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1자) · 북측 벽
사백여섯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북측 벽의 이름을 세기로 한 것은 무진이었다. 이월 십사일 밤.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날. 일곱 사람은 중부경찰서에서 네 시간씩 말했다. 한 경위는 약속을 지켰다. 출입국 직원은 오지 않았다. 무진은 경찰서 복도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뽑아 마시고 왔다고 했다. 한국 코코아는 너무 달다고. 그래도 두 잔 마셨다고. 손가락 두 개 없는 남자는 세 잔 마셨다고. 조사받는 네 시간 동안 경찰서 자판기 코코아가 다 떨어졌다고. 한 경위가 자판기 업체에 전화했다고. 무진은 그 이야기를 할 때 처음으로 스무 살 얼굴을 했다.
한 경위는 점검구 감식 날짜를 이월 십칠일로 잡았다고 했다. 터널 안에 들어가려면 원청 허가와 안전 인력과 가스 측정이 필요하다고. 박 과장이 허가를 내줬다. 십칠일 오전 열 시. 사흘 뒤. 한 경위는 그 사흘이 길다고 했다. 나도 길다고 생각했다. 사흘이면 휴가 한 번이다.
“선생님, 형 이름 어디 있는지 찾고 싶어요. 벽에.”
점검실 북측 벽. 가로 사 미터, 바닥에서 머리 위까지. 긁힌 획들이 겹치고 덧대져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두 개 가져왔다. 하나는 무진이, 하나는 내가. 최 씨가 보온병을 들고 따라 내려왔다. 최 씨는 점검실 문턱에서 멈췄다. 들어오지 않았다.
“최 선생님.”
“나는 여기서 볼게.”
최 씨는 문턱에 보온병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았다. 예순두 살의 무릎이 소리를 냈다.
우리는 위에서부터 셌다. 무진이 한 줄, 내가 한 줄. 손전등을 벽에 비스듬히 대면 긁힌 홈에 그림자가 져서 획이 떠올랐다. 정면으로 비추면 안 보였다. 비스듬히. 빛을 눕혀야 이름이 일어섰다.
맨 위 줄은 한글이었다. 오래된 한글. 획이 깊었다. 못으로 한 번에 판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그어서 판 홈. 박순길. 이금자. 정해수. 그 옆에 이름이 아닌 것도 있었다. 뚝배기. 곰보. 전라도. 김해 형님.
“이건 이름 아니에요.”
무진이 말했다.
“이름이야.”
최 씨가 문턱에서 말했다. 보온병 뚜껑을 열면서.
“칠십구 년에 아래 있던 열 명. 일당 받던 사람들. 이름 대신 그렇게 불렸대. 뚝배기는 밥을 뚝배기로 먹어서. 곰보는 곰보라서. 김해 형님은 김해에서 와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이렇게 새겼대. 아는 대로. 경찰도 회사도 이름을 몰랐으니까. 부르던 대로라도 남겨야 한다고.”
최 씨는 커피를 따랐다. 뚜껑 컵에. 마시지 않고 들고만 있었다.
“그날 나는 지하 이 층 사택에 있었어. 지금 창고 자리. 아버지가 도시락 두고 가서 갖다주러 내려가려는데 계단에서 물소리가 났어. 위로 올라오는 물소리. 아래에서 누가 우리 아버지 이름을 불렀어. 이름 있는 사람은 이름으로 불렸어. 나머지는 뚝배기야, 곰보야, 그렇게. 그 소리가 제일 오래 남아. 이름 부르는 소리보다 별명 부르는 소리가.
우리 아버지 동료가 그랬어. 아버지 장례식에 와서. 너희 아버지는 이름 있어서 좋겠다고. 기록에 남아서. 나머지 열은 벽에만 있다고. 열다섯 살한테 그 말을 했어.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서른 살 넘어서 알았어.”
맨 위 줄 열 개. 뚝배기부터 김해 형님까지. 그 아래로 이름이 이어졌다. 한글, 한자, 영어 알파벳, 키릴 문자, 내가 모르는 글자. 구십 년대 양수장 하청 청소부들. 이천 년대 설비 보수 인부들. 그리고 최근. 준설 노동자들. 온 날 새긴다고 했다. 떠날 때가 아니라.
손전등을 오래 대고 있으니 벽의 그 자리만 조금 데워졌다. 손바닥을 대 보면 손전등이 지나간 자리와 안 지나간 자리의 온도가 달랐다. 이름을 읽은 자리만 미지근했다. 나머지는 사십칠 년 동안 식은 그대로였다. 무진이 셌다. 나도 셌다. 겹친 획은 둘이 같이 보고 하나로 정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손전등 배터리 하나가 나갔다. 최 씨가 기계실 창고에서 새 것을 가져왔다. 무진은 한 줄 셀 때마다 손가락으로 홈을 쓸었다. 쓸고 나면 손끝이 하얬다. 벽 홈에 소금이 앉아 있었다. 이 방으로 흘러든 짠물이 벽을 타고 올라와 말라붙은 것이다. 이름마다 소금이 끼어 있었다.
삼백칠십육 번째에서 무진이 멈췄다.
Данияр.
키릴 문자. 획이 얕았다. 이 년 전에 새긴 것.
무진은 다니야르 이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손끝으로 Д를 쓸었다. 점검구 문 안쪽에 긁혀 있었다던 그 글자. 여기서는 이름 전체가 있었다. 저기서는 첫 글자뿐이었다.
“형이 여기 쓸 때 제가 옆에 있었어요. 형이 그랬어요. 이거 쓰면 여기 사람 되는 거라고. 한국 사람 아니어도 여기 사람.”
무진은 손을 뗐다. 손끝을 봤다. 소금. 그걸 혀에 댔다. 나처럼.
“짜요.”
“알아요.”
“형 이름이 짜요.”
무진이 웃었다. 울면서. 최 씨가 문턱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은 커피. 최 씨는 식은 커피를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달아서가 아니라 식어서. 최 씨는 삼십 년 동안 보온병 커피가 식기 전에 다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커피가 식을 때까지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를 마저 셌다. 최근 이 년. 서른 개. 무진은 거기서 아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이름 대신 그 사람 버릇을 말했다. 코 고는 형. 밥 두 번 먹는 형. 휴대폰으로 엄마랑 영상통화 하는 형. 새벽 세 시에 셈이 끝났다. 사백여섯. 그리고 맨 아래 빈 줄 하나.
그때 복도에서 물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물을 밟는 소리. 복도가 다시 젖어 있었다. 이번에는 칠 번 방도 샤워실도 아니었다. 물은 계단 쪽에서 오고 있었다. 누군가 젖은 신발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한 사람.
주강철이 점검실 문턱에 섰다. 최 씨 옆에. 최 씨를 내려다봤다. 최 씨는 일어나지 않았다. 보온병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올려다봤다.
주강철의 바지가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 바짓단에서 물이 떨어져 문턱에 고였다. 그 물이 최 씨 운동화 앞코까지 번졌다. 최 씨는 발을 빼지 않았다. 형광 조끼 등이 검게 젖어 있었다. 터널에서 올라온 사람이었다. 새벽 세 시에.
“무진아.”
주강철이 불렀다. 친절한 목소리였다.
“경찰서에서 뭐 먹었어. 코코아?”
무진이 굳었다. 손전등 빛이 벽에서 흔들렸다. 주강철은 무진이 경찰서에서 무엇을 마셨는지 알고 있었다.
“네 여권 내 사무실에 있다. 경찰서 다녀왔다고 여권이 네 발로 걸어가진 않아. 너 이번 달 비자 연장 서류 누가 해 주는지 알지. 한 경위가 해 주냐.”
“소장님.”
내가 말했다. 주강철이 나를 봤다.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하지원 씨. 언니 잘 지내요? 하지안 주무관. 그 양반 그날 밤 한 시 십이 분에 칠 번 카메라 봤잖아요. 불빛 봤잖아요. 그리고 안 적었잖아요. 수문 계속 열어 뒀잖아요. 그 불빛이 다니야르면, 다니야르 죽인 게 누구예요. 문 잠근 사람이에요, 물 넣은 사람이에요.”
나는 숨을 멈췄다. 주강철은 언니가 불빛을 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니는 그걸 나한테만 말했다. 관제실 안에서. 아니다. 관제실에는 카메라가 있다. 보조 계정. 포스트잇.
“영상 오십 분 지운 거 소장님이에요.”
“무슨 영상이요.”
주강철이 다시 웃었다. 친절하게.
“저는 오늘 터널 점검 다녀온 거예요. 내일 비 온대요. 겨울비. 오십 밀리. 수문 또 열 거예요. 그 전에 점검구 정리해야 돼요. 장비 빼고, 청소하고. 원청에서 시킨 일이에요. 하 주무관이 승인한.”
점검구 정리. 쇠막대. 문 안쪽의 Д. 비가 오기 전에 전부 씻어 낼 생각이었다. 아니면 이미 반쯤 씻어 냈거나. 바지가 무릎까지 젖을 만큼.
무진이 벽에서 손전등을 내렸다. 빛이 바닥의 물에 떨어져 흔들렸다. 무진이 말했다. 한국말로, 할머니 말투로.
“소장님이 형 문 잠갔어요.”
주강철이 무진을 봤다. 오래.
“무진아, 너 그거 말하면 여기 벽에 네 이름 한 줄 더 생긴다.”
그 말이 점검실 벽에 부딪쳤다. 긁힌 사백여섯 개의 이름에. 맨 아래 빈 줄에.
최 씨가 일어났다. 무릎이 소리를 냈다. 보온병을 들고. 주강철 바로 앞에 섰다. 예순두 살 경비와 쉰 살 소장. 최 씨가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주강철이 한 걸음 물러났다. 사흘 전 커피를 기억하는 몸이었다.
“주 소장.”
최 씨가 말했다. 커피를 붓지 않았다.
“저 벽 맨 위에 열 명 있어. 칠십구 년. 이름도 없이 죽은 사람들. 그 사람들 죽인 게 누구였는지 아무도 안 적었어. 사십칠 년 동안. 그래서 저 벽이 생겼어. 적는 사람이 없으니까 긁은 거야.”
최 씨는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이번엔 적을 사람이 있어. 저기.”
최 씨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방수 수첩을 꺼냈다. 주강철 앞에서 폈다. 펜을 꺼냈다. 날짜. 시각. 03:12. 주강철 무진에게 「네 이름 한 줄 더 생긴다」. 나는 소리 내어 읽으면서 적었다. 또박또박.
주강철은 수첩을 봤다. 나를 봤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젖은 신발로. 복도에 물 발자국을 남기며 계단으로 갔다. 계단 스무 칸에 스무 개. 나는 세지 않았다.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 플래시가 물 발자국마다 하얗게 터졌다.
나는 한 경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세 시 이십 분.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삐 소리 뒤에 말했다. 주강철이 오늘 점검구에 내려갔다 왔다고. 내일 비가 온다고. 십칠일은 늦는다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는 걸 들었다. 음성 사서함은 떨린 목소리를 그대로 담는다.
무진은 벽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맨 아래 빈 줄 앞에. 손전등이 무진 무릎 위에서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마른 천장.
“선생님.”
“네.”
“내일 비 오면, 점검구 물 차요. 형 글자 없어져요. 쇠막대도.”
나는 무진 옆에 앉았다. 바닥이 젖어 있었다. 엉덩이가 차가웠다. 벽에 등을 댔다. 사백여섯 개의 이름이 등 뒤에 있었다. 차가웠다. 사십칠 년 동안 식은 벽.
나는 언니를 생각했다. 주강철 말대로라면 언니는 문 잠근 사람 옆에 선 사람이 된다. 물 넣은 사람. 불빛을 보고 안 적은 사람. 점검구에 쇠막대와 Д가 남아 있으면 문 잠근 사람이 누군지 나온다. 씻겨 나가면 남는 건 물 넣은 사람뿐이다. 모니터 기록에 이름이 찍힌 사람. 언니. 주강철은 그걸 알고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는 언니 이름을 남기고 자기 이름을 씻어 갈 것이다.
“그럼 오늘 밤 내려가요.”
무진이 나를 봤다.
“어디로요.”
“열세 번째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