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61자) · 그림자 없는 방
늘봄상조
붉은 방의 초대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늘봄상조는 을지로 삼 가 역 앞 오피스 빌딩 십일 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내판에 회사 이름이 여섯 개 적혀 있었고 늘봄상조는 그중 제일 작은 글씨였다. 그 아래 괄호 안에 한 줄. 보험 대리점 겸업.
엘리베이터 안에는 방향제 냄새가 났다. 백합 향. 장례식장 복도에서 맡던 냄새와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가 너무 밝았다. 천장 전체가 LED 판이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빛. 사진기자에게 그런 빛은 제일 쓸모없다. 얼굴이 납작해지고 표정이 지워진다. 병원 복도와 은행 창구가 그런 빛을 쓴다. 사람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 곳들이.
소은 씨가 유리문 앞에서 멈췄다. 유리에 흰 글씨. 늘봄상조. 늘 봄처럼. 그 아래 작은 글씨로 고객님의 마지막을 함께합니다.
“엄마 장례 때 이 문구가 적힌 꽃이 왔어요. 조화. 흰 국화.”
소은 씨는 그 말을 하고 유리문을 밀었다. 나보다 먼저. 나는 뒤따랐다. 오늘 이 사람은 원수와 같이 원수를 만나러 왔다. 멸치볶음을 밀어 주던 손으로 유리문을 밀었다.
사무실 안은 복도보다 더 밝았다. 책상 여덟 개에 직원 셋. 벽에 액자가 걸려 있었다. 감사패, 우수 대리점 표창, 그리고 대표 사진. 반백의 남자가 양복을 입고 웃고 있었다. 사진관에서 조명을 정면으로 받고 찍은 사진. 그림자가 하나도 없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일어섰다. 이십 대 후반. 명찰에 상담 실장.
“상담 예약하셨어요?”
“민해원 씨 딸입니다.”
소은 씨가 말했다. 직원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 잠깐. 그러고는 다시 웃었다. 너무 빨리 다시 웃었다.
“잠시만요.”
직원은 안쪽 유리벽 방으로 갔다. 대표실.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져 있었다. 블라인드 틈으로 남자가 보였다. 전화를 받고 있었다. 직원이 무어라 말하자 남자가 전화를 내려놓고 우리 쪽을 봤다. 블라인드 틈으로. 그러고는 일어섰다.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렸다. 그 방에는 숨길 게 없다는 듯이.
공만석. 쉰아홉. 사진보다 작았다. 사진 속 반백은 실제로는 거의 백발이었다. 그는 대표실 문을 열고 나와 우리에게 걸어왔다. 걸음이 가벼웠다. 구두 뒤축이 카펫에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해원 씨 따님.”
그가 소은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은 씨는 받지 않았다. 그는 손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내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임서결 기자님. 사진 잘 봤습니다.”
나는 그 손을 받았다.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받았다. 손이 따뜻했다. 건조하고 따뜻한 손. 악수를 많이 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어떤 사진 말씀입니까?”
“기자님 사진이요. 신문에 난 거. 작년 여름 수해 현장. 물 빠진 반지하에서 어르신이 젖은 사진첩 말리던 거. 그거 좋더라고요. 그분 우리 고객 되셨습니다. 장례 보험. 사진 보고 제가 찾아갔지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이 밝은 방에서 그 사람 얼굴은 그림자가 없어서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웃는지 안 웃는지. 나는 처음으로 조명을 원망했다.
“들어오세요. 차 한 잔 하시죠.”
대표실은 넓었다. 창밖으로 을지로 인쇄 골목의 낮은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저 지붕들 어딘가 아래에 광명현상소가 있다. 그는 이 창으로 그 골목을 매일 내려다보는 사람이었다. 탁자 위에 녹차가 나왔다. 잔 밑에 받침이 있었고 받침에도 늘봄이라는 금박 글씨가 찍혀 있었다. 을지로 어느 금박 가게에서 찍었을 글씨. 그는 자기 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우리는 잔을 들지 않았다. 김이 한 줄로 올라가다가 에어컨 바람에 꺾였다.
“어머님 일은 유감입니다.”
그가 소은 씨에게 말했다.
“장례는 저희가 정성껏 모셨습니다. 비용은 받지 않았고요. 고객님 가족이니까.”
“엄마 보험금 삼억이요.”
소은 씨가 말했다.
“늘봄상조로 갔어요. 질권이라는 게 걸려서.”
“대출 담보였으니까요. 어머님이 저희한테 빌리신 돈이 있었습니다. 이천. 이자까지 해서. 담보로 보험금 청구권에 질권을 설정하셨고요. 서명하셨습니다. 적법한 겁니다. 서류 보여 드릴까요?”
그는 정말로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 파일 하나. 민해원. 대출 약정서, 질권 설정 계약서, 생명보험 청약서 사본. 서명. 내가 공책에서 본 글씨와 같은 사람의 서명이었다. 획이 짧고 끝이 눌린. 날짜 이천이십삼 년 일월 십구일. 저녁 일곱 시 사십 분이라고 시각까지 적혀 있었다.
“이천을 빌리고 삼억을 받아 가셨네요.”
내가 말했다. 그는 서류를 덮었다.
“차액은 정산해서 돌려드리는 게 원칙인데, 어머님이 다른 채무가 좀 있으셨어요. 그것도 다 정리해 드렸습니다. 따님 앞으로 빚 안 넘어가게. 이것도 서류 있습니다.”
그는 친절했다. 모든 질문에 서류가 있었다. 서류마다 서명이 있었다. 서명마다 날짜와 시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은 다 저녁 일곱 시 무렵이었다. 붉은 방에 들어가는 시각.
“그 서명, 어디서 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기자님.”
“네.”
“기자님도 사 년 전에 저희한테 편지를 보내셨죠. 추천서. 좋은 분 추천해 주셨어요. 그분 따님이 지금 여기 계시고요.”
소은 씨의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나는 그 주먹을 봤다. 테이프 감은 마디가 하얬다.
“추천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추천으로 받습니다. 저희 업계가 원래 소개로 돌아요. 한 분이 한 분을 소개하시고, 그분이 또 한 분을. 좋은 건 퍼지니까요. 늘 봄처럼.”
그는 유리문의 문구를 소리 내어 읽듯이 말했다.
“이십일일에 초대받으셨죠. 두 분 다.”
그가 처음으로 초대라는 말을 꺼냈다. 소은 씨가 고개를 들었다.
“초대를 보낸 게 당신이에요?”
“저희는 상조 회사입니다. 초대장 같은 건 안 보냅니다. 다만 고객님 중에 그런 모임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좋은 모임이라고요. 서로 도와주는.”
그는 대답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답했다. 이 밝은 방에서 그 사람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숨길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에 서류가 있었으니까.
“기자님 어머님은 요즘 복지관에서 탁구를 치신다고요.”
그가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창밖을 보면서.
“복식이시죠. 박 여사님이랑. 박 여사님이 저희 고객이세요. 장례 보험. 참 좋은 분이에요. 서브가 좀 휘시죠.”
어제 전화기 너머로 들은 딱, 딱, 딱 소리가 귓속에서 다시 울렸다. 어머니가 투덜거린 박 여사 서브. 휘는 서브. 나는 그 얘기를 아무한테도 안 했다. 이 사람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어머니 탁구대 맞은편에 사람을 한 명 세워 두었다. 장례 보험을 판 고객을.
나는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카펫이 소리를 먹었다. 그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림자 없는 얼굴.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목에 걸려 있던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조금 돌려 창을 등졌다. 역광이 되게.
“찍으셔도 됩니다. 근데 기자님, 이 방 조명이 좋지는 않죠. 다 평평하게 나와요. 사진은 그림자가 있어야 뭐가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그가 옳았다. 이 방에서 찍은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친절한 상조 회사 대표. 서류를 잘 챙기는 사람.
소은 씨가 일어섰다. 그리고 탁자 위 파일을 집었다. 엄마 이름이 적힌 파일. 공만석이 손을 뻗지 않았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사본이에요. 원본은 금고에.”
소은 씨는 파일을 가슴에 안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볼펜 딸깍 소리 없이.
“이십일일에 봬요.”
공만석이 웃었다.
“저는 거기 안 갑니다. 초대받은 분들이 가시는 데죠.”
나가는 길에 안내 데스크의 상담 실장이 소은 씨에게 팸플릿을 내밀었다. 늘봄 장례 보험. 젊을 때 들수록 저렴합니다. 소은 씨는 그걸 받아서 한참 봤다. 그러고는 상담 실장한테 되물었다. 몇 살부터 들 수 있어요. 스무 살부터요, 고객님. 소은 씨는 팸플릿을 반으로 접어 실장 책상 위 펜꽂이에 꽂았다. 스물여섯이면 너무 늦었네요, 하고. 실장은 웃다가 멈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은 씨는 파일을 열지 않았다. 안고만 있었다. 십일 층에서 일 층까지 층수 표시가 바뀌는 것을 봤다. 숫자 하나가 꺼지고 다음 숫자가 켜질 때마다 붉은 빛이 한 칸씩 내려갔다. 일 층에서 문이 열리기 직전에 소은 씨가 말했다.
“엄마 서명 시각. 일곱 시 사십 분.”
“봤습니다.”
“엄마는 일곱 시에 들어가서 사십 분 만에 서명했어요. 공책에는 그 방에 네 시간 있었다고 적혀 있어요. 서명은 사십 분에 했는데 나온 건 열한 시래요.”
“나머지 세 시간 이십 분은요.”
“이름을 안 적고 버틴 거예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로비는 어두웠다. 해가 지고 있었다. 을지로 골목 쪽 하늘이 붉었다. 저녁 노을 색. 안전등 색.
버스 정류장에서 소은 씨가 파일을 처음 열었다. 가로등 아래서. 생명보험 청약서 사본 맨 아래, 모집인 서명란에 이름이 있었다. 서도경. 대출 약정서 입회인 칸에도 같은 이름. 같은 글씨. 둥글고 반듯한, 서류를 많이 써 본 사람의 글씨.
“이 사람이 그 방에 있는 사람이에요.”
소은 씨가 말했다.
“엄마 공책에 여자라고만 적혀 있었어요. 탁자 건너편 여자. 서두르지 않는 여자.”
나는 그 이름을 휴대폰 메모에 적지 않았다. 외웠다. 서도경.
나는 그날 밤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내일부터 복지관 탁구는 쉬시라고. 어머니가 왜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안 돼, 내일 박 여사랑 설욕전이야. 나는 그럼 제가 따라가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웃었다. 서른여덟 먹은 아들이 탁구 구경을 오겠다니 무슨 일이냐고. 나는 박 여사 서브를 찍어 보고 싶다고 했다. 휘는 서브. 어머니가 그건 좋다고 했다. 사진 잘 나오면 박 여사 코를 좀 납작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정말로 복지관 탁구장에 갔다. 박 여사는 일흔둘이었다. 공을 던져 올리고 라켓을 비스듬히 깎아 쳤다. 공이 네트를 넘어가 어머니 쪽 테이블에서 옆으로 튀었다. 어머니가 헛손질을 했다. 나는 천이백오십분의 일로 그 공을 찍었다. 박 여사가 사진을 보고 좋아했다. 어머니는 안 좋아했다. 박 여사는 쉬는 시간에 보리차를 따라 주면서 말했다. 늘봄 사장님이 참 좋은 분이야. 장례 보험 들라고 집까지 찾아왔어. 우리 영감 제사도 챙겨 줘. 나는 보리차를 마셨다. 미지근했다. 박 여사 가방에 흰 국화 배지가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