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50자) · 봄비

셋째 규칙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첫 공판은 사월 이십이일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대법정. 방청석이 찼다. 앞쪽 두 줄에 준설 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다. 작업복이 아니라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손가락 두 개 없는 남자는 넥타이를 맸다. 누가 매 줬는지 매듭이 반듯했다. 김 반장이었을 것이다. 김 반장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등을 기대지 않고.

피고인석에 주강철이 앉아 있었다. 수의가 아니라 양복.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사람도 법정에는 양복을 입고 나올 수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주강철은 방청석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앞만 봤다. 공소장에 적힌 죄명은 여섯 줄이었다. 살인, 사체은닉, 증거인멸, 근로기준법 위반, 출입국관리법 위반, 그리고 이십삼 년 일월과 이십사 년 십이월의 두 사건에 대한 사체유기. 아잠과 누르벡. 두 사람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주강철이 어디에 두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검사는 그 두 줄을 읽을 때 목소리를 한 번 골랐다.

나는 증인으로 나갔다. 증인석은 생각보다 높았다. 계단 두 칸. 손을 들고 선서를 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삼 년 동안 쓴 이상 없음을 생각했다. 숨김은 있었고 보탬은 없었다. 이제 숨김도 없이.

검사가 물었다. 이월 구일 새벽 두 시 사십칠 분에 무엇을 했느냐고.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망인 오른손 손바닥에서. 0.4그램. 소금이었습니다.”

“소금인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맛을 봤습니다.”

방청석에서 누가 작게 웃었다. 무진이었다. 판사가 방청석을 한 번 봤다. 무진이 입을 막았다. 나는 웃음이 옮을 뻔했다. 참았다. 여기서는 맛을 봤다는 말이 우스웠다. 그 새벽에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변호인이 물었다. 증인은 시설관리원이지 수사관이 아닌데 왜 신고보다 시료 채취를 먼저 했느냐고. 절차 위반 아니냐고.

“버릇이었습니다. 방역 일 할 때 생긴. 그리고.”

나는 한 번 멈췄다. 변호인이 기다렸다.

“그 층에서는 삼 년 동안 아무도 안 셌습니다. 사람도 물도 소금도. 저는 뭐라도 하나 세고 싶었습니다. 제일 먼저 손에 잡히는 걸로.”

변호인은 더 묻지 않았다. 증인석에서 내려오는데 방청석 앞줄에서 손가락 두 개 없는 남자가 넥타이를 한 번 고쳐 맸다. 나를 보면서. 인사였다. 나는 계단 두 칸을 내려오는 동안 그 인사를 받았다. 발이 떨리지 않았다. 떨려도 괜찮았을 것이다.

언니는 두 번째 증인이었다. 남색 근무복이 아니라 검은 정장. 머리를 볼펜으로 틀어 올렸다. 새 볼펜. 언니는 01:12의 불빛을 진술했다. 세 번 깜빡였다고. 조명 반사로 판단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고. 그 말을 할 때 언니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떨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더 했다. 검사가 묻지 않은 말.

“제가 그 불빛을 적었으면, 수문을 닫았으면, 다니야르 씨가 살았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걸 모릅니다. 모른다는 걸 알고 삽니다.”

언니는 견책을 받았다. 경징계. 박 과장이 인사위원회에서 언니 편을 들었다고 했다. 그 새벽 십이 분 지연을 두고. 을지로 입구 물 오 센티. 인명 피해 없음. 박 과장은 원청 책임자로 따로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박 과장이 그 인사위원회에 귤을 들고 갔는지는 모른다.

무진은 세 번째 증인이었다. 통역이 붙었다. 무진은 통역을 거절했다. 한국어로 하겠다고. 할머니 말투로. 무진은 점검구 문 안쪽의 Д를 이야기했다. 반만 남은 글자. 그라인더에 갈린 자리. 그리고 벽의 이름. 삼백칠십육 번째. Данияр. 무진은 증인석에서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 글자를 썼다. 판사가 그 손가락을 오래 봤다.

주강철은 무진이 증언하는 동안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진 쪽으로. 무진이 그 눈을 받았다. 피하지 않았다. 스무 살이 쉰 살을.

공판이 끝나고 한 경위가 법원 복도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쇠막대에서 주강철 지문이 나왔다고. 구부러진 끝의 긁힘이 점검구 고리 구멍과 맞았다고. 그리고 기계실 소각 통에서 휴대폰이 나왔다고. 불을 안 붙였다던 그 휴대폰. 배터리는 죽었지만 메모리는 살아 있었다. 다니야르가 적은 것. 날짜, 시간, 받은 돈. 석 달 치 빈칸. 체불 임금은 원청이 대신 지급하기로 했다. 다니야르 몫은 알마티의 어머니에게 간다고. 한 경위는 그 말을 하고 명함을 한 장 더 줬다. 이번에는 앞면에 개인 번호를 적어서.

재판은 여름까지 간다고 했다. 무진과 지하 사 층 사람들은 소송이 끝날 때까지 머무를 수 있는 체류 자격을 받았다. 그 뒤는 모른다. 한 경위가 말했던 대로, 약속은 하나뿐이었다. 한 경위는 그 하나를 지켰다. 두 번째 약속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청계 대심도 빗물터널은 멈추지 않았다. 원청은 준설 하청을 바꿨다. 새 업체는 게이트 카드를 전원에게 발급했다. 지하 사 층 예비 구역은 봉쇄됐다. 매트리스는 치워졌다. 사람들은 구청이 알선한 쉼터로 옮겼다. 샤워 호스는 기계실 벽에서 떼어졌다. 열세 번째 문은 철판을 다시 볼트로 잠갔다. 이번에는 칠하지 않고. 회색 벽에 철판이 철판 색으로 붙어 있다. 누가 봐도 문이다.

점검실 북측 벽은 남겨 두기로 했다. 구청 문화재 담당 공무원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 등록 문화재까지는 안 된다고. 대신 지우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최 씨가 그 공문을 코팅했다. 공문서체였으니까. 점검실 문에 붙였다.

그 주 일요일 저녁 엄마 집에서 언니와 나는 처음으로 같은 시각에 도착했다. 같이 퇴근해서. 엄마가 김치찌개를 끓였다. 엄마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언니가 말했다. 이상 있음. 내가 말했다. 이상 있음. 엄마는 둘 다 미쳤다고 했다. 그러고는 찌개를 더 떠 줬다. 소금을 덜 넣었다고 했다. 요즘 둘 다 짠 거 싫어하는 얼굴이라고.

사월 말 어느 밤. 봄비가 왔다. 나는 야간 순찰을 돌았다. 김 반장은 오월 말 정년이었다. 정년 기념으로 뭘 받고 싶냐고 최 씨가 물었더니 소파라고 했다. 관리사무소 그 소파. 삼 년 동안 누운 자리가 움푹 꺼진. 최 씨는 그걸 구청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비품 불용 처리. 요즘 김 반장은 소파에 눕지 않는다. 집에 가서 잔다고 했다. 이십이 년 이후 처음으로 집에서 잔다고. 대신 퇴근 전에 관리사무소 일지를 한 번 읽는다. 내가 쓴 칸을. 이상 없음이면 확인란에 서명하고, 이상 있음이면 그 줄을 소리 내어 읽고 서명한다. 소리 내어 읽는 게 김 반장이 찾은 겁내지 않는 방법이었다.

새벽 두 시 사십 분. 지하 사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스무 칸. 열두 번째 칸에서 나는 귀를 기울였다. 물소리가 났다. 봄비가 지상에서 빗물받이로, 빗물받이에서 터널로 내려가는 소리. 이 층 옆 어딘가, 두꺼운 콘크리트 너머에서. 지하 사 층에는 배관이 없다. 그래도 들린다. 원래 들렸다. 삼 년 동안 나는 그걸 안 들리는 척했다.

계단 벽에 손바닥을 댔다. 겨울에는 차가웠던 벽이 조금 덜 차가웠다. 봄은 땅속으로 한 달 늦게 내려온다. 복도는 말라 있었다. 칠 번 방은 비어 있었다. 매트리스 자국이 바닥에 직사각형으로 남아 있었다. 먼지가 안 앉은 자리. 여섯 개. 팔 번 샤워실 문을 열었다. 스테인리스 선반에 수건이 쌓여 있었다. 을지탕. 을지탕. 을지탕. 빨아서 개어진. 모서리를 맞춰서.

쉰여덟 장이었다. 그날 로비에서 나간 수건이 전부 돌아와 있었다. 한 장씩, 한 달 동안. 경찰서 진술이 끝나고, 쉼터로 옮기기 전에, 재판에 가기 전에. 사람들이 한 장씩 빨아서 이 선반에 올려놓고 갔다고 최 씨가 말했다. 누가 시킨 게 아니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니었다. 벽에 이름을 새기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선반에 수건을 개어 두었다.

맨 위 한 장은 소금 선이 있었다. 여러 번 빨았는데도 빠지지 않은 하얀 선. 무진의 것. 무진은 그걸 맨 위에 두고 갔다. 나는 그 수건을 들어 코에 댔다. 섬유유연제 냄새 밑에 아주 조금, 바다 냄새가 남아 있었다.

점검실로 갔다. 북측 벽. 사백여섯 개의 이름. 손전등을 비스듬히 댔다. 이름들이 일어섰다. 뚝배기, 곰보, 김해 형님. 아잠. 누르벡. Данияр. 그리고 맨 아래 빈 줄.

무진이 떠나기 전날 여기 왔었다. 나와 최 씨와. 무진은 빈 줄 앞에 쪼그려 앉아 오래 봤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쉼터 방 열쇠. 모서리가 뾰족한. 새길 줄 알았다. 무진은 새기지 않았다. 열쇠를 도로 넣었다.

“이 줄은 비워 둘래요.”

“왜?”

최 씨가 물었다.

“여기 새기면 여기 사람 되는 거라고 형이 그랬어요. 근데 저는 이제 여기 안 살아요. 여기 사람 말고 다른 데 사람 되고 싶어요. 다음에 올 사람도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이름 쓰면 좋겠어요. 그래서 비워 둬요. 아무도 안 쓰게.”

최 씨가 한참 무진을 봤다. 그러다 보온병을 열었다. 커피를 따랐다. 무진에게 줬다. 믹스 두 봉. 무진이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달다고. 최 씨가 웃었다. 그 커피는 김이 났다. 따뜻했다. 식기 전이었다.

봄비 소리가 점검실 벽 너머에서 계속 났다. 벽 아래 이음매 틈으로 물이 스미는 소리는 이제 안 났다. 새 업체가 그 틈을 막았다. 방은 말라 있었다. 처음으로 이 방의 바닥이 벽만큼 말라 있었다.

나는 빈 줄에 손바닥을 댔다. 이월 구일 새벽처럼. 벽은 차가웠다. 사십칠 년 동안 식은 벽. 손바닥을 오래 대고 있었다. 내 손이 조금 데운 자리만 미지근해졌다. 손을 떼자 그 자리가 천천히 다시 식었다.

관리사무소로 올라왔다. 새벽 세 시 반. 최 씨가 벌써 와 있었다. 교대 시간 전인데.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손에 코팅된 종이 한 장. 공문서체.

“지원 씨, 이거 내가 쳤어. 붙여도 돼?”

나는 읽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 씨가 규칙 두 개 아래에 그 종이를 붙였다. 압정 네 개로. 모서리를 맞춰서. 삼십 년 전 자기가 친 두 줄 밑에, 같은 글씨체로.

하나. 지하 맨 아래층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전부 젖어 있다. 둘. 왜 젖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셋. 젖은 사람에게는 수건부터.

최 씨가 한 걸음 물러나 게시판을 봤다. 둘째 줄을 떼지 않았다. 떼면 다음 날 다시 붙을 테니까. 대신 그 밑에 하나를 더 붙였다. 그게 이 건물에서 규칙을 이기는 방법이었다.

나는 일지를 폈다. 사월 이십구일 02:40 지하 4층 순찰. 그 칸에 적었다.

이상 있음. 수건 58. 전부 마름.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