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두 번째

아래층에는 비가 내린다 · 문가온

열세 번째 문 안쪽은 복도였다. 내가 방금 지나온 복도와 똑같았다. 길이도, 문의 개수도, 천장 높이도. 다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천장에서. 콘크리트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새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것이었다. 굵기가 일정했고, 소리가 골랐다.

나는 우산을 쓰지 않고 걸었다. 이쪽 복도의 문에는 번호가 없었다. 대신 이름이 있었다. 문마다 하나씩, 흰 페인트로 쓴 이름. 첫 번째 문: 박순길. 두 번째 문: 이금자. 세 번째 문: 정해수.

나는 여섯 번째 문 앞에서 멈췄다. 거기 적힌 이름은 최영도였다. 교대하러 오는 최 씨의 이름이었다. 일곱 번째 문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거기에는 이름이 없었다. 페인트 자국은 있었다. 누군가 쓰고 지운 자국.

지운 지 오래되지 않았다. 페인트 밑에 아직 흰 가루가 남아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문질렀다. 글자 하나가 드러났다. 내 성이었다. 돌아 나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복도 끝의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뛰지 않았다. 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왜 아는지는 모르지만 알았다. 걸어서 문 앞까지 갔다. 손잡이를 돌렸다. 열렸다. 밖은 원래의 복도였다. 마른 복도. 나는 나왔다. 문을 닫았다.

닫고 나서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자리는 다시 벽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최 씨가 왔다.

“오늘은.”

“열세 번째 문이 열렸습니다.”

최 씨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들어갔어?”

“예.”

“이름 봤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최 씨는 한참 있다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내 이름도 있지.”

“...예.”

“나는 십일 년 전에 봤어.”

최 씨는 그날 아침 처음으로 이 건물 이야기를 했다. 1979년에 여기서 사람이 열세 명 죽었다고 했다. 지하 굴착 중에 물이 터졌고, 아래층 작업자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기록에는 세 명이야.”

“나머지 열 명은요.”

“명단에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최 씨는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일당 받고 며칠씩만 일하던 사람들. 이름을 안 적었어. 적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럼 문에 적힌 이름은.”

“이름이 없어서 못 찾은 사람들이, 이름을 하나씩 가져가는 거야.”

최 씨가 말했다.

“내 이름이 거기 적힌 뒤로, 나는 십일 년 동안 이 건물을 못 떠났어. 세 번 그만뒀는데 세 번 다 돌아왔어.”

나는 컵을 놓았다.

“지우면 됩니까.”

“지워 봤어.”

최 씨는 나를 봤다.

“지우면 다음 날 다시 적혀 있어. 더 진하게.”

그날 저녁, 나는 일지를 펴고 처음으로 사실을 적었다.

02:40 지하 4구역 복도 침수 확인. 배관 없음. 02:52 관리반장 보고. 조치 없음. 03:10 도면에 없는 문 열림. 내부 진입. 03:24 문 12개에 이름 표기 확인. 그중 1개 지워진 흔적.

거기까지 쓰고 나는 펜을 멈췄다. 마지막 줄을 쓸지 말지 한참 고민했다. 결국 썼다.

03:26 지워진 이름은 내 것이었음.

일지를 덮고 나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손전등을 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쪽은 밝으니까. 다음 날 나는 관리사무소에서 1979년 준공 관계자 명단을 찾았다. 서류함 맨 아래 칸에 있었다. 곰팡이가 슬어서 절반은 읽을 수 없었다.

읽을 수 있는 이름은 여섯이었다. 그중 하나가 최영도였다. 나는 그 종이를 들고 휴게실로 갔다. 최 씨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최 선생님.”

“어.”

“1979년에 여기 계셨어요?”

최 씨는 컵을 놓지 않았다.

“몇 살로 보이는데.”

“쉰다섯쯤이요.”

“예순둘이야.”

“그럼 1979년에는.”

“열다섯.”

나는 종이를 내밀었다.

“열다섯 살이 준공 명단에 왜 있습니까.”

최 씨가 종이를 봤다. 오래 봤다.

“아버지 이름이야.”

나는 종이를 다시 봤다. 최영도.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이름이요?”

“그래.”

“우연입니까.”

“우연이겠지.”

최 씨는 컵을 놓았다.

“우리 아버지 그때 여기서 일하다 돌아가셨어.”

“...기록에는 세 명이라면서요.”

“셋 중 하나야.”

나는 앉았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열 명은요.”

“이름 없는 사람들.”

최 씨는 창밖을 봤다. 창밖은 주차장이고, 주차장 아래가 지하다.

“그 사람들은 이름이 없어서 못 찾은 거고, 우리 아버지는 이름이 있어서 찾았어.”

“그럼 왜 문에 아버님 성함이.”

“그건 내 이름이기도 하니까.”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조금 걸렸다.

“열한 살 때부터 나는 여기 살았어. 아버지 사택이 이 건물 지하 이 구역이었거든. 지금은 창고인 자리.”

최 씨는 컵을 씻으러 갔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은 이름을 가져가. 그게 내가 십일 년 동안 알아낸 전부야.”

나는 종이를 접었다.

“제 이름은 지워져 있었습니다.”

“응.”

“지워졌다는 건, 이미 한 번 적혔다는 뜻이죠.”

최 씨가 수도를 잠갔다.

“그래서 물어보려고 했어.”

“뭘요.”

“자네, 여기 처음 온 게 언제야.”

나는 삼 년 전이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입을 열었는데 다른 말이 나왔다.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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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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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01· 2

    조용한데 계속 긴장돼요. 이런 톤 좋아합니다.

  • 조용한책상2026.04.29· 2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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