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83자) · 무진
옆에서 온 비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사흘 휴가 가운데 첫날 나는 잤다. 열네 시간. 꿈에 물이 나왔다. 미지근한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데 발이 안 젖는 꿈. 깨어 보니 이불이 발목에서 말려 있었다. 둘째 날 새벽 다섯 시 십 분에 전화가 왔다. 최 씨였다.
“지원 씨, 또야.”
목소리가 낮았다. 최 씨는 원래 목소리가 낮지 않다. 믹스커피 두 봉을 한 컵에 타는 사람의 목소리는 대개 크다.
“이번엔 살아 있어.”
택시 안에서 나는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시료 봉투, 면봉, 저울. 그리고 편의점에서 산 핫팩 여섯 개. 왜 핫팩을 샀는지 모르겠다. 살아 있다고 했으니까. 살아 있는 젖은 사람은 춥다. 그 정도는 방역 일 할 때 배웠다.
관리동 뒷문으로 들어갔다. 김 반장은 소파에 없었다. 퇴근 시간 전인데. 담요가 네모반듯하게 개어져 소파 팔걸이에 올려져 있었다. 삼 년 동안 김 반장이 담요를 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 늘 담요를 둘둘 만 채로 두고 퇴근했다. 최 씨가 계단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손전등. 떨고 있었다. 손전등 빛이 계단 벽에서 흔들렸다.
지하 사 층 복도는 젖어 있었다. 물이 또 한쪽으로 흘렀다. 복도 끝, 점검실 쪽으로. 이번에는 물이 칠 번 방이 아니라 팔 번 샤워실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샤워실 바닥에 그 청년이 있었다. 사흘 전 들것을 들고 와서 손잡이를 잡지 않았던 사람. 형광 조끼 대신 회색 추리닝이었다. 추리닝이 몸에 달라붙어 검게 보였다. 스테인리스 개수대 밑에 모로 누워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입술이 파랬다.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딱딱딱. 규칙적이었다. 샤워 꼭지는 말라 있었다. 선반의 수건은 한 장. 내가 사흘 전 한 장을 가져간 그대로.
나는 장갑을 벗고 청년의 목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그래도 맥이 뛰었다. 빠르게, 얕게.
“들려요?”
청년이 눈을 떴다. 나를 봤다. 알아봤다.
“……선생님.”
“이름.”
“무진.”
나는 선반의 마지막 수건을 끌어내려 청년의 머리를 감쌌다. 최 씨가 자기 패딩을 벗어 청년 몸에 덮었다. 나는 핫팩 여섯 개를 전부 뜯었다. 흔들었다. 겨드랑이에 둘, 사타구니 옆에 둘, 목 뒤에 둘. 방역 교육에서 배운 순서였다. 저체온은 몸통부터 데운다. 팔다리를 먼저 데우면 차가운 피가 심장으로 몰린다. 그 교육을 받을 때는 그걸 써먹을 일이 있을 줄 몰랐다.
무진의 오른손이 펴져 있었다. 손바닥이 하얬다. 사흘 전보다 두꺼웠다. 손금이 안 보일 만큼 결정이 앉아 있었다. 나는 면봉으로 긁었다. 봉투에 담았다. 저울에 올렸다. 1.1그램.
다니야르는 0.4그램이었다. 무진은 1.1그램. 더 오래 젖어 있었다. 아니면 더 짠 물에. 방역 일 할 때 겨울 도로 제설 작업자들의 손을 본 적이 있다. 염수 탱크를 만지는 사람들. 장갑 틈으로 스민 소금물이 마르면 손등이 하얗게 텄다. 그 손들이 떠올랐다. 이월이었다. 서울의 도로마다 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어디서 젖었어요.”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가 부딪쳤다. 딱딱딱. 그러다 턱을 조금 들었다. 복도 끝을 보려는 것 같았다. 점검실 쪽. 북쪽 벽.
“비가 왔어요.”
“여기 비 안 와요.”
“위에서 안 왔어요.”
무진은 한 손을 들어 자기 옆구리를 가리켰다.
“옆에서 왔어요. 벽에서. 막 왔어요.”
최 씨가 나를 봤다. 나는 최 씨를 봤다. 옆에서 오는 비.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계단 위에서 소리가 났다. 화물 출입구 철문 여는 소리. 최 씨가 고개를 들었다. 시계를 봤다. 다섯 시 사십 분.
“주 소장이야. 새벽엔 늘 이 시간에 와. 애들 깨우러.”
무진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핫팩이 겨드랑이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 어깨를 눌렀다.
“누워 있어요.”
“소장님 오면 안 돼요. 저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왜요.”
“다니야르 형이 봤어요. 형이 말했어요. 그래서 형이.”
무진은 거기서 멈췄다. 이가 또 부딪쳤다.
나는 칠 번 방 쪽을 봤다. 문이 열려 있었다. 매트리스 여섯 개 가운데 다니야르의 것은 치워져 있었다. 남은 다섯은 비어 있었다. 이불이 개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터널. 네 시 반에 내려가요. 새벽이 물 제일 적어요.”
무진이 말했다. 이가 부딪치는 사이사이로.
최 씨가 먼저 움직였다. 예순둘의 몸으로 무진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 나는 다리를 들었다. 복도 반대편, 비상계단. 지하 사 층에서 지상까지 이어지는 좁은 철계단이다. 화물 출입구 쪽 계단이 아니라. 최 씨는 삼십 년 동안 이 건물에서 어느 계단이 어디로 가는지 전부 아는 사람이었다.
“숙직실. 삼 층.”
지하 사 층에서 지상 삼 층까지. 일곱 층. 계단참 열네 개. 나는 셌다. 세지 않으면 다리가 멈출 것 같아서. 최 씨는 계단참 여섯 번째에서 한 번 멈췄다. 무릎을 짚고. 내 무릎이 칠십구 년에 여기서 태어났어, 하고 투덜거렸다.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웃음이 났다. 웃으면 힘이 빠진다. 나는 입을 다물고 다시 들었다. 무진은 가벼웠다. 스무 살 남자가 그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게 무서웠다. 젖은 추리닝 무게를 빼면 더 가벼웠을 것이다. 계단참마다 물이 한 줄씩 떨어졌다. 짠물. 나중에 누가 이 물방울 자국을 따라오면 끝이었다.
숙직실은 관리동 삼 층 끝, 도면실 옆이다. 이 층짜리 철제 침대 하나, 전기장판, 작은 텔레비전. 야간 근무자가 눈을 붙이는 방이다. 나는 삼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잠이 들면 순찰을 놓칠 것 같아서. 김 반장은 소파를 쓰고.
전기장판을 최고로 켰다. 무진의 젖은 추리닝을 벗겼다. 최 씨가 자기 사물함에서 내복을 가져왔다. 예순두 살 남자의 내복. 무진한테는 소매가 짧았다. 무진은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내복 소매 끝을 봤다. 손목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러다 웃었다. 이가 부딪치면서 웃었다.
“할아버지 옷.”
“할아버지 아니야. 아저씨야.”
최 씨가 말했다. 진지하게. 무진이 더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기침에서 물 냄새가 났다. 바다 냄새.
계단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한 사람. 무겁지 않게, 서두르지 않게. 최 씨가 숙직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갔다. 나도 나갔다. 문을 등으로 막았다. 사흘 전 칠 번 방 앞에서처럼.
주강철이 계단참에 나타났다. 형광 조끼. 손에 휴대폰. 휴대폰 손전등이 켜져 있었다. 그 빛이 계단 바닥의 물방울을 하나씩 비추며 올라왔다. 물방울은 숙직실 문 앞에서 끝났다.
“선생님, 휴가시라던데.”
“잠깐 들렀어요.”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에.”
“제 가방 놓고 가서요.”
나는 가방을 들어 보였다. 검은 장비 가방. 주강철이 가방을 봤다. 그러고는 내 발밑을 봤다. 물방울.
“우리 애 하나가 안 보여서요. 무진이라고. 스무 살. 밤에 어디 돌아다니다 넘어졌을까 봐. 걔가 좀 덜렁대요.”
“못 봤어요.”
“그럼 그 물은요.”
“제가 흘렸어요.”
“뭘요.”
최 씨가 끼어들었다.
“내 커피.”
최 씨가 보온병을 들어 보였다. 뚜껑이 열려 있었다. 언제 열었는지 몰랐다. 최 씨가 보온병을 기울였다. 믹스커피가 바닥에 한 줄 떨어졌다. 물방울 자국 위로.
“늙으니까 손이 떨려서. 지하부터 흘리고 올라왔어. 주 소장, 밟지 마. 끈적해.”
주강철은 바닥을 봤다. 커피 자국과 물 자국이 섞여 있었다. 어느 게 어느 건지 알 수 없었다. 주강철이 웃었다. 사흘 전과 같은, 친절한 웃음.
“최 선생님 커피는 지하 사 층에서 여기까지 흘러도 안 식겠네요.”
“보온병이니까.”
주강철은 한참 서 있었다. 숙직실 문을 봤다. 나를 봤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말했다.
“선생님, 무진이 보시면 연락 주세요. 걔 여권 제 사무실에 있어요. 찾으러 와야 되거든요.”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한수정 경위의 명함 뒷면 번호. 누르려다 멈췄다. 경찰이 오면 출입국이 따라온다고 주강철이 말했다. 사실로 협박하는 사람이었다. 무진이 전기장판 위에서 뒤척였다. 이 사람을 살린 다음 날 비행기에 태울 수는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도로 넣었다. 그 결정이 옳았는지 지금도 모른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여권이 소장 사무실에 있다. 그것이 무진이 도망가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주강철은 그걸 나한테 들으라고 말했다.
숙직실로 들어갔다. 무진은 전기장판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방 안이 더웠다. 전기장판 열이 이불을 뚫고 올라와 공기를 데웠다. 나는 그 방에서 제일 차가운 것이 내 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갑을 벗은 뒤로 한 번도 데우지 못한 손. 무진 이마에 손등을 댔다. 미지근했다. 사흘 전 지하 사 층 물과 같은 온도였다. 그 온도가 이번에는 사람 쪽에 있었다. 입술이 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옅은 분홍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머리를 감싼 수건이 젖어 있었다. 나는 수건을 풀었다. 선반에서 가져온 마지막 한 장. 무거웠다. 숙직실 라디에이터에 걸었다. 짠물이 마르면서 수건이 뻣뻣해졌다. 모서리에 하얀 선이 생겼다. 소금 선.
최 씨가 침대 끝에 앉았다. 보온병을 흔들어 봤다. 비어 있었다. 다 흘렸다.
“최 선생님, 그 커피 일부러.”
“일부러지. 아까웠어.”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믹스 한 박스 사 와.”
나는 웃었다. 사흘 만에 처음. 최 씨는 안 웃었다. 잠든 무진을 봤다.
“지원 씨, 얘가 아까 그랬지. 다니야르 형이 봤다고. 뭘 봤는지 내가 알 것 같아.”
“뭘요.”
“한 시 십 분.”
최 씨가 말했다.
“다니야르 죽은 날 새벽 한 시 십 분에 수문 열렸어. 관제실 경보가 여기까지 울려. 삼 년 동안 지원 씨 순찰 시간이잖아, 두 시 사십 분. 그 전에 한 번 울린 거 몰랐지. 지원 씨 계단 내려가기 한 시간 반 전.”
나는 몰랐다. 한 시 십 분에 나는 관리사무소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경보는 들었을 것이다. 삼 년 동안 들었을 것이다. 수문 경보는 비 오는 날마다 울리니까. 그 날은 비가 안 왔다. 이월이었다. 눈이 녹고 있었다.
“누가 열었는지 알아요?”
최 씨는 대답 대신 나를 오래 봤다. 그 눈에 미안함 같은 것이 있었다.
“관제 당직이 누구였는지는 지원 씨가 더 잘 알잖아.”
나는 알았다. 물순환안전국 수문 운영 주무관 야간 당직표. 이월 구일 새벽. 그 칸에 적힌 이름을 나는 안다. 매주 일요일 저녁 엄마 집에서 같이 밥을 먹는 사람.
하지안. 우리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