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284자)

먼저 와 있는 짐

S급 헌터들의 짐꾼입니다만 · 백해원

등반세 열 배는 동화 일만 이천 닢이었다. 짐꾼 골목 열두 채가 겨울 숯값으로 모아 둔 항아리를 다 깨서 셌다. 수레 두 대에 나눠 싣고 청사까지 끌고 가는 동안 동화가 수레 바닥에서 짤랑거렸고, 길드 거리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줄줄이 구경을 나왔다. 시오는 수레를 끌며 동전 노래를 지었다. 한 닢은 숯이요, 두 닢은 숯이요, 만 이천 닢도 다 숯이라네.

오스왈드는 그 동화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게 했다. 서기 셋이 반나절 동안 세었다. 다 센 뒤 오스왈드가 영수증 대신 작은 놋쇠 패 하나를 내주었다. 40층 경계 계단을 한 번 넘을 수 있다는 왕실 통행패였다.

이튿날 아침, 30층 하역장에 백야가 모였다. 셀린, 하름, 루카. 짐꾼은 노아와 피나와 시오. 그리고 증인 칼렌. 칼렌은 어제 41층에서 멨던 흰 달 수의 배낭을 그대로 메고 있었다. 위쪽이 여전히 불룩했다.

도르가 목발을 짚고 배웅을 나왔다. 부러진 다리에 감은 부목이 하역장 바닥에 끌리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도르는 노아 앞에 서서 큰 손을 노아의 정수리에 얹었다. 그러고는 한 단어를 말했다.

“와라.”

가렛은 엘리베이터 쇠문 앞에 서 있었다. 노아가 쇠문으로 걸어가자 가렛이 마님을 한 걸음 내디뎌 노아를 막았다.

“회랑은 한 시간이다. 걸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게. 발을 멈추면 발밑 돌이 내려앉는다.”

“예.”

“거기서 뭘 보든, 내려와서 나한테 말해라.”

가렛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았다. 노아는 무엇을 보게 되느냐고 묻지 않았다. 물어도 가렛이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

41층부터 48층까지는 열린 층이었다. 이틀이 걸렸다. 44층의 송진 냄새는 여전히 목구멍에 막을 발랐고, 45층 바닥은 평평했고, 46층 얼음 계단에는 칼렌의 엉덩이가 미끄러진 자국이 열두 칸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칼렌은 그 자국을 밟지 않으려고 계단 가장자리로 올라갔다.

47층 협곡을 지날 때 바닥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칼렌의 가슴판이었다. 소리 짐승들은 그 근처에 없었다. 칼렌은 그 반짝임을 끝까지 내려다보지 않았다.

48층 돌다리는 한 사람씩 건넜다. 셀린은 이번에 한 번만 길을 잘못 들 뻔했다. 다리가 한 줄뿐이라서 잘못 들 수 있는 길이 오른쪽 허공밖에 없었다. 셀린이 허공 쪽으로 발을 반 뼘 내밀었다가 거둬들였다. 뒤에서 루카가 지팡이를 깨물었다.

49층 계단 앞에서 노아가 걸음을 멈췄다. 일행이 다 멈췄다.

계단 위에서 바람이 내려왔다. 마른 돌먼지 냄새였다. 오래 닫혀 있던 방을 처음 열 때 나는 냄새였다. 노아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 냄새를 맡으며 20년 전의 가렛도 이 계단 앞에 섰다.

“다들 짐 확인하세요. 무거운 게 아래로 갔는지.”

피나와 시오가 서로의 배낭을 두드려 보았다. 하름과 루카도 따라 했다. 셀린은 자기 가슴끈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칼렌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부리더님 배낭은 위가 무겁습니다.”

“어제 짐꾼이 끈 조여 줬잖아요.”

“끈은 조였는데 갑옷은 그대로 위에 있습니다.”

“증인은 짐을 확인받지 않아요. 짐꾼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는 게 내 일이에요.”

노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계단을 올랐다.

*

49층은 회랑이었다. 사람 셋이 나란히 걸을 만한 폭의 긴 복도가 앞으로 곧게 뻗어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손바닥 두 개만 한 네모난 돌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벽은 매끄러웠고, 천장은 높았고, 천장에서 누름바람이 내려왔다. 44층보다 무거웠다. 솥뚜껑 위에 솥이 하나 더 얹힌 것 같았다.

노아가 첫 돌을 밟았다. 돌이 발바닥 아래에서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가 멈췄다. 노아가 다음 돌로 발을 옮기자, 뒤에 남은 첫 돌이 천천히 원래 높이로 올라왔다.

“걸으세요. 같은 걸음으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시오가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시오의 노래는 박자가 정확했다. 짐꾼들이 계단을 오를 때 부르는 걸음 노래였고, 가사는 없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일곱 사람이 그 박자에 맞춰 걸었다.

반 시간쯤 걸었을 때 회랑 바닥 한쪽에 무언가가 보였다. 돌 하나가 깊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구멍 가장자리에 오래된 나무 조각이 박혀 있었다. 짐꾼들이 짐을 받치는 지게 다리 같았다. 노아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 옆을 지나갔다. 그 자리가 어디인지 노아는 알았다. 가렛이 멈춘 자리였다. 누가 넘어져도 멈추지 마라. 가렛은 넘어진 누군가를 일으키려고 거기서 멈췄다.

노아의 목이 한 번 굳었다. 걸음은 굳지 않았다.

*

회랑 한복판에서 칼렌이 처졌다.

위가 무거운 배낭은 걸음마다 칼렌의 허리를 뒤로 당겼고, 칼렌은 그걸 버티느라 박자를 놓쳤다. 한 박자 늦게 디딘 돌이 깊이 가라앉았다. 칼렌이 놀라서 발을 빼려다 또 한 박자 늦었다. 그 돌이 반 뼘 내려앉았다.

“젠장.”

칼렌이 배낭을 벗어 던졌다. 은실 흰 달 배낭이 회랑 바닥에 떨어져 미끄러졌다. 빈 몸이 된 칼렌을 누름바람이 내리눌렀다. 칼렌의 무릎이 꺾였다. 무릎 꿇은 자리의 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짐꾼!”

칼렌이 노아를 불렀다. 노아는 두 걸음 앞에 있었다.

“짐 내려놓고 나 업어. 지금. 명령이야.”

일행의 박자가 흔들렸다. 피나가 노아를 보았고, 셀린이 칼을 반쯤 뽑았다가 도로 넣었다. 회랑에서 칼은 아무것도 벨 수 없었다.

노아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같은 돌 두 개 위에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시오의 박자 그대로였다. 노아의 발밑 돌은 가라앉으려다가 다시 올라왔다. 발이 멈추지만 않으면 됐다. 앞으로 가지 않아도 됐다.

“다들 제자리에서 걸으세요! 앞으로 가지 마시고, 발만 계속!”

일행이 멈추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시작했다. 일곱 사람이 회랑 한복판에서 같은 박자로 발을 굴렀다. 하름이 방패를 메고, 루카가 지팡이를 안고, 셀린이 칼집을 잡고, 무릎을 높이 들었다가 내렸다. 하나, 둘, 하나, 둘. 아르센에서 가장 비싼 헌터들이 49층 회랑에서 장날 광대처럼 발을 구르고 있었다. 피나가 웃음을 참다가 박자를 놓칠 뻔해서 시오가 박자를 더 크게 불렀다.

노아는 제자리걸음으로 칼렌 옆까지 갔다. 그러고는 칼렌이 던진 흰 달 배낭을 끌어당겨 칼렌 앞에 놓았다.

“부리더님 짐입니다. 지세요.”

“그걸 지면 허리가…….”

“제가 끈 조입니다. 일어나서 발 구르세요.”

칼렌은 배낭을 보았다. 노아를 보았다. 무릎 아래의 돌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더 내려앉았다. 칼렌이 배낭에 팔을 끼웠다. 노아가 칼렌의 어깨끈과 허리끈과 가슴끈을 차례로 조였다. 발은 계속 굴렀다. 칼렌이 일어섰다. 그리고 발을 굴렀다. 박자가 맞지 않았다. 두 번째에 맞았다.

칼렌의 배낭은 그래도 위가 무거웠다. 서 있기는 했지만 걸음마다 허리가 휘었다. 노아는 칼렌의 배낭 덮개를 열었다. 이번에는 칼렌이 막지 않았다. 노아가 은도금 가슴판을 꺼내 자기 가슴 앞에 끈으로 묶었다. 어깨받이 두 짝도 꺼내 자기 배낭 옆에 매달았다. 노아의 짐이 열여덟 관이 되었다. 오른 어깨에서 뜨거운 것이 다시 흘렀다.

“가겠습니다. 앞으로.”

일곱 사람이 다시 앞으로 걸었다. 노아는 앞뒤로 갑옷과 배낭을 메고, 맨 앞에서 시오의 박자를 밟았다. 셀린이 노아 바로 뒤에서 걸으며, 노아의 셔츠 등판이 붉게 젖어 가는 것을 보았다. 셀린은 노아의 배낭 밑동에 손바닥을 대고 아래에서 받쳤다. 그만큼 노아의 어깨가 덜 내려갔다. 노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

회랑 끝은 갑자기 왔다. 바람이 멎고, 바닥의 돌이 더 가라앉지 않았다. 노아가 49층 표석에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흰 빛이 회랑 뒤쪽으로 번져 나가며 내려앉았던 돌들을 하나씩 원래 높이로 밀어 올렸다. 가렛이 멈췄던 자리의 구멍만은 메워지지 않았다.

일행이 표석 앞 바닥에 주저앉았다. 피나가 배낭을 끌어안고 숨을 몰아쉬었고, 하름은 방패를 베고 드러누웠고, 루카는 지팡이의 이빨 자국을 손가락으로 세었다. 셀린이 노아의 셔츠를 걷고 붕대를 새로 감았다. 이번에는 한 번에 감겼다.

칼렌은 일행과 조금 떨어져 앉아 있었다. 노아의 가슴 앞에 묶인 자기 가슴판을 오래 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 안 버렸어요? 내 갑옷.”

“부리더님 짐이라서요.”

“나는 짐꾼한테 그걸 맡긴 적 없어요.”

“예. 그래서 내려가면 돌려 드리겠습니다. 운반비는 안 받습니다.”

칼렌이 웃으려다 말았다. 대신 손을 뻗어 가슴판을 달라는 시늉을 했다. 노아는 끈을 풀지 않았다.

“50층까지는 제가 집니다. 부리더님 허리가 아직 휩니다.”

칼렌의 손이 허공에서 잠깐 머물다가 거두어졌다.

50층은 계단 열두 칸 위에 있었다. 방은 작았다. 사방이 매끄러운 흰 돌이었고, 맞은편 벽 전체가 문 하나였다. 문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대신 사람 어깨 높이에 가죽끈처럼 생긴 돌 고리 두 개가 새겨져 있었다. 배낭 어깨끈을 닮은 고리였다.

칼렌이 먼저 걸어갔다. 증인이었고, 증인은 앞에서 보아야 했다. 칼렌이 문에 두 손을 대고 밀었다.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름이 방패로 밀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셀린이 칼자루로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벽을 확인하듯이. 아무 일도 없었다.

노아가 앞으로 나갔다. 등에 열 관, 가슴에 칼렌의 갑옷. 노아는 돌 고리 두 개에 손을 하나씩 걸었다. 배낭 끈을 잡듯이.

문이 열렸다.

소리 없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마른 돌먼지가 한 번 쏟아져 나왔다가 가라앉았다. 문 안쪽은 어두웠다. 루카가 지팡이 끝에 작은 불을 켜자, 좁은 방 하나와 그 너머로 이어지는 위층 계단이 보였다. 계단 첫 칸에 금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탑 꼭대기를 본뜬 모양이었다. 오스왈드의 품 안 봉투에 찍혀 있던 그 봉인과 같았다.

방 한가운데에 배낭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래된 소가죽 배낭이었다. 먼지가 손가락 한 마디 두께로 앉아 있었다. 끈은 꾸려진 그대로였고, 풀린 데가 하나도 없었다. 무거운 것이 아래로 가게 꾸린 배낭이었다. 짐꾼이 꾸린 배낭이었다.

노아가 무릎을 굽혀 먼지를 쓸었다. 왼쪽 어깨끈에 놋쇠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손톱으로 녹을 긁어 내자 새긴 글씨가 나왔다.

「가렛 몰」.

뒤에서 피나가 숨을 들이켰다. 노아는 이름표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가렛은 49층에서 다리를 두고 석 달을 기어서 내려왔다. 가렛은 50층에 오지 못했다. 그런데 가렛의 배낭은 문 안에 먼저 와 있었다. 문은 짐을 진 사람에게만 열렸다.

누가 이 배낭을 지고 이 문을 열었을까?

칼렌이 문간에서 그 배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렌의 얼굴은 부드럽지 않았다. 칼렌이 아주 작게 말했다.

“나는 이 문이 열리는 걸 못 봤어요.”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렛의 배낭 어깨끈을 엄지로 쥐어 보았다. 오래된 소가죽이 손안에서 아직 단단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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