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28자)

첫 타격

은퇴한 프로게이머 드론 조종사 · 여오령

1월 4일 오전 여덟 시 반⁠, 주임원사가 조종석마다 핫팩을 하나씩 놓고 다녔다⁠. 조종실 난방은 충분했다⁠. 핫팩은 손에 쥐라고 주는 것이었다⁠.

“⁠사령관님 개인 돈이다⁠. 아껴 써라⁠.⁠”

“⁠핫팩을 어떻게 아껴 써요⁠?⁠”

금발이 물었다⁠. 주임원사는 금발 자리에만 핫팩을 하나 더 놓고 갔다⁠. 금발이 핫팩 두 개를 양말 속에 하나씩 넣었다⁠. 오늘 신은 양말은 초청전 때 신은 양말이라고 했다⁠. 빨지 않았다고 했다⁠. 옆자리 신병이 의자를 조금 멀리 밀었다⁠.

조종실 뒤쪽 벽 큰 화면에는 와글TV 방송 대기 화면이 떠 있었다⁠. 「⁠국군 초청전 결승 — 잠시 후 시작⁠」 외신 카메라가 넷으로 늘었고⁠, 해설 부스 유리창 안에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었다⁠. 열 해 전 내 결승을 중계하던 해설자였다⁠. 머리가 하얗게 셌고⁠,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맨 윗줄 굵은 글씨가 유리창 너머로도 보였다⁠.

해설자 옆에 마이크가 한 대 더 있었고⁠, 의자는 비어 있었다⁠. 해설 대본을 받은 날 내 자리로 정해졌던 의자였다⁠. 해설자가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만 숙였다⁠.

내 조종석 밑 회색 상자에 초록 불이 들어와 있었다⁠. 어젯밤 누군가 전원 줄을 다시 꽂아 놓았다⁠. 화면 구석에 노란 글씨 대신 하얀 글씨가 떠 있었다⁠. 「⁠보조 연결⁠」 명곤이 내 뒤에 와 있었다⁠.

“⁠편대장 기체도 켰습니다⁠. 오늘만입니다⁠.⁠”

“⁠제 기체는 제가 정한다고 했잖아요⁠.⁠”

“⁠오늘은 1번 위를 날 기체 전부입니다⁠. 편대장 기체도 1번 위를 납니다⁠.⁠” 명곤은 내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지 않았다⁠. 반 걸음 떨어져 있었다⁠. “⁠봉 편대장이 누르면 보조는 할 일이 없습니다⁠.⁠”

“⁠어제 누가 끝낼지 정하라고 하셨죠⁠.⁠”

“⁠정하셨습니까⁠?⁠”

“⁠가 보면 알아요⁠.⁠”

명곤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샛별의 휴대전화가 거치대에서 짧게 떨렸다⁠. 샛별이 화면을 내게 보였다⁠. 지솔이었다⁠.

「⁠누나 병원 휴게실 티비로 결승 본대 다들⁠. 나도 봄⁠. 깁스한 팔로 응원함⁠」

메시지 아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군 병원 휴게실⁠, 환자복 입은 병사 여럿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었다⁠. 맨 앞에서 지솔이 깁스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깁스의 하얀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혜운의 목소리가 천장 스피커에서 났다⁠. “⁠아홉 시 일 분 전⁠.⁠”

나는 핫팩을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손이 따뜻하면 손끝이 둔해졌다⁠. 조종기 고무가 차가웠다⁠. 조종대 귀퉁이에는 벙커 일기 때 혜운이 청테이프로 붙인 작은 카메라와 링 조명이 그대로 있었고⁠, 카메라 옆에 어머니가 봉지에 넣어 준 우승컵이 놓여 있었다⁠. 은빛 컵 표면에 오른손목의 검은 보호대가 둥글게 휘어 비쳤다⁠.

*

아홉 시⁠, 편대 기체 스무 대가 강을 건넜다⁠. 회색 강물 위로 우리 기체의 그림자가 줄지어 지나갔다⁠. 내 화면에는 아이콘이 없었다⁠. 갈대밭⁠, 흙길⁠, 흙벽 진지들⁠. 지도 위 1번부터 12번까지가 실제 땅 위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다른 편대가 7번부터 12번을 맡았다⁠. 화면 오른쪽 끝에서 하얀 번쩍임이 연달아 올라왔다⁠. 우리 편대는 1번부터 6번이었다⁠. 샛별이 3번 위에 있었고⁠, 감자칩이 1번 쪽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나는 맨 앞에서 1번으로 갔다⁠.

1번 진지가 보였다⁠. 흙벽⁠, 천막⁠, 탁자⁠. 흙벽 옆의 흙더미에 꽂힌 나뭇가지⁠. 흙더미 머리맡의 은박지는 없었다⁠. 개가 먹었거나⁠, 빨간 목도리가 치웠거나⁠.

스무 날 전 이 탁자에서 빨간 목도리는 주먹밥을 반으로 나눠 개에게 주었다⁠. 같은 탁자였다⁠. 탁자 다리 하나가 흙에 조금 더 박혀 있었다⁠.

빨간 목도리는 탁자 앞에 없었다⁠. 흙벽 위에 올라 있었다⁠. 태블릿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하늘을 보고 있었다⁠. 우리 기체 스무 대가 갈대밭 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탁자 위의 기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하나⁠, 둘이 아니었다⁠. 천막 뒤에서도 떠올랐다⁠. 열넷이었다⁠. 열넷이 강을 향해 낮게 날았다⁠. 맨 앞의 하나가 강 위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1번에서 열넷 이륙⁠. 목표 강화 해안 초소⁠.⁠” 혜운이었다⁠. “⁠요격 편대 대응⁠.⁠”

우리 편대 가운데 요격을 맡은 일곱이 기수를 돌렸다⁠. 나머지는 각자 표적 위에 있었다⁠. 샛별이 3번에서 기수를 돌렸다⁠.

“⁠제가 갈게요⁠. 초소요⁠.⁠”

샛별의 기체가 강 쪽으로 내리꽂혔다⁠. 빨랐다⁠. 보조가 켜진 샛별의 기체가 열넷 가운데 셋을 강 위에서 떨어뜨렸다⁠. 네 번째 기체를 쫓다가 화면이 흔들렸다⁠. 열넷 가운데 하나가 샛별의 기체를 향해 꺾여 들어왔다⁠. 왼쪽으로 꺾는 기체였다⁠. 샛별의 화면이 하얗게 번쩍이고 검게 꺼졌다⁠.

「⁠기체 신호 끊김 — 샛별⁠」

샛별의 조종석 밑 회색 상자에서 초록 불은 꺼지지 않았다⁠. 기체는 강에 떨어졌는데 보조는 켜진 채였다⁠.

샛별이 조종기를 쥔 채 꺼진 화면을 보았다⁠. 입술이 하얬다⁠.

“⁠스승님⁠, 열한 대 남았어요⁠. 지솔이 자리에 지금 누가 서 있어요⁠. 스물한 살이요⁠.⁠”

*

열한 대가 강화로 갔다⁠. 요격 편대 여섯이 쫓았다⁠. 화면 아래쪽 강 건너편에서 1번 진지의 천막 뒤로 기체 상자가 더 보였다⁠. 아직 안 뜬 상자들이었다⁠. 빨간 목도리는 흙벽 위에서 내려와 상자로 걸어갔다⁠.

“⁠1번에 기체가 더 있습니다⁠.⁠” 혜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1번 위 아군 기체⁠, 감자칩⁠.⁠”

감자칩의 기체가 1번 바로 위에 있었다⁠. 1번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가⁠, 1번 위에 멈춰 있었다⁠. 감자칩의 조종석을 돌아보았다⁠. 감자칩은 조종기를 쥐고 굳어 있었다⁠. 엄지가 단추 위가 아니라 조종기 옆면에 붙어 있었다⁠. 내가 하던 대로였다⁠. 감자칩의 화면 구석에서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보조가 망설임을 세는 숫자였다⁠. 이십오⁠, 이십육⁠.

“⁠감자칩⁠, 빠져⁠!⁠”

“⁠형⁠, 손이 안 움직여요⁠.⁠” 감자칩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사람 저 보고 있어요⁠.⁠”

감자칩의 화면 속에서 빨간 목도리가 상자를 열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털모자 아래 이마⁠, 찬바람에 빨개진 코⁠. 목도리에 반쯤 묻힌 턱⁠. 한 손을 이마에 올려 해를 가렸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했다⁠. 나를 향해 들어 올렸던 손바닥이었다⁠.

서른⁠, 서른하나⁠. 보조가 감자칩의 망설임을 세고 있었다⁠. 사십이 되면 보조가 끝낸다⁠. 끝난 일은 이름 없는 줄로 간다⁠. 감자칩은 이름 없는 줄을 평생 짊어진다⁠. 계단참에서 감자칩 봉지에 얼굴을 묻던 어깨로⁠.

내 기체를 1번 위로 올렸다⁠. 감자칩의 기체 아래⁠, 더 낮게⁠. 화면 가득 1번 진지가 들어왔다⁠. 흙더미⁠, 나뭇가지⁠, 상자⁠, 누런 개⁠, 빨간 목도리⁠.

명곤이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들렸다⁠.

엄지를 조종기 옆면에서 떼었다⁠. 붉은 단추 위에 얹었다⁠. 단추의 고무가 엄지 지문에 닿았다⁠. 열 해 동안 마우스를 누르던 굳은살이었다⁠. 판교 칠층에서 장갑 안에 넣었던 굳은살이었다⁠. 기다리다가 한 번에 끝내던 엄지였다⁠. 지금은 기다리지 않았다⁠. 사십 초를 기다리면 내 엄지가 아니게 되었다⁠.

서른다섯⁠.

눌렀다⁠.

손바닥에 진동이 왔다⁠. 열한 대를 떨어뜨리던 진동보다 무겁지 않았다⁠. 똑같은 무게였다⁠. 똑같아서 손목이 떨렸다⁠.

화면이 하얗게 번쩍였다⁠.

*

흙먼지가 한참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조종실의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감자칩의 화면 구석 숫자가 서른여섯에서 멈췄다가 사라졌다⁠. 감자칩이 조종기를 놓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형이 왜요⁠. 제 위였는데⁠. 제 거였는데⁠.⁠”

“⁠네 거 아니야⁠.⁠”

“⁠형은 안 누르는 사람이잖아요⁠. 형 방송에서 맨날⁠…⁠”

“⁠내 거야⁠.⁠”

감자칩이 입에서 손을 뗐다⁠. 안경알에 김이 서려 눈이 보이지 않았다⁠. 감자칩은 안경을 벗지 않았다⁠.

강 위의 열한 대가 흔들렸다⁠. 조종하던 손이 사라진 기체들이 방향을 잃고 하나씩 회색 물에 떨어졌다⁠. 하얀 물보라가 차례로 올랐다⁠. 해안 초소의 좁은 창은 깨지지 않았다⁠. 창 안에서 방탄모 하나가 고개를 내밀더니⁠, 하늘에 대고 엄지를 들어 올렸다⁠. 지솔의 자리에 들어간 스물한 살이었다⁠. 엄지는 우리 기체가 지나간 하늘을 향해 한참 들려 있었다⁠.

“⁠1번 무력화⁠. 강화 방면 이륙 기체 전량 추락⁠.⁠” 혜운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으려고 숫자만 말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열 화상으로 바꾸었다⁠. 1번 진지의 흙벽이 무너져 있었다⁠. 천막은 없었다⁠. 무너진 흙벽 앞에 하얀 덩어리 하나가 누워 있었다⁠. 목 언저리가 다른 데보다 조금 더 밝았다⁠. 목도리를 두 번 감은 자리였다⁠. 하얀 덩어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하얀 덩어리 하나가 무너진 흙벽 위를 뛰어다녔다⁠. 누운 덩어리 곁으로 왔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왔다⁠. 개였다⁠. 개는 누운 덩어리의 목도리 언저리에 코를 대고⁠, 떼고⁠, 다시 댔다⁠.

나는 엄지를 단추에서 떼지 못했다⁠. 단추는 이미 눌렸고 다시 올라와 있었다⁠. 엄지는 올라온 단추 위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명곤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어깨를 빼지 않았다⁠. 빼지 않고 말했다⁠.

“⁠보셨어요⁠?⁠”

“⁠봤습니다⁠.⁠”

“⁠사람이 눌렀어요⁠. 기계 말고⁠.⁠”

“⁠봤습니다⁠.⁠”

명곤은 손을 거두었다⁠. 두 번 대답하고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샛별이 자기 조종석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왔다⁠. 내 화면의 하얀 덩어리 둘을 보았다⁠. 큰 것과 작은 것⁠. 샛별은 아무 말 없이 내 손목 보호대의 찍찍이를 한 칸 풀었다가 다시 붙였다⁠. 일곱 해 전 내가 샛별에게 해 주던 일이었다⁠. 경기 끝나면 손목 풀어 주라고 가르친 일이었다⁠.

*

조종실은 오래 조용했다⁠. 주임원사가 조종석을 돌며 아무도 뜯지 않은 핫팩을 거두었다⁠. 금발 양말 속 핫팩 두 개만 뜯겨 있었다⁠. 주임원사는 거둔 핫팩을 상자에 넣다가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뜯어라⁠. 손 차다⁠.⁠”

나는 핫팩을 쥐고 뜯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서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주임원사는 더 말하지 않고 다음 조종석으로 갔다⁠.

아홉 시 사십 분⁠, 조종실 뒤쪽 벽의 큰 화면에서 방송이 이십 분을 따라왔다⁠. 화면 속 지도 위에 아이콘들이 떠 있었다⁠. 1번 진지는 붉은 성채 모양이었고⁠, 내 기체는 푸른 세모였다⁠. 푸른 세모가 붉은 성채 위로 내려갔다⁠. 성채가 산뜻한 효과음과 함께 부서졌다⁠. 해설 부스에서 해설자가 종이를 들고 외쳤다⁠.

“⁠철벽이 인정하는 한 방입니다⁠!⁠”

해설자는 열 해 전 결승 때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외치고 나서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았다⁠. 내 얼굴을 보더니 종이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다음 줄을 읽지 않았다⁠. 조종실 스피커에서 해설이 울렸다⁠. 채팅창이 뒤집혔다⁠.

「⁠철벽 첫 타격⁠!⁠!⁠!⁠!⁠」 「⁠드디어 쐈다⁠」 「⁠십 년 만에 먼저 때림 ㅋㅋㅋㅋ⁠」 「⁠GG⁠」 「⁠만 원 후원 — 철벽 형님 첫 킬 축하합니다⁠」 「⁠오만 원 후원 — 깨끗한 전쟁 철벽 최고⁠」

채팅창이 흘러가는 속도가 읽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후원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기계 목소리가 후원 문구를 하나씩 읽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최고입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채팅 사이로 한 줄이 잠깐 보였다가 밀려 올라갔다⁠.

「⁠탁진엄마⁠: 탁진아⁠」

띄어쓰기가 필요 없는 세 글자였다⁠.

내 화면은 열 화상 그대로였다⁠. 무너진 흙벽 앞에 하얀 덩어리 하나가 누워 있었다⁠. 작은 덩어리가 곁에 엎드려 있었다⁠.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 내 엄지는 붉은 단추 위에 얹혀 있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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