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39자)

구덩이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조종동 이층 기록실은 조종실 뒤편 좁은 방이었다⁠. 창이 없고⁠, 벽 한 면이 서버 장비로 막혀 있어서 늘 바람 소리 같은 팬 소리가 났다⁠. 혜운은 책상 앞에서 모니터 두 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커피가 세 잔 놓여 있었다⁠. 셋 다 반쯤 남아 있었다⁠.

“⁠감자칩 오늘 열 시 타격이죠⁠. 요격으로 바꿔 주세요⁠.⁠”

혜운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배정은 선발 시험 성적순입니다⁠. 감자칩 조종사는 정확도 일 등입니다⁠.⁠”

“⁠제 방송 보고 온 애예요⁠. 막으러 왔대요⁠.⁠”

“⁠봉 조종사 방송이 막는 거라고 했으니까요⁠.⁠”

혜운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말투에 날이 없었다⁠. 날이 없어서 더 깊게 들어왔다⁠.

“⁠바꿔 주세요⁠. 제가 대신 타격 나갈게요⁠. 날아가서 안 누르고 오면 되잖아요⁠.⁠”

“⁠계약서 열한 번째 장에 봉 조종사는 지상 타격에 배정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봉 조종사가 넣은 조항입니다⁠.⁠” 혜운이 커피 한 잔을 들어 마시려다 식은 것을 알고 내려놓았다⁠. “⁠봉 조종사가 지킨 손은 봉 조종사 손입니다⁠. 감자칩 조종사 손은 감자칩 조종사 겁니다⁠.⁠”

“⁠소령님은 괜찮으세요⁠?⁠”

혜운이 대답 대신 모니터 하나를 내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 날짜와 시각과 기체 번호가 줄줄이 흘렀다⁠. 출격⁠, 귀환⁠, 격추⁠, 타격⁠. 줄마다 끝에 조종사 아이디가 붙어 있었다⁠.

“⁠저는 이걸 봅니다⁠. 하루에 몇천 줄을 봅니다⁠.⁠” 혜운이 화면을 다시 자기 앞으로 돌렸다⁠. “⁠괜찮은지는 안 봅니다⁠.⁠”

팬 소리가 방을 채웠다⁠. 나는 기록실을 나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혜운이 한마디를 보탰다⁠.

“⁠나지솔 상병 전출은 아흐레 남았습니다⁠.⁠”

*

감자칩은 조종실 맨 끝 조종석에서 과자를 먹고 있었다⁠. 출격 전에 과자를 먹으면 손이 덜 떨린다고 했다⁠. 주임원사가 지나가다 과자 봉지를 집어 들었다⁠.

“⁠조종실 과자 반입은 신고 대상이다⁠.⁠”

“⁠신고합니다⁠. 감자칩입니다⁠.⁠”

“⁠압수⁠.⁠”

주임원사는 봉지를 들고 자기 자리로 가서 한 조각을 꺼내 먹었다⁠. 감자칩이 억울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감자칩 옆자리에 앉았다⁠.

“⁠감자칩⁠. 오늘 열 시 거⁠, 타격인 거 알지⁠?⁠”

“⁠알아요⁠. 배정표 봤어요⁠. 근데 괜찮아요⁠. 트럭이나 진지 같은 거 맞히는 거라던데요⁠. 기체 대 기체랑 비슷한 거죠⁠?⁠”

“⁠아이콘 끄고 봐⁠.⁠”

“⁠네⁠?⁠”

“⁠설정에서 아이콘 끄면 진짜 화면 나와⁠. 끄고 봐⁠. 보고 누르든 안 누르든 해⁠.⁠”

감자칩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두꺼운 렌즈 너머로 눈이 커졌다⁠.

“⁠형⁠. 기체 대 기체라면서요⁠?⁠”

목구멍이 꽉 막혔다⁠. 감자칩은 대답을 기다렸다⁠. 삼 년 동안 내 방송에 첫 채팅을 치던 얼굴로 기다렸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종실 천장에서 경보가 울렸다⁠.

*

“⁠강 건너 다수 이륙⁠. 열여덟⁠. 목표 강화 북쪽 해안 초소⁠.⁠” 혜운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났다⁠. “⁠요격 전원 착석⁠. 타격 출격 보류⁠.⁠”

감자칩의 타격이 보류됐다⁠. 감자칩이 숨을 길게 내쉬었고⁠, 나도 내쉬었다⁠. 같은 숨이었다⁠. 감자칩은 다시 들이마셨다⁠.

“⁠형⁠, 저 요격 해도 돼요⁠?⁠”

“⁠해⁠. 내 옆에서⁠.⁠”

화면에 회색 강이 떴다⁠. 날개 넷 달린 기체 열여덟이 강 위로 낮게 펼쳐져 왔다⁠. 맨 앞의 하나가 강을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크게 돌았다⁠. 해를 등지는 꺾임이었다⁠. 빨간 목도리였다⁠.

나는 초소 앞에서 기다렸다⁠. 해안 초소의 좁은 창이 화면 아래쪽에 작게 보였다⁠. 저 창 안에 지솔이 있었다⁠. 아흐레 남은 지솔이었다⁠.

기체들이 초소 앞에서 한 줄이 되려 했다⁠. 한 줄이 되기 전에 눌렀다⁠. 셋이 물보라가 되었다⁠. 손목이 저렸다⁠. 다시 기다렸다⁠. 넷이 물보라가 되었다⁠. 감자칩이 옆에서 하나를 떨어뜨리고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맞혔어요⁠! 형⁠, 저 맞혔어요⁠!⁠”

“⁠앉아⁠. 아직 열 개 남았어⁠.⁠”

샛별의 조종석은 타격 대기라 화면이 꺼져 있었다⁠. 샛별은 보류가 떨어지자마자 요격으로 바꿔 들어왔다⁠. 어느새 내 오른쪽 끝에서 기체 둘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샛별의 엄지가 단추 위에서 빨랐다⁠. 나보다 반 박자 빨랐다⁠.

왼쪽으로 꺾은 기체가 해를 등지고 들어왔다⁠. 화면이 하얗게 번졌다⁠. 나는 번진 화면에서 기체가 지나갈 자리를 짐작했다⁠. 아홉 성채에서 왼쪽 끝으로 돌아 들어오던 선수를 막던 자리였다⁠. 짐작한 자리에 눌렀다⁠. 진동이 손바닥에 묵직하게 왔다⁠. 번짐 속에서 기체 하나가 떨어졌다⁠.

열여덟 가운데 열일곱이 물보라가 되었다⁠. 하나가 초소 앞 철조망을 넘었다⁠. 샛별이 소리를 질렀다⁠.

“⁠지솔아⁠!⁠”

샛별의 기체가 철조망 위로 내리꽂혔다⁠. 초소 창 앞 오 미터에서 마지막 기체가 꺼졌다⁠. 화면 아래 초소의 좁은 창 안에서 방탄모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가 숙였다⁠.

조종실이 조용했다⁠. 감자칩이 의자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샛별은 조종기를 무릎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숨이 새어 나왔다⁠.

샛별의 휴대전화가 조종석 옆 거치대에서 떨렸다⁠. 화면에 「⁠지솔⁠」이 떴다⁠. 근무 중에는 전화를 못 하는 시간이었다⁠. 샛별이 스피커로 받았다⁠.

“⁠누나⁠. 방금 철조망 앞에서 하나 터졌어⁠. 창에 금 갔어⁠.⁠”

“⁠다쳤어⁠?⁠”

“⁠아니⁠. 나 괜찮아⁠. 분대장님이 방탄모 위로 머리 쓰다듬었어⁠. 방탄모 위로 쓰다듬으면 아무 느낌도 없는데⁠.⁠” 지솔이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누나⁠, 거기서 누가 막아 준 거야⁠? 마지막 거 진짜 코앞에서 떨어졌어⁠.⁠”

샛별이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샛별이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몰라⁠. 누가 막았대⁠.⁠”

“⁠고맙다고 전해 줘⁠. 철벽 아저씨한테도⁠.⁠”

전화가 끊겼다⁠. 샛별은 휴대전화를 거치대에 다시 꽂았다⁠. 꽂는 손이 두 번 미끄러졌다⁠.

*

나는 왼쪽으로 꺾던 기체가 날아온 길을 거꾸로 따라갔다⁠. 혜운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갈대밭 진지에 빨간 목도리가 있었다⁠. 흙벽 안에서 태블릿을 들고 서성였다⁠. 열여덟이 다 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누런 개가 빨간 목도리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진지 옆으로 흙벽 하나가 더 있었다⁠. 처음 보는 자리였다⁠. 작은 천막이 하나 있었고⁠, 천막 앞에 솜옷 입은 사람 둘이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냄비에서 김이 올랐다⁠.

나는 내려다보았다⁠. 엄지를 단추에서 떼어 조종기 옆면에 붙였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손을 떼고 보면 누르고 싶은 마음이 덜 들까 해서였다⁠.

빨간 목도리가 서성이다 멈췄다⁠. 고개를 들어 내 기체를 찾았다⁠. 오늘은 손바닥을 들지 않았다⁠. 목도리를 한 번 더 감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옆 흙벽의 두 사람은 냄비 뚜껑을 열었다⁠. 김이 크게 피어올랐다⁠.

나는 오래 보았다⁠. 사십 초쯤이었다⁠. 아홉 성채에서 상대를 오래 보던 버릇이 손에 남아 있었다⁠. 오래 보면 상대의 다음 수가 보였다⁠. 지금은 다음 수가 아니라 냄비 김이 보였다⁠.

화면이 하얗게 번쩍였다⁠.

번쩍임은 옆 흙벽에서 났다⁠. 냄비가 있던 자리에 흙이 솟았다가 떨어졌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흙벽 하나가 반쯤 무너져 있었고⁠, 천막이 있던 자리에 둥근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솜옷 두 벌은 보이지 않았다⁠. 빨간 목도리의 흙벽 안에서 누런 개가 미친 듯이 짖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이 벌어지고 닫히는 것만 보였다⁠.

내 엄지는 조종기 옆면에 붙어 있었다⁠. 붉은 단추는 눌리지 않았다⁠.

“⁠누가 쐈어요⁠?⁠”

조종실에 내 목소리만 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샛별이 얼굴에서 손을 떼고 내 화면을 보았다⁠. 감자칩이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모 소령님⁠. 누가 쐈어요⁠? 방금 강 건너 진지 옆에⁠.⁠”

헤드셋에서 잠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어서 혜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늦게 왔다⁠.

“⁠기록 확인하겠습니다⁠. 봉 조종사는 귀환하십시오⁠.⁠”

*

오후 내내 순위판을 보았다⁠. 오전 출격의 격추는 전부 올라와 있었다⁠. 나 열하나⁠, 샛별 넷⁠, 감자칩 하나⁠, 나머지는 다른 조종사들⁠. 타격 칸은 비어 있었다⁠. 오전 열 시 이후 원격전투단의 타격은 영 번이었다⁠.

감자칩이 순위판 앞으로 와서 제 아이디 옆의 격추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처음 생긴 숫자였다⁠. 짚은 채로 내게 물었다⁠.

“⁠형⁠. 아까 그 구덩이에 사람 있었어요⁠? 형 화면 옆에서 봤어요⁠. 냄비 끓이던 사람⁠.⁠”

“⁠봤으면 알잖아⁠.⁠”

“⁠봤는데 모르겠어요⁠. 흙이 다 덮었어요⁠.⁠” 감자칩이 손가락을 순위판에서 뗐다⁠. “⁠형⁠, 저 내일 타격 나가면 아이콘 끌게요⁠. 형이 끄라고 했으니까⁠.⁠”

감자칩은 식당으로 갔다⁠.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조끼 비닐 냄새가 아직 났다⁠.

주임원사가 순위판 앞에 와서 나란히 보았다⁠. 손에 감자칩 봉지가 들려 있었다⁠. 거의 비어 있었다⁠.

“⁠주임원사님⁠, 오전에 강 건너에 우리 말고 다른 부대 기체 있었어요⁠?⁠”

“⁠없었다⁠. 강 하구 원격은 우리뿐이다⁠.⁠”

“⁠그럼 저 구덩이는 누가 판 거예요⁠?⁠”

주임원사가 과자 봉지를 접었다⁠. 접어서 손바닥 안에 쥐었다⁠. 봉지가 바스락거리다 조용해졌다⁠.

“⁠봉탁진 조종사⁠. 순위판에 없는 건 내가 모르는 거다⁠.⁠”

주임원사는 한마디만 하고 갔다⁠. 혼잣말처럼 들렸지만 혼잣말이 아니었다⁠. 나는 순위판의 타격 칸을 계속 보았다⁠. 영이라는 숫자는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또렷했다⁠.

저녁에 혜운이 숙소로 찾아왔다⁠. 문을 열자 혜운은 방에 들어오지 않고 복도에서 말했다⁠.

“⁠기록상 오전 열 시 이후 우리 기체의 타격은 없습니다⁠.⁠”

“⁠제 화면에 구덩이가 있었어요⁠.⁠”

“⁠기록상 없습니다⁠.⁠”

혜운은 기록상이라는 말을 두 번 했다⁠. 두 번째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러고 나서 복도를 걸어갔다⁠. 금발이 이층 침대 위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형⁠, 소령님이 기록상을 두 번 말하면 무슨 뜻이에요⁠?⁠”

“⁠기록에 없는 게 있다는 뜻이야⁠.⁠”

“⁠와⁠. 군대 말 어렵네⁠.⁠”

금발이 휴대전화 소리를 키웠다⁠. 저녁 뉴스였다⁠. 「⁠강화 해안 초소 드론 공격 전량 요격 — 원격전투단 “⁠오늘도 피해 0⁠”⁠」 명곤이 조종동 앞 마당에서 기자들에게 짧게 말했다⁠. 오늘도 우리 병사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 하나가 강 건너 피해를 물었고⁠, 명곤은 상대 기체 열여덟을 떨어뜨렸다고 대답했다⁠. 기체라고 대답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의 D-412를 보았다⁠. 솜옷 두 벌이 냄비 뚜껑을 여는 장면이 천장에 겹쳤다⁠. 김이 크게 피어오르는 장면이었다⁠.

*

이튿날 아침⁠, 출격 전 정찰을 자청했다⁠. 혜운은 막지 않았다⁠. 강을 건너 갈대밭으로 갔다⁠.

진지 옆 흙벽은 무너진 채였다⁠. 구덩이에 밤사이 얼음이 얇게 잡혀 아침 해를 받아 반짝였다⁠. 빨간 목도리가 구덩이 옆에 있었다⁠. 등을 굽히고 무언가를 끌고 있었다⁠. 나뭇가지 둘에 천을 얽은 들것이었다⁠. 들것 위에는 군용 담요가 덮여 있었다⁠. 담요가 길었다⁠. 사람 키만큼 길었다⁠.

빨간 목도리는 들것 손잡이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뒷걸음질 쳤다⁠. 한 걸음 끌 때마다 들것 끝이 언 땅을 긁었다⁠. 누런 개가 들것 옆을 따라 걸었다⁠. 개가 한 번씩 담요 끝에 코를 댔다가 뗐다⁠.

빨간 목도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 기체를 찾지 않았다⁠. 갈대밭 끝까지 들것을 끌고 가서⁠, 갈대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엄지를 조종기 옆면에 붙인 채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손가락이 저렸다⁠. 단추를 누른 적 없는 손가락이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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