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80자)

셀레스타 씨

시어머니로 빙의한 악녀 며느리 · 진새온

아침 식탁의 빵은 버터가 덜 들어가 퍽퍽했다⁠. 한 입 베어 물자 혀가 말했다⁠. 어제와 같은 밀인데 오늘은 덜 쳤다⁠. 반죽을 덜 치대면 빵 속이 이렇게 엉긴다⁠. 나는 혀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빵을 삼켰다⁠. 오늘 아침은 빵 때문에 싸울 수 없었다⁠.

긴 식탁의 맞은편에 오렐리앙과 셀레스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셀레스타는 오늘도 연분홍이었다⁠. 붉은 곱슬머리를 높이 올려 묶어 목덜미가 드러났고⁠,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서 금빛 인장 반지가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셀레스타는 반지 낀 손으로 일부러 찻잔을 들었다⁠. 벽에 붙어 서 있던 하인 다섯이 반지 낀 손가락을 보았다⁠.

“⁠어머니⁠.⁠” 오렐리앙이 빵을 내려놓고 말했다⁠. 목소리가 어제보다 한 톤 부드러웠다⁠. “⁠고마워요⁠. 셀레스타한테 반지까지 맡겨 주셨다면서요⁠. 저는 어머니가 셀레스타를 끝까지 안 받아 주실 줄 알았어요⁠.⁠”

셀레스타가 고개를 숙였다⁠. 귀밑이 발그레했다⁠. 원작 2권 표지와 똑같은 각도였다⁠.

나는 숨을 고르고 회사에서 쓰던 목소리를 꺼냈다⁠. 거래처에 불리한 조건을 꺼낼 때 쓰는⁠, 미안한 듯 단단한 목소리였다⁠.

“⁠오렐리앙⁠, 그게 말이다⁠. 반지는 금고에 있어야 하는 물건이야⁠. 바깥 문서에 그 반지가 찍히면 네가 찍은 것과 같거든⁠. 셀레스타를 못 믿어서가 아니고⁠, 절차상 그래⁠. 셀레스타⁠, 식사 끝나면 반지는 나한테 돌려줘요⁠.⁠”

식탁이 조용해졌다⁠. 벽에 붙은 하인 다섯이 동시에 숨을 멈췄다⁠. 셀레스타가 반지 낀 손을 무릎 위로 내렸다⁠. 눈에 물기가 고였다⁠. 고이기만 하고 떨어지지는 않았다⁠. 떨어지기 직전에서 멈추는 눈물이었다⁠. 나는 감탄했다⁠. 우리 팀 막내도 저렇게는 못 했다⁠.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셀레스타가 작게 말했다⁠. “⁠어머님이 어젯밤에 맡기신다고 하셔서요⁠. 죄송해요⁠. 지금 돌려드릴게요⁠.⁠”

셀레스타가 반지를 빼려고 손가락을 쥐었다⁠. 오렐리앙이 아내의 손을 덮었다⁠.

“⁠빼지 마⁠.⁠” 오렐리앙이 나를 보았다⁠. 순한 사냥개가 이를 드러낸 얼굴이었다⁠. “⁠어머니⁠, 또 시작이세요⁠? 어제는 웃으시더니 오늘은 아침상에서 사람을 울려요⁠?⁠”

“⁠울린 게 아니라 절차를⁠…⁠…⁠.⁠”

“⁠제가 공작이에요⁠.⁠” 오렐리앙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반지는 셀레스타가 가지고 있어요⁠. 제가 그렇게 정했어요⁠.⁠”

내 오른손이 또 찻잔으로 갔다⁠. 이번에는 미리 알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았다⁠. 공작부인이 제 손을 깔고 앉는 모습을 하인 다섯이 보았다⁠. 오렐리앙이 셀레스타의 어깨를 감싸 식당을 나갔고⁠, 셀레스타는 문간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젖은 눈이 웃고 있었다⁠.

엉덩이 밑에서 손이 저렸다⁠. 머릿속에 원작 문장이 떠올랐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손에서 반지를 빼앗으려 했고⁠, 아들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빼앗지 않았다⁠. 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래도 문장은 그대로 일어났다⁠.

*

정면으로는 못 이긴다⁠. 회사에서 이십 년을 버틴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사장 아들과 싸우는 부장은 없다⁠. 부장은 사장 아들 주변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

나는 열 시에 하인들을 안방으로 불렀다⁠. 집사를 뺀 전부였다⁠. 하녀⁠, 세탁부⁠, 마부⁠, 정원사⁠, 주방 보조⁠, 등잔지기까지 스물두 명이 안방 카펫 위에 세 줄로 늘어섰다⁠. 맨 앞줄 하녀 하나가 무릎을 떨었다⁠. 어제 아침 찻잔을 받아 들고 뛰어나간 하녀였다⁠.

나는 부채를 펴서 찻상을 가리켰다⁠. 회사에서 레이저 포인터로 화면을 가리키던 버릇이었다⁠.

“⁠다들 바쁜데 와 줘서 고마워요⁠. 오늘부터 매일 아침 이 시간에 짧게 회의를 할 거예요⁠. 부서별로 지금 어려운 일⁠, 공유할 일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 주세요⁠. 마님이 다 들을게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스물두 명이 일제히 바닥을 보았다⁠. 나는 맨 앞의 마부를 가리켰다⁠.

“⁠마부님은⁠, 아니⁠, 마부는 어때요⁠? 이슈 있어요⁠?⁠”

마부가 모자를 쥐어짜며 대답했다⁠. “⁠말이⁠…⁠… 말이 아픕니다⁠, 마님⁠.⁠”

“⁠어떤 말이요⁠?⁠”

“⁠검은 거요⁠.⁠”

“⁠아⁠, 네⁠. 검은 말이 아프다⁠. 공유해 줘서 고마워요⁠. 다음⁠.⁠”

등잔지기는 등잔 기름이 요즘 그을음이 많다고 했다⁠. 나는 반색했다⁠. 드디어 이슈였다⁠. 기름을 어디서 사 오느냐고 묻자 등잔지기는 집사 나리가 사 온다고 대답하고는⁠, 대답한 자기 입을 손으로 막았다⁠. 주방 보조 아이가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못 본 척했다⁠. 회의에서 누가 입을 막으면 거기가 문제였다⁠.

세탁부는 비누가 모자라다고 했다가 곧바로 말을 바꿔 넉넉하다고 했고⁠, 다시 자기가 잘못 말했다며 세 번을 뒤집었다⁠. 정원사는 장미가 얼었다고 말하고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나는 회의를 이십 분 만에 끝내며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맨 앞줄 하녀가 소리 없이 주저앉았다⁠. 오딜이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마님이 아랫사람에게 수고했다고 하시면⁠, 이 댁에서는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뜻이라고⁠. 마님이 열두 해 동안 이 한마디로 하인 열한 명을 내보냈다고⁠.

“⁠아니요⁠, 아니요⁠. 그 수고 말고요⁠.⁠” 나는 부채를 흔들었다⁠. “⁠진짜 수고요⁠. 고생했다는 수고⁠. 다들 내일도 나와요⁠. 꼭 나와요⁠.⁠”

하인들이 뒷걸음으로 빠져나갔다⁠. 누구도 등을 보이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오딜이 바느질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입에 넣었다⁠.

“⁠마님⁠, 오후에 비올렌 후작부인 댁 살롱에서 벌써 말이 돈대요⁠. 로슈몽 공작부인이 아침상에서 며느리 반지를 빼앗으려 했다고요⁠.⁠”

“⁠아침상은 두 시간 전이었어요⁠.⁠”

“⁠수도에서는 두 시간이면 길어요⁠.⁠”

맞는 말이었다⁠. 아들 반 학부모 단톡방에서는 담임 선생님 결혼 소식이 십오 분 만에 축의금 액수까지 정리되어 돌았다⁠. 수도의 귀부인들은 휴대전화 없이 같은 속도를 냈다⁠. 존경스러웠다⁠.

*

점심이 지나 나는 금고에 내려갔다⁠. 낮에 보는 금고는 밤보다 작았다⁠. 선반의 철제 상자들은 뚜껑마다 로슈몽의 밀 이삭이 찍혀 있었고⁠, 가운데 책상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어젯밤의 양피지는 없었다⁠. 녹은 봉랍 자국만 책상 모서리에 빨갛게 눌어붙어 있었다⁠. 나는 손톱으로 봉랍 부스러기를 긁어 혀끝에 대 보았다⁠. 송진과 밀랍⁠, 그리고 아주 조금 백합 향유⁠. 공작가의 봉랍에는 향유를 넣지 않는다고 혀가 말했다⁠. 백합은 왕실의 꽃이었다⁠.

금화 상자 하나를 열자 자루 하나가 빈 자리가 보였다⁠. 바닥의 먼지가 자루 모양으로 동그랗게 비어 있었다⁠.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 마님⁠.⁠”

집사가 문간에 서 있었다⁠. 발소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마른 얼굴에 웃음이 얇게 붙어 있었는데⁠,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가는 그대로였다⁠.

“⁠금화 한 자루가 비네요⁠.⁠”

“⁠젊은 마님께서 하르덴 가문 성당에 헌금하신다고 내가셨습니다⁠. 공작님께서 허락하셨고요⁠. 마님께는 제가 아침에 말씀드리려 했는데⁠, 아침상이 그렇게 되어서⁠.⁠”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숙이는 각도까지 공손했다⁠. “⁠앞으로 금고 일은 젊은 마님께 여쭈라고 공작님께서 이르셨습니다⁠.⁠”

“⁠금고 열쇠는 나한테 있는데요⁠.⁠”

“⁠예⁠, 마님⁠. 열쇠는 마님께 있습니다⁠.⁠”

집사는 한마디만 남기고 물러갔다⁠. 열쇠는 나한테 있는데 금고는 열려 있었다⁠. 회사에서도 본 적 있는 구조였다⁠. 결재권은 부장에게 있는데 결재는 사장 아들 방에서 났다⁠.

*

오후 내내 나는 찻상에 앉아 생각했다⁠. 사람을 얻으려면 누구를 먼저 얻어야 하는가⁠. 회사에서 정보가 제일 빨리 도는 곳은 사장실이 아니었다⁠. 탕비실이었다⁠. 탕비실을 쥔 사람은 대개 직급이 높지 않았고⁠, 대개 무엇이든 먼저 알았다⁠. 이 집의 탕비실은 오딜이었다⁠. 아침에 내 머리를 빗으며 오딜이 쏟아 낸 말만 해도 하녀 셋의 연애⁠, 마부의 노름⁠, 주방장의 허리 병⁠, 수도 빵값까지 다 들어 있었다⁠.

저녁 무렵 오딜이 촛대를 갈러 들어왔을 때 나는 찻상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요⁠.⁠”

오딜이 촛대를 든 채 굳었다⁠. “⁠마님⁠, 하인은 마님 찻상에 앉지 않아요⁠.⁠”

“⁠오늘부터 앉아요⁠. 회의예요⁠.⁠”

“⁠아침 회의는 끝났잖아요⁠.⁠”

“⁠이건 일대일 면담이에요⁠.⁠”

오딜은 앉지 않았다⁠. 의자를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보고⁠, 문을 한 번 보았다⁠. 도망갈 길을 재는 눈이었다⁠. 회사에서 처음 팀장 면담에 불려 온 신입이 딱 저 눈을 했다⁠. 나는 면담 때마다 커피를 먼저 사 주었다⁠. 커피가 없는 세계에서 무엇을 사 줘야 하는지는 오딜의 눈이 알려 주었다⁠. 아침에 내 머리를 빗던 오딜의 눈이 세 번이나 화장대 맨 아래 서랍으로 갔었다⁠.

나는 화장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은 상자를 꺼냈다⁠. 아침에 머리를 빗던 오딜의 눈이 세 번이나 이 서랍으로 갔었다⁠. 뚜껑을 열자 설탕에 졸인 오렌지 껍질이 금빛으로 빛났다⁠. 남쪽 항구 벨랑제에서만 만든다는 과자였다⁠. 혀끝에 쌉싸름한 껍질 맛이 먼저 오고 설탕이 뒤따라오는 맛을⁠, 나는 먹어 보지도 않고 알았다⁠.

“⁠마님이 이 상자를 여시는 걸 열두 해 만에 처음 봐요⁠.⁠” 오딜이 상자에 대고 속삭였다⁠. “⁠하인 손이 닿으면 손목을 자르신다고 하셨어요⁠.⁠”

“⁠진짜 잘랐어요⁠?⁠”

“⁠아니요⁠. 그 말 듣고 아무도 안 만졌으니까요⁠.⁠”

오딜이 침을 삼켰다⁠. 촛대를 내려놓았다⁠. 의자 끝에 엉덩이를 반쯤 걸쳤다⁠.

“⁠오딜은 은퇴하면 뭐 하고 싶어요⁠?⁠”

“⁠네⁠?⁠”

“⁠나이 들어서 이 댁 그만두면요⁠.⁠”

오딜이 과자를 하나 집어 들고 한참 보다가 말했다⁠. 남쪽 바닷가에 작은 과자 가게를 내고 싶다고⁠. 벨랑제 부두 앞에 창 하나짜리 가게를 내서 이 오렌지 껍질을 졸이고 싶다고⁠. 서른 해 동안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 말이라고 했다⁠. 마님께 이런 말을 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실 줄 알았다고⁠.

“⁠가게 낼 때 내가 밑천 대 줄게요⁠. 벨랑제는 우리 집 항구니까 자리도 알아봐 주고⁠.⁠”

“⁠왜요⁠?⁠”

“⁠오딜이 이 집에서 제일 먼저 듣는 사람이니까요⁠. 나는 이 집에서 제일 늦게 듣는 사람이고⁠.⁠”

오딜은 대답 대신 과자를 입에 넣었다⁠. 씹고⁠, 삼키고⁠, 찻잔을 끌어당겨 한 모금 마셨다⁠. 찻상 의자 여섯 중 두 개에 사람이 앉았다⁠. 열두 해 만이었다⁠.

오딜이 손가락에 묻은 설탕을 핥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하나 말씀드릴게요⁠. 젊은 마님이 시집오시고 나서 닷새마다 편지를 보내세요⁠. 봉랍을 찍어서요⁠. 집사 나리가 직접 들고 나가는데⁠, 우체국으로 안 가고 강을 건너요⁠. 왕궁으로요⁠.⁠” 오딜이 과자를 하나 더 집었다⁠. “⁠그리고 집사 나리 노름빚이 지난달에 싹 없어졌어요⁠. 금화로 백 개가 넘던 빚이요⁠.⁠”

나는 부채를 접었다⁠. 탁⁠. 원작에서 셀레스타는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않았다⁠. 원작의 셀레스타는 정원에서 장미를 꺾고⁠, 남편의 사냥복 단추를 달고⁠, 시어머니가 던진 찻잔 조각을 울면서 주웠다⁠. 독자들은 장면마다 하트를 눌렀고⁠, 나도 두 번쯤 눌렀다⁠.

“⁠오딜⁠, 내일 아침 회의에도 와요⁠. 이번엔 앉아서⁠.⁠”

“⁠다른 하인들이 보는데요⁠?⁠”

“⁠보라고 앉히는 거예요⁠.⁠”

오딜이 남은 과자를 앞치마 주머니에 쓸어 담고 일어났다⁠. 문을 나서기 전에 돌아보더니⁠, 내일은 주방장도 데려오겠다고 했다⁠. 주방장이 요즘 국을 끓이면서 혼잣말로 욕을 하는데⁠, 욕하는 상대가 마님이 아닌 집사 나리라고⁠. 국자로 솥을 칠 때마다 집사 나리 이름이 나온다고 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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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선재2026.11.01· 2화

    빵을 한 입 먹고 반죽을 덜 쳤다는 걸 혀가 알아채는 시어머니라니, 빙의한 며느리가 몸의 버릇에 끌려가는 게 재밌어요.

    • 진새온작가2026.11.01

      몸은 시어머니 것이라 혀가 서른 해 치 부엌 일을 기억해요. 그 혀가 나중에 큰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