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07자)

오래 보고 한 번에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아침 식당에서 감자칩이 종이 한 장을 식판 옆에 펴 놓고 있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아이콘 끄기 — 설정 들어가서 맨 아래⁠. 끄고 본다⁠. 보고 누른다⁠. 안 누를 수도 있다⁠.⁠」 맨 아래에 별표가 셋 붙어 있었다⁠.

“⁠형이 말한 거 적었어요⁠. 까먹을까 봐⁠.⁠”

“⁠안 까먹어⁠.⁠”

“⁠저는 까먹어요⁠. 시험 볼 때도 답 다 알았는데 까먹었어요⁠.⁠”

주임원사가 지나가다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별표 셋에서 눈이 멈췄다⁠. 주임원사는 종이를 집어 들지 않고 감자칩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갔다⁠. 감자칩이 어깨를 문지르며 나를 보았다⁠.

“⁠지금 저 혼난 거예요⁠, 칭찬받은 거예요⁠?⁠”

“⁠둘 다 아니야⁠. 기억한 거야⁠.⁠”

감자칩의 타격 출격은 오전 열한 시였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기록실로 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허리가 한 번 삐걱거렸다⁠. 새벽 정찰에서 본 빨간 목도리의 굽은 등이⁠, 들것을 끌던 등이 계단 한 칸마다 떠올랐다⁠.

*

기록실 문을 열자 팬 소리가 먼저 덮쳐 왔다⁠. 혜운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책상 위 커피가 네 잔으로 늘어 있었다⁠. 혜운의 왼쪽 모니터에는 외국 신문 기사가 하나 떠 있었다⁠. 사진 속에서 내가 계란말이를 들고 웃고 있었고⁠, 사진 위 제목을 번역기가 우리말로 바꿔 놓았다⁠. 「⁠깨끗한 전쟁의 얼굴⁠」 혜운은 내가 올 줄 알았다는 얼굴로 의자 하나를 밀어 주었다⁠.

“⁠앉으십시오⁠.⁠”

“⁠기록상 없는 거⁠, 보여 주세요⁠.⁠”

혜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랍을 열고 작은 메모리 막대 하나를 꺼냈다⁠. 은색 막대였다⁠. 모니터 옆 단자에 꽂자 새 창이 열렸다⁠. 어제 보여 준 화면과 비슷했다⁠. 날짜⁠, 시각⁠, 기체 번호⁠. 다른 것은 맨 끝 칸이었다⁠. 조종사 아이디 자리에 같은 글자가 줄마다 찍혀 있었다⁠.

「⁠보조 사격 — 조종사 입력 없음⁠」

“⁠이건 순위판에 안 올라갑니다⁠. 공식 기록에도 안 들어갑니다⁠. 제가 따로 모읍니다⁠.⁠”

“⁠왜 모아요⁠?⁠”

“⁠기록하는 사람이니까요⁠.⁠”

혜운이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줄이 길었다⁠. 지난해 가을부터였다⁠. 혜운이 화면을 멈추고 줄 넷에 손가락을 차례로 짚었다⁠.

“⁠이 넷이 봉 조종사 기체입니다⁠.⁠”

첫 줄은 계약 열나흘째였다⁠. 내가 처음 강을 건너 빨간 목도리를 본 날⁠. 두 번째 줄은 이튿날⁠, 빨간 목도리가 손바닥을 들어 올린 날⁠. 세 번째 줄은 지난주 화요일⁠, 강을 건너 보급로 위를 날며 갈대밭을 오래 보던 날⁠. 마지막 줄은 어제 오전 열 시 사십칠 분이었다⁠.

“⁠앞의 셋은 진지에서 떨어진 보급로 차량이었습니다⁠. 봉 조종사가 진지를 보고 있을 때 화면 귀퉁이에 있던 표적입니다⁠. 봉 조종사는 진지만 보셨으니까 귀퉁이는 못 보셨을 겁니다⁠.⁠”

나는 손을 무릎에 올렸다⁠. 손목 보호대의 찍찍이가 바지에 걸려 실밥 하나를 뜯었다⁠.

“⁠제가 눌렀어요⁠?⁠”

“⁠아니요⁠. 한 번도 안 누르셨습니다⁠.⁠” 혜운이 커피 잔 하나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보조는 조종사가 오래 들여다본 자리를 표적으로 봅니다⁠. 사십 초 남짓입니다⁠. 조종사가 그만큼 보면⁠, 조종사가 망설이는 것으로 봅니다⁠. 망설이는 동안 상대가 먼저 쏠 수 있으니까 보조가 대신 끝냅니다⁠.⁠”

“⁠망설이는 걸로 본다고요⁠?⁠”

“⁠기다리는 손이 끝내는 순간을 배운 겁니다⁠. 봉 조종사는 기다리기만 하셨고⁠, 보조는 기다림 다음 순간을 알고 있었습니다⁠.⁠”

혜운은 숫자를 말할 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제 엄지를 조종기 옆면에 붙이던 내 손을 떠올렸다⁠. 누르고 싶은 마음이 덜 들까 해서 떼어 둔 엄지였다⁠. 떼어 둔 동안 화면은 내가 망설인다고 읽었다⁠.

“⁠끌 수는 있어요⁠?⁠”

“⁠조종석마다 켜져 있습니다⁠. 끄는 법은 조종사에게 알려 드리지 않습니다⁠.⁠”

“⁠샛별이 조종석에도요⁠?⁠”

혜운이 화면을 다시 올렸다⁠. 손가락이 멈춘 자리마다 같은 아이디가 있었다⁠. 「⁠샛별⁠」

“⁠나샛별 조종사 기체에 일곱 줄입니다⁠. 타격 출격 때 표적 옆에 있던 것들입니다⁠. 나샛별 조종사는 자기가 누른 트럭만 압니다⁠.⁠” 혜운이 말을 골랐다⁠. “⁠감자칩 조종사는 오늘 열한 시가 첫 출격입니다⁠. 아직 한 줄도 없습니다⁠.⁠”

“⁠아직이요⁠.⁠”

“⁠아직입니다⁠.⁠”

벽시계가 열 시 십 분을 가리켰다⁠. 감자칩의 첫 출격까지 오십 분이 남아 있었다⁠.

“⁠누가 정했는데요⁠?⁠”

혜운의 눈이 기록실 문으로 갔다⁠. 문이 열렸다⁠.

*

명곤이 들어왔다⁠. 군복 상의 단추를 하나 풀고 있었고⁠, 손에 귤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일산에서 어머니가 준 귤은 아니었다⁠. 어머니 귤은 사령관실 책상 귀퉁이에서 쪼그라들고 있었다⁠. 식당에서 집어 온 귤이었다⁠. 명곤은 모니터를 한 번 보고⁠, 꽂혀 있는 은색 막대를 보고⁠, 혜운을 보았다⁠.

혜운이 일어나다가 팔꿈치로 커피 잔 하나를 쳤다⁠. 네 잔 가운데 한 잔이 쓰러졌고⁠, 식은 커피가 서류 위로 번졌다⁠. 혜운이 휴지를 뽑는 동안 명곤이 서류를 집어 들어 커피를 털었다⁠.

“⁠모 소령⁠, 커피는 한 잔씩 마시게⁠.⁠”

“⁠한 잔씩 마시고 있습니다⁠. 끝까지 못 마실 뿐입니다⁠.⁠”

명곤은 대꾸하지 않고 젖은 서류를 책상 끝에 펼쳐 놓았다⁠.

“⁠모 소령이 보여 드렸습니까⁠?⁠”

“⁠사령관님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혜운이 말했다⁠.

나는 혜운을 보았다⁠. 혜운은 나를 보지 않았다⁠. 명곤이 의자를 끌어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기록실이 좁아서 무릎이 닿을 뻔했다⁠.

“⁠지난해 가을 원격전투단이 생긴 뒤로 강화 해안 초소에서 죽은 병사는 없습니다⁠. 다친 병사는 다섯입니다⁠. 지난주 둘까지 합쳐서입니다⁠.⁠” 명곤이 귤을 손바닥에서 굴렸다⁠. “⁠보조가 없었으면 다섯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손은 아무리 빨라도 0⁠.2초 안에 못 끝냅니다⁠. 망설이면 더 늦습니다⁠. 망설임은 사람이니까 생기는 겁니다⁠. 저는 그걸 탓하지 않습니다⁠. 대신 망설임 다음을 기계에 맡겼습니다⁠.⁠”

“⁠그럼 기록에 이름은 왜 안 남겨요⁠?⁠”

“⁠남기면 그 사람이 집에 가서 못 잡니다⁠.⁠” 명곤은 바로 대답했다⁠. “⁠보조가 쏜 것은 아무도 짊어지지 않습니다⁠. 조종사는 기체만 떨어뜨렸다고 믿고 잡니다⁠. 국민은 사람이 안 죽는 전쟁이라고 믿고 잡니다⁠. 예산이 나오고⁠, 지원자가 오고⁠, 초소에 화면이 늘어납니다⁠. 그게 이 전쟁이 버티는 방법입니다⁠.⁠”

“⁠강 건너 사람은요⁠? 냄비 끓이던 두 사람은요⁠?⁠”

“⁠강 건너 사람은 어제 오전에 우리 초소로 기체 열여덟을 보낸 진지 옆에 있었습니다⁠.⁠” 명곤의 목소리는 낮아지지도 높아지지도 않았다⁠. “⁠봉탁진 씨⁠, 저는 그 두 사람이 냄비에 뭘 끓였는지 압니다⁠. 정찰 영상으로 봤습니다⁠. 라면이었습니다⁠. 우리 초소에서도 끓입니다⁠. 저는 그걸 압니다⁠.⁠”

명곤은 안다는 말을 두 번 했다⁠. 혜운이 기록상을 두 번 말하던 것과 같은 박자였다⁠.

“⁠왜 사십 초예요⁠?⁠”

명곤이 귤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껍질을 까지 않았다⁠.

“⁠보조가 배운 손이 그만큼 기다렸으니까요⁠.⁠”

“⁠무슨 손이요⁠?⁠”

“⁠열 해 전 결승 마지막 판에서 사십 분을 기다렸다가 한 번에 끝낸 손입니다⁠.⁠”

기록실 팬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커진 것이 아니라 내 귀가 팬 소리만 붙잡았다⁠.

*

은퇴한 이듬해 봄이었다⁠. 손목 수술 날짜가 잡혔고⁠, 어머니는 상가 이층의 PC방 자리를 계약하려고 보증금을 모으고 있었다⁠. 모자랐다⁠. 둘 다 모자랐다⁠. 아는 해설자가 연락을 주었다⁠. 판교의 한 회사가 프로게이머 출신의 손 기록을 모은다고 했다⁠. 하루 여덟 시간⁠, 두 주⁠, 이천만 원⁠.

솔개정밀이라는 회사였다⁠. 사무실은 유리 건물 칠층이었고⁠, 회의실 창으로 판교 도로가 내려다보였다⁠. 연구원은 내 또래였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고⁠, 커피를 계속 권했다⁠. 연구원은 은색 실이 박힌 검은 장갑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언제 움직이고⁠, 언제 멈추는지를 봅니다⁠. 특히 멈추는 시간을 봅니다⁠. 철벽 선수님은 멈추는 시간이 길어서 좋습니다⁠.⁠”

“⁠멈추는 거 모아서 뭐 하게요⁠?⁠”

“⁠여러 군데 씁니다⁠. 재활 기구⁠, 로봇 팔⁠, 게임 보조 장치⁠.⁠”

계약서는 열두 장이었다⁠. 첫 장에 금액과 기간이 있었다⁠. 나는 첫 장을 읽고 마지막 장에 서명했다⁠. 연구원이 커피를 한 잔 더 권했고⁠, 나는 받았다⁠. 장갑 안쪽은 미지근했다⁠. 장갑을 끼고 두 주 동안 아홉 성채를 했다⁠. 상대 없이 했다⁠. 화면에 상대 대신 점 하나가 떠다녔고⁠, 나는 점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끝냈다⁠. 하루에 수백 번 기다렸다가 끝냈다⁠.

돈은 두 주 뒤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수술비를 떼고 남은 돈으로 상가 이층 PC방 자리를 계약했고⁠, 간판 다는 날 사다리 밑에서 나에게 귤 한 봉지를 쥐여 주었다⁠. 「⁠여향PC방⁠」이라는 간판이었다⁠. 어머니는 간판을 올려다보며 니 손 덕이라고 했다⁠. 나는 수술한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웃었다⁠. 손 덕이 맞았다⁠. 어떤 손 덕인지는 몰랐다⁠.

*

명곤이 접은 종이 한 장을 책상에 펼쳤다⁠. 복사본이었다⁠. 귀퉁이에 솔개정밀 로고가 있었다⁠. 여섯 번째 장이었다⁠. 중간쯤 한 줄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수집한 손동작 기록은 국방 목적의 연구·개발에 사용할 수 있다⁠.⁠」

“⁠사 년 전 보조 모드를 처음 만들 때⁠, 솔개정밀이 손 기록 백여 명분을 납품했습니다⁠. 사람마다 기다리는 시간이 달랐습니다⁠. 짧게 기다리는 손은 오인 사격이 많았고⁠, 너무 오래 기다리는 손은 늦었습니다⁠.⁠” 명곤이 형광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중 하나를 고른 사람이 저입니다⁠. 결승을 마흔 번 본 사람이 골랐습니다⁠.⁠”

나는 종이를 보았다⁠. 여섯 번째 장이었다⁠. 첫 장만 읽고 넘긴 장이었다⁠. 형광펜은 노란색이었다⁠. 노란 줄 아래로 내 이름이 박혀 있었다⁠. 「⁠봉탁진(⁠이하 ‘⁠제공자⁠’⁠)⁠」

“⁠그래서 저를 데려왔어요⁠? 제 손이 이미 여기 있어서⁠?⁠”

“⁠봉탁진 씨를 데려온 건 다른 이유입니다⁠. 화면 너머가 사람이라는 걸 아는 손이 조종석에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손은 진짜 손이어야 했습니다⁠.⁠” 명곤이 종이를 다시 접었다⁠. “⁠둘이 같은 손이라는 건⁠, 저도 오늘 아침 모 소령 보고를 받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혜운이 커피 잔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잔이 식어 있었다⁠. 혜운은 식은 잔을 놓지 않았다⁠.

“⁠돌려주세요⁠.⁠”

“⁠무엇을 말입니까⁠?⁠”

“⁠제 손이요⁠. 보조에서 빼 주세요⁠.⁠”

“⁠돌려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보조 안에서 봉탁진 씨 손은 백여 명 손과 섞여 숫자가 됐습니다⁠. 숫자에서 한 사람만 건져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럼 끄세요⁠.⁠”

“⁠끄면 초소에서 다섯이 아니라 열이 다칩니다⁠.⁠” 명곤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봉탁진 씨가 늘어나는 다섯을 고르시겠습니까⁠? 나지솔 상병은 아직 초소에 있습니다⁠. 여드레 남았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혜운이 모니터 화면을 껐다⁠. 검은 화면에 우리 셋의 얼굴이 흐리게 비쳤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보호대가 감긴 오른손이었다⁠. 손가락 마디에 오래된 굳은살이 있었다⁠. 열 해 동안 마우스를 쥐던 자리였다⁠. 굳은살은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판교의 칠층 회의실에서 미지근한 장갑을 낀 날 이후로⁠, 굳은살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명곤이 일어났다⁠.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고 귤을 집었다⁠. 문고리를 잡고 돌아보았다⁠.

“⁠봉탁진 씨는 한 번도 안 눌렀습니다⁠.⁠”

명곤은 문을 반쯤 열었다⁠. 복도의 흰 빛이 기록실 바닥으로 길게 들어왔다⁠.

“⁠당신 손이 눌렀죠⁠.⁠”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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