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01자)

소금이 다르다

시어머니로 빙의한 악녀 며느리 · 진새온

국은 한 숟가락이면 충분했다⁠.

혀 가운데가 먼저 짰고⁠, 짠맛이 지나간 자리에 쓴맛이 혀뿌리까지 길게 남았다⁠. 바다 소금은 짠맛이 둥글게 왔다가 단맛을 조금 남기고 빠진다⁠. 이건 바위를 깨서 만든 회색 소금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혀가 이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었다⁠. 서울에서 나는 라면 수프와 사골 육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소금 바뀌었죠⁠.⁠”

찻상 맞은편에 선 사내가 국솥 뚜껑을 든 채 굳었다⁠. 주방장 코르넬이었다⁠. 오딜이 아침 회의에 데려왔다⁠. 키는 오렐리앙만 했고 몸은 오렐리앙 두 배였으며⁠, 팔뚝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다⁠. 코르넬은 들어올 때부터 앉으라는 말을 세 번 거절했다⁠. 하인은 마님 찻상에 앉지 않는다는 오딜의 어제 대사와 똑같았다⁠. 오딜은 이미 앉아서 오렌지 껍질을 씹고 있었다⁠.

“⁠석 달 됐어요⁠.⁠” 코르넬이 뚜껑을 내려놓았다⁠. 손등의 핏줄이 불거졌다⁠. “⁠석 달 전부터 벨랑제 바다 소금이 안 들어와요⁠. 회색 소금이 와요⁠. 찻잎도 바뀌었고⁠, 버터도 바뀌었고⁠, 등잔 기름도 바뀌었어요⁠. 다 집사 나리가 들이는 물건이에요⁠. 들이는 물건은 싸졌는데 집사 나리가 금고에서 타 가는 돈은 그대로예요⁠.⁠”

“⁠왜 말 안 했어요⁠?⁠”

코르넬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눈 밑이 붉었다⁠.

“⁠마님이 안 물으셨으니까요⁠. 마님은 열두 해 동안 국을 물리셨어요⁠. 짜다⁠, 쓰다⁠, 다시⁠. 그런데 왜 짠지는 한 번도 안 물으셨어요⁠. 저는 마님이 저를 내쫓으려고 트집을 잡으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버텼어요⁠. 열두 해를요⁠.⁠” 코르넬이 숨을 크게 쉬었다⁠. “⁠그런데 마님 혀가 맞았어요⁠. 처음부터 다 맞았어요⁠. 그게 더 분해요⁠.⁠”

나는 오딜을 보았다⁠. 오딜은 과자를 씹던 턱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 이런 장면은 없었다⁠. 원작의 시어머니는 국을 엎었고⁠, 주방장은 이름도 없이 「⁠주방 사람들⁠」로만 나왔다⁠.

나는 의자 하나를 빼 주었다⁠. “⁠코르넬⁠, 앉아요⁠. 아직 끝까지 못 들었어요⁠.⁠”

코르넬이 앉았다⁠. 의자가 삐걱 울었다⁠. 찻상에 셋이 앉았다⁠.

*

증거는 코르넬이 갖고 있었다⁠. 코르넬은 집사가 물건을 바꿀 때마다 옛 물건과 새 물건을 조금씩 덜어 작은 단지에 담아 곳간 맨 위 선반에 숨겨 두었다⁠. 소금 두 단지⁠, 찻잎 두 단지⁠, 버터 두 덩이⁠, 등잔 기름 두 병⁠. 단지마다 굵은 실로 매듭을 지어 옛것과 새것을 갈라 놓았다⁠. 글을 못 써서 매듭으로 표시했다고 했다⁠. 한 매듭은 옛것⁠, 두 매듭은 새것⁠.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알았다⁠. 어제 아침상에서 배웠다⁠. 내가 말하면 시어머니의 트집이 되고⁠, 셀레스타가 울면 며느리의 눈물이 된다⁠. 오렐리앙이 제 입으로 맛을 봐야 했다⁠.

회사에서 신제품을 낼 때마다 하던 일이 있었다⁠. 블라인드 테스트⁠. 상표를 가리고 맛을 보게 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믿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른다⁠. 우리 출판사에서도 표지 시안 두 장을 이름 가리고 고르게 하면⁠, 사장님은 늘 자기가 반대한 시안을 골랐다⁠.

저녁 무렵 나는 오렐리앙을 주방으로 불렀다⁠. 핑계는 사슴 고기 스튜였다⁠. 오렐리앙은 사냥에서 잡은 사슴을 코르넬에게 맡기는데⁠, 요즘 스튜 맛이 이상하다고 지난주 식탁에서 투덜거렸었다⁠. 오딜이 알려 준 이야기였다⁠.

오렐리앙이 셀레스타의 손을 잡고 주방에 들어왔다⁠. 집사가 뒤따랐다⁠. 주방 가운데 긴 나무 탁자에 그릇 여섯 개가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앞줄은 스튜⁠, 찻잔⁠, 버터 바른 빵⁠. 뒷줄도 스튜⁠, 찻잔⁠, 버터 바른 빵⁠. 그릇마다 앞에 나무 패가 하나씩 놓였고⁠, 패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맛보기 시합⁠. 눈 가리고 앞줄 뒷줄 하나씩 먹어 보고⁠, 맛있는 걸 골라⁠.⁠”

“⁠제가 왜요⁠?⁠”

“⁠네가 공작이니까⁠. 이 집에서 제일 높은 혀니까⁠.⁠”

오렐리앙의 귀가 움찔했다⁠. 아들 반 학부모 상담에서 배운 기술이었다⁠. 열여섯 살에게는 ‘⁠네가 제일 잘 안다⁠’가 가장 잘 먹혔다⁠. 스물일곱에게도 먹혔다⁠.

오렐리앙이 제 사냥 목도리로 눈을 가렸다⁠. 셀레스타가 매듭을 묶어 주었다⁠. 셀레스타의 손가락이 남편의 뒷머리에서 한 박자 머물렀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무엇을 하려는지 재는 눈이었다⁠. 집사는 탁자 끝에서 그릇 여섯 개를 차례로 보았다⁠. 뒷줄을 볼 때마다 목울대가 움직였다⁠.

오렐리앙은 스튜부터 먹었다⁠. 앞줄 한 숟가락⁠, 뒷줄 한 숟가락⁠. 앞줄을 가리켰다⁠. 차도 앞줄⁠, 빵도 앞줄⁠. 세 번 다 앞줄이었다⁠. 목도리를 풀더니 앞줄 스튜를 그릇째 들고 마저 먹었다⁠.

“⁠이거예요⁠. 이게 옛날 맛이에요⁠. 요즘 건 뒷줄 맛이고요⁠. 코르넬⁠, 왜 요즘은 이렇게 안 해⁠?⁠”

오렐리앙은 신이 나서 셀레스타에게도 목도리를 내밀었다⁠. 당신도 해 봐⁠, 진짜 신기해⁠. 셀레스타는 한 박자 망설이다 눈을 가렸다⁠. 나는 숨을 죽였다⁠. 셀레스타가 뒷줄을 고르면 시합은 무승부가 되고⁠, 시어머니가 판을 짰다는 말만 남는다⁠. 셀레스타는 스튜를 맛보고⁠, 차를 맛보고⁠, 빵을 맛본 뒤 세 번 다 앞줄을 가리켰다⁠. 목도리를 풀면서 셀레스타가 나를 보았다⁠. 혀는 거짓말을 못 해요⁠, 하는 눈이었다⁠. 아니면 지금은 거짓말할 때가 아니라는 눈이었다⁠.

코르넬이 곳간에서 단지들을 안고 나와 탁자에 늘어놓았다⁠. 매듭 하나짜리 단지와 매듭 두 개짜리 단지⁠. 앞줄은 석 달 전 물건으로⁠, 뒷줄은 지금 집사가 들이는 물건으로 만든 것이었다⁠. 코르넬은 단지를 하나씩 열어 공작 앞에 밀어 놓으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앞줄은 벨랑제 바다 소금⁠, 남쪽 산 찻잎⁠, 우리 목장 버터입니다⁠. 뒷줄은 회색 바위 소금⁠, 꽃잎 섞은 묵은 찻잎⁠, 양 기름 섞은 버터입니다⁠. 금고에서는 지금도 앞줄 값이 나갑니다⁠.⁠”

주방이 조용해졌다⁠. 솥 밑에서 장작 하나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공손했다⁠. “⁠공작님⁠, 제가 물건을 바꾼 건 맞습니다⁠. 다만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마님께서 살림을 아껴 쓰라고 하셔서⁠…⁠…⁠.⁠”

집사의 눈이 셀레스타에게 갔다⁠. 나도 셀레스타를 보았다⁠. 오렐리앙도 보았다⁠.

셀레스타는 남편의 팔에 손을 얹었다⁠. 놀란 얼굴이었다⁠. 정말로 놀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저는 곳간 열쇠를 받은 지 이틀밖에 안 됐는걸요⁠.⁠” 셀레스타가 집사를 보았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집사님⁠, 왜 저한테 미루세요⁠?⁠”

집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떨어졌다⁠. 처음으로 입꼬리와 눈가가 같이 움직였다⁠. 셀레스타는 석 달 쓴 사람을 이 초 만에 버렸다⁠. 나는 회사에서 이런 장면을 딱 한 번 보았다⁠. 감사 나온 날⁠, 본부장이 자기 오른팔을 회의실에 혼자 두고 나갔다⁠.

오렐리앙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집사⁠, 내일 아침까지 나가⁠.⁠”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목소리가 작았다⁠. “⁠어머니⁠, 금고 일은 어머니가 계속 보세요⁠. 제가 잘못 알았어요⁠.⁠”

“⁠반지는⁠?⁠”

오렐리앙이 아내를 보았다⁠. 셀레스타가 반지 낀 손을 남편 손등 위에 겹쳤다⁠. 오렐리앙은 겹친 손을 내려다보다가⁠,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반지는 셀레스타가 계속 가지고 있어요⁠. 반지까지 빼면 셀레스타가 이 집에서 무슨 얼굴이 되겠어요⁠.⁠”

집사가 주방을 나갔다⁠. 나가면서 셀레스타 곁을 지나쳤는데 셀레스타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코르넬이 단지 뚜껑을 하나씩 닫았다⁠. 주방 문밖에 하녀들이 몰려 있다가 흩어졌다⁠. 흩어지는 발소리가 아침과 달랐다⁠. 아침에는 나를 피하는 발소리였는데⁠, 지금은 소식을 나르는 발소리였다⁠.

*

집사는 밤이 되기 전에 짐을 쌌다⁠. 가죽 가방 하나와 이불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현관 계단 위에서 집사가 마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배웅하러 나간 게 아니었다⁠. 퇴사자 면담은 부장이 해야 했다⁠.

“⁠열두 해 일했다면서요⁠.⁠”

“⁠열네 해입니다⁠, 마님⁠. 돌아가신 공작님 때부터요⁠.⁠” 집사가 가방을 고쳐 쥐었다⁠. 이제는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얼굴이 웃는 얼굴보다 정직해 보였다⁠. “⁠마님이 오늘 저를 내보내셨으니 하나만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저는 나가도 편지는 계속 갑니다⁠. 강 건너는 마님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강 건너 누구요⁠?⁠”

“⁠마님이 저보다 잘 아실 텐데요⁠.⁠” 집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세 해 전 겨울에 마님 심부름을 한 사람도 저였습니다⁠.⁠”

마차가 왔다⁠. 집사는 가방을 싣고 올라탔고⁠, 문이 닫히기 전에 고개를 한 번 숙였다⁠. 공손한 각도는 끝까지 그대로였다⁠. 세 해 전 겨울⁠. 원작에는 세 해 전 겨울이 없었다⁠. 원작은 셀레스타가 시집오는 봄에 시작했다⁠. 나는 계단 난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몸의 주인이 세 해 전 겨울에 무엇을 시켰는지⁠, 이 몸은 혀만 남기고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

밤에 오딜이 머리를 풀어 주며 아래층 소식을 쏟았다⁠. 하녀들이 내일 아침 회의에 일찍 오겠다고 했다⁠. 마부는 검은 말이 아픈 이유를 말하겠다고 했다⁠. 말먹이 귀리도 집사 나리가 바꿨다고⁠. 세탁부는 비누가 진짜로 모자라다고 다시 말하겠다고 했다⁠. 등잔지기는 마님이 그을음 이야기를 기억해 주셨다고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님⁠.⁠” 오딜이 빗을 멈췄다⁠. “⁠젊은 마님이 이제 편지를 직접 들고 나가신대요⁠. 집사 나리가 없으니까요⁠. 내일 오후에 마차를 대 놓으라고 마부한테 이르셨어요⁠. 강 건너로요⁠.⁠”

나는 거울 속 회청색 눈을 보았다⁠. 집사를 내보낸 대가로 셀레스타가 왕궁에 직접 가게 되었다⁠. 회사로 치면 중간 보고자를 잘랐더니 실무자가 본사에 직접 들어가는 꼴이었다⁠. 이긴 건지 진 건지 헷갈렸다⁠.

오딜이 나가고 촛불 하나만 남았을 때 노크 소리가 났다⁠. 대답하기 전에 문이 열렸다⁠. 셀레스타였다⁠. 잠옷 위에 연분홍 숄을 두르고⁠, 붉은 곱슬머리를 풀어 내린 채였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눈물도 없었다⁠.

셀레스타는 찻상 곁에 서서 의자들을 내려다보았다⁠. 방석 셋이 눌려 있었다⁠.

“⁠의자에 사람을 앉히셨네요⁠.⁠” 셀레스타가 말했다⁠. 아침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고르고⁠, 마른 목소리였다⁠. “⁠하녀들이 그러더라고요⁠. 시녀장이랑 주방장이 마님 찻상에 앉았다고⁠. 이 댁에서 열두 해 동안 없던 일이라고⁠.⁠”

“⁠앉으라고 한 거예요⁠. 셀레스타도 앉아도 돼요⁠.⁠”

셀레스타는 앉지 않았다⁠. 반지 낀 손으로 숄 자락을 여몄다⁠.

“⁠집사는 아까웠어요⁠. 오래 쓴 사람이라⁠.⁠” 셀레스타가 말했다⁠. 사과도 변명도 아닌 말투였다⁠. 장 보러 갔다가 달걀 하나 깨뜨린 사람의 말투였다⁠. “⁠어머님이 오늘 한 건 저도 할 줄 알아요⁠. 다만 어머님이 하실 줄은 몰랐어요⁠.⁠”

셀레스타가 한 걸음 다가왔다⁠. 촛불이 붉은 머리카락 끝에서 흔들렸다⁠.

“⁠어머님은 원래 주방장 이름도 모르셨어요⁠. 제가 시집온 첫날⁠, 어머님은 주방장을 ‘⁠거기 너⁠’라고 부르셨어요⁠. 오딜은 열두 해 동안 어머님 찻상 옆에 서 있기만 했고요⁠. 어머님은 하인한테 수고했다는 말을 내보낼 때만 쓰셨어요⁠. 그리고 어머님은⁠.⁠” 셀레스타가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어머님은 저한테 한 번도 ‘⁠씨⁠’를 붙이신 적이 없어요⁠.⁠”

나는 부채를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뱄다⁠.

셀레스타가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첫날 아침⁠, 찻물이 날아올 자리를 재던 각도였다⁠.

“⁠누구세요⁠?⁠”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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