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58자)

조종석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파주 기지 위병소 차단기는 올라가지 않았다⁠.

위병소 병사가 내 출입증을 단말기에 대고⁠, 다시 대고⁠, 세 번째로 대 보았다⁠. 화면에 빨간 글자가 떴다⁠. 병사가 단말기를 내 얼굴 앞으로 돌렸다⁠.

「⁠출입 제한⁠」

“⁠죄송합니다⁠. 편대장님⁠, 아니 봉탁진 님⁠, 아니 증인님⁠.⁠” 병사가 호칭을 두 번 바꾸었다⁠. “⁠제한이라고 나옵니다⁠.⁠”

“⁠알아요⁠.⁠”

“⁠그런데 저기⁠, 혹시⁠.⁠” 병사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반쯤 꺼냈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동생이 철벽 팬입니다⁠. 아니⁠, 팬이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팬인데 좀 헷갈려합니다⁠.⁠”

“⁠헷갈리는 사람이랑 찍으면 더 헷갈릴 텐데요⁠.⁠”

“⁠그래도 찍겠습니다⁠.⁠”

차단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병사가 경례를 했다⁠. 나도 엉거주춤 손을 이마에 댔다⁠. 사흘 전에 편대장 해임 통보를 받았고⁠, 어제 출입 제한 문자를 받았다⁠. 조끼는 아직 입고 있었다⁠. 반납하라는 말은 없었다⁠. 반납할 곳도 몰랐다⁠.

위병소 뒤에 검은 차가 한 대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명곤이 내렸다⁠. 명곤이 병사에게 짧게 말했다⁠. 병사가 단말기를 다시 눌렀다⁠. 차단기가 올라갔다⁠.

“⁠타십시오⁠.⁠”

“⁠출입 제한이라던데요⁠.⁠”

“⁠제가 걸었습니다⁠. 제가 풉니다⁠.⁠” 명곤이 뒷문을 열었다⁠. “⁠나샛별 조종사가 오늘 자정에 보조를 껐습니다⁠. 내일 새벽에 드론 떼가 옵니다⁠. 강 건너에서 장비가 움직이는 게 오후부터 보였습니다⁠. 나샛별 조종사 혼자 끈 손으로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를 불러요⁠?⁠”

“⁠끈 손이 둘이면 낫겠지요⁠.⁠” 명곤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봉탁진 씨가 보셔야 합니다⁠. 끈 손이 어떤지⁠. 청문회에서 말씀하신 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명곤의 말 속에서 나는 두 가지를 들었다⁠. 도와 달라는 말과⁠, 보여 주겠다는 말⁠. 어느 게 앞이고 어느 게 뒤인지 알 수 없었다⁠. 차에 탔다⁠.

*

조종동 문이 열리자 스무 개 남짓한 머리가 한꺼번에 돌아갔다⁠. 금발이 먼저 일어났다⁠. 감자칩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다 다시 앉았다⁠. 주임원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을 열고 핫팩 하나를 꺼내 나한테 던졌다⁠. 받았다⁠. 아직 차가웠다⁠.

“⁠흔들어⁠. 지금부터 흔들면 새벽에 딱 따뜻해⁠.⁠”

내 옛 조종석에는 새 편대장이 앉아 있지 않았다⁠. 비어 있었다⁠. 조종대에는 테이프로 붙인 작은 카메라와 링 조명이 그대로 있었다⁠. 우승컵도 그대로 있었다⁠. 컵 안에 누가 넣었는지 사탕 봉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누가 넣었어⁠?⁠”

“⁠제가요⁠.⁠” 감자칩이 손을 들었다⁠. “⁠빈 컵이 쓸쓸해 보여서요⁠. 우승한 컵이니까 단 게 들어 있어야죠⁠.⁠”

샛별은 바로 옆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헤드셋을 목에 걸고⁠,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늦으셨어요⁠.⁠”

“⁠차단기가 안 올라갔어⁠.⁠”

“⁠스승님 인생이 원래 차단기예요⁠.⁠”

나는 내 옛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내 허리 높이 그대로였다⁠. 아무도 높이를 바꾸지 않았다⁠. 조종석 밑 회색 상자에 손을 뻗었다⁠. 전원 줄은 꽂혀 있었다⁠. 뽑았다⁠. 샛별 조종석 밑 상자는 이미 뽑혀 있었다⁠. 뽑힌 줄 끝이 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다른 조종사들은요⁠?⁠”

“⁠켜요⁠.⁠” 샛별이 대답했다⁠. “⁠다들 켜요⁠. 우리 둘만 꺼요⁠. 지솔이가 오늘 아침에 후방으로 갔어요⁠. 지솔이 자리에는 신병이 왔대요⁠.⁠”

*

자정이 넘어 계단참에 둘이 앉았다⁠. 샛별이 자판기에서 뽑은 컵라면 두 개를 들고 왔다⁠. 물을 붓고 뚜껑 위에 휴대전화를 하나씩 올려 눌렀다⁠. 삼 분을 기다리는 동안 샛별은 자기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계속 주물렀다⁠.

“⁠어제 처음으로 보조 끄고 쏴 봤어요⁠. 연습장 표적이요⁠. 나무판자⁠.⁠”

“⁠어땠어⁠?⁠”

“⁠손가락이 무거웠어요⁠.⁠” 샛별이 검지를 펴서 들여다보았다⁠. “⁠보조 켜 놨을 땐 화면만 봤거든요⁠. 오래 보면 알아서 꺼지니까요⁠. 근데 끄니까 단추가 있더라고요⁠. 단추를 누르는 손가락이 있고요⁠. 나무판자인데도 무거웠어요⁠.⁠”

“⁠무거운 게 맞아⁠.⁠”

“⁠스승님은 맨날 무거웠어요⁠?⁠”

“⁠열 해 전엔 가벼웠어⁠. 게임이었으니까⁠. 지금은 무거워⁠.⁠”

샛별이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면이 아직 덜 풀려 있었다⁠.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말했다⁠.

“⁠지솔이가 아침에 가면서 문자했어요⁠. 「⁠누나 나 이제 안 지켜 줘도 됨⁠」 그래서 답장했어요⁠. 「⁠너 지키려고 한 거 아니거든⁠」 거짓말이죠⁠.⁠” 샛별이 면을 크게 한 입 먹었다⁠. 뜨거워서 입을 벌리고 후후 불었다⁠. “⁠근데 이제 진짜예요⁠. 이따 새벽엔 지솔이 없는 초소를 막아요⁠. 모르는 열다섯 명이요⁠.⁠”

“⁠모르는 사람이 더 무거워⁠.⁠”

“⁠그러니까요⁠.⁠” 샛별이 국물을 마셨다⁠. “⁠그래서 끈 거예요⁠. 아는 사람만 지키는 손은 보조랑 똑같으니까요⁠.⁠”

나는 덜 풀린 면을 씹었다⁠. 딱딱했다⁠. 샛별이 내 컵라면을 보고 웃었다⁠. 삼 분을 못 기다리는 건 스승님도 똑같다고 했다⁠.

*

새벽 다섯 시⁠, 정찰 화면을 강 건너로 돌렸다⁠. 갈대밭의 1번 진지 자리에 흙벽이 다시 올라가 있었다⁠. 새 흙벽은 낮고 서툴렀다⁠. 진지 안에 하얀 덩어리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빨간 목도리보다 작았다⁠. 하얀 덩어리의 손목에 무언가 감겨 있었다⁠. 열 화상으로는 색이 보이지 않았다⁠. 흙더미 머리맡에 꽂혀 있던 천 조각 크기였다⁠.

누런 개가 새 사람 옆에 엎드려 있었다⁠. 새 사람이 손을 내밀자 개가 손바닥을 핥았다⁠. 손바닥에 무언가 있었을 것이다⁠. 주먹밥은 아니었다⁠. 주먹밥을 쥐기에는 손이 너무 작았다⁠.

새 사람이 드론 하나를 들어 올렸다⁠. 날리기 전에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내 기체가 있는 높이였다⁠. 나는 화면을 돌리지 않았다⁠. 새 사람도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둘이 한동안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았다⁠. 시계가 다섯 시 반을 넘어갔다⁠.

*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화면 위쪽 가장자리에 점들이 떴다⁠. 열여섯⁠, 스물⁠, 스물넷⁠. 점들이 강을 건너며 퍼졌다⁠. 조종동 스피커에서 주임원사 목소리가 나왔다⁠.

“⁠전 기체 요격⁠. 서두르지 마⁠. 서두르는 놈이 먼저 떨어진다⁠.⁠”

나는 왼쪽 끝 점 하나를 잡았다⁠. 왼쪽으로 꺾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꺾었다⁠. 빨간 목도리의 버릇이 아니었다⁠. 다른 손이었다⁠. 따라붙어서 막았다⁠. 한 대⁠. 다음 점을 잡았다⁠. 오래 보았다⁠. 이번에는 오래 볼 시간이 없었다⁠. 한 대가 내 기체 밑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샛별이 막았다⁠.

“⁠스승님⁠, 느려요⁠!⁠”

“⁠알아⁠!⁠”

“⁠알면 빨리 해요⁠!⁠”

다른 조종석들에서는 짧은 신호음이 이어졌다⁠. 보조가 쏘는 소리였다⁠. 신호음이 날 때마다 화면에서 점이 하나씩 꺼졌다⁠. 빠르고 깨끗했다⁠. 오래 보고 한 번에⁠. 내 손이었다⁠. 열 해 전 내 손이 지금의 나보다 빨랐다⁠.

샛별의 손가락이 단추 위를 쉬지 않고 오갔다⁠. 샛별은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보면서 쳤다⁠. 한 대 놓치면 바로 다음을 잡았다⁠. 놓친 것을 내가 받았다⁠. 내가 놓친 것을 샛별이 받았다⁠. 일곱 해 전 PC방 구석 자리에서 둘이 한 편으로 둘 때 그렇게 했다⁠. 둘 다 졌다⁠. 졌지만 오래 버텼다⁠.

스물넷 가운데 스물셋이 꺼졌다⁠. 한 대가 남았다⁠. 남은 한 대가 내 화면 오른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주 낮게⁠, 갈대 높이로 날았다⁠. 다른 조종석의 보조가 이미 다른 점들을 쫓아 흩어진 뒤였다⁠. 내가 잡으러 돌았다⁠. 기체를 돌리고 보니 너무 멀었다⁠.

“⁠스승님⁠!⁠”

“⁠보고 있어⁠!⁠”

보고 있었다⁠. 보기만 했다⁠. 손이 닿기 전에 점이 초소 철책 너머로 사라졌다⁠. 초소를 비추던 화면이 하얗게 번쩍했다⁠.

*

조종동이 조용해졌다⁠.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소리만 났다⁠. 사십 초쯤이었을 것이다⁠. 사십 초가 열 해 같았다⁠.

스피커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초소에서 온 무전이었다⁠.

「⁠부상 하나⁠. 다리⁠. 의식 있음⁠. 후송 요청⁠.⁠」

주임원사가 무전을 받아 복창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감자칩이 핫팩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금발이 헤드셋을 벗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샛별만 나를 보았다⁠. 샛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가⁠,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나서 화면으로 돌아갔다⁠.

“⁠다른 거 또 와요⁠?⁠”

“⁠아니⁠.⁠” 주임원사가 대답했다⁠. “⁠끝났어⁠.⁠”

한 시간 뒤 초소에서 사진이 한 장 왔다⁠. 들것에 누운 병사가 엄지를 들고 있었다⁠. 다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철모가 옆에 굴러 있었다⁠. 국회에서 본 영상 속⁠, 경례하다 철모가 눈을 가렸던 병사였다⁠. 사진 밑에 초소 반장이 글을 붙여 놓았다⁠.

「⁠파편⁠, 종아리⁠. 뼈 안 다침⁠. 본인은 휴가 나온다고 좋아함⁠」

감자칩이 사진을 보고 울다가 웃었다⁠. 금발이 감자칩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웃지 못했다⁠. 들것 위 병사의 엄지가 오래 보였다⁠.

*

명곤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종동 맨 뒤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사진이 돌고 난 뒤에야 내 조종석 옆으로 왔다⁠.

“⁠보셨습니까⁠?⁠”

“⁠봤어요⁠.⁠”

“⁠느린 손입니다⁠. 보조를 켰으면 그 한 대도 떨어졌습니다⁠. 저 병사는 오늘 다리를 다치지 않았습니다⁠. 끈 손의 대가가 저겁니다⁠.⁠”

명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마흔 번 본 결승을 이야기할 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령관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오늘 새벽 초소 화면이 하얗게 번쩍할 때 명곤도 숨을 멈췄을 것이다⁠.

“⁠알아요⁠.⁠” 내 목소리도 떨렸다⁠. 떨리는 대로 두었다⁠. “⁠그래서 말할 거예요⁠. 내일 저녁⁠, 일산 제 방에서 생방송 켜요⁠. 다 말할 거예요⁠. 보조가 쏜 거⁠, 제 손이 판 거⁠, 제가 누른 거⁠. 오늘 저 병사가 다친 것도요⁠. 제 손이 느려서 다친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면 다들 보조를 켜자고 할 겁니다⁠.⁠”

“⁠그럼 켜자고 하라죠⁠. 아는 채로 켜자고 하라고요⁠. 모르는 채로 켜 두는 거랑 아는 채로 켜는 거랑은 달라요⁠.⁠”

명곤이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내 조종대의 우승컵을 들었다⁠. 사탕 봉지가 컵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명곤이 컵을 오래 보았다⁠. 컵 바닥에 새겨진 열 해 전 날짜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 결승⁠, 저는 마흔한 번째로 다시 봤을 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봉탁진 씨는 이기려고 막은 게 아니었습니다⁠. 지기 싫어서 막은 겁니다⁠. 그래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명곤이 컵을 조종대 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카메라 렌즈 옆이었다⁠. “⁠내일 그 방송⁠, 몇 시입니까⁠?⁠”

“⁠저녁 여덟 시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조종동 안의 머리들이 다시 한꺼번에 돌아갔다⁠. 주임원사가 들고 있던 무전기를 내렸다⁠. 샛별이 헤드셋을 완전히 벗었다⁠.

“⁠나가서 뭐 하시게요⁠?⁠”

“⁠봉탁진 씨 방송이니 봉탁진 씨가 먼저 말씀하십시오⁠. 저는 제 말을 하겠습니다⁠.⁠” 명곤이 군복 깃을 바로 했다⁠. “⁠첫 방송 때처럼 귤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명곤이 조종동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감자칩이 작게 물었다⁠.

“⁠형⁠, 내일 방송 몇 명 올까요⁠?⁠”

“⁠모르겠어⁠.⁠”

“⁠전 무조건 가요⁠. 아⁠, 못 가는구나⁠. 근무구나⁠. 그럼 휴대전화로 봐요⁠. 몰래요⁠.⁠”

“⁠몰래 보지 마⁠. 걸리면 나 때문이라고 해⁠.⁠”

“⁠형 때문인 거 맞잖아요⁠.⁠”

샛별이 웃었다⁠. 오늘 새벽 처음 웃었다⁠. 웃다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나는 핫팩을 흔들었다⁠. 새벽에 딱 따뜻해진다던 핫팩이 이제야 따뜻해지고 있었다⁠.

1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