사건 사진 있어요?”
채 경위가 소은 씨를 봤다.
“감식 사진이요. 가스 호스.”
“기록에 붙어 있죠. 유족이 보는 건.”
“제가 유족이에요.”
채 경위는 잠깐 망설이다가 모니터를 돌렸다. 성북서 감식 자료. 사진 스물몇 장. 불탄 가게. 검게 녹은 냉장고. 바닥에 늘어진 가스 호스. 소은 씨는 한 장씩 넘기지 않고 첫 장에서 멈췄다. 가게 전경. 불탄 간판. 반찬 가게 이름의 절반이 남아 있었다. 소은 씨는 그 반쪽 간판을 오래 봤다. 간판 아래 불에 그을린 벽에 못 하나가 박혀 있었다. 앞치마를 걸던 못이었을 것이다. 팔백사 호 옷걸이에 걸린 초록 앞치마. 그날 새벽 해원 씨는 그 앞치마를 입기 전이었다. 그래서 앞치마가 남았다. 나는 소은 씨 대신 마우스를 잡았다. 소은 씨가 막지 않았다.
호스 사진은 열네 번째였다. 가스 밸브에서 레인지로 이어지는 고무호스. 끝이 떨어져 있었다. 감식 메모: 경화 및 균열로 인한 이탈 추정. 사진은 정면에서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것이었다. 빛이 호스 단면을 정면으로 때려서 단면이 하얗게 날아가 있었다. 균열인지 절단인지 안 보였다. 그림자가 없었다. 늘봄상조 사무실의 조명처럼.
“원본 파일 있습니까. 이거 말고 촬영 원본. 연속으로 찍은 거.”
“있을 거예요. 감식은 여러 장 찍으니까.”
채 경위가 폴더를 열었다. 같은 호스를 찍은 사진이 여섯 장 더 있었다. 대부분 정면이었다. 하나만 달랐다. 감식 요원이 플래시를 끄고 손전등을 비스듬히 비춰 찍은 한 장. 누가 일부러 그렇게 찍었는지, 플래시가 안 터져서 손전등으로 대신했는지는 모르겠다. 빛이 호스 단면을 옆에서 스쳤다.
나는 그 사진을 확대했다. 사선광. 빛을 비스듬히 비추면 평평한 면의 요철이 그림자로 떠오른다. 나는 십오 년 동안 그 빛으로 구겨진 문서와 긁힌 차 문과 지워진 글씨를 찍었다. 사선광 아래서 호스 단면이 보였다. 경화된 고무가 갈라진 자리는 거칠고 들쭉날쭉하다. 이 단면은 한쪽에서 반쯤까지 곧았다. 칼날이 지나간 결이 가로로 나란히 나 있었다. 나머지 반쯤만 거칠었다. 누가 반을 자르고, 나머지는 가스 압력이 찢게 둔 것이었다.
“경위님, 이거 보십시오.”
채 경위가 모니터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한참 봤다. 믹스커피가 식어 갔다.
“이건 감식 보고서에 없네.”
“정면 사진만 붙였으니까요.”
“누가 찍었는지 보자.”
채 경위가 파일 정보를 열었다. 촬영자 이름. 성북서 과학수사팀. 그 사람은 이 사진을 찍고, 보고서에 붙이지 않았다. 몰랐는지, 붙이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지.
소은 씨가 모니터를 봤다. 호스 단면. 칼날의 결.
“엄마는 그 가게 가스 호스를 한 달에 한 번 비눗물로 점검했어요. 공책에도 있어요. 가스 점검. 비눗물. 이상 없음. 죽기 삼 일 전에도 적혀 있어요.”
채 경위가 등을 폈다. 다섯 번째 믹스커피를 꺼내려다가 말았다.
“재수사 요청서, 유족 명의로 쓰세요. 오늘. 이 사진 번호 적어서. 성북서로 보내면 거기서 묵히니까, 저한테 주세요. 광역수사대 쪽으로 제가 올릴게요. 아홉 건 묶는 건 그다음이에요.”
“그 방은요.”
“그 방은.”
채 경위가 나를 봤다.
“이십일일에 저는 을지로에 있을 거예요. 비번이라서. 우연히. 문자 하나 주세요. 주소 알려 주면. 들어가지는 못해요. 영장 없으니까. 근데 밖에서 누가 나오는지는 볼 수 있어요.”
경찰서를 나왔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주차장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다. 선배가 그 아래 서 있었다. 목도리를 두 번 감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를 들고 있었다. 불은 안 붙어 있었다.
“어떻게 됐어.”
“재수사 요청 들어갑니다. 민해원 씨 건.”
“좋아. 그럼 월요일 아침에 쓴다. 일 면.”
“이십일일 아침이요.”
“그래. 저녁 일곱 시 전에. 기사 나가면 걔들이 그 방을 못 열어.”
“기사 나가면 그 방이 없어집니다. 문 떼고 도배하고 창고 됩니다. 공만석은 상조 회사 대표로 남고요. 아홉 명은 사고로 남습니다.”
“그럼 너희 둘이 그 안에 들어가서 서명하는 걸 내가 보고만 있으라고?”
선배가 목소리를 높였다. 주차장에 울렸다. 경찰서 앞 의경이 이쪽을 봤다.
“서결아, 너 또 그러는 거야. 사 년 전에 모르는 이름 적어서 봉투에 넣고, 사 년 동안 안 봤지. 지금도 똑같아. 뭐가 일어나는지 끝까지 보겠다고. 그 방에 들어가서도 너는 카메라 들고 프레임 뒤에 서 있을 거잖아. 그게 네 방식이잖아.”
선배는 불 안 붙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십 년 전에 그 봉투 기사 쓴 게 내 입사 동기야. 사회면 구석에 괴담처럼 나갔지. 데스크가 거기까지만 된다고 했고, 걔는 그만뒀어. 나는 옆자리에서 말리지 않았어. 그 뒤로 동그라미가 아홉 개 생겼어. 한 번 참으면 그렇게 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선배 말이 맞았다. 절반은.
“이번엔 혼자 안 들어갑니다.”
내가 말했다. 선배가 소은 씨를 봤다. 소은 씨는 경찰서 계단 맨 아래 칸에 서 있었다. 파일을 안고. 우리 둘 사이에 끼지 않았다. 그러다 한 계단 올라왔다. 선배 쪽으로.
“기자님.”
“어.”
“엄마 공책 보낸 거 저예요.”
선배가 담배를 떨어뜨렸다.
“석 달 전에 보낸 거. 기자님이 옛날에 쓴 기사가 엄마 서랍에 있었어요. 오려서. 엄마는 기자님한테 가려다가 못 갔어요. 그래서 제가 보냈어요.”
소은 씨는 떨어진 담배를 주워서 선배 손에 쥐여 주었다.
“월요일 저녁 일곱 시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여덟 시에 쓰세요. 그 방에서 나오는 거 보고요. 엄마는 사십 분에 서명하고 세 시간 이십 분을 버텼어요. 저도 그만큼은 버틸 수 있어요.”
선배는 담배를 쥔 채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담배를 반으로 부러뜨려 주머니에 넣었다.
“여덟 시 일 분에 올린다. 일 분도 안 기다려.”
채 경위는 우리를 배웅하지 않았다. 대신 창가에서 믹스커피 봉지를 하나 더 뜯는 게 보였다. 다섯 번째였다. 나는 셌다.
그날 밤 소은 씨는 재수사 요청서를 썼다. 팔백사 호 식탁에서. 나는 맞은편에서 사진 번호를 불러 주었다. 열네 번째가 아니라 스무 번째. 사선광 사진. 소은 씨는 볼펜을 딸깍거리지 않고 썼다. 글씨가 둥글지 않았다. 획이 짧고 끝이 눌렸다. 엄마 글씨를 닮아 있었다.
다 쓰고 나서 소은 씨는 식탁에 엎드렸다. 오늘은 야간 근무를 빠졌다고 했다. 이 년 만에 처음 쉬는 밤이라고. 엎드린 채로 금방 숨이 고르게 바뀌었다. 나는 거실 옷걸이의 초록 앞치마 옆에 걸린 담요를 가져다 그 등에 덮었다. 신발장 위 붉은 봉투 셋이 거실 스탠드 불빛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봉투들을 찍지 않았다. 스탠드를 끄지도 않았다. 소은 씨가 깨어났을 때 방이 어두우면 안 될 것 같았다. 현관 잠금장치 두 개를 잠그고 나오려다가, 안에서 잠가야 하는 문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나오지 않았다. 식탁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아침이 오는 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