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628자)

영웅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첫 타격 사흘 뒤⁠, 내 채널 구독자가 사십오만을 넘었다⁠. 방송을 한 번도 켜지 않았는데 늘었다⁠. 와글TV에 올라간 결승 다시 보기 영상이 하루 만에 천만 번을 넘었고⁠, 영상의 한 장면이 잘려서 온 사방에 퍼졌다⁠. 푸른 세모가 붉은 성채 위로 내려가고⁠, 효과음이 나고⁠, 해설자가 외치는 장면이었다⁠.

「⁠철벽이 인정하는 한 방입니다⁠!⁠」

금발이 숙소 침대 위 칸에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짧은 영상이 이어서 돌았다⁠. 고등학생들이 급식 줄에서 식판을 내려치며 「⁠철벽이 인정하는 한 방⁠」을 외쳤다⁠. 회사원이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외쳤다⁠. 강아지가 공을 물어 오자 주인이 외쳤다⁠.

“⁠형⁠, 밈 됐어요⁠. 강아지 버전이 조회수 제일 높아요⁠.⁠”

“⁠내려⁠.⁠”

“⁠제가 올린 거 아니에요⁠. 전 국민이 올린 거예요⁠.⁠”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PC방에 기자들 왔다⁠.⁠”

“⁠뭐라고 하셨어요⁠?⁠”

“⁠라면 팔았다⁠. 기자들이 라면을 잘 묵더라⁠. 다섯 개 팔았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씹었다⁠. 귤이었다⁠. “⁠니 밥은 뭇나⁠?⁠”

“⁠먹었어요⁠.⁠”

어머니는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결승 날 채팅창에 「⁠탁진아⁠」 세 글자를 친 것도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위 칸 바닥의 D-412가 보였다⁠. 숫자 위에 그어진 줄들이 사흘 동안 하나도 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

점심때 식당 문을 열자 박수가 터졌다⁠. 조종사들이 식판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쳤다⁠. 정비병들도 쳤다⁠. 배식대 뒤 취사병이 국자를 든 채로 쳤다⁠. 국자에서 미역국이 튀었다⁠.

“⁠편대장님⁠, 돈가스 두 장입니다⁠.⁠”

취사병이 내 식판에 돈가스를 두 장 올렸다⁠. 뒤에 선 감자칩이 자기 식판을 내밀었다⁠.

“⁠저도 같은 편대인데요⁠.⁠”

“⁠편대원은 한 장입니다⁠.⁠”

“⁠편대장님 옆자리는요⁠?⁠”

“⁠옆자리도 한 장입니다⁠.⁠”

감자칩은 한 장을 받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젓가락으로 내 두 번째 돈가스 끝을 조금 잘라 갔다⁠. 나는 못 본 척했다⁠. 주임원사가 맞은편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주임원사 식판에도 돈가스가 두 장이었다⁠.

“⁠주임원사님은 왜 두 장이에요⁠?⁠”

“⁠나는 원래 두 장이야⁠. 이십육 년째⁠.⁠”

식사 중에 지솔이 깁스 팔을 들고 왔다⁠. 하얀 석고 위에 이름과 그림이 빽빽했다⁠. 하트⁠, 강아지⁠, 「⁠빨리 나아라⁠」⁠, 누군가 그린 감자칩 봉지⁠. 지솔이 매직펜을 내밀었다⁠.

“⁠편대장님도 써 주세요⁠. 남은 자리가 손목 안쪽밖에 없어요⁠.⁠”

손목 안쪽은 좁았다⁠. 펜을 쥐고 한참 망설였다⁠. 식당 안의 눈이 다 내 손끝을 보았다⁠. 누군가 작게 말했다⁠. 철벽이 인정하는⁠. 몇 사람이 웃었다⁠. 나는 「⁠봉탁진⁠」 세 글자만 썼다⁠. 지솔은 아쉬운 얼굴로 깁스를 돌려 보다가⁠, 이름 밑에 자기가 직접 작은 방패를 하나 그려 넣었다⁠.

“⁠이러면 철벽이죠⁠.⁠”

텔레비전에서 점심 뉴스가 나왔다⁠. 천명곤 사령관이 국방부 앞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화면 아래에 「⁠무인 첫 타격⁠, 아군 피해 없어⁠」라는 글자가 지나갔다⁠. 명곤이 말했다⁠. 우리 장병 가운데 다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식당이 다시 박수를 쳤다⁠. 나는 돈가스를 씹었다⁠. 씹을수록 잘 넘어가지 않았다⁠.

*

밤마다 열 화상 녹화를 돌려 보았다⁠. 혜운의 은색 막대 사본에 첫 타격 화면도 들어 있었다⁠. 무너진 흙벽⁠, 하얀 덩어리 하나⁠, 곁에 엎드린 작은 덩어리 하나⁠. 녹화는 이 분 뒤에 끝났다⁠. 끝난 뒤의 일은 아무도 녹화하지 않았다⁠.

나흘째 새벽⁠, 정찰을 자청했다⁠. 편대장이라 막는 사람이 없었다⁠. 1번 진지 자리는 갈대밭 한가운데 검게 남아 있었다⁠. 흙벽은 무너진 채였고⁠, 길쭉한 흙더미가 하나에서 둘이 되어 있었다⁠. 새 흙더미는 처음 것보다 컸다⁠. 머리맡에 나뭇가지 대신 빨간 천 조각이 꽂혀 있었다⁠.

누런 개가 새 흙더미 옆에 엎드려 있었다⁠. 살아 있었다⁠. 내 기체가 지나가자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짖지 않았다⁠. 오래 보다가 다시 머리를 앞발에 얹었다⁠.

흙더미를 만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와서 묻고⁠, 빨간 천 조각을 꽂고⁠, 갔다⁠. 나는 흙을 덮은 사람을 찾으려고 갈대밭 위를 두 바퀴 돌았다⁠. 찾지 못했다⁠.

*

오전 열 시⁠, 명곤이 사령관실로 나를 불렀다⁠. 책상 위에 두툼한 봉투 하나와 종이 두 장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준 귤은 이제 책상에 없었다⁠.

“⁠모레 오전⁠, 국방부에서 표창식이 있습니다⁠. 봉 편대장이 받습니다⁠. 같은 날 저녁 아홉 시 뉴스에 생방송으로 나가십니다⁠. 질문지는 모 소령이 미리 받아 두었습니다⁠.⁠”

명곤이 종이 한 장을 내 앞으로 밀었다⁠. 첫 질문이 맨 위에 있었다⁠. 「⁠첫 타격을 결심한 순간⁠,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안 나가요⁠.⁠”

“⁠표창은 받으셔야 합니다⁠. 편대원 스무 명이 같이 받습니다⁠. 봉 편대장이 안 받으면 스무 명도 못 받습니다⁠.⁠”

“⁠그럼 받을게요⁠. 받고 거기서 말할 거예요⁠.⁠”

“⁠무엇을 말입니까⁠?⁠”

“⁠전부요⁠.⁠” 나는 조끼 안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은색 막대와 접힌 상금 증서가 손바닥 밑에서 겹쳤다⁠. “⁠조종석 밑 회색 상자⁠. 사십 초⁠. 이름 없는 줄⁠. 그 상자가 배운 손이 제 손이라는 거⁠. 기체 대 기체가 아니라는 거⁠. 그리고 1번 진지에 사람이 있었고⁠, 제가 눌렀다는 거⁠.⁠”

명곤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오래 나를 보았다⁠. 결승을 마흔한 번째 보던 눈이었다⁠.

“⁠봉탁진 씨⁠. 1번 진지에 누가 있었는지 저도 압니다⁠. 정찰 영상으로 매일 봤습니다⁠. 주먹밥을 개와 나눠 먹는 것도 봤고⁠, 흙더미에 주먹밥을 놓는 것도 봤습니다⁠. 오늘 새벽 흙더미가 둘이 된 것도 봤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도 1번을 첫 표적으로 정한 사람이 저입니다⁠. 저는 그걸 압니다⁠. 압니다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요⁠?⁠”

“⁠봉탁진 씨가 말하는 날⁠, 국회는 원격전투단 예산을 깎습니다⁠. 사람이 안 죽는 전쟁이라고 믿고 표를 준 사람들이니까요⁠. 깎이면 조종석이 줄고⁠, 초소에 화면이 줄고⁠, 스무 살이 늘어납니다⁠.⁠” 명곤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한 번 짚었다⁠. “⁠재작년 겨울처럼⁠. 사물함에 봉탁진 씨 포스터를 붙여 두던 스물한 살처럼⁠.⁠”

“⁠그건 장군님이 거짓말해서 산 시간이잖아요⁠.⁠”

“⁠맞습니다⁠. 거짓말로 산 시간입니다⁠. 거짓말로 산 시간 동안 초소에서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명곤의 목소리는 낮아지지도 높아지지도 않았다⁠. “⁠봉탁진 씨는 진실로 그다음 시간을 사실 수 있습니까⁠? 그 시간 동안 초소에서 몇이 죽을지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명곤이 두 번째 종이를 내 앞에 놓았다⁠. 서약서 사본이었다⁠. 세 번째 조항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봉탁진 씨가 말하면 기밀 누설로 조사받습니다⁠. 그건 봉탁진 씨 일입니다⁠. 그런데 기밀을 넘긴 사람도 조사받습니다⁠. 은색 막대가 어디서 왔는지 조사관이 묻습니다⁠.⁠”

“⁠소령님은 상관없어요⁠.⁠”

“⁠그리고 나샛별 조종사⁠.⁠” 명곤은 내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샛별 조종사 기체에 이름 없는 줄이 일곱 있습니다⁠. 봉탁진 씨가 열면 그 일곱 줄에 이름이 붙습니다⁠. 나샛별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나지솔 상병은 누나 이름을 뉴스에서 봅니다⁠.⁠”

명곤이 봉투를 내 앞으로 밀었다⁠. 표창장과 훈장 상자가 들어 있었다⁠. 상자가 무거웠다⁠.

“⁠모레 오전입니다⁠. 질문지는 가져가십시오⁠.⁠”

*

사령관실 앞 복도 창가에 샛별이 기대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한쪽 발끝으로 바닥 타일 이음매를 문지르고 있었다⁠. 지난번과 같은 자세였다⁠.

“⁠들었어요⁠. 모 소령님한테⁠.⁠”

“⁠샛별아⁠.⁠”

“⁠스승님⁠, 말하지 마세요⁠.⁠” 샛별이 팔짱을 풀었다⁠. “⁠저 일곱 줄 짊어진다고 했잖아요⁠. 짊어지는 거랑 뉴스에 나오는 건 달라요⁠. 짊어지는 건 제가 하는 거고⁠, 뉴스에 나오는 건 남이 하는 거예요⁠.⁠”

“⁠네가 안 누른 거야⁠.⁠”

“⁠제가 오래 본 거예요⁠.⁠” 샛별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그리고 지솔이요⁠. 지솔이 다음 주에 후방 가요⁠. 깁스 풀고 가요⁠. 누나가 뉴스에 나오면 지솔이 생활관에서 뭐라고 해요⁠? 다들 깁스에 사인해 줬는데⁠, 그 사람들이 지솔이한테 뭐라고 해요⁠?⁠”

샛별이 내 조끼 안주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막대가 들어 있는 자리였다⁠.

“⁠그거 저 주세요⁠. 아니면 버리세요⁠.⁠”

“⁠못 버려⁠.⁠”

“⁠그럼 들고만 계세요⁠. 말하지 말고⁠.⁠”

샛별은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내 앞에서 버텼다⁠. 일곱 해 동안 내 말을 끝까지 안 듣던 얼굴이⁠, 이번에는 내가 자기 말을 끝까지 듣기를 기다렸다⁠. 나는 끝까지 들었다⁠. 듣고 나서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샛별의 눈가가 빨개졌다가⁠, 빨개진 채로 굳었다⁠. 샛별은 한참 뒤에야 계단으로 내려갔다⁠.

*

밤 열한 시⁠, 빈 조종동에 혼자 앉았다⁠. 화면은 다 꺼져 있었다⁠. 조종대에 테이프로 붙인 작은 카메라와 링 조명⁠, 카메라 옆에 놓인 우승컵만 비상등 불빛에 희미하게 보였다⁠. 질문지를 뒤집어 하얀 뒷면을 펴고 볼펜을 쥐었다⁠.

첫 줄을 썼다⁠. 「⁠첫 타격을 결심한 순간은 없었습니다⁠.⁠」 지웠다⁠. 다시 썼다⁠. 「⁠제가 눌렀습니다⁠.⁠」 이 말은 지우지 않았다⁠. 다음 줄이 나오지 않았다⁠.

팔꿈치가 조종대 옆 단추를 건드렸다⁠. 링 조명이 확 켜졌다⁠. 하얀 동그라미 빛이 정면에서 내 얼굴을 때렸다⁠. 눈이 부셔서 볼펜을 떨어뜨렸다⁠. 단추를 찾느라 손을 더듬는 사이⁠, 문 앞에서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누구야⁠?⁠”

순찰을 돌던 주임원사였다⁠. 손전등이 내 얼굴과 링 조명 사이를 오갔다⁠.

“⁠방송하냐⁠?⁠”

“⁠아니요⁠. 연습해요⁠.⁠”

“⁠무슨 연습⁠?⁠”

“⁠말하는 연습이요⁠.⁠”

주임원사가 들어와서 링 조명 단추를 정확히 한 번에 눌러 껐다⁠. 손전등으로 내 질문지 뒷면을 비췄다⁠. 한 줄을 읽었다⁠. 짧은 한 줄인데 오래 읽었다⁠.

“⁠편대장⁠.⁠” 주임원사가 손전등을 껐다⁠. “⁠나는 이십육 년 동안 남 대신 말해 주는 사람을 많이 봤어⁠. 대신 말해 준 사람은 다 진급했어⁠. 제 입으로 말한 사람은 다 전역했어⁠.⁠”

“⁠어느 게 나아요⁠?⁠”

“⁠전역한 사람들이 잠은 잘 자더라⁠.⁠”

주임원사는 더 말하지 않고 나갔다⁠. 나가면서 비상등 아래 우승컵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먼지가 묻어 있었는지 바지에 손을 닦았다⁠.

*

이튿날 아침⁠, 기록실 문에 새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번호식이었다⁠. 문 옆에 상자 두 개가 쌓여 있었다⁠. 서류와 컵과 작은 화분이 든 상자였다⁠. 혜운이 상자 위에 마지막으로 머그잔 넷을 올려놓고 있었다⁠. 넷 다 비어 있었다⁠. 끝까지 마신 잔이었다⁠.

혜운 옆에 낯선 군복 둘이 있었다⁠. 팔에 감찰 완장을 찼다⁠. 하나가 서류철을 들고 혜운에게 무언가를 읽어 주었다⁠. 나는 몇 낱말만 들었다⁠. 보직 해임⁠, 기밀 관리⁠, 조사⁠.

“⁠소령님⁠.⁠”

혜운이 나를 보았다⁠. 낯선 군복 둘도 나를 보았다⁠. 혜운은 상자 하나를 들어 올렸다⁠. 머그잔 넷이 상자 위에서 부딪쳐 짧게 울렸다⁠.

“⁠봉 편대장⁠. 기록실 열쇠는 반납했습니다⁠.⁠”

“⁠제가 가져간 것 때문이에요⁠?⁠”

“⁠사령관님이 해임하셨습니다⁠. 사유는 기밀 관리 소홀입니다⁠. 기록에 그렇게 적혔습니다⁠.⁠” 혜운이 감찰 완장을 한 번 보았다가 나를 보았다⁠. “⁠기록은 정확합니다⁠. 제가 관리를 소홀히 했습니다⁠. 일부러 했습니다⁠.⁠”

감찰 하나가 혜운에게 그만 가자는 손짓을 했다⁠. 혜운이 상자를 들고 복도를 걸어갔다⁠. 걸어가다 멈추고⁠,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사령관님이 저를 먼저 해임하신 건⁠, 표창식 전에 봉 편대장이 봐야 해서입니다⁠. 말하면 누가 다치는지⁠.⁠”

혜운은 다시 걸었다⁠. 발소리가 일정했다⁠. 계단참에서 머그잔 넷이 한 번 더 부딪쳤다⁠. 나는 새 자물쇠를 보았다⁠. 번호판 숫자 네 개가 전부 0에 맞춰져 있었다⁠. 엄지로 맨 앞 숫자를 한 칸 돌렸다⁠. 딸깍 소리가 났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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