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38자) · 관제실
한 시 십이 분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이 일을 나한테 소개한 사람이 언니였다. 삼 년 전, 보건소 계약이 끝나고 석 달 놀던 때. 일요일 저녁 엄마 집 식탁에서 언니가 말했다. 우리 건물 야간 시설관리 용역 자리 났어. 너 밤에 잘 안 자잖아. 엄마가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언니 말이 맞아서. 나는 그다음 주부터 언니와 같은 건물로 출근했다. 언니는 이 층 관제실, 나는 일 층 관리사무소와 지하. 언니는 공무원, 나는 용역. 언니는 모니터로 터널을 보고, 나는 손전등으로 복도를 봤다. 같은 건물에서 삼 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같이 퇴근하지 않았다. 교대 시간이 달랐다.
이월 십이일 새벽 두 시. 나는 휴가 셋째 날이었다. 관제실 문을 두드렸다.
관제실은 관리동 이 층 동쪽 끝에 있다. 벽 한 면이 유리창이고, 창 너머로 수직구 안이 내려다보인다. 반대쪽 벽에 모니터가 스물네 개. 터널 안 카메라 화면이 격자로 떠 있다. 청록 조명 아래 레일 같은 준설 궤도가 한 줄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수위계 숫자, 수문 개폐 표시, 강우 레이더. 방 안은 따뜻했다. 기계 열 때문이다. 모니터 스물네 개가 내는 열이 공기를 건조하게 데웠다. 관제실 습도는 늘 삼십 퍼센트 언저리다. 지하 사 층 칠 번 방과 같았다.
언니가 문을 열었다. 남색 근무복, 목에 사원증. 머리를 틀어 올려 볼펜으로 꽂았다. 언니는 볼펜으로 머리를 꽂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수능 날에도 그랬다. 엄마가 그러다 볼펜 잃어버린다고 할 때마다 언니는 머리에 있잖아, 했다.
“휴가라며.”
“반장님이 말했어?”
“최 선생님이.”
언니는 나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문간에 서 있었다. 관제실은 외부인 출입 금지다. 나는 외부인이다. 삼 년 동안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이월 구일 새벽 한 시 십 분. 수문 열었지.”
언니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게 대답이었다. 언니는 놀랄 때 얼굴을 멈춘다. 그것도 고등학교 때부터.
“누가 그래.”
“최 선생님이 경보 들었대. 관리사무소까지 울린대. 나는 삼 년 동안 그 소리를 비 오는 날 소리로만 알았어.”
“비 안 와도 열 수 있어. 해빙기 배수 시험이야. 과장님 지시로 매년 이월에 해. 눈 녹은 물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전에 터널을 한 번 비워 두는 거. 규정대로.”
“규정대로면 터널 안에 사람 없는지 확인하지.”
“했어.”
“어떻게.”
“출입 기록. 게이트 카드. 그날 새벽 한 시에 터널 출입 기록 영이었어. 준설 작업은 네 시 반부터고.”
언니는 한 번도 막히지 않고 말했다. 규정을 외운 사람의 말투. 나는 그 말투를 안다. 내가 삼 년 동안 이상 없음을 쓸 때 머릿속에서 울리던 말투였다.
“언니, 지하 사 층 칠 번 방에 매트리스가 여섯 개 있어.”
언니가 나를 봤다.
“거기 사람이 살아. 한성준설 사람들. 비자 없는 사람들. 주 소장이 재워. 게이트 카드 안 찍고 다녀. 옛 양수장 수직갱으로 터널 드나들어. 도면에 없는 문으로. 출입 기록 영인 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카드가 없어서야.”
언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관제실 안에서 모니터 한 대가 경고음을 한 번 냈다. 수위 변동. 언니가 고개를 돌려 그 모니터를 봤다. 숫자를 확인하고 다시 나를 봤다. 그 사이 삼 초. 언니는 그 삼 초 동안 얼굴을 다시 멈췄다.
“지원아, 들어와.”
관제실 안은 더 따뜻했다. 나는 작업복 지퍼를 내렸다. 따뜻한 방에 들어오니 손끝이 저렸다. 지하 사 층에서 식은 손이 그제야 식었다는 걸 알았다. 언니가 자기 의자를 나한테 밀어 주고 옆 의자를 끌어왔다. 모니터 스물네 개가 우리를 내려다봤다. 언니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월 구일 수문 운영 기록. 화면에 표가 떴다.
01:08 해빙기 배수 시험 개시 승인(시설과장 박영호) 01:09 터널 출입 기록 확인 — 0명 01:10 제3수문 개방 50% 01:14 제3수문 개방 100% 01:31 제3수문 폐쇄
“열었고, 이십일 분 뒤에 닫았어. 눈 녹은 물이 첫물이라 짜. 도로 제설 소금이 다 씻겨 와. 이월 첫 배수 물은 바닷물보다 짤 때도 있어. 그래서 매년 이월에 한 번 빼는 거야. 그 물이 오래 고여 있으면 터널 콘크리트가 삭아.”
바닷물보다 짜다. 나는 가방에서 시료 봉투 두 개를 꺼냈다. 0.4그램, 1.1그램. 언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언니가 봉투를 봤다. 하얀 결정이 형광등에 반짝였다.
“다니야르라는 사람 손바닥에 있었어. 두 시 사십칠 분에 내가 긁었어. 그리고 어제 새벽 무진이라는 스무 살 손바닥에. 무진은 살았어. 언니, 무진이 그러더라. 비가 옆에서 왔대. 벽에서 막 왔대.”
언니는 봉투를 만지지 않았다.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을 깍지 꼈다가 풀었다.
“옆에서.”
“수문 열면 물이 옆으로 오지. 터널이니까. 위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벽을 따라 밀려오지.”
“지원아.”
“언니가 열었어.”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 언니가 열었다. 언니 손가락이 이 키보드에서 제3수문 개방 버튼을 눌렀다. 그 버튼 너머 오십사 미터 아래에서 누군가 벽에서 밀려오는 비를 맞았다.
언니가 일어섰다. 유리창 쪽으로 갔다. 수직구를 내려다봤다. 나선 철계단, 층마다 둥근 형광등. 맨 아래는 안 보였다. 언니 등이 떨리지 않았다. 언니는 떨지 않는 사람이었다. 떨어야 할 때도. 아빠 장례식 날에도 언니는 떨지 않았다. 떤 건 나였다. 언니는 내 몫까지 안 떨었다.
“규정대로 했어.”
“규정이 사람을 셌어? 카드를 셌지.”
“지원아, 우리 봉천동 살 때 기억나.”
언니가 창을 본 채로 말했다. 나는 기억났다. 내가 열두 살, 언니가 열여섯. 반지하 방 두 칸. 어느 여름밤 큰비에 창문 틈으로 물이 들어왔다. 옆집 할머니 방에는 물이 허리까지 찼다. 언니는 그날 밤 나를 업고 계단을 올랐다. 엄마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아침에 보니 우리 방 벽지가 무릎 높이까지 누렇게 변해 있었다. 그 선은 이사 갈 때까지 안 지워졌다.
“내가 이 일 하는 이유가 그거야. 도심에 비 오면 반지하부터 잠겨. 수문 늦게 열면 거리에 물 차. 나는 열 번 늦게 열어서 한 번 사람 살리는 것보다, 열 번 제때 열어서 반지하 수백 개 지키는 게 맞다고 배웠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그 말도 맞았다. 그래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언니는 그 여름 무릎 높이의 누런 선을 수문 버튼 위에 얹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럼 내가 뭘 셌어야 돼. 매일 밤 지하 사 층 내려가서 매트리스 세? 그건 네 일이잖아.”
언니가 돌아섰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모니터 스물네 개가 그 목소리를 받았다.
“너 삼 년 동안 그 층 순찰 돌았지. 매트리스 여섯 개 못 봤어? 칠 번 방 문 한 번도 안 열어 봤어? 이상 없음이라고 쓰기 전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언니 말이 맞았다. 칠 번 방 문은 잠겨 있다고 알았다. 한 번도 손잡이를 돌려 보지 않았다. 열쇠가 없다고 들었으니까. 없다는 말을 믿는 게 편했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봤다. 관제실 한가운데서. 같은 식탁에서 매주 밥을 먹는 두 사람이, 각자의 이상 없음을 들고 서 있었다. 하나는 모니터 앞에서, 하나는 손전등 뒤에서.
모니터가 또 한 번 경고음을 냈다. 언니가 가서 확인했다. 수위 정상. 경고를 끄고 언니는 한참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제3수문 근처 카메라 화면. 청록 조명, 젖은 콘크리트 벽, 궤도. 그 화면 한쪽 구석에 작은 철문이 있었다. 터널 벽에 붙은 점검구.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드는 크기.
언니가 그 점검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화면 위에서.
“한 시 십이 분.”
언니 목소리가 낮았다. 다시 원래 목소리.
“수문 열고 이 분 뒤에 저기서 불빛이 하나 깜빡였어. 휴대폰 불빛 같은 거. 세 번. 나는 그게 물에 비친 조명인 줄 알았어. 수문 열면 물결이 생겨서 조명이 흔들리거든. 그래서 기록 안 했어. 세 번 깜빡이고 꺼졌어.”
언니는 화면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날 저녁에 주 소장이 여기 왔었어. 커피 사 들고. 가끔 와. 배수 시험 언제냐고 물어. 준설 일정 맞춰야 된다고. 나는 알려 줬어. 이월 구일 새벽 한 시. 매년 하는 거라 비밀도 아니고.”
언니는 그 말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얼굴이었다. 나도 들었다. 주강철은 수문이 몇 시에 열리는지 알고 있었다.
“근데 그 점검구, 안에서 못 열어. 밖에서 잠그는 문이야. 준설 장비 넣어 두는 칸이라.”
나는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언니가 나를 봤다. 그 눈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그날 처음 봤다. 삼십오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언니가 무서워하는 얼굴.
“그 불빛, 기록에 없어?”
“없어. 내가 안 적었으니까.”
“카메라 원본은.”
“칠 일 지나면 덮어써. 오늘이 삼 일째.”
“사흘 남았네.”
언니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에 꽂은 볼펜을 뽑았다. 틀어 올린 머리가 풀려 어깨로 떨어졌다. 언니는 그 볼펜으로 메모지에 숫자를 적었다. 카메라 번호. 날짜. 시각. 01:12. 그리고 그 메모지를 접어 내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내가 준 거 아니야.”
“알아.”
“엄마한테도 말하지 마.”
“일요일에 뭐 먹을지나 생각해.”
언니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 얼굴로 언니는 관제실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나갔다. 복도에서 뒤돌아봤다. 언니는 벌써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풀린 머리로. 머리를 다시 올릴 볼펜이 없었다.
숙직실에 들렀다. 무진은 전기장판 위에서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최 씨의 짧은 내복 소매 밖으로 손목이 나와 있었다. 라디에이터에 걸어 둔 수건은 다 말라 있었다. 뻣뻣했다. 모서리의 하얀 소금 선이 굵어져 있었다. 나는 그 수건을 걷어 개었다. 샤워실 선반의 모서리 맞춘 수건처럼 반듯하게. 그러고는 무진 머리맡에 놓았다. 깨면 쓰라고. 그 방에 수건은 그 한 장이었다. 한 장. 나는 그걸 셌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주머니 속 메모지를 만졌다. 따뜻했다. 관제실 열이 종이에 남아 있었다. 지하 사 층 벽은 차갑고, 물은 미지근하고, 관제실 종이는 따뜻했다. 나는 그 온도 차를 손바닥으로 하나씩 세면서 내려갔다. 이 건물에서 제일 차가운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