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04자) · 샤워실
수건 일곱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무진이 입을 연 것은 그날 밤 열한 시였다. 전기장판 위에서 반나절을 자고, 최 씨가 끓여 온 컵라면 두 개를 국물까지 마시고, 최 씨의 짧은 내복 위에 내 작업복 여벌을 껴입은 다음이었다. 작업복은 무진한테 길었다. 소매를 세 번 접었다. 내복은 짧고 작업복은 길었다. 무진은 그 차림으로 침대 끝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말했다.
“다니야르 형이 적었어요. 휴대폰에. 우리 일한 날. 시간. 받은 돈.”
무진의 한국어는 또박또박했다. 할머니가 쓰던 말이라고 했다. 고려인 삼 세.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태어났다. 할머니가 늘 한국말로 욕을 했다고. 그래서 욕을 제일 먼저 배웠다고. 최 씨가 그 말에 웃었다. 웃다가 무진이 무슨 욕을 배웠는지 묻자 무진이 하나를 말했고, 최 씨가 웃음을 멈췄다. 그건 최 씨 할머니도 쓰던 욕이었다.
“석 달 돈 안 받았어요. 소장님이 다음 달 준다고 했어요. 다니야르 형이 노동청 간다고 했어요. 월요일에. 형 휴대폰에 다 있다고. 소장님한테도 말했어요. 형은 말하는 사람이에요. 숨기는 거 못 해요.”
“월요일이 이월 구일이었어요.”
“네. 일요일 밤에 소장님이 형한테 전화했어요. 한 시에 장비 넣으러 내려가라고. 점검구에. 형 혼자.”
나는 언니의 메모지를 생각했다. 01:12. 세 번 깜빡인 불빛. 밖에서 잠그는 문.
“형이 안 올라왔어요. 아침에 선생님이 찾았어요. 칠 번 방에서. 근데 형은 칠 번 방에 안 잤어요. 형 자리는 구 번이에요. 칠 번은 제 자리 옆이에요. 소장님이 형을 칠 번에 눕혔어요. 제일 가까워서. 계단에서.”
그래서 칠 번이었다. 최 씨가 말한 작년 구 번, 그 전 삼 번. 그때그때 계단에서 제일 가까운 빈 매트리스. 나는 그 계산이 너무 단순해서 속이 뒤집혔다.
“무진 씨는 어떻게 젖었어요.”
무진이 무릎 사이에 낀 손을 뺐다. 손바닥을 폈다. 이제 소금은 없었다. 씻었다. 손금만 붉게 부어 있었다.
“형 휴대폰 찾으러 갔어요. 수요일 새벽. 소장님 없을 때. 점검구에. 형이 휴대폰에 다 적었으니까. 그거 있으면 형이 한 말 맞다고 할 수 있으니까.”
“점검구 열었어요?”
“밖에서 잠그는 거예요. 고리에 쇠막대 끼우는 거. 제가 뺐어요. 문 열었어요. 안에 물이 있었어요. 가슴까지. 짠 물. 수문 닫아도 거기는 안 빠져요. 칸이라서.”
무진이 칸이라는 말을 할머니 말투로 했다. 오래된 말.
“들어갔어요. 휴대폰 찾으려고. 물이 미지근했어요. 이상하게. 밖은 추운데. 바닥 더듬었어요. 오래. 못 찾았어요. 대신 문 안쪽에.”
무진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었다. 세로로 한 줄, 가로로 한 줄, 그리고 비스듬히.
“긁혀 있었어요. 문 안쪽 철판에. Д. 형 이름 첫 글자. 러시아 글자. 형이 긁었어요. 손톱으로. 아니면 열쇠로. 끝까지 못 썼어요. 한 글자.”
숙직실이 조용했다. 전기장판 온도 조절기의 빨간 불이 깜빡였다. 최 씨가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나오려는데 발이 미끄러졌어요. 물에 빠졌어요. 오래. 몰라요. 기어서 나왔어요. 수직갱 사다리. 그리고 샤워실. 거기 따뜻한 데 같아서. 샤워는 안 나와요. 기계실에서 호스 끌어온 거라 소장님이 밤엔 잠가요.”
배관 없는 층의 샤워 꼭지. 기계실에서 끌어온 호스. 삼 년 동안 나는 그 호스를 기계실 벽에서 봤을 것이다. 무슨 호스냐고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요? 다니야르 씨 일.”
“알아요. 다 알아요. 근데 말 안 해요. 말하면 비자.”
그날 밤 한 시. 나는 무진과 최 씨와 함께 지하 사 층으로 내려갔다. 무진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삼 층 참에서 한 번 멈췄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틀 전 기어 올라온 계단이었다. 최 씨가 무진 등을 한 번 쳤다. 세게. 무진이 다시 내려갔다. 이번엔 김 반장 열쇠 뭉치 없이. 칠 번 방도, 구 번 방도 잠겨 있지 않았다. 잠글 필요가 없는 방이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누가 문을 열까 봐가 아니라 누가 자기를 셀까 봐 무서워했다.
복도는 말라 있었다. 발밑이 차가웠다. 이 층은 밤이 되면 바닥부터 식는다. 옛 양수장 콘크리트가 땅속 냉기를 그대로 올려 보낸다. 방문을 열 때마다 다른 공기가 나왔다. 컵라면 스프 냄새, 젖었다 마른 작업복 냄새, 파스 냄새. 그리고 모든 방 밑바닥에 얇게 깔린 바다 냄새. 사람들이 매일 짠물에 들어갔다가 이 방으로 돌아와 잤다.
구 번 방에 매트리스가 넷. 십일 번 방에 셋. 칠 번에 다섯. 준설 작업은 네 시 반부터라 다들 자고 있었다. 무진이 문마다 들어가 한 사람씩 깨웠다. 할머니 말투의 한국어와 러시아어와 내가 모르는 말로. 사람들이 일어났다. 나를 보고 벽에 붙었다. 작업복. 관리동 사람. 삼 년 동안 복도를 지나다니던 손전등.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안에 시료 봉투 대신 수건이 들어 있었다. 퇴근길에 집에 들러 욕실 선반에서 전부 꺼내 왔다. 여섯 장. 최 씨가 자기 사물함에서 한 장을 더 가져왔다. 일곱 장. 전부 건조기에서 막 꺼낸 것처럼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냥 마른 수건이었다. 이 층에서는 마른 것이 귀했다.
팔 번 샤워실에 모였다. 스테인리스 선반과 개수대가 형광등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선반은 비어 있었다. 두 장 다 내가 썼으니까. 하나는 다니야르에게, 하나는 무진에게. 나는 그 선반에 수건 일곱 장을 개어 올렸다. 모서리를 맞춰서. 선반이 다시 찼다.
“이거 드리는 거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무진이 옮겼다.
“말해 주시는 분한테 한 장씩이에요. 다니야르 씨 일. 여기 일. 아는 거 아무거나.”
무진이 옮기는 동안 사람들이 서로를 봤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샤워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스테인리스 개수대에 그 깜빡임이 비쳤다.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물 한 방울 없는 샤워실에서 그 소리가 제일 젖어 있었다. 이상한 거래였다. 수건 한 장에 말 한 마디. 비자를 걸고. 나는 알았다. 이건 공평하지 않았다. 수건은 너무 가볍고 말은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마흔쯤. 오른손 손가락이 두 개 없었다. 그 사람이 선반에서 수건을 한 장 집었다. 손가락 셋으로 집으니 수건이 한쪽으로 늘어졌다. 목에 걸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러시아어로. 무진이 옮겼다.
“형은 월요일 한 시에 내려갔다. 소장이 쇠막대 들고 따라 내려가는 거 봤다. 내 방 문 앞 지나갔다. 한 시 오 분.”
두 번째 사람이 수건을 집었다. 세 번째. 네 번째는 여자였다. 한국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다. 식당 일을 하다 여기로 왔다고 했다. 준설 인부들 밥을 한다고. 그 여자가 말했다. 소장님이 화요일 아침에 다니야르 휴대폰을 기계실 소각 통에 넣는 걸 봤다고. 불은 안 붙였다고. 그냥 넣었다고.
다섯 번째는 스무 살이 안 돼 보이는 남자였다. 그 사람은 말 대신 손을 들어 복도 끝을 가리켰다. 점검실 쪽. 그리고 손가락으로 벽에 무언가를 새기는 시늉을 했다. 무진이 옮겼다. 여기 오는 사람은 처음 온 날 저 벽에 이름을 새긴다고. 떠날 때 쓰는 게 아니라 온 날 쓴다고. 누가 정한 건 아닌데 다들 그렇게 한다고. 다니야르 형도 새겼다고. 이 년 전에.
여섯, 일곱.
선반이 비었다. 일곱 사람이 목에 수건을 걸고 좁은 샤워실에 어깨를 붙이고 서 있었다. 누가 먼저 웃었는지 모른다. 수건을 목에 건 사람 일곱이 좁은 샤워실에 서 있는 모습이 목욕탕 같았다. 탕은 없고 물도 안 나오는 목욕탕. 손가락 두 개 없는 남자가 수건 끝으로 자기 눈가를 훔쳤다. 웃어서 나온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계단 쪽. 무겁게, 천천히. 사람들이 벽에 붙었다. 무진이 내 소매를 잡았다.
김 반장이었다.
김 반장은 샤워실 문간에 서서 안을 봤다. 수건 목에 건 일곱. 무진. 최 씨. 나. 김 반장은 휴가 중인 직원과 교대 전의 경비와 도면에 없는 사람들을 셌다. 그 사람도 셀 줄 알았다.
“지원 씨. 올라와.”
“여기서 말씀하세요.”
김 반장이 들어왔다. 슬리퍼 차림이었다. 소파에서 바로 내려온 사람. 선반을 봤다. 비어 있었다.
“이 사람들 여기 모인 거, 일지에 쓸 거야?”
“써야죠.”
“쓰면 내일 출입국 와. 주 소장이 신고할 거야. 자기 직원 아니라고. 불법 숙박이라고. 이 사람들 비행기 타. 다니야르 일은 아무도 말 못 하고. 그게 지원 씨가 쓰는 일지야.”
“그럼 뭐라고 써요.”
김 반장이 나를 봤다. 그 눈이 또 겁먹어 있었다.
“이상 없음.”
사람들이 무진을 봤다. 무진이 옮기지 않았다. 옮길 필요가 없었다. 그 네 글자는 이 층 사람들이 다 아는 한국어였다.
나는 가방에서 일지를 꺼냈다. 관리사무소 일지가 아니라 내 수첩. 방역 일 할 때 쓰던 방수 수첩. 펜을 꺼냈다. 샤워실 스테인리스 선반을 책상 삼아 썼다. 김 반장이 보는 앞에서.
2월 13일 01:20. 지하 4층 8번 샤워실. 증언 7. 수건 7. 이상 있음.
김 반장이 그 줄을 읽었다. 오래. 그러고는 샤워실 벽에 등을 기댔다. 눕지 않았다. 여기는 누울 데가 없었다. 김 반장은 기대선 채로 천장을 봤다. 마른 천장.
“지원 씨, 내가 왜 이상 없음이라고 쓰라는지 알아?”
“겁나서요.”
“그래. 겁나서.”
김 반장이 말했다. 처음으로 그 말을 인정했다.
“근데 나는 이 사람들이 겁나는 게 아니야. 이 사람들이 수건 받고 입 연 다음 날이 겁나.”
그 말을 하고 김 반장은 선반을 한 번 손바닥으로 쓸었다. 빈 선반. 그러고는 나갔다. 계단 소리가 멀어졌다. 올라가는 발소리가 내려올 때보다 가벼웠는지 무거웠는지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손가락 두 개 없는 남자가 무진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무진이 나를 봤다. 옮기기 싫은 얼굴이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되냐고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수건 일곱 장은 말을 샀다. 그다음은 사지 못했다. 나는 방수 수첩을 덮고 그 남자의 수건 끝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마른 면이었다. 그 사람 목에서 체온이 옮아 조금 따뜻했다.
“모르겠어요. 근데 오늘 말한 거, 제가 안 지워요.”
무진이 옮겼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이 아니라는 걸 알고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