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36자)

왼쪽으로 꺾는 기체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새벽 여섯 시⁠, 숙소 마당에 열세 명이 두 줄로 모였다⁠. 입김이 하얗게 올라갔다⁠. 주임원사가 앞에서 출석을 불렀다⁠.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네⁠.⁠”

“⁠여기요⁠.⁠”

“⁠출첵⁠.⁠”

주임원사가 출석판에서 눈을 들었다⁠. “⁠출첵 한 사람⁠, 앞으로⁠.⁠”

금발이 앞으로 나갔다⁠. 파란 손목 보호대에 내가 쓴 「⁠철벽⁠」이 새벽빛에 번들거렸다⁠.

“⁠군대에서 대답은 ‘⁠네⁠’ 하나다⁠. ‘⁠네⁠’로 끝내면 아무 일도 없다⁠. 알겠나⁠?⁠”

“⁠네⁠. 근데 출첵도 짧은데요⁠.⁠”

“⁠팔굽혀펴기 열 개⁠.⁠”

금발이 언 땅에 엎드렸다⁠. 다섯 개째에서 팔이 떨렸고⁠, 대열 뒤에서 누군가 힘내라 대신 존버라고 속삭였다⁠. 주임원사가 한숨을 쉬고 대열을 돌아보았다⁠.

“⁠국민체조 시작⁠.⁠”

나는 허리를 돌렸다⁠. 세 번째 동작에서 허리가 뚝 소리를 냈다⁠. 마당이 조용해서 소리가 크게 났다⁠. 주임원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봉탁진 조종사⁠. 허리 소리 줄여⁠.⁠”

“⁠줄이는 기능이 없습니다⁠.⁠”

대열 뒤에서 웃음이 터졌다⁠. 주임원사는 웃지 않았지만⁠, 다음 동작에서 나에게만 허리를 덜 돌리게 했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위병소에서 전화가 왔다⁠. 주임원사가 수화기를 들고 듣더니 나를 보았다⁠.

“⁠봉탁진 조종사⁠. 소포⁠.⁠”

위병소에 가 보니 스티로폼 상자 하나가 있었다⁠. 테이프로 네 번 감았고⁠, 뚜껑에 유성펜으로 「⁠김치 봉탁진 파주군대⁠」라고 적혀 있었다⁠. 띄어쓰기는 없었다⁠. 위병이 상자를 넘겨주며 진지하게 물었다⁠.

“⁠파주군대라는 부대는 없습니다만⁠, 받으시겠습니까⁠?⁠”

“⁠받겠습니다⁠. 어머니 부대예요⁠.⁠”

상자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가 떨렸다⁠. 「⁠탁진엄마⁠: 김치보냈다 나눠묵어라 군인아저씨들⁠」 저녁 식당에서 게이머 열두 명과 배식병 둘과 주임원사가 어머니 김치를 먹었다⁠. 주임원사가 깍두기를 씹다가 처음으로 웃었다⁠.

“⁠어머님 손맛이 우리 어머니랑 같네⁠.⁠”

“⁠어머님 고향이 어디십니까⁠?⁠”

“⁠그런 건 묻는 거 아니다⁠.⁠”

*

계약 두 주째⁠, 내 화면에는 아이콘이 없었다⁠. 처음 아이콘을 뗀 날⁠, 회색 강물과 누운 갈대와 날개 넷 달린 기체가 너무 맨얼굴이라 한참 눈이 시렸다⁠. 두 주가 지나자 눈이 익었다⁠. 손은 더 늦게 익었다⁠. 상대 기체는 강을 건너와 해안 초소를 노렸고⁠, 나는 초소 앞에서 기다렸다가 기체가 한 줄로 모이는 순간에 눌렀다⁠. 날마다 같은 일이었다⁠. 날마다 같은 일이 아니었다⁠.

조종기 진동이 손바닥으로 올라올 때마다 나는 떨어지는 기체를 끝까지 보았다⁠. 사람이 없는 기체였다⁠. 회색 물에 떨어져 하얀 물보라를 한 번 일으키고 가라앉았다⁠. 아홉 성채의 기병은 녹으면 점수가 됐다⁠. 강화 앞바다의 기체는 녹으면 물보라가 됐다⁠. 점수는 조종실 뒤쪽 벽의 순위판에 따로 올라갔다⁠.

열흘째부터 한 기체가 눈에 들어왔다⁠. 강을 건너오면 꼭 왼쪽으로 한 번 꺾었다⁠. 다른 기체들은 곧장 초소로 내려오는데⁠, 이 기체만 왼쪽으로 크게 돌았다가 해를 등지고 들어왔다⁠. 해를 등지면 우리 카메라에 하얗게 번진다⁠. 아홉 성채에서도 그런 선수가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지도 왼쪽 끝으로 돌아 들어오는 선수⁠. 손버릇은 사람을 닮는다⁠.

나는 왼쪽으로 꺾는 기체를 날마다 떨어뜨렸다⁠. 이튿날이면 같은 꺾임으로 다시 왔다⁠. 떨어뜨리는 기체는 매번 새것이었고⁠, 꺾는 손은 매번 같았다⁠.

열나흘째 오전⁠, 왼쪽으로 꺾던 기체가 초소 앞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내 요격 기체가 다가가는 것을 먼저 알아챈 움직임이었다⁠. 나는 누르지 않고 따라갔다⁠. 기체는 강을 건넜다⁠. 나도 건넜다⁠.

“⁠봉 조종사⁠, 강 건너는 정찰 구역입니다⁠. 돌아오십시오⁠.⁠” 혜운의 목소리가 헤드셋에서 났다⁠.

“⁠삼십 초만요⁠.⁠”

갈대밭 위를 낮게 날았다⁠. 상대 기체는 갈대밭 한가운데 흙벽을 두른 작은 진지로 내려앉았다⁠. 흙벽 안에 천막이 하나⁠, 천막 앞에 접이식 탁자가 하나 있었다⁠. 탁자 앞에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열 화상이 아니라 낮 카메라였다⁠. 얼굴까지는 안 보였다⁠. 두꺼운 솜옷에 털모자를 썼고⁠, 목에 빨간 목도리를 두 번 감았다⁠. 무릎에 태블릿을 올려 두고 있었다⁠. 돌아온 기체를 손으로 받아 탁자에 내려놓더니⁠, 솜옷 주머니에서 은박지 뭉치를 꺼냈다⁠. 주먹밥이었다⁠. 한 입 먹고 나서 탁자 밑으로 손을 내렸다⁠. 탁자 밑에서 누런 개 한 마리가 나와 손바닥의 밥알을 핥았다⁠.

“⁠봉 조종사⁠, 이십 초 지났습니다⁠.⁠”

빨간 목도리는 주먹밥을 반으로 갈라 반쪽을 개에게 주었다⁠. 남은 반쪽을 입에 넣고 태블릿을 집었다⁠. 탁자 위의 기체가 다시 떠올랐다⁠. 기체는 강을 향해 날다가⁠, 강 위에서 왼쪽으로 한 번 꺾었다⁠.

나는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엄지가 붉은 단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이 차서 조종기 고무가 미끈거렸다⁠.

*

점심 무렵 조종실 뒤쪽 벽의 순위판이 바뀌었다⁠. 맨 위는 나샛별이었다⁠. 타격 일곱 번⁠, 격추 열둘⁠. 나는 이 등이었다⁠. 타격 영 번⁠, 격추 마흔하나⁠. 순위판 옆 칸에 이번 달 성과급이 같이 떠 있었다⁠. 타격 한 번의 성과급이 격추 열 번보다 많았다⁠. 금발이 순위판 앞에서 계산을 해 보더니 소리 내어 말했다⁠.

“⁠형⁠, 형은 마흔한 대 막고 샛별 누나 반의반 받아요⁠.⁠”

“⁠알아⁠.⁠”

“⁠억울하지 않아요⁠?⁠”

“⁠억울하다고 하면 순위 오르냐⁠?⁠”

“⁠아뇨⁠.⁠”

“⁠그럼 안 억울해⁠.⁠”

금발이 납득한 얼굴로 식당에 갔다⁠. 나는 순위판 아래 붙은 오후 출격표를 보았다⁠. 「⁠14⁠:00 타격 — 나샛별⁠」 강 건너 보급로였다⁠. 지도 위 표시가 오전에 내가 날았던 갈대밭 바로 위였다⁠. 흙벽 진지에서 북쪽으로 손가락 한 마디 거리였다⁠.

샛별이 순위판 앞에 와서 컵라면 뚜껑을 젓가락으로 눌렀다⁠.

“⁠스승님 오늘 강 건넜다면서요⁠? 모 소령님이 기록에 올렸어요⁠. 정찰 구역 무단 진입⁠.⁠”

“⁠샛별아⁠, 오후 거 나랑 바꾸자⁠.⁠”

“⁠스승님은 타격 안 하신다면서요⁠.⁠”

“⁠그러니까 바꾸자고⁠. 나는 날아가서 안 누르고 올게⁠.⁠”

샛별이 젓가락을 멈췄다⁠. 라면 국물에서 김이 올라와 샛별의 앞머리를 적셨다⁠.

“⁠스승님이 안 누르면 그 트럭이 내일 탄약 싣고 와요⁠. 그 탄약이 세모 스무 개가 돼서 강을 건너요⁠. 스승님은 또 막고요⁠. 막다가 하나 놓치면요⁠?⁠”

“⁠놓치지 않아⁠.⁠”

“⁠지난주 금요일에 하나 놓쳤잖아요⁠. 초소 앞 철조망에 떨어졌어요⁠. 지솔이가 치웠대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세 시⁠, 해를 등지고 들어온 기체 하나를 놓쳤다⁠. 왼쪽으로 꺾는 기체였다⁠.

“⁠스승님은 막고 저는 끝내요⁠. 끝내야 안 와요⁠.⁠”

“⁠끝낸다고 안 오지 않아⁠. 다음 사람이 와⁠.⁠”

“⁠그럼 다음 사람도 끝내야죠⁠.⁠”

샛별이 출격표에서 자기 이름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주임원사가 조종실 문 앞에서 우리를 보았다⁠.

“⁠거기 둘⁠. 순위판 앞에서 라면 먹지 마라⁠. 국물 튄다⁠.⁠”

샛별이 컵라면을 들고 나갔다⁠. 순위판 맨 아래 칸에 작은 국물 자국이 하나 묻어 있었다⁠. 주임원사가 휴지로 닦으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일 등 자리에 묻어야 덜 아깝지⁠.⁠”

오후 두 시⁠, 샛별이 타격 출격을 나갔다⁠. 나는 비번이었지만 샛별 옆 조종석에 앉았다⁠. 주임원사가 나를 한 번 보고 말리지 않았다⁠. 샛별의 가운데 화면에 강 건너 보급로가 떠 있었다⁠. 아이콘은 없었다⁠. 갈대밭 사이로 흙길이 나 있었고⁠, 흙길 위로 짐칸에 천막을 씌운 트럭 한 대가 기어갔다⁠.

샛별의 화면 구석에 흙벽 진지가 걸쳐 보였다⁠. 탁자 앞 빨간 목도리⁠, 탁자 밑 누런 개⁠.

“⁠샛별아⁠, 왼쪽 위에 진지⁠.⁠”

“⁠봤어요⁠. 이백 미터 떨어져 있어요⁠.⁠”

“⁠이백 미터면 들려⁠. 개가 놀라⁠.⁠”

샛별이 조종기를 쥔 채 나를 흘끗 보았다⁠. 엄지가 붉은 단추 위에 있었다⁠.

“⁠스승님⁠, 손 치워 주세요⁠.⁠”

내려다보니 내 손이 샛별의 조종기 손잡이를 덮고 있었다⁠. 언제 올렸는지 몰랐다⁠. 샛별의 손등이 내 손바닥 밑에서 차가웠다⁠. 샛별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고⁠, 손등을 한 번 들어 올려 내 손을 밀어냈다⁠. 일곱 해 전 내가 가르친 동작이었다⁠. 상대 손을 막을 때 쓰라고 가르친 동작이었다⁠.

트럭이 하얗게 번쩍였다⁠. 화면 귀퉁이의 진지에서 누런 개가 펄쩍 뛰어 흙벽 뒤로 숨었다⁠. 빨간 목도리는 일어나서 연기가 오르는 흙길을 오래 보았다⁠. 오래 보다가 다시 앉았다⁠.

샛별이 조종기를 내려놓고 숨을 내쉬었다⁠. 이마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이번엔 봤어요⁠.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뛰어내렸어요⁠. 갈대밭으로 굴렀어요⁠.⁠”

“⁠살았어⁠?⁠”

“⁠몰라요⁠. 굴렀어요⁠.⁠”

샛별은 순위판을 보지 않고 조종실을 나갔다⁠.

*

저녁 아홉 시⁠, 숙소 복도 끝에서 샛별이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정수기에 물을 받으러 갔다가 화면을 보았다⁠. 방탄모를 쓴 앳된 얼굴이 떠 있었다⁠. 광대가 튀어나올 만큼 말랐고⁠, 웃을 때 앞니 하나가 살짝 겹쳤다⁠. 나지솔 상병이었다⁠. 화면 뒤로 초소의 좁은 창과 깜빡이는 경계등이 보였다⁠.

“⁠누나 순위 일 등이라며⁠? 우리 분대장님이 누나 팬 됐어⁠.⁠”

“⁠분대장님한테 사인 보내 줄게⁠.⁠”

“⁠철벽 아저씨는 이 등이라며⁠?⁠”

샛별이 휴대전화를 내 쪽으로 돌렸다⁠. 지솔이 나를 보고 경례 비슷한 것을 했다⁠.

“⁠충성⁠. 아저씨 경기 중학교 때 봤습니다⁠.⁠”

“⁠다들 중학교 때 봤네⁠.⁠”

“⁠요즘 밤에 잘 잡니다⁠. 두 시간 더 잡니다⁠. 감사합니다⁠.⁠”

지솔 뒤에서 누가 상병 나지솔 통화 길다고 외쳤고⁠, 지솔이 화면 밖을 향해 넵 하고 소리쳤다⁠.

지솔은 경례를 한 번 더 하고 웃었다⁠. 샛별이 화면을 다시 자기 얼굴로 돌렸다⁠. 나는 물컵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더 자는 잠은 오후 두 시의 타격 출격 위에 놓여 있었다⁠.

방에서는 금발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원격전투단 예산을 두 배로 늘렸다는 소식이었다⁠. 명곤이 국회 복도에서 기자들에게 짧게 말했다⁠. 화면 아래 자막이 지나갔다⁠. 「⁠천명곤 사령관 “⁠우리 병사는 한 명도 잃지 않겠다⁠”⁠」 외국 통신사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밀며 영어로 물었다⁠. 상대편 사상자는 몇 명이냐고 묻는 말이었다⁠. 명곤은 대답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

이튿날 오전⁠, 나는 다시 강을 건넜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꺾는 기체를 떨어뜨린 뒤였다⁠. 떨어뜨리고 나서 기체가 날아온 길을 거꾸로 따라갔다⁠.

“⁠봉 조종사⁠.⁠” 혜운의 목소리였다⁠. “⁠기록에 또 올라갑니다⁠.⁠”

“⁠올리세요⁠.⁠”

“⁠사령관님이 보십니다⁠.⁠”

“⁠보시라고 하세요⁠. 마흔두 번째로⁠.⁠”

헤드셋 너머에서 혜운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였다⁠.

갈대밭 진지에 빨간 목도리가 있었다⁠. 오늘은 탁자에 앉지 않고 흙벽 위에 올라 강 건너를 보고 있었다⁠. 떨어진 기체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런 개가 흙벽 아래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내 요격 기체가 흙벽 위로 낮게 지나갔다⁠. 빨간 목도리가 고개를 들었다⁠.

화면 가득 사람의 얼굴이 올라왔다⁠. 털모자 아래 이마⁠, 찬바람에 빨개진 코⁠, 목도리에 반쯤 묻힌 턱⁠.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손으로 해를 가렸다⁠. 해를 가린 손이 천천히 올라가 머리 위에서 멈췄다⁠. 손바닥이 나를 향했다⁠.

손을 흔드는 건지⁠, 겨누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조종기를 쥔 손가락이 붉은 단추 위에서 굳었다⁠. 화면 너머의 손바닥은 내려가지 않았다⁠. 강 하구의 겨울 해가 손바닥에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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