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45자)
S급이 끈을 못 조인다
S급 헌터들의 짐꾼입니다만 · 백해원
아침 여섯 시, 탑 1층 문 앞에 헌터 스무 명이 섰다. 짐꾼 골목 사람들이 그 뒤로 구경을 나왔고, 길드 거리 상인들이 그 뒤로, 할 일 없는 아르센 사람들이 다시 그 뒤로 섰다. 탑 문 앞 광장이 장날처럼 붐볐다. 누가 군밤을 팔기 시작했다.
헌터들의 배낭은 저마다 생김새가 달랐다. 길드가 급하게 왕도에서 사 온 새 배낭이었는데, 어깨끈 길이를 맞춘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맨 앞의 B급 도끼잡이는 배낭이 엉덩이 아래까지 처져 걸을 때마다 오금을 쳤다. 그 옆의 궁수는 배낭을 가슴 앞에 메고 있었다. 누가 왜 앞으로 멨느냐고 묻자, 궁수는 앞이 앞이라고 들었다고 대답했다. 어떤 헌터는 배낭 위에 통구이 돼지 한 마리를 끈으로 묶어 얹고 있었다. 41층에서 먹을 점심이라고 했다.
피나가 노아 옆에서 숨넘어가게 웃었다.
“선배, 저 돼지요. 저 돼지 41층 가면 헌터보다 먼저 날아가요.”
“돼지가 제일 무겁다. 돼지가 제일 오래 서 있을 거다.”
“그럼 돼지가 41층 열어요?”
시오가 군밤 봉지를 들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끈은 앞으로」였다. 가사는 아직 첫 줄뿐이었다.
헌터들 사이에 셀린이 있었다. 길드 공지에 셀린의 이름은 없었다. 셀린은 스스로 스무 번째 자리에 섰다. 셀린의 배낭은 어깨끈 길이가 맞았고, 허리끈이 엉덩이뼈 위에 걸려 있었고, 가슴끈이 가슴 앞에서 잠겨 있었다. 셀린은 노아와 눈이 마주치자 턱을 들어 가슴끈을 보여 주었다. 노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셀린의 턱이 조금 더 올라갔다.
칼렌은 맨 앞에 섰다. 칼렌의 배낭은 은실로 백야의 흰 달을 수놓은 새 가죽 배낭이었다. 배낭 위쪽이 불룩했다. 노아는 그 불룩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새로 맞춘 승급 심사용 갑옷이었다.
*
30층까지는 엘리베이터였다. 오스왈드가 왕실 병사 넷을 데리고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노아와 가렛과 피나와 시오는 그다음 엘리베이터를 탔다. 금지령은 40층 위를 막았을 뿐 40층 아래 구경까지 막지는 않았다. 노아는 오늘 배낭을 멨다. 안에는 붕대와 밧줄과 물이 열 관 들어 있었다. 구경꾼이 지기에는 많은 짐이었다.
31층부터 헌터 스무 명은 계단을 걸었다. 짐꾼 넷은 열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31층의 소금 바람에서 궁수가 앞으로 멘 배낭 때문에 발밑을 못 보고 계단을 헛디뎠다. 34층에서 도끼잡이가 오금을 너무 많이 맞아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37층에서 돌 가재 떼가 나타났을 때 헌터들이 배낭을 한꺼번에 벗어 던졌고, 배낭 스무 개 중 일곱 개가 계단 아래로 굴러갔다. 통구이 돼지가 그중 하나였다. 돼지는 다른 배낭들을 앞질러 36층 계단참까지 굴러가 멈췄다.
“돼지가 이겼다.”
시오가 말했다. 돼지 주인 헌터가 울상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칼렌은 배낭을 벗지 않았다. 배낭을 진 채로 창을 휘둘렀다. 창이 무거운 배낭에 끌려 한 박자씩 늦었고, 그 한 박자 사이에 가재 집게가 칼렌의 장화 끝을 물었다. 칼렌은 이를 악물고 가재를 떼어 냈다. 노아는 열 걸음 뒤에서 그걸 보았다. 칼렌은 오늘 짐을 내려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굴러간 배낭 일곱 개를 다시 주워 오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헌터 하나가 짐꾼 넷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노아에게 속삭였다.
“저기, 이 끈은 어디로 빼는 거예요?”
“파업 중입니다.”
“말로만요. 손은 안 대셔도 돼요.”
노아는 말로만 알려 주었다. 그 헌터 뒤로 셋이 더 줄을 섰다. 피나가 줄 맨 끝에 서서 번호표를 나눠 주는 시늉을 했다.
*
40층 경계 계단은 다른 계단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계단 한가운데에 흰 석회로 금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금지령이 붙은 날 왕실 병사들이 그었다. 금 아래쪽에 오스왈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병사들이 지고 온 의자였다. 오스왈드는 무릎 위에 주판을 놓고 앉아 있었다.
헌터 스무 명이 금을 넘었다. 짐꾼 넷은 금 앞에서 멈췄다. 가렛이 마님을 짚고 노아 옆에 섰다.
41층에 머리가 올라서는 순간, 헌터들의 무릎이 일제히 굽었다.
냄비 뚜껑이었다. 44층의 솥뚜껑에 비하면 가벼운 바람이었다. 짐을 제대로 진 짐꾼이라면 숨을 한 번 고르고 그냥 걸어갈 바람이었다. 그런데 헌터들의 배낭은 위가 무거웠다. 바람이 위에서 누르자 무거운 위쪽이 뒤로 젖혀졌고, 배낭이 사람을 끌고 뒤로 넘어갔다.
맨 앞의 도끼잡이가 먼저 뒤로 넘어갔다. 등에 배낭을 깔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뒤집힌 거북이 같았다. 그 뒤의 궁수는 앞으로 멘 배낭에 눌려 앞으로 엎어졌다. 엎어진 궁수에게 걸려 셋이 더 넘어갔다. 넘어간 사람을 일으키려고 옆의 헌터들이 배낭을 벗었고, 배낭을 벗은 순간 바람이 그들을 바닥에 붙였다.
삼 분도 안 되어 헌터 스무 명 중 열일곱이 41층 계단참에 누워 있었다. 몇은 거북이처럼, 몇은 개구리처럼, 몇은 그냥 납작하게.
서 있는 사람은 셋이었다. 셀린과, 칼렌과, 통구이 돼지를 다시 배낭에 묶어 온 그 헌터였다. 돼지가 배낭 맨 아래에 묶여 있었다. 다시 묶다 보니 그렇게 됐다.
셀린이 쓰러진 헌터 둘의 배낭 끈을 잡아 끌었다. 끌리는 헌터들의 배낭은 위가 무거워서 계속 뒤집혔다. 칼렌은 서 있었지만 배낭의 위쪽 갑옷이 바람에 눌려 칼렌의 허리를 뒤로 꺾고 있었다. 칼렌의 무릎이 떨렸다. 칼렌은 짐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려놓으면 눕는다는 걸 칼렌도 알았다. 44층에서 배웠다.
계단참 끝에서 젊은 헌터 하나가 미끄러지고 있었다. 41층 계단참은 바깥쪽으로 낮게 기울어 있었고, 그 끝에는 난간이 없었다. 납작하게 눌린 헌터가 바람에 밀려 한 뼘씩 끝으로 갔다.
*
노아가 계단을 한 칸 올랐다. 석회 금 바로 아래였다.
병사 둘이 창을 엇갈려 노아 앞을 막았다. 오스왈드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무릎 위의 주판이 바닥에 떨어져 주판알이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금을 넘으면 등반세 열 배요.”
“압니다.”
“당신 한 사람만이 아니오. 조합이 물게 되오. 조합장의 이름으로.”
노아가 가렛을 돌아보았다. 가렛은 노아를 보지 않고 41층 계단참을 보고 있었다. 가렛이 말했다.
“물어.”
“조합장님, 숯값입니다.”
“숯은 내년에 사.”
노아가 다시 오스왈드를 보았다.
“열 배 내겠습니다. 동화로 내도 됩니까?”
“동화로 내면 수레 두 대가 필요하오.”
“수레는 짐꾼이 끕니다.”
오스왈드가 대답하기 전에 노아는 엇갈린 창 아래로 몸을 숙여 금을 넘었다. 병사들이 창을 거두지도 못하고 서로를 보았다. 오스왈드는 병사들에게 손을 들지 않았다. 막으라고도, 놓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노아는 미끄러지는 젊은 헌터에게 먼저 갔다. 바람 속을 걸어 계단참 끝에 닿았을 때, 헌터의 장화 뒤꿈치가 이미 허공에 나가 있었다. 노아는 그 헌터의 배낭을 열고 위쪽에 든 쇠붙이 두 개를 꺼내 바닥 쪽으로 내려 넣었다. 끈 세 개를 조였다. 그리고 헌터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헌터가 섰다. 무게가 아래로 내려가자 바람이 그 헌터를 뒤로 젖히지 못했다.
“서 계세요. 무릎 굽히시고.”
헌터가 무릎을 굽힌 채 서서 울었다.
그다음부터는 순서대로 했다. 도끼잡이의 배낭은 위아래를 뒤집어 다시 쌌다. 궁수의 배낭은 앞에서 등으로 돌려 멨다. 배낭을 벗은 헌터들에게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배낭 아무거나 하나씩 지워 주었다. 남의 배낭이라도 지고 있으면 섰다. 노아가 배낭 하나를 고쳐 주고 다음 사람에게 갈 때마다, 고쳐 받은 헌터가 무릎을 굽힌 채 일어섰다. 계단참에 누운 사람이 하나씩 줄었고, 선 사람이 하나씩 늘었다.
피나와 시오가 금 아래에서 그걸 보며 숫자를 셌다. 소리 내어 셌다. 일곱, 여덟, 아홉. 구경 온 오스왈드의 병사 하나가 따라서 입술을 달싹였다.
마지막이 칼렌이었다.
*
칼렌은 아직 서 있었다. 무릎이 반쯤 꺾였고 허리가 뒤로 휘었지만 서 있었다. 노아가 칼렌의 등 뒤로 가서 배낭 덮개에 손을 댔다.
“손대지 마.”
칼렌의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이 다 빠져 있었다.
“부리더님 허리가 넘어갑니다.”
“짐꾼 손이 내 짐에 닿으면, 길드 사람들이 다 봐. 감독관도 보고.”
“예. 다 보고 있습니다.”
노아는 덮개를 열지 않았다. 대신 칼렌의 어깨끈 두 개를 엄지로 한 칸씩 조였다. 허리끈을 엉덩이뼈 위로 끌어올려 다시 걸었다. 가슴끈을 쇄골 아래에서 잠갔다. 배낭이 칼렌의 등에 바짝 붙었고, 위쪽 갑옷의 무게가 등뼈를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칼렌의 허리가 펴졌다.
“갑옷은 안 건드렸습니다. 끈만 조였습니다.”
칼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참에 선 헌터 스무 명이 칼렌을 보고 있었다. 칼렌은 그 눈들을 하나씩 보았다. 누구도 웃지 않았다. 웃지 않아서 더 나빴다.
셀린이 노아 옆으로 왔다. 셀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힘으로 서 있었던 단 두 사람 중 하나였다. 나머지 하나는 돼지를 묶은 헌터였다. 셀린이 노아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나 오늘 한 번도 안 넘어졌어.”
“압니다, 리더님. 가슴끈이 앞에 있었습니다.”
“그거 말하려고 했어.”
*
금 아래로 다 내려왔을 때, 오스왈드는 주판알을 다시 주워 끼우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계단 아래까지 굴러간 알 두 개를 주워 왔다. 오스왈드는 알을 끼우면서 노아를 보지 않고 말했다.
“등반세 열 배. 내일까지 청사로 가져오시오. 수레는 짐꾼이 끄시오.”
“예.”
“그리고 하나 더.”
오스왈드가 주판을 무릎에 놓고 손가락으로 알 하나를 튕겼다.
“오늘 41층에 헌터 스무 명이 올라갔소. 열일곱 명이 누웠고, 열일곱 명이 다시 섰소. 열일곱 명을 세운 건 짐꾼 하나요. 나는 그 숫자를 왕도에 올려야 하오. 그런데 41층 숫자만으로는 금지령을 거둘 수 없소. 교단이 묻겠지. 짐꾼이 41층에서 헌터 짐을 고쳐 준 것이, 짐꾼이 탑을 오를 자격이 된다는 말이냐고.”
오스왈드는 그 말을 하면서 품 안의 봉투 하나를 손으로 눌렀다. 봉투 귀퉁이에 금빛 봉인이 비쳤다. 탑 꼭대기를 본뜬 문양이었다.
“그러니 숫자를 하나 더 보겠소. 50층까지 한 번 지고 가 보시오. 짐꾼의 문이라는 게 정말 짐꾼에게 열리는지. 열리면 짐꾼을 등반자로 올리는 건을 왕도에 올리겠소. 세금 셈은 그다음에 하겠소.”
“안 열리면요?”
“금지령은 그대로요. 다음 시즌에도.”
오스왈드가 칼렌을 돌아보았다.
“하웰 부리더. 증인으로 따라가시오. 길드 쪽 눈이 하나 있어야 하오.”
칼렌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얼굴에서 무엇이 지나갔는지 노아는 보지 못했다. 칼렌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얼굴은 다시 부드러웠다.
“영광입니다, 감독관님. 짐꾼이 어디까지 지고 가는지 끝까지 보겠습니다.”
노아 옆에서 가렛의 마님이 바닥을 한 번 긁었다. 노아는 그 소리를 들으며 41층 계단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49층은 거기서 여덟 층 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