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03자)

짐꾼 없는 사흘

S급 헌터들의 짐꾼입니다만 · 백해원

첫날 아침, 30층 하역장에서 엘리베이터 쇠문이 열렸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라면 짐꾼 열댓 명이 상자를 메고 쏟아져 나왔을 자리였다. 빈 엘리베이터는 석탄 연기만 뱉어 내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하역장 바닥에는 어제 위층 파티들이 부려 놓은 상자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탑에서 캐낸 정수석, 37층 돌 가재의 껍데기, 41층 바람 버섯. 상자마다 붙은 꼬리표가 하역장 바람에 펄럭였다.

오후가 되자 상자 위로 상자가 올라갔다. 위층에서 내려온 헌터들이 자기 짐을 직접 부려 놓고 갔기 때문에 줄도 순서도 없었다. 정수석 상자 위에 가재 껍데기가 얹혔고, 그 위에 누가 벗어 놓은 장화가 얹혔다.

길드 거리의 대장간 주인이 정수석이 안 내려온다고 화를 냈다. 정수석이 없으면 화덕 불이 약해졌다. 향유 가게 주인은 바람 버섯이 안 와서 향유를 못 만든다고 화를 냈다. 짐꾼 골목 사람들은 그 화를 들으며 숙소 앞마당에 앉아 있었다. 할 일이 없는 짐꾼 삼백 명이 골목에 앉아 있으니 골목이 좁아 보였다.

피나는 마당 한가운데에 빈 배낭 열 개를 늘어놓고 앉아 있었다.

“선배, 파업이 원래 이렇게 심심해요?”

“처음 해 봐서 모른다.”

“조합장님은요?”

“조합장님도 처음이다.”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했어요?”

“종이 안 울렸잖아.”

피나가 빈 배낭 하나를 끌어당겨 끈을 풀었다 매었다 했다. 심심하면 손이 끈으로 갔다. 짐꾼들은 다 그랬다.

그때 마당 입구에 은빛 머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길을 한 번만 잃었다. 셀린은 회색 외투 차림으로 마당에 들어와 피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끈 매는 거 가르쳐 줘.”

피나가 입을 벌렸다.

“리더님이요? 왜요?”

“협곡 바닥에서 거꾸로 멨어. 다시는 그러기 싫어.”

“리더님, 저희 지금 파업 중인데요.”

“그러니까 짐을 지라는 게 아니라 끈만 가르쳐 달라는 거야. 끈은 파업 안 하잖아.”

피나가 노아를 보았다. 노아는 숙소 계단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피나는 빈 배낭 하나를 셀린 앞에 놓았다.

한 시간 뒤, 셀린은 어깨끈 길이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두 시간 뒤에는 허리끈을 엉덩이뼈 위에 거는 데 성공했다. 가슴끈은 끝까지 등 뒤에서 잠겼다. 셀린이 손을 등 뒤로 돌려 가슴끈을 더듬는 모습을 짐꾼 열두 채가 창문으로 구경했다. S급 헌터가 배낭과 씨름하는 것은 파업 첫날의 유일한 구경거리였다.

“가슴끈은 가슴에 있어서 가슴끈이에요, 리더님.”

“알아. 근데 자꾸 뒤로 가.”

“앞으로 매시면 앞에 있어요.”

“그것도 알아.”

그날 밤 노아는 도르의 방에 들렀다. 도르는 부러진 다리를 베개 두 개 위에 올려놓고 누워 있었다. 방 벽에는 글씨 연습을 한 종이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 다리 빨리 나으세요. 도르는 왕도 학당에서 서기 공부를 하는 딸의 편지를 글씨 연습 삼아 베껴 붙여 두었다.

“이번 달 학비는 어떻게 하십니까?”

“파업.”

도르가 말했다. 파업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인지, 파업이 끝나면 내겠다는 말인지 노아는 알 수 없었다. 도르는 한 단어를 더 붙였다.

“괜찮다.”

“안 괜찮으시면 안 괜찮다고 하셔도 됩니다.”

도르가 천장을 보았다. 천장에 빗물 자국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다. 한참 뒤에 도르가 말했다.

“안 괜찮다. 그래도 한다.”

노아는 그 말을 들고 방을 나왔다. 한 단어씩 끊어 말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두 마디를 이어 붙였다.

*

둘째 날 아침에 톰이 왔다. 오른팔에 부목을 대고 천으로 목에 걸고 있었다. 콧수염 한쪽이 그을려 짧아져 있었다. 톰은 마당 입구에서 머뭇거리다가 노아를 보고 다가왔다.

“어제 혼자 12층에 갔어요. 짐꾼이 없어서요.”

노아가 계단에서 일어났다. 톰의 팔을 보았다. 부목이 엉터리였다. 천을 너무 세게 감아 손가락 끝이 보랏빛이었다.

“버섯 바구니를 다섯 개 한꺼번에 들고 계단을 내려왔어요. 노아 씨가 등에 지던 것처럼요. 그런데 저는 끈이 없어서 팔에 다 끼웠거든요. 그러다가 이백 번째 계단에서…….”

“구르셨습니까?”

“바구니가 먼저 굴렀어요. 저는 바구니를 잡으려다가 굴렀고요. 바구니 세 개는 건졌어요.”

톰은 그 말을 하면서 웃었다. 웃는데 눈가가 젖어 있었다. 노아는 오스왈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혼자 들어간 신참이 몇 명이나 돌아오는지 나는 숫자로 알고 있소.

노아는 톰의 팔에 감긴 천을 풀었다. 손가락에 피가 다시 돌면서 톰이 숨을 들이켰다. 노아는 부목을 다시 대고 천을 느슨하게 감았다. 그러고는 피나의 빈 배낭 하나를 들어 톰 앞에 놓았다.

“파업 중이라 대신 져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온 건 아니에요. 그냥…….”

“그 대신 지는 법은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팔 나으시면 쓰세요.”

노아는 배낭을 열어 보였다. 무거운 것은 등에 붙여 아래에, 가벼운 것은 위에, 자주 꺼내는 것은 옆주머니에. 바구니는 끈으로 엮어 배낭 위에 세로로 세운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무릎을 먼저 굽히고 발뒤꿈치부터 딛는다. 노아는 하나씩 말하면서 손으로 보여 주었고, 톰은 성한 왼손으로 따라 했다.

마당 건너편에서 가렛이 그걸 보고 있었다. 조합 사무실 문간에 마님을 짚고 서서. 짐꾼이 헌터에게 짐 꾸리는 법을 공짜로 가르치는 것은 조합 일감을 깎는 짓이었다. 가렛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보다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톰이 돌아간 뒤 피나가 노아 옆에 앉았다.

“선배, 그거 다 가르쳐 주면 헌터들이 짐꾼 안 쓰잖아요.”

“톰 씨는 어차피 짐꾼 못 쓴다. 값이 비싸서.”

“우리가 이기면 더 비싸져요.”

“안다.”

“알면서 이기려고요?”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나는 대답을 기다리다가 노아의 어깨 붕대를 갈 시간이라며 일어섰다. 노아는 그 대답을 아직 갖고 있지 않았다.

*

셋째 날 새벽, 조합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노아가 들어가자 가렛이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책상 위에 술병은 없었다. 대신 물 한 사발이 있었다.

“어제 그 신참한테 짐 꾸리는 법 가르쳤지?”

“예.”

“조합 일감 깎는 짓인 줄은 알고?”

“압니다.”

가렛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번 파업은 네 싸움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내 싸움이다. 이십 년 전에 나를 분실이라고 적은 놈들하고 하는 싸움이야. 네가 감독관 책상에 배낭을 올려놓은 건 잘했다. 그건 잘했는데…….”

가렛이 말을 끊고 마님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네 싸움은 49층에 있다. 여기 말고. 파업이 끝나면 넌 다시 올라가야 한다. 내가 못 간 데를.”

“조합장님이 못 가셨던 데가 49층입니까, 50층입니까?”

가렛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무실 창밖이 밝아 오고 있었다.

*

셋째 날 정오, 짐꾼 골목 입구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스무 명이었다. 길드 견습생 열 명과, 왕도에서 일거리를 찾아 내려온 날품팔이 열 명. 견습생들은 새 가죽 장화를 신었고, 날품팔이들은 맨발에 짚신이었다. 그 앞에 칼렌이 서 있었다. 오늘은 어깨받이도 차지 않았다. 대신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조합장 계십니까?”

칼렌이 큰 소리로 불렀다. 가렛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짐꾼들이 숙소에서 쏟아져 나와 가렛 뒤에 섰다. 골목이 양쪽에서 사람으로 막혔다.

“길드가 30층에서 40층 사이 보급 계약을 새로 맺었어요. 이분들이 하실 거예요. 그런데 이분들한테 배낭이 없네요. 조합 창고에 배낭이 이백 개 있다고 들었어요. 길드가 값을 쳐서 사겠습니다. 시세의 두 배로요.”

짐꾼들 사이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가렛이 손을 들어 욕을 멈췄다. 가렛이 대답하기 전에 노아가 앞으로 나왔다.

“배낭은 안 팝니다.”

“짐꾼한테 물은 게 아닌데요.”

“배낭 끈은 짐꾼 몸에 맞춰 꿰맨 겁니다. 다른 사람이 메면 끈이 어깨를 먹습니다. 이분들 어깨가 먹힙니다.”

“그럼 자루에 담으면 되죠. 감자 자루.”

노아는 대답 대신 날품팔이들 쪽으로 걸어갔다. 맨 앞에 선 사람은 쉰은 넘어 보이는 남자였다. 손등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짚신 앞코가 다 닳아 있었다. 노아가 그 남자에게 물었다.

“40층 위에 가 보셨습니까?”

“아니. 왕도에서 돌 나르다 왔소.”

“40층부터는 탑이 빈 몸을 누릅니다. 짐이 있어야 섭니다. 감자 자루는 어깨에서 미끄러집니다. 미끄러지면 내려놓게 됩니다. 내려놓으면 눕습니다.”

남자가 노아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칼렌을 돌아보았다.

“40층 위까지 가는 일이오?”

“아니에요. 40층 아래 보급만이에요. 금지령 때문에 40층 위는 헌터만 가요.”

“그럼 40층 위는 누가 지오?”

칼렌이 대답을 고르는 사이, 노아가 칼렌 앞으로 돌아섰다.

“부리더님, 40층 위는 누가 집니까?”

“헌터가 지죠.”

“부리더님이 지십니까?”

칼렌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다 지어지기도 전에 칼렌의 창대 끝이 움직였다. 창대 뭉툭한 끝이 노아의 오른 어깨를 찔렀다. 붕대 감은 바로 그 자리였다. 노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셔츠 위로 붉은 것이 번졌다. 짐꾼들이 와 하고 앞으로 쏟아지려 했고, 가렛의 마님이 돌바닥을 한 번 크게 찍었다. 짐꾼들이 멈췄다.

노아가 일어섰다. 어깨를 감싸지 않았다.

“지신다면 끈 매는 법은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공짜로요.”

칼렌이 창대를 거두었다. 날품팔이 맨 앞의 남자가 짚신을 고쳐 신더니 칼렌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는 돌아가겠소. 왕도 돌이 덜 무겁소.”

남자가 돌아서자 날품팔이 열 명 중 여섯이 따라 돌아섰다. 남은 넷과 견습생 열 명이 칼렌 뒤에 섰다. 칼렌이 그들을 데리고 길드 거리 쪽으로 돌아가며, 노아를 보지 않고 말했다.

“배낭이 없으면 헌터가 직접 지면 되겠네요. 그 꼴 구경하러 오세요.”

*

그날 저녁, 길드 게시판 맨 위 칸에 새 종이가 붙었다. 피나가 그 종이를 베껴 와 숙소 마당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헌터 길드 공지. 짐꾼 없는 등반의 안전을 증명하기 위해, 길드 소속 헌터 스무 명이 직접 짐을 지고 41층까지 오른다. 인솔 칼렌 하웰. 왕실 탑 감독관 오스왈드께서 40층 경계 계단에서 입회하신다. 모레 아침 여섯 시.”

마당이 조용했다. 시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헌터 스무 명이 짐을 진다고? 노래 하나 나오겠는데.”

“노래 짓지 마.”

“제목만 지을게. 「끈은 앞으로」.”

피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노아를 보았다. 노아는 셔츠를 벗고 계단에 앉아 있었고, 셀린이 그 옆에서 노아의 어깨 붕대를 감고 있었다. 셀린의 손은 서툴렀다. 붕대가 세 번 풀렸다. 네 번째에 감겼다.

“너 이거 맨날 이렇게 다쳐?”

“매일은 아닙니다. 칼렌 부리더님 만나는 날만입니다.”

“그럼 매일이네.”

셀린이 붕대 끝을 묶었다. 매듭은 단단했다. 끈 매는 법을 이틀 배운 사람의 매듭이었다.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짐꾼 없는 사흘 · S급 헌터들의 짐꾼입니다만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