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16자) · 시청 회의실

귤과 열쇠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한수정 경위에게 전화를 건 것은 이월 십삼일 아침 여덟 시였다. 수건 일곱 장을 선반에 올리고 일곱 시간 뒤. 명함 뒷면 번호로. 신호가 두 번 가고 한 경위가 받았다. 자다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 사람도 밤에 잘 안 자는 사람이었다.

“하지원 씨. 부검 결과 나왔어요. 익사. 폐에 물. 물에서 염분. 해수 농도 수준. 심장은 멀쩡했고요.”

“지병 아니네요.”

“지병 아니죠.”

나는 샤워실 이야기를 했다. 일곱 사람. 한 시 오 분에 쇠막대를 들고 내려가는 소장. 소각 통의 휴대폰. 점검구 문 안쪽의 Д. 한 경위는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볼펜 소리만 났다. 다 듣고 나서 말했다.

“그분들 참고인 조사 받으시게 해야 돼요.”

“출입국이요.”

“범죄 피해자나 참고인은 통보 안 하게 돼 있어요. 법에 있어요. 제가 공무원으로서 통보 의무 면제 조항 적용할게요. 약속은 그거 하나만 드릴 수 있어요. 수사 끝나고 체류 문제는 제 권한 밖이고요.”

하나. 김 반장이 줄 수 있는 게 사흘 휴가 하나였듯이, 한 경위가 줄 수 있는 것도 하나였다. 이 겨울에 만난 사람들은 다 하나씩만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요. 관제실 터널 카메라 원본. 한 시 십이 분. 칠 일 지나면 덮어쓴대요. 오늘이 나흘째.”

“관리 주체가 어디예요.”

“물순환안전국 시설과.”

“오후에 거기 가요. 같이 가실래요.”

전화를 끊고 숙직실로 올라갔다. 무진은 깨어 있었다. 침대 끝에 앉아 머리맡의 수건을 무릎에 올려놓고 모서리를 만지고 있었다. 소금 선이 굵은 그 수건. 나는 한 경위 이야기를 했다. 통보 의무 면제. 하나. 무진은 한참 수건만 만졌다. 그러다 말했다.

“할머니가 그랬어요. 한국 사람은 약속을 종이에 쓴다고. 종이에 쓰면 지킨다고.”

“종이에 써 달라고 할게요.”

“아니요. 종이 말고.”

무진이 수건을 들어 보였다.

“이거면 돼요. 일곱 명 다 받았잖아요. 받았으면 가요.”

시청 서소문 별관 칠 층. 물순환안전국 시설과 회의실. 난방이 셌다. 창문이 안 열리는 건물이라 공기가 두 번 데워진 맛이 났다. 탁자 한가운데 귤이 한 바구니 놓여 있었다. 누가 먹으라고 놓은 건지 장식인지 알 수 없는 귤. 제주 감귤이라고 박스에 찍혀 있었다.

박영호 과장이 먼저 와 있었다. 쉰 중반. 회색 양복. 귤을 까고 있었다. 장식이 아니었다. 박 과장은 귤 껍질을 한 줄로 길게 깠다. 끊지 않고. 그걸 탁자에 동그랗게 내려놓았다. 한 경위와 내가 들어가자 귤 한 쪽을 입에 넣고 일어섰다.

뒤에서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김 반장이었다. 양복을 입었다. 삼 년 동안 작업 조끼만 본 사람이 양복을 입고 있었다. 넥타이가 삐뚤었다. 김 반장은 나를 보지 않고 탁자 끝에 앉았다. 앉자마자 등받이에 기댔다. 눕지는 못하고, 그 방에서 제일 누운 것에 가까운 자세로. 박 과장이 불렀다고 했다. 관리동 책임자라서.

박 과장이 귤을 하나 집어 내 쪽으로 굴렸다. 나는 받아서 깠다. 박 과장처럼 한 줄로는 못 까고 세 조각으로 뜯겼다. 한 쪽을 먹었다. 시고 달았다. 혀에 사흘째 남아 있던 짠맛이 그 신맛에 씻겨 나갔다. 씻겨 나가는 게 서운했다. 나는 두 번째 쪽을 먹지 않고 손에 쥐었다.

한 경위가 공문을 내밀었다. 영상 보존 요청. 이월 구일 영 시부터 세 시까지, 청계 대심도 터널 전 카메라.

박 과장은 공문을 읽고 귤 한 쪽을 더 먹었다.

“경위님, 이거 보존은 해 드리죠. 법대로. 근데 하나 여쭤볼게요. 이게 무슨 사건이에요?”

“변사 사건 수사입니다.”

“하청 업체 숙소에서 생긴 일이면 하청 쪽이 먼저 아닌가요.”

“원청 시설 안이면 원청도 봐야죠. 지하 사 층은 과장님 시설이고요. 임대한 적 없다던데요.”

박 과장이 김 반장을 봤다. 김 반장이 고개를 숙였다. 넥타이 끝이 탁자에 닿았다.

“지병으로 숙소에서 돌아가신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하청 소장님이 그렇게 보고했고.”

“부검 결과 익사입니다. 해수 농도 염분.”

박 과장의 손이 귤 위에서 멈췄다.

“익사면 어디서.”

“그걸 보려고 영상을 달라는 겁니다.”

박 과장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귤 껍질 동그라미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러다 나를 봤다.

“하지원 씨 맞죠. 하지안 주무관 동생.”

“네.”

“언니가 그날 수문 열었고.”

“규정대로요.”

내가 먼저 그 말을 했다. 언니 말을. 박 과장이 조금 웃었다.

“규정대로 한 거 맞아요. 내가 승인했어요. 한 시 팔 분. 해빙기 배수 시험. 매년 하는 거.”

박 과장은 창밖을 봤다. 시청 앞 광장. 이월 오후 햇빛에 녹다 만 눈이 가장자리에 회색으로 쌓여 있었다. 그 눈에도 소금이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원 씨, 청계 터널 생기기 전에 이 동네 여름이 어땠는지 알아요? 시간당 백 밀리 오면 을지로 지하상가 잠기고, 종로 반지하 잠기고. 이십이 년 여름에 여기서 두 블록 떨어진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어요. 그 뒤에 터널 공사 앞당겼어요. 이 터널이 멈추면, 수사 때문이든 뭐든 여름 전에 멈추면, 그다음 큰비에 몇 명이 죽을지 나는 몰라요. 한 명일 수도 있고 스무 명일 수도 있어요. 중대재해로 걸리면 운영 중지 명령 떨어질 수 있어요. 그게 제 걱정이에요. 경위님 수사를 막겠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 말이 맞았다. 이 겨울에 만난 사람들은 다 맞는 말을 했다. 맞는 말들이 서로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때 김 반장이 입을 열었다. 탁자 끝에서. 넥타이를 한 번 잡아당기면서.

“과장님, 이십이 년 그 반지하요. 제가 갔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박 과장이 김 반장을 봤다. 김 반장은 귤 바구니를 보고 있었다.

“그때 저 양수장 근무였어요. 옛날 양수장. 그날 밤 펌프 하나가 고장 났어요. 제가 수리 요청 올렸는데 다음 날 온다고. 그날 밤 비가 왔고. 두 블록 떨어진 반지하에 물이 찼고. 아침에 제가 가 봤어요. 할머니 한 분하고 손녀. 방이 말라 있었어요. 물 다 빠지고. 벽지에 무릎 높이까지 누런 선이 있었어요.”

나는 김 반장을 봤다. 무릎 높이의 누런 선. 언니가 봉천동 반지하에서 이사 갈 때까지 못 지운 선.

“그 뒤로 저는 뭘 적을 때마다 겁이 났어요. 제가 적은 수리 요청 한 줄이 다음 날로 넘어가서 사람이 죽었으니까. 적으면 누가 다음 날로 넘겨요. 그러니까 안 적는 게 낫다고. 이상 없음이 낫다고. 이상 있음이라고 적으면 누가 그걸 들고 다음 날로 넘기니까.”

김 반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삼 년 동안 한 번도 떨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누워서만 말하던 사람이 앉아서 떨었다.

“과장님 말씀 맞아요. 터널 멈추면 안 돼요. 그래서 저는 주 소장이 지하 사 층에 애들 재우는 거 알고도 모른 척했어요. 게이트 카드 없이 다니는 것도. 샤워 호스도. 저 사람들이 터널 청소를 해야 터널이 돌아가니까. 저 사람들 쫓겨나면 준설 못 하고, 준설 못 하면 여름에 터널이 막히니까. 저는 그렇게 계산했어요. 그 계산에 다니야르라는 사람은 없었어요.”

김 반장은 거기서 멈췄다. 그러고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동그란 플라스틱 꼬리표 열두 개가 달린 열쇠 뭉치. 삼 년 동안 관리사무소 어디에도 없다던 열쇠. 그걸 탁자 위, 귤 껍질 동그라미 옆에 내려놓았다.

“이거 주 소장이 삼 년 전에 줬어요. 반장님이 갖고 계시라고. 그래야 반장님도 아는 거라고. 저는 그 말이 무서워서 받았어요. 받으면 한편이 되는 거라서.”

박 과장이 열쇠를 봤다. 꼬리표 열두 개가 형광등 아래 흔들렸다. 일부터 십이까지. 열세 번째 꼬리표는 없었다. 한 경위가 봤다. 한 경위가 장갑을 끼고 열쇠를 증거 봉투에 담았다. 봉투 입구를 접었다. 반으로, 또 반으로.

“반장님, 진술서 써 주실 수 있어요?”

“이상 있음으로요?”

김 반장이 물었다. 농담이었다. 김 반장이 농담을 했다. 삼 년 만에 처음.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런데 박 과장이 귤을 하나 집어 김 반장 앞에 굴려 주었다. 김 반장이 그걸 받았다. 까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

박 과장이 한 경위 공문에 서명했다. 볼펜 뚜껑을 닫는 소리가 크게 났다. 영상 보존.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관제실 직통.

“하 주무관, 이월 구일 새벽 터널 카메라 원본 지금 바로 백업해. 경찰 요청.”

수화기 너머 언니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박 과장 얼굴이 굳었다.

“뭐? 다시 말해 봐.”

박 과장이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우리를 봤다.

“제3수문 근처 카메라 칠 번. 그날 영 시 오십 분부터 한 시 사십 분까지 오십 분이 비어 있답니다. 녹화 오류로. 어제 새벽에 누가 수동으로 덮어썼대요. 관제실 보조 계정으로.”

한 경위가 일어섰다. 나도 일어섰다. 김 반장만 앉아 있었다. 귤을 쥔 채로. 그 귤이 김 반장 손안에서 조금 찌그러졌다.

회의실을 나와서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한 번에 받았다.

“보조 계정 비밀번호 어디 있어?”

“모니터 옆에 포스트잇.”

언니가 대답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없었다.

“삼 년 동안 거기 붙어 있었어. 다들 알았어. 아무도 안 뗐어. 떼면 불편하니까.”

나는 게시판의 코팅된 종이를 생각했다. 떼면 다음 날 다시 붙는 종이. 이 건물에는 아무도 떼지 않는 종이가 두 장 있었다.

회의실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한 경위가 말했다.

“관제실 보조 계정 쓸 수 있는 사람 명단 필요해요.”

“주 소장이 관제실에 커피 사 들고 자주 온대요. 언니가 그랬어요.”

한 경위가 나를 봤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둘 다 타지 않았다.

“하지원 씨, 언니분이 그 한 시 십이 분 불빛 본 거, 본인이 진술해 주실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언니는 규정대로 했다. 규정대로 한 사람이 규정 밖의 불빛을 봤다고 진술하면, 언니는 그 불빛을 보고도 안 적은 사람이 된다. 무릎 높이의 누런 선을 수문 버튼 위에 얹고 사는 사람이, 그 선을 자기 이름으로 한 번 더 긋는 일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 누가 눌렀는지 몰랐다. 안이 비어 있었다.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나는 그 온기를 얼굴로 받았다. 두 번 데워진 공기. 짠맛이 없는 공기. 그게 이상하게 목에 걸렸다. 손에 쥔 귤 두 번째 쪽이 체온에 데워져 물러져 있었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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