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04자)

북탑의 아버지

시어머니로 빙의한 악녀 며느리 · 진새온

빵집 앞 줄은 강둑을 따라 휘어져 있었다⁠.

밀 이삭 그림을 붙인 빵집은 강변 시장 어귀에 있었다⁠. 문 위에 코르넬의 조카가 그린 밀 이삭이 붙어 있었는데⁠, 이삭이라기보다 누운 빗자루에 가까웠다⁠. 그래도 사람들은 알아봤다⁠. 줄 선 사람들 손에 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바구니마다 동전 몇 닢이 손때 묻은 천에 싸여 있었다⁠. 아침 바람이 강에서 올라와 줄 끝의 아이들이 어른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나는 마차 안에서 줄을 보았다⁠. 가스파르가 맞은편에 앉아 주판알 굴리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다섯 빵집 하루 매상이 지난주의 두 배라고 했다⁠. 분필 섞던 빵집 주인 여섯이 오늘 아침 조합 문 앞에 와서 밀을 달라고 했다고 했다⁠. 가스파르가 신이 나서 마차 창으로 빵집을 가리켰다⁠.

“⁠공작부인이 한번 드셔 보세요⁠. 로슈몽 밀로 구운 겁니다⁠. 한 덩이에 동전 셋⁠. 공작부인께는 넷 받겠습니다⁠.⁠”

“⁠왜 나는 넷이에요⁠?⁠”

“⁠공작부인은 마차를 타셨으니까요⁠.⁠”

웃으려는데 마차 바퀴가 멈췄다⁠. 줄 선 사람 하나가 마차 앞으로 나와 있었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회색 숄을 머리에 둘렀고⁠, 바구니 대신 빈손이었다⁠. 여자는 마차 문에 박힌 로슈몽 문장을 보고 있었다⁠. 밀 이삭⁠. 빵집 문 위에 붙은 빗자루 같은 그림과 같은 모양이었다⁠.

“⁠로슈몽이야⁠?⁠” 여자가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줄 선 사람들이 하나씩 돌아보았다⁠. “⁠로슈몽이 이제 빵을 판다고⁠? 세 해 전 겨울엔 밀을 곳간에 쟁여 두고 문을 잠갔으면서⁠?⁠”

마부가 채찍을 들었다⁠. 나는 마차 창을 열고 마부를 막았다⁠. 여자가 나를 보았다⁠. 회청색 눈과 은빛 섞인 금발을 보고⁠, 여자의 얼굴이 하얘졌다⁠. 공작부인 본인이 마차 안에 있을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다⁠. 하얘진 얼굴이 곧 붉어졌다⁠.

“⁠우리 애가 열두 살이었어⁠.⁠” 여자가 말했다⁠. “⁠빵 한 덩이 사러 새벽에 나갔어⁠. 빵집이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맨 앞에 있던 애들이 밟혔어⁠. 그 겨울 빵값이 세 배였어⁠. 강변에서만 열한 명이 죽었어⁠.⁠”

여자가 숄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마차 문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딱딱하게 굳은 묵은 빵이었다⁠. 줄 선 사람들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아무도 따라 던지지 않았다⁠. 다들 그냥 보았다⁠. 가스파르가 조끼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보지 않았다⁠.

나는 마차 문을 열고 내려가 빵을 주웠다⁠. 반으로 갈라진 빵 속에 회색 가루가 엉겨 있었다⁠. 혀에 대지 않아도 알았다⁠. 분필이었다⁠. 세 해 전 겨울의 빵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말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이 한마디뿐이었다⁠. 마르셀린이 한 일인지 내가 한 일인지 따질 자리가 아니었다⁠. 여자에게 나는 마르셀린이었다⁠. 여자는 내 사과를 받지 않았다⁠. 받지 않고 돌아서서 줄 끝으로 걸어갔다⁠. 줄 끝에 서서 빵을 사려고 기다렸다⁠. 로슈몽 밀로 구운 빵을⁠.

*

저녁에 오딜이 내 머리를 다시 틀어 올렸다⁠. 북쪽 방 거울은 작고 흐렸다⁠. 오딜이 진주 목걸이를 걸어 주며 왜 젊은 마님 찻상에 가는데 이렇게까지 차려입느냐고 물었다⁠.

“⁠면담이니까요⁠.⁠”

“⁠무슨 면담이요⁠?⁠”

“⁠연말 평가 면담⁠. 서로 일 년 동안 뭘 했는지 듣는 자리⁠.⁠”

오딜은 알아듣지 못한 얼굴로 머리핀을 하나 더 꽂았다⁠. 사실 나도 무슨 면담인지 몰랐다⁠. 회사에서는 면담 전날 밤에 팀원의 일 년을 정리해 갔다⁠. 이번에는 정리할 게 없었다⁠. 셀레스타가 무엇을 말할지 하나도 몰랐고⁠, 내가 무엇을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는 것은 화로 옆에 놓인 묵은 빵 하나뿐이었다⁠. 오딜이 빵을 치우려 하자 나는 두라고 했다⁠. 오딜이 빵을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바느질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입에 넣지 않고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오딜이 과자를 남에게 주는 건 처음 보았다⁠.

“⁠마님⁠, 강변 일 들었어요⁠. 마부가 울면서 말했어요⁠.⁠” 오딜이 목소리를 낮췄다⁠. “⁠마님이 마차에서 내려서 빵을 주우셨다고요⁠. 열두 해 동안 마님이 땅에 떨어진 걸 주우신 건 처음이래요⁠.⁠”

*

밤에 나는 안방 문을 두드렸다⁠. 내 방이었던 문을 두드리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결혼하고 처음 친정에 갔을 때⁠, 내 방이었던 방에 엄마가 재봉틀을 들여놓은 것을 보았던 기분과 비슷했다⁠.

“⁠들어오세요⁠.⁠”

셀레스타는 찻상에 찻잔 두 개를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 여섯 중 둘만 빼 두었다⁠. 붉은 곱슬머리를 낮게 묶었고⁠, 연분홍 드레스 대신 짙은 회색 실내복을 입었다⁠. 회색 옷을 입은 셀레스타는 처음이었다⁠. 회색은 붉은 머리를 더 붉게 보이게 했다⁠. 반지만 그대로였다⁠.

셀레스타가 차를 따랐다⁠. 주전자를 기울이는 각도가 정확했다⁠. 찻물이 잔 테두리 아래 손가락 한 마디에서 멈췄다⁠. 나는 한 모금 마셨다⁠. 혀가 놀랐다⁠. 남쪽 산 찻잎이었고⁠, 물이 끓고 나서 숨 두 번쯤 식힌 뒤에 부었다⁠. 찻잎을 꺼낸 시간도 맞았다⁠. 코르넬보다 나았다⁠.

“⁠차를 잘 내리네요⁠.⁠”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셀레스타가 제 잔을 들었다⁠. “⁠하르덴 강 통행문 옆 집에서 살았거든요⁠. 배가 지나갈 때마다 선주들이 아버지한테 차를 한 봉지씩 놓고 갔어요⁠. 아버지는 차 맛으로 배가 어디서 왔는지 맞혔어요⁠. 어머님처럼요⁠.⁠”

어머님처럼⁠. 셀레스타는 어머님처럼이라고 말할 때 나를 보지 않았다⁠.

“⁠세 해 전 겨울에 강이 일찍 얼었어요⁠.⁠” 셀레스타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차 맛처럼 고르고 맑았다⁠. “⁠남쪽 항구에서 수도로 올라오는 곡물선이 다 멈췄죠⁠. 벨랑제 곳간에는 가을 밀이 가득 있었어요⁠. 썰매로라도 올릴 수 있었어요⁠. 어머님은 곳간 문을 잠그셨어요⁠. 강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 빵값이 세 배가 된다고요⁠. 정말로 세 배가 됐어요⁠.⁠”

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받침에 닿는 소리가 크게 났다⁠. 혀끝에 남은 찻물이 갑자기 쓰게 느껴졌다⁠. 찻잎은 그대로였다⁠. 쓴 건 내 입이었다⁠.

“⁠강변 빵집 앞에서 사람들이 밀려 열한 명이 죽었어요⁠. 수도가 뒤집혔죠⁠. 왕실은 누군가를 벌해야 했어요⁠. 로슈몽은 너무 컸어요⁠. 공작가를 벌하면 남쪽 항구가 멈추고⁠, 남쪽 항구가 멈추면 다음 겨울에 또 사람이 죽어요⁠. 그래서 왕실은 작은 집을 골랐어요⁠. 강 중간에 통행문을 가진 집⁠. 곡물선을 막고 뇌물을 받아 곡식이 수도에 못 올라오게 했다는 죄로요⁠.⁠” 셀레스타가 잔을 내려놓았다⁠. “⁠하르덴이었어요⁠.⁠”

셀레스타의 목소리는 끝까지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아서 더 오래 들렸다⁠.

“⁠아버지는 북탑에 들어가셨어요⁠. 영지는 왕실이 거둬 갔어요⁠. 어머니는 이듬해 봄에 돌아가셨고요⁠. 저는 동생이랑 둘이서 어머니 반지까지 팔았어요⁠. 동생은 열여섯 살에 강변 창고에서 짐을 졌어요⁠. 하르덴 백작 아들이 로슈몽 밀 자루를 지고 다녔어요⁠. 로슈몽 곳간 앞에서요⁠.⁠” 셀레스타가 숨을 길게 쉬었다⁠. “⁠그리고 한 해 전 가을에 왕대비전에서 사람이 왔어요⁠.⁠”

셀레스타가 찻상 서랍에서 양피지를 꺼내 펼쳤다⁠. 어젯밤의 금박 백합 테두리⁠. 맨 위에 큰 글씨가 있었다⁠. 「⁠헌상서⁠」 아래 글은 짧았다⁠. 로슈몽 공작가는 남쪽 항구 벨랑제와 곳간과 부두를 왕실에 바친다⁠. 해가 가장 짧은 날의 겨울 연회에서 공작의 서명과 공작가 인장으로⁠.

“⁠왕대비 마마께서 그러셨어요⁠. 로슈몽 같은 집이 다시는 곡식을 쥐고 수도를 굶기지 못하게 하자고⁠. 남쪽 항구를 왕실이 쥐면 다음 겨울엔 아무도 밟혀 죽지 않는다고⁠. 제가 로슈몽에 들어가서 이 문서에 인장과 공작님 서명을 받아 오면⁠, 겨울 연회 날 아버지를 북탑에서 꺼내 주시고 하르덴의 이름을 돌려주시겠다고요⁠.⁠”

“⁠그래서 오렐리앙을⁠…⁠…⁠.⁠”

“⁠벚꽃 아래서 우연히 만난 거 아니에요⁠.⁠” 셀레스타가 처음으로 시선을 떨궜다⁠. 찻잔 속을 보았다⁠. 찻물 위에 촛불이 작게 떠 있었다⁠. “⁠사흘 동안 기다렸어요⁠. 공작님이 말 타고 그 길로 지나가실 때까지⁠. 그건 어머님이 아셔도 돼요⁠. 공작님은 모르셔도 되고요⁠.⁠”

나는 원작의 첫 장면을 떠올렸다⁠. 벚꽃이 흩날리고⁠, 말에서 내린 공작이 길가에 떨어진 손수건을 줍는다⁠. 댓글 첫 줄은 「⁠표지 미쳤다⁠」였다⁠. 손수건 한 장을 떨어뜨리려고 스물한 살 여자가 길가에 사흘을 서 있었다⁠. 원작은 사흘을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지금은요⁠?⁠” 내가 물었다⁠. “⁠지금도 오렐리앙을 그렇게 봐요⁠? 사흘 기다려서 잡은 사람으로⁠?⁠”

셀레스타가 대답하지 않았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 끝이 하얘질 만큼 세게 쥐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고⁠, 어느 쪽 대답인지는 셀레스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원작의 마지막 장을 떠올렸다⁠. 띠지 문구를 쓰느라 에필로그를 대충 넘겼었다⁠. 거기 한 줄이 있었다⁠. 「⁠겨울 연회에서 로슈몽 공작은 남쪽 항구를 왕실에 바쳤고⁠, 하르덴 백작은 이듬해 봄 북탑에서 풀려났다⁠.⁠」 독자들은 이 줄에서 울었다⁠. 「⁠아빠 나와서 진짜 울었음⁠」 나도 이 줄을 읽고 하트를 눌렀다⁠. 시어머니가 수녀원으로 끌려가는 장면 바로 다음 줄이었다⁠.

원작대로 가면 셀레스타는 아버지를 얻는다⁠. 원작이 셀레스타에게 약속한 행복이었다⁠. 행복으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나였다⁠.

“⁠어머님⁠.⁠” 셀레스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손에 핏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올해 일흔이에요⁠. 북탑에는 겨울에 불을 안 때 줘요⁠. 지난겨울에 손가락 두 개가 얼어서 잘라 냈대요⁠. 이번 겨울을 넘기실지 모르겠어요⁠.⁠” 셀레스타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어머님이 지은 죄를 제 아버지가 탑에서 살고 계세요⁠. 그래도 막으실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혀가 말라 붙어 있었다⁠. 낮에 강변에서 주운 묵은 빵이 내 방 화로 옆에 있었다⁠. 반으로 갈라진 채⁠, 회색 가루가 엉긴 채⁠.

나는 셀레스타가 따른 차를 끝까지 마셨다⁠. 다 식어 있었다⁠. 식어도 맛은 정확했다⁠.

“⁠막을 거예요⁠.⁠”

셀레스타의 눈이 커졌다⁠. 나는 빈 잔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벨랑제를 왕실에 주면⁠, 다음 겨울에는 왕실이 곳간 문을 쥐어요⁠. 쥐는 손만 바뀌어요⁠. 세 해 전에 곳간 문을 잠근 손이 이 손이었다면⁠.⁠” 나는 내 오른손을 찻상 위에 펼쳤다⁠. 첫날 아침 찻잔을 던지려던 손이었다⁠. “⁠이 손이 다시 잠그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 왕실 손에 넘기는 거 말고⁠.⁠”

“⁠그럼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는 내가 꺼낼게요⁠.⁠”

말해 놓고 나도 놀랐다⁠. 어떻게 꺼낼지는 하나도 몰랐다⁠. 회사에서 이런 말을 하면 다음 날 아침 팀원 전부가 야근 각오를 했다⁠. 셀레스타가 나를 보았다⁠. 믿지 않는 눈이었고⁠, 믿고 싶어서 화가 난 눈이었다⁠.

“⁠어머님이 무슨 수로요⁠?⁠”

“⁠몰라요⁠. 지금부터 찾아요⁠. 서른 날 남았잖아요⁠.⁠” 나는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헌상서는 연회 날까지 서랍에 넣어 둬요⁠. 오렐리앙 서명 받기 전에 나랑 한 번만 더 얘기하고⁠.⁠”

셀레스타는 대답하지 않고 헌상서를 접었다⁠. 접어서 서랍에 넣고⁠, 서랍을 잠그고⁠, 열쇠를 허리의 쇠고리에 걸었다⁠. 그리고 찻상에 남은 내 빈 잔을 들어 다시 채웠다⁠. 아무 말 없이⁠. 나는 선 채로 두 번째 잔을 받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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