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37자) · 들것
편하라고
서울 지하 오십 미터에 바다가 있다 · 문가온
최 씨는 그 종이를 붙인 날 이야기를 했다. 보온병 커피를 두 잔째 따르면서. 구십육 년 여름, 양수장 지하 사 층에서 남자 하나가 젖은 채 발견됐다고. 그때도 방은 말라 있었다고. 그 남자는 양수장 하청 청소부였고, 관리반장은 그 사람이 술을 먹고 어디서 넘어져 젖은 채 기어 들어왔다고 했다고. 경찰은 오지 않았다고. 그다음 주에 반장이 최 씨한테 종이를 한 장 쳐 오라고 했다고.
“반장이 불러 준 대로 쳤어. 하나, 둘. 그 반장이 말하더라. 이건 무서우라고 붙이는 게 아니라 편하라고 붙이는 거라고. 안 물으면 편하다고.”
“편했어요?”
최 씨는 커피를 마셨다. 대답 대신.
“나는 열다섯 살 때부터 이 건물 밑을 알아. 우리 아버지가 칠십구 년에 여기 지하 파다가 돌아가셨어. 물이 터졌대. 기록에는 셋 죽었다고 돼 있어. 우리 아버지가 그 셋 중 하나고. 근데 그날 아래 있던 사람은 열셋이었대. 나머지 열은 일당 받고 며칠씩 일하던 사람들이라 이름을 안 적었대. 적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 열 명은 어떻게 됐어요.”
“몰라. 물 빼고 콘크리트 부었대. 그 위에 지금 우리가 앉아 있고.”
최 씨가 발밑을 봤다. 관리사무소 바닥 장판. 나도 봤다. 장판 무늬가 갑자기 낯설었다.
최 씨는 그 말을 하고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닫고 나서 한 번 더 열었다. 아직 한 잔이 남아 있었다. 그걸 내 컵에 부었다. 나는 두 번째 잔을 마셨다. 첫 잔보다 더 달았다. 바닥에 가라앉은 설탕이 따라 나왔다. 혀에 남아 있던 소금 맛이 그 단맛에 덮였다. 덮였다가, 삼키고 나니 다시 올라왔다. 짠맛은 단맛보다 오래 간다. 그날 알았다.
“최 선생님, 그 종이 떼면 안 돼요?”
“떼 봤어.”
“언제요?”
“구십칠 년에 한 번, 이천팔 년에 한 번. 떼면 다음 날 다시 붙어 있어. 새로 코팅해서. 누가 붙이는지는 몰라. 반장이 바뀌어도 붙어.”
최 씨는 그 말을 하고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먼저 코팅해 둬. 떨어지면 붙이게. 남이 붙이는 것보다 내가 붙이는 게 덜 무서워서.”
여섯 시 반에 문이 열렸다. 관리동 정문이 아니라 뒷마당 쪽 화물 출입구였다. 수직구 옆, 준설 장비가 드나드는 문. 남자 셋이 들어왔다. 앞에 선 사람은 쉰쯤이었다. 짧은 머리, 검은 패딩, 목에 형광 조끼를 걸쳤다. 조끼 등에 한성준설이라고 찍혀 있었다. 대심도 터널 준설을 하청받은 업체. 뒤의 둘은 접이식 들것을 들고 있었다.
“반장님 계시죠. 주강철입니다.”
김 반장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였다. 한 새벽에 두 번 일어난 김 반장. 김 반장은 주강철과 눈을 맞추지 않고 열쇠 뭉치를 내밀었다. 내가 삼 년 동안 관리사무소 어디에도 없다고 알고 있던 열쇠였다. 열쇠 뭉치에 동그란 플라스틱 꼬리표가 열두 개 달려 있었다. 일, 이, 삼.
“반장님, 그 열쇠 어디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김 반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강철이 나를 봤다. 위아래로. 작업복, 장갑, 가방.
“아, 야간 선생님이시구나. 수고 많으세요. 저희 직원이 몸이 안 좋아서 쓰러졌다고 연락받았어요. 병원 모시고 가려고요.”
“연락 누가 했어요?”
“반장님이.”
김 반장이 소파 팔걸이를 짚었다. 나는 김 반장을 봤다. 두 시 오십이 분에 누웠던 사람이 언제 전화를 했는지. 누워서도 전화는 할 수 있다.
“그 사람 병원 못 가요. 죽었어요.”
“그러니까 모셔 가야죠.”
주강철은 웃었다. 친절한 얼굴이었다. 그 친절이 제일 무서웠다. 사람이 죽은 방에 들것을 들고 와서 웃을 수 있는 친절.
나는 계단으로 먼저 내려갔다. 뛰지 않았다. 뛰면 따라 뛴다. 지하 사 층 복도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 물은 줄어 있었다. 발목이 아니라 신발 밑창만 적셨다. 칠 번 방 앞에 섰다. 문을 등으로 막았다. 주강철과 들것 둘이 복도를 걸어왔다. 물 튀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 비켜 주세요.”
“경찰 부를 거예요.”
“부르세요. 병원 가서 부르면 되죠. 여기 두면 선생님 순찰 구역에서 사람이 죽은 게 되잖아요. 선생님 편하시라고 모셔 가는 거예요.”
편하시라고. 나는 게시판의 종이를 생각했다. 무서우라고 붙이는 게 아니라 편하라고 붙이는 거라고. 삼십 년 전 반장과 지금의 주강철이 같은 말을 썼다.
“이 방에 매트리스가 여섯 개예요. 이분 말고 다섯은 어디 있어요.”
주강철의 웃음이 조금 얇아졌다.
“창고로 쓰는 방이에요. 직원들 쉬는 데. 잠깐잠깐.”
“지하 사 층은 예비예요. 한성준설에 임대한 적 없어요. 저 삼 년 동안 일지 썼어요.”
“선생님 일지에 우리 직원 쉬는 거 적혀 있어요? 이상 없음이라고 적혀 있을 텐데요.”
그 말이 명치를 쳤다. 주강철은 내 일지를 본 적이 있었다. 아니면 그런 일지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았다. 이상 없음. 삼 년 동안 내가 쓴 네 글자가 이 사람의 편이었다.
들것을 든 남자 하나가 내 옆으로 돌아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했다. 스무 살 남짓. 형광 조끼 아래 목덜미가 까맸다. 그 사람이 나를 봤다. 눈이 흔들렸다. 그 사람은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주강철이 그 사람 이름을 불렀다. 한국 이름이 아니었다. 짧게, 명령하듯이. 그 사람이 손을 뻗다가 멈췄다. 나는 그 손을 봤다. 손바닥이 하얬다. 손금에 가루가 앉아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일일구. 통화 버튼 위에 엄지를 올렸다.
“선생님.”
주강철이 목소리를 낮췄다. 친절을 걷은 목소리였다.
“그거 누르시면 여기 사람들 다 쫓겨나요. 저 다섯 매트리스 주인들요. 비자 없는 애들이에요. 경찰 오면 출입국 따라와요. 걔들 월급 석 달 치 밀린 것도 못 받고 비행기 타요. 선생님이 누르시는 거예요. 제가 아니라.”
나는 그 사람 눈을 봤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전부 사실이었다. 사실로 협박하는 사람이었다. 김 반장처럼 겁먹은 눈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무서운 눈이었다.
형광 조끼의 청년이 나를 봤다. 하얀 손바닥을 등 뒤로 감췄다.
나는 눌렀다.
“일일구입니다.”
“청계 대심도 빗물터널 관리동 지하 사 층이요. 사람이 죽어 있어요. 젖어 있어요.”
통화가 연결되는 동안 주강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들것을 내려놓으라고 손짓했다. 그러고는 청년에게 무언가를 짧게 말했다. 청년이 뒷걸음질 쳤다. 복도 물을 튀기며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도망친 것인지 보내진 것인지 몰랐다.
구급대가 먼저 왔고 경찰이 뒤에 왔다. 중부경찰서 강력팀이라는 여자 경위가 명함을 줬다. 한수정. 마흔 초반. 머리를 짧게 잘랐다. 칠 번 방을 보고, 매트리스 여섯 개를 보고, 마른 벽을 보고, 젖은 남자를 봤다. 습도계를 봤다. 삼십일 퍼센트. 한 경위는 그 숫자를 수첩에 적었다. 그러고는 나한테 물었다.
“이분 성함 아세요?”
“몰라요.”
주강철이 대답했다. 문간에서.
“다니야르요. 우리 직원이에요. 스물여섯. 원래 심장이 좀 안 좋았어요. 숙소에서 샤워하다가 쓰러진 것 같아요. 샤워실이 바로 앞이라.”
한 경위가 팔 번 샤워실을 봤다. 마른 샤워 꼭지. 선반에 수건 한 장. 한 장이 비어 있는 자리.
“샤워하다 쓰러졌는데 샤워실은 말라 있고, 여기까지 걸어와서 누웠네요.”
“걸어온 거겠죠. 아프니까.”
한 경위는 더 묻지 않았다. 수첩을 덮었다. 변사 사건. 사인은 부검 후. 시신은 구급차로 올라갔다. 올라가기 전에 구급대원이 젖은 셔츠를 가위로 잘랐다. 가위 날이 천을 지날 때 물이 짜여 나왔다. 구급대원이 장갑 낀 손가락을 한 번 비볐다. 그리고 동료를 봤다. 물기가 마르면서 손가락이 끈적해진다는 얼굴이었다. 맹물은 그렇게 안 된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도 이 건물 규칙을 아는 것 같았다. 들것이 계단을 오르면서 물이 한 줄로 떨어졌다. 계단 스무 칸에 스무 개의 물방울 자국. 나는 그것을 세면서 따라 올라갔다.
로비에서 한 경위가 나를 따로 불렀다. 주강철이 화물 출입구로 나간 뒤였다.
“하지원 씨, 아까 손바닥 얘기 하셨죠. 소금.”
“0.4그램이요. 시료 있어요.”
나는 가방에서 시료 봉투를 꺼냈다. 날짜와 시각을 적은. 두 시 사십칠 분. 한 경위가 봉투를 들어 형광등에 비췄다. 하얀 결정이 봉투 모서리에 몰려 있었다.
“이거 제가 가져가도 돼요?”
“영수증 써 주세요.”
한 경위가 웃었다. 처음으로. 수첩을 찢어 영수증을 써 주었다. 시료 한 점. 소금으로 추정. 수령인 한수정.
“하지원 씨, 여기 규칙 있다면서요. 묻지 않는다.”
“최 씨가 쳤대요. 구십육 년에.”
“그 규칙 오늘 몇 번 어기셨어요?”
나는 셌다. 김 반장한테 한 번, 주강철한테 세 번, 일일구에 한 번.
“다섯 번이요.”
“저는 오늘 한 번 어길게요.”
한 경위는 그렇게 말하고 명함 뒤에 개인 번호를 적었다. 그러고는 나갔다.
관리사무소로 돌아오니 김 반장이 앉아 있었다. 누워 있지 않고. 일지가 김 반장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비워 둔 칸. 김 반장이 그 칸을 보고 있었다.
“반장님, 열쇠요. 어디 있었어요.”
김 반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볼펜을 들었다. 내 빈칸 옆, 반장 확인란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김태섭. 확인 칸은 비워 둔 채로.
“지원 씨, 오늘 퇴근해. 내일 나오지 마.”
“해고예요?”
“휴가야. 사흘. 내가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야.”
그 말은 협박이 아니었다. 나는 그걸 알았다. 김 반장은 나를 이 건물에서 사흘 치워 두려는 것이었다. 무엇으로부터인지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퇴근하지 않았다. 도면실에 갔다. 관리동 삼 층 끝방. 옛 양수장 도면이 둘둘 말려 선반에 누워 있었다. 천구백칠십구년 원도면을 폈다. 종이가 누렇고 모서리가 바스러졌다. 지하 사 층. 문이 열두 개가 아니라 열세 개였다. 열세 번째 문은 점검실 북쪽 벽 자리. 지금은 벽이 서 있는 곳. 그 문 너머로 계단이 한 줄 그려져 있었다. 아래로. 지하 오 층으로. 도면 여백에 연필 손글씨가 있었다.
79.11.3. 배수 불가. 매몰 후 폐쇄.
나는 그 글씨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연필 가루가 손끝에 묻었다. 매몰. 무엇을 매몰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사람 열 명을 적지 않은 것처럼.
손가락을 코에 댔다. 연필 냄새만 났다. 바다 냄새는 안 났다. 그게 이상하게 서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