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22자) · 로비

을지탕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관리동 로비는 새벽 한 시에 사람으로 찼다. 경찰, 소방, 구급대. 젖은 사람과 마른 사람. 로비 바닥 대리석에 물 발자국이 겹쳐서 무늬가 됐다. 삼 년 동안 나는 이 로비를 새벽마다 지나갔다. 한 번도 사람이 서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주강철은 경찰차로 먼저 떠났다. 떠나기 전에 로비를 지나가면서 게시판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코팅된 종이. 규칙 두 개. 주강철은 그걸 오래 봤다.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한 경위가 팔을 당겼다. 주강철은 걸어 나갔다. 자동문이 열리자 비바람이 로비로 들이쳤다.

구급대원이 내 어깨에 은박 담요를 둘렀다. 부스럭거렸다. 무진도 둘렀다. 우리는 로비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김 반장이 늘 눕던 소파. 무진이 은박 담요 끝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거 김밥 싸는 거 같아요.”

“포일.”

“네. 포일.”

우리는 포일에 싸인 채로 웃었다. 이가 부딪쳤다. 딱딱딱. 이번에는 둘 다. 젖은 작업복이 몸에 붙어 식어 갔다. 로비 난방은 새벽에 꺼져 있었다. 은박 담요 안에서 내 체온이 천천히 되돌아왔다. 담요가 그 열을 다시 나한테 돌려주었다. 받은 만큼만.

한 경위가 지나가다 멈췄다. 쇠막대는 감식으로 보냈다고 했다. 구부러진 끝, 고리 구멍 자국, 손잡이의 지문. 수건째. 수건에서도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 나는 그 수건이 내 욕실 선반에 있던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김 반장이 관리사무소에서 나왔다. 양복이 아니었다. 작업 조끼. 사흘 전 시청 회의실의 넥타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손에 수첩이 한 권 있었다. 검은 비닐 표지. 모서리가 닳아서 하얬다. 김 반장은 그 수첩을 한 경위에게 내밀었다. 한 경위는 주강철을 보내고 돌아와 로비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거요.”

한 경위가 받았다. 폈다. 넘겼다. 한 장, 두 장. 손이 느려졌다.

“반장님, 이게 뭡니까?”

“이상 있음이요.”

김 반장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떨리지 않았다.

“이십이 년부터. 반지하 그 일 있고 나서부터. 관리사무소 일지에는 이상 없음이라고 쓰라고 했지만, 저는 이거를 따로 썼어요. 집에 가져가서. 제가 본 거. 지하 사 층에서 젖은 사람. 몇 시에, 몇 번 방, 누가 데려갔는지. 누구한테 줄지 몰라서 안 줬어요. 주면 다음 날로 넘어갈까 봐.”

한 경위가 한 장을 들어 형광등에 비췄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 옆으로 갔다. 은박 담요를 끌면서. 김 반장 글씨는 작았다. 칸을 안 지키고 빽빽했다.

23.1.19 04:10 지하4 3번. 남 1. 젖음. 주 소장 데려감. 「지병」. 24.12.2 03:50 지하4 9번. 남 1. 젖음. 주 소장 데려감. 「지병」. 26.2.9 02:52 지하4 7번. 하지원 보고. 다니야르.

최 씨가 말했던 번호들. 작년 구 번, 그 전 삼 번. 김 반장은 그걸 다 알았다. 알고 따로 적었다. 적고 아무한테도 안 줬다.

“이 두 분.”

한 경위가 첫 두 줄을 짚었다.

“이름은요.”

김 반장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주 소장이 데려갔어요. 병원으로 간다고.”

그때 무진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은박 담요가 바닥에 떨어졌다.

“알아요.”

모두가 무진을 봤다.

“이십삼 년 일월은 아잠 형이에요. 우즈베크. 벽에 이름 있어요. 이백구십몇 번째. 이십사 년 십이월은 누르벡 형. 키르기스. 벽에 있어요. 두 형 다 고향 갔다고 소장님이 그랬어요. 휴대폰 안 받았어요. 저는 고향 간 줄 알았어요.”

로비가 조용해졌다. 비바람 소리만. 자동문이 누가 지나갈 때마다 열렸다 닫혔다. 그때마다 찬 공기가 한 번씩 들어왔다.

한 경위가 수첩을 덮었다. 그러고는 무진에게 물었다.

“그 두 분 기억하는 사람, 더 있을까요?”

무진이 휴대폰을 꺼냈다. 신호가 잡히는 로비였다. 무진은 한참 화면을 두드렸다. 단체 대화방.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와 한국어가 섞인. 무진이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뭐라고 보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새벽 세 시부터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하 사 층 일곱 사람이었다. 손가락 두 개 없는 남자. 밥을 하는 여자. 수건을 목에 걸고 왔다. 그저께 받은 수건. 빨아서 말린. 그다음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현장에서 온 사람들. 준설, 철거, 배관, 청소. 예전에 지하 사 층에서 살다 나간 사람들. 아잠을 아는 사람. 누르벡을 아는 사람. 주강철 밑에서 일하다 임금을 못 받고 나간 사람. 비를 맞고 왔다. 다들 젖어 있었다.

젖은 사람들이 로비에 섰다. 스물, 서른. 대리석 바닥의 물 발자국이 겹치고 겹쳐 로비 전체가 한 장의 젖은 지도가 됐다. 이 건물 지하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전부 젖어 있었다. 오늘은 로비에서 발견됐다.

나는 관리사무소 사물함을 뒤졌다. 수건은 없었다. 내 집 수건은 이미 지하 사 층 샤워실 선반에 있었다. 최 씨가 코트를 걸치고 나갔다. 비 속으로. 이십 분 뒤에 돌아왔다. 커다란 비닐봉지 두 개를 양손에 들고. 흰 수건이 가득 들어 있었다. 수건마다 파란 글씨가 찍혀 있었다. 을지탕.

“골목 목욕탕 사장이 내 동창이야. 새벽 네 시에 깨웠더니 욕을 사십 분 하고 쉰 장 줬어. 사십 분이면 수건 한 장에 한 마디씩도 안 되는 욕이야. 싸게 샀어.”

최 씨는 비닐봉지를 로비 소파에 내려놓았다. 코트 어깨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최 씨도 젖어 있었다. 김 반장이 늘 눕던 소파에 수건이 쌓였다. 을지탕. 을지탕. 을지탕.

한 경위가 로비 한쪽에 탁자를 폈다. 경찰 두 명이 노트북을 켰다. 진술 청취. 이름, 국적, 연락처, 아는 것. 통보 의무 면제. 한 경위는 탁자 앞에 선 사람마다 그 말을 먼저 했다. 무진이 옮겼다. 러시아어로, 우즈베크어로, 할머니 말투의 한국어로.

나는 소파 옆에 서서 수건을 한 장씩 건넸다. 진술을 마치고 돌아서는 사람에게. 젖은 머리를 닦으라고. 받는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숙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방역 일 할 때도, 여기서도, 나는 사람한테 무언가를 뿌리거나 건네는 사람이었다. 소독약이든 수건이든.

열, 스물, 서른. 김 반장은 밤새 한 번도 앉지 않았다. 누울 소파에 수건이 쌓여 있어서가 아니었다. 로비 한가운데 서서, 진술을 마친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김 반장이 누구에게 고개를 숙이는 걸 나는 그날 처음 봤다.

네 시쯤 아이를 업은 여자가 왔다. 스물 초반.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휴대폰 사진을 한 경위 탁자에 올려놓았다. 웃는 남자. 누르벡이라고 무진이 옮겼다. 이십사 년 십이월에 고향 간다고 나갔다던 사람. 아이 아빠. 여자는 울지 않았다. 아이가 깰까 봐. 사진 옆에 손바닥을 펴서 올려놓고, 그 손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여기 있다고.

다섯 시에 박 과장이 왔다. 우산을 접으며. 귤 한 상자를 들고. 박 과장은 로비를 보고 상자를 내려놓았다. 누가 먹으라는 건지 장식인지 이번에는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귤을 하나씩 집어 갔다. 박 과장은 한 경위에게 가서 원청 책임자로서 진술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귤을 까지 않고 서 있었다.

다섯 시 반. 새벽이 로비 유리문 너머에서 회색으로 밝아 올 때 이 층 관제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계단에서 언니가 내려왔다. 남색 근무복. 머리가 풀려 있었다. 볼펜이 없어서. 손에 A4 종이 한 장. 언니는 로비에 선 사람들을 봤다. 젖은 사람들. 을지탕 수건을 목에 건 사람들. 그리고 탁자 앞에 섰다. 한 경위 앞에.

“물순환안전국 수문 운영 주무관 하지안입니다. 진술하겠습니다.”

한 경위가 언니를 봤다.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언니 일이었다.

언니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월 구일 수문 운영 기록 출력본. 01:10 제3수문 개방. 그 아래 여백에 언니 글씨가 있었다. 볼펜 대신 사인펜으로. 크게.

01:12 칠 번 카메라 점검구 부근 불빛 세 번 확인. 조명 반사로 판단. 기록 누락. 수문 유지. 하지안.

“제가 봤습니다. 안 적었습니다. 규정대로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규정이 카드를 세라고 해서 카드를 셌습니다. 사람은 안 셌습니다.”

언니는 그 말을 하고 서명란에 이름을 썼다. 한 획도 떨리지 않았다. 떨지 않는 사람이었다. 떨어야 할 때도. 오늘은 떨지 않는 것이 맞았다.

한 경위가 그 종이를 받았다. 오래 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하 주무관님, 오늘 새벽에 수문 십이 분 늦게 여셨죠.”

“네. 징계 사유입니다.”

“을지로 지하상가 입구 물 오 센티, 인명 피해 없음.”

“네.”

“그것도 진술서에 쓰세요. 같은 종이에.”

언니가 한 경위를 봤다. 한참. 그러고는 사인펜 뚜껑을 다시 열었다. 종이 맨 아래 한 줄을 더 썼다. 나는 그 줄을 옆에서 읽었다.

00:28 제3수문 개방 12분 지연. 점검구 부근 인원 3명 확인 후 개방. 하지안.

언니가 사인펜을 내려놓았다. 나를 봤다. 내가 수건을 한 장 내밀었다. 을지탕. 언니는 젖지 않았다. 관제실에 있었으니까. 그래도 받았다. 목에 걸었다. 볼펜 대신 수건으로 머리를 묶었다. 틀어 올려서. 수건 끝이 뒤통수에서 삐죽 나왔다.

“이상하지.”

“응. 이상해.”

“일요일에 엄마한테 뭐라 그러지.”

“이상 있음이라고.”

언니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었다. 삼 년 만에 처음 같이 퇴근하는 아침이었다.

여섯 시 반. 최 씨가 소파 위 비닐봉지를 뒤집었다. 한 장도 안 나왔다. 최 씨가 로비를 둘러보고 셌다. 수건을 목에 건 사람들. 경찰 탁자 앞 줄, 벽에 기대앉은 사람들, 자동문 옆에서 담배를 못 피우고 서성이는 사람들.

“쉰 장 다 나갔네. 지하 샤워실 일곱 장까지 치면 쉰일곱.”

“하나 더 있어요.”

무진이 말했다. 밤새 옮기느라 목이 쉬어 있었다. 무진은 점퍼 안주머니에서 수건을 한 장 꺼냈다. 쇠막대를 감쌌던 수건이 아니라, 첫날 무진 머리를 감쌌던 수건. 소금 선이 굵은. 숙직실 머리맡에 내가 개어 두었던 것. 무진은 그걸 닷새 동안 품에 넣고 다녔다. 무진은 그 수건을 한 경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자기 진술을 시작했다. 옮기는 말이 아니라 자기 말로. 다 끝나자 그 수건을 도로 집어 목에 걸었다. 소금 선이 목덜미에 닿았다.

쉰여덟. 로비에 젖은 사람이 쉰여덟, 목에 마른 수건이 쉰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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