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471자)

생방송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어머니가 귤 두 접시를 다듬었다⁠.

껍질만 벗기는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귤껍질을 꽃 모양으로 벌려 알맹이를 꺼내고⁠, 알맹이에 붙은 하얀 실까지 하나하나 떼어 냈다⁠. 첫 방송 날에는 껍질만 벗겨 왔다⁠. 오늘은 달랐다⁠.

“⁠손님 오는데 실 붙은 걸 우째 주노⁠.⁠”

“⁠지난번에도 손님이었어요⁠.⁠”

“⁠지난번엔 모르는 손님이었고⁠.⁠”

작은방 책상 위에 모니터 두 대와 마이크와 카메라가 있었다⁠. 의자는 둘이었다⁠. 내 게임 의자와⁠, 어머니가 PC방에서 들고 온 접이식 의자⁠. 접이식 의자 다리 하나가 짧아서 어머니가 바닥에 신문지를 접어 끼웠다⁠.

일곱 시 오십 분⁠, 초인종이 울렸다⁠. 명곤이었다⁠. 군복이었다⁠. 혼자였다⁠. 현관에서 군화 끈을 풀다가 매듭이 엉켰다⁠. 어머니가 옆에 쪼그려 앉아 손톱으로 매듭을 풀어 주었다⁠. 명곤이 고맙다고 했다⁠. 어머니가 귤 접시를 내밀었다⁠. 명곤이 하나를 받았다⁠.

“⁠어머님⁠, 첫날엔 실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날은 우리 아들 데려가는 사람이었고⁠.⁠”

“⁠오늘이 사령관으로 지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귤을 하나 더 얹어 주었다⁠.

*

여덟 시 정각⁠, 방송을 켰다⁠. 제목은 짧게 붙였다⁠. 「⁠다 말합니다⁠」 동시 접속자 숫자가 켜자마자 만을 넘었다⁠. 오 분 만에 십만을 넘었다⁠. 채팅창이 위로 흘러갔다⁠.

「⁠진짜 사령관 옴⁠?⁠」

「⁠첫 방송 데자뷔⁠」

「⁠귤 접시 또 있음 ㅋㅋㅋ⁠」

「⁠금발⁠: 형 화이팅⁠」

「⁠감자칩⁠: 근무 중 몰래 봄⁠」

「⁠주임원사⁠: 감자칩 근무지로 복귀⁠」

「⁠감자칩⁠: 넵⁠」

채팅창 맨 위에 고정 글이 하나 있었다⁠. 내가 올린 게 아니었다⁠. 시청자가 올린 것도 아니었다⁠. 아이디가 낯익었다⁠.

「⁠모혜운⁠: 기록 중입니다⁠.⁠」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철벽입니다⁠. 오늘은 게임 안 해요⁠.⁠”

오른손을 카메라 앞으로 들었다⁠. 검은 손목 보호대의 찍찍이를 뜯었다⁠. 찍찍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나갔다⁠. 보호대를 풀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손목 안쪽에 하얀 흉터가 길게 있었다⁠. 열 해 전 수술 자리였다⁠. 카메라를 손목에 가까이 댔다⁠.

“⁠이게 철벽 손목이에요⁠. 열 해 전에 망가졌어요⁠. 수술비가 없어서 이 손을 팔았어요⁠.⁠”

어머니가 책상 서랍에서 누런 서류 봉투를 꺼내 내 옆에 놓았다⁠. 봉투 안에 병원 영수증 묶음과 계약서가 함께 들어 있었다⁠. 2026년⁠, 솔개정밀⁠. 열네 장⁠. 어머니가 열 해 동안 영수증과 같이 묶어 둔 계약서였다⁠.

“⁠제가 첫 장만 읽고 서명했어요⁠. 열 해 뒤에 여섯 번째 장을 읽었어요⁠.⁠” 여섯 번째 장을 카메라 앞에 펴서 소리 내어 읽었다⁠. 「⁠수집한 동작 기록은 국방 목적 연구에 쓰일 수 있다⁠.⁠」 한 줄이었다⁠. 글자가 작았다⁠. 카메라가 초점을 잡느라 몇 번 흐려졌다가 맞았다⁠.

이어서 질문지 뒷면에 열 번도 넘게 썼다 지운 순서대로 말했다⁠. 조종석 밑 회색 상자⁠. 오래 본 표적을 스스로 쏘는 보조⁠. 이름 없는 줄⁠. 기체 대 기체라는 거짓말⁠. 갈대밭의 진지와 빨간 목도리와 누런 개와 주먹밥⁠. 1번 진지를 누른 내 엄지⁠. 흙더미 둘⁠. 그리고 어제 새벽⁠, 보조를 끈 제 손이 느려서 초소 병사 하나가 종아리를 다쳤다는 것까지⁠.

“⁠보조를 켜라⁠, 끄라 하는 말 하려고 켠 방송 아니에요⁠. 저도 몰라요⁠. 켜면 강 건너가 죽고⁠, 끄면 이쪽이 다쳐요⁠. 다만 모르는 채로 정하지 말자는 거예요⁠. 누가 누르는지 알고 정하자는 거예요⁠.⁠”

채팅창 한가운데에 낯익은 아이디가 지나갔다⁠.

「⁠나샛별⁠: 제 기체 이름 없는 줄 일곱 개도 제 거예요⁠. 리플레이 지금 올렸어요⁠」

샛별은 자기 방송을 켜 둔 채 내 채팅창에 들어와 있었다⁠. 샛별 방송 제목이 채팅창 위에 잠깐 떴다⁠. 「⁠스승님이 말하는 동안 저도 말함⁠」 몇 초 뒤 다른 아이디가 이어졌다⁠.

「⁠주임원사⁠: 편대장 셔츠 깃 또 들림⁠」

손으로 셔츠 깃을 눌렀다⁠. 어머니가 문간에서 고개를 저었다⁠. 반대쪽 깃이었다⁠.

채팅창이 잠깐 멈춘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너무 빨라서 글자가 읽히지 않았다⁠. 숫자만 보였다⁠. 동시 접속자 이십삼만⁠.

*

명곤이 접이식 의자를 끌어 카메라 앞으로 왔다⁠. 의자가 신문지 위에서 한 번 기우뚱했다⁠. 명곤이 다리를 벌려 중심을 잡았다⁠. 귤 하나를 손바닥에 쥐고 있었다⁠.

“⁠원격전투단 사령관 천명곤입니다⁠.⁠”

채팅창에 「⁠실화냐⁠」가 백 개쯤 지나갔다⁠.

“⁠재작년 겨울⁠, 강화 해안 초소에서 스물한 살 병사 둘이 죽었습니다⁠. 한 사람은 사물함 안쪽 문에 봉탁진 씨 결승 포스터를 붙여 두었습니다⁠. 저는 두 사람 장례식에 다녀오고 나서⁠, 초소에 사람 대신 화면을 두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뒤로 초소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명곤이 귤을 반으로 쪼갰다⁠. 알맹이 하나를 떼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었다⁠.

“⁠사람이 안 죽는 전쟁이라고 말한 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우리 사람이 안 죽는다는 말이었습니다⁠. 강 건너는 세지 않았습니다⁠.⁠”

명곤은 귤 반쪽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보조 사격을 만든 것도 저고⁠, 이름이 안 남게 한 것도 저고⁠, 봉탁진 씨를 조종석에 앉힌 것도 저입니다⁠. 이름이 안 남아야 조종사들이 오래 버틴다고 생각했습니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름이 안 남으면 누구도 짊어지지 않습니다⁠. 어제 새벽⁠, 끈 손이 느려서 병사 하나가 다쳤습니다⁠. 그 손에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봉탁진 씨와 나샛별 조종사는 그 이름을 짊어졌습니다⁠. 저는 이름 없는 손으로 일 년을 쏘았습니다⁠.⁠”

명곤이 카메라를 똑바로 보았다⁠.

“⁠오늘 오후⁠, 사령관 권한으로 원격전투단 모든 기체의 보조 사격을 끄라고 명령했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모든 사격은 조종사가 직접 누릅니다⁠. 모든 기록에 이름이 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사의를 냈습니다⁠. 보조를 끈 뒤 초소에서 사람이 다치면⁠, 그것까지 제가 짊어지고 나가겠습니다⁠.⁠”

명곤이 일어났다⁠. 일어나다 접이식 의자가 넘어졌다⁠. 신문지가 바닥에 흩어졌다⁠. 어머니가 문간에서 들어와 의자를 세우고 신문지를 다시 접어 끼웠다⁠. 다 끼우고 명곤을 올려다보았다⁠.

“⁠앉으소⁠. 아직 귤 반쪽 남았다⁠.⁠”

명곤이 다시 앉았다⁠. 남은 반쪽을 먹었다⁠. 채팅창은 내내 위로 흘러갔다⁠.

「⁠사령관 귤 까는 거 첫 방송이랑 똑같음⁠」

「⁠어머님이 국방부 장관 하세요⁠」

「⁠모혜운⁠: 기록 마칩니다⁠.⁠」

방송을 끄고 나서 명곤은 현관에서 군화 끈을 맸다⁠. 이번에는 매듭이 엉키지 않았다⁠. 다 묶고 일어나서 나를 보았다⁠.

“⁠아는 채로 정하자고 하셨지요⁠.⁠”

“⁠네⁠.⁠”

“⁠저는 오늘 아침에 알았습니다⁠. 초소에서 다친 병사 사진을 보고⁠, 그 병사 이름을 처음으로 찾아봤습니다⁠. 일 년 동안 강 건너 어느 진지에서 누가 쓰러졌는지는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찾아볼 생각을 안 했습니다⁠.⁠” 명곤이 모자를 썼다⁠. “⁠알고 나서 정했습니다⁠. 끄기로⁠.⁠”

어머니가 부엌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나왔다⁠. 김치통이 들어 있었다⁠. 명곤이 손을 저었다⁠.

“⁠부대에는 이런 거 들고 못 들어갑니다⁠.⁠”

“⁠부대 말고 니 집에 가져가라⁠. 내일부터 집에 있을 거 아이가⁠.⁠”

명곤은 한참 봉지를 보다가 받았다⁠.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현관문이 닫혔다⁠. 어머니가 문에 달린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명곤이 김치통을 두 손으로 안고 서 있다고 했다⁠. 군복 가슴에 김치통이라고⁠, 어머니가 웃었다⁠.

*

일주일 사이에 많은 것이 줄었다⁠. 와글TV 구독자는 사십오만에서 이십이만이 되었다⁠. 반쯤 줄었다⁠. 원격전투단 계약은 해지되었다⁠. 국방부는 나를 기밀 누설로 조사했다⁠. 조사관은 혜운의 은색 막대가 아니라 내 방송 다시 보기를 증거로 틀었다⁠. 방송에서 내가 직접 말한 것이니 내가 짊어지면 되었다⁠. 혜운도 같은 건물 다른 방에서 조사를 받았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혜운이 머그잔 하나를 들고 있었다⁠. 커피가 반쯤 남아 있었다⁠.

“⁠끝까지 안 마셨네요⁠.⁠”

“⁠조사가 끝나면 마시겠습니다⁠.⁠” 혜운이 잔을 들어 보였다⁠. “⁠기록 정정 하나 하겠습니다⁠. 첫 타격 날 1번 진지⁠, 봉 편대장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이름 없는 줄이 아니라⁠.⁠”

샛별은 남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보조를 끈 기체로 날았다⁠. 저녁마다 방송을 켰다⁠. 방송 제목 앞에 날짜와 누른 횟수를 붙였다⁠. 「⁠0⁠」인 날이 많았다⁠. 「⁠1⁠」인 날⁠, 샛별은 방송을 짧게 하고 껐다⁠. 채팅창에 아무도 「⁠GG⁠」를 치지 않았다⁠. 「⁠수고했어요⁠」만 올라왔다⁠.

지솔은 후방 부대에서 문자를 보냈다⁠. 「⁠누나 방송 다 봄⁠. 스승님한테 깁스 사인 고맙다고 전해 줘⁠. 방패가 젤 멋있었음⁠」 방패는 지솔이 그렸다⁠. 나는 지솔의 말을 고치지 않았다⁠.

주임원사는 문자를 한 통 보냈다⁠. 「⁠편대장 잘 자나⁠」 잘 잔다고 답했다⁠. 거짓말이었다⁠. 주임원사가 다시 보냈다⁠. 「⁠처음엔 다 못 자⁠. 한 달 지나면 자⁠」

감자칩은 보조를 끈 기체로 처음 단추를 누른 날 전화를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숨만 쉬었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감자칩이 마지막에 말했다⁠. 형⁠, 손가락이 무거워요⁠. 나는 맞다고 했다⁠.

종아리를 다친 병사는 휴가를 받았다⁠. 휴가 첫날 PC방에 왔다⁠. 목발을 짚고 와서⁠, 사인 대신 같이 한 판 두자고 했다⁠. 내가 졌다⁠. 병사가 목발로 바닥을 두 번 쳤다⁠.

*

조끼는 마지막에 돌려주었다⁠.

이월 첫 주⁠, 어머니 PC방 맨 구석 자리⁠. 명곤은 사복이었다⁠. 남색 점퍼⁠, 회색 털모자⁠. 털모자를 벗자 머리가 눌려 있었다⁠. 나는 카키 조끼를 개어서 책상 위에 놓았다⁠. 가슴의 「⁠봉탁진⁠」 명찰이 위로 오게 놓았다⁠. 명곤이 조끼를 펴서 안쪽 태그를 보았다⁠. 「⁠제작 2035⁠. 11⁠. 02⁠」

“⁠제가 서명하기 한 달 전에 만드셨잖아요⁠.⁠”

“⁠예⁠. 봉탁진 씨가 반드시 올 줄 알았습니다⁠.⁠”

“⁠틀리셨어요⁠. 반드시는 아니었어요⁠.⁠”

“⁠압니다⁠. 그래도 오셨습니다⁠.⁠”

명곤이 조끼를 다시 개어 무릎에 올렸다⁠. XL이 명곤 무릎 위에서는 컸다⁠.

모니터 두 대에 아홉 성채 화면이 떴다⁠. 명곤이 푸른 성채⁠, 내가 붉은 성채를 골랐다⁠. 어머니가 컵라면 두 개와 귤 두 개를 키보드 사이에 놓고 갔다⁠.

판이 시작되었다⁠. 명곤이 병력을 모아 곧장 내 성채로 보냈다⁠. 지난번처럼 먼저 때렸다⁠. 나는 막았다⁠. 성채 문을 닫고⁠, 탑을 세우고⁠, 기다렸다⁠. 오른손이 마우스 위에서 조금 떨렸다⁠. 보호대를 풀어 둔 손목이 서늘했다⁠. 파스 냄새가 났다⁠. 아침에 어머니가 붙여 준 파스였다⁠.

“⁠이번에도 끝까지 안 때리실 겁니까⁠?⁠”

명곤이 화면을 보며 물었다⁠. 털모자에 눌린 머리가 모니터 불빛에 하얗게 보였다⁠. 쉰넷의 손이 마우스를 꽉 쥐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모르는 철벽은 처음 봅니다⁠.⁠”

“⁠저도 처음이에요⁠.⁠”

십오 분째⁠, 명곤의 공격이 아홉 번째로 내 성채 문 앞에서 꺾였다⁠. 명곤이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화면을 보았다⁠. 내 손도 멈추어 있었다⁠. 지금 나가면 끝낼 수 있었다⁠. 성채 문을 열면 명곤의 본진까지 길이 비어 있었다⁠.

나는 성채 문 위에 커서를 올려놓았다⁠. 오래 보았다⁠. 누르지 않았다⁠. 명곤이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니터 아래쪽을 흐리게 덮었다⁠. 어머니가 카운터에서 우리 두 사람을 보고⁠, 난로 가까이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 창밖에 눈이 오기 시작했다⁠. 내 검지는 마우스 단추 위에 얹혀 있었다⁠. 단추는 차가웠고⁠, 가볍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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