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85자)
짐은 짐입니다
S급 헌터들의 짐꾼입니다만 · 백해원
금지령 종이는 하룻밤 사이에 아르센 곳곳에 붙었다. 30층 하역장 기둥, 1층 탑 문, 길드 게시판 맨 아래 칸, 그리고 짐꾼 골목 입구의 우물 벽에도. 우물 벽의 종이는 아침에 물을 길으러 나온 짐꾼 아낙들이 두레박 물을 끼얹어 반쯤 녹여 놓았다. 그래도 굵은 글씨는 남아 있었다.
조합 사무실은 사람으로 꽉 찼다. 짐꾼들이 책상 앞에서부터 문밖 골목까지 서 있었고, 창문 밖에도 머리들이 매달렸다. 땀 냄새와 젖은 가죽 냄새가 사무실 공기를 데웠다. 가렛이 책상 위에 금지령 한 장을 펴 놓고 큰 소리로 읽었다. 글을 모르는 짐꾼이 반은 됐다.
“하나. 탑 40층 위의 등반은 헌터 길드에 등록된 헌터만 한다. 둘. 파티가 반입한 화물, 곧 짐꾼은 40층 경계 계단을 넘지 못한다. 셋. 어긴 짐꾼과 그 짐꾼을 데려간 파티는 등반세를 열 배로 문다.”
가렛이 종이를 내려놓았다. 사무실 안이 웅성거렸다. 뒤쪽에서 누가 소리쳤다.
“그럼 40층 위 짐은 누가 져요?”
“헌터들이 지겠지.”
“헌터가 짐을 져요? 걔들은 자기 칼도 짐꾼한테 맡기는데?”
웃음이 터졌다가 금방 꺼졌다. 웃을 일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았다. 40층 위 동행은 짐꾼 일당의 세 배였다. 아르센 짐꾼 삼백 명 중에 40층 위를 밟는 사람은 스무 명도 안 됐지만, 그 스무 명이 버는 돈이 골목 열두 채의 겨울 숯값이었다.
가렛이 종이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까닭도 적혀 있다. 짐꾼이 헌터 장비를 함부로 다뤄 파티를 위험하게 한 일이 보고되었다고. 짐꾼이 정해진 무게를 넘겨 48층 돌다리를 건넌 일이 있었다고. 보고한 사람 이름은 안 적혀 있는데.”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다들 노아를 보았다. 노아는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오른 어깨의 붕대가 셔츠 위로 불룩했다.
“그리고 이거.”
가렛이 금지령 밑에 깔린 쪽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왕실 인장이 찍힌 작은 소환장이었다.
“짐꾼 노아 렌. 오늘 열 시, 감독관 청사.”
*
감독관 청사는 길드 거리 끝에 있었다. 원래는 왕도로 가는 소금 수레의 세금을 걷던 세관 건물이었고, 지붕 위에는 아직 녹슨 저울 모양 풍향계가 돌았다. 노아는 가렛과 함께 청사 계단을 올랐다. 가렛의 의족이 돌계단마다 탁, 탁 소리를 냈다. 오늘 아침 마님은 울지 않았다.
청사 안은 서늘하고 종이 냄새가 났다. 긴 복도 끝 방에 커다란 참나무 책상이 있었고, 책상 뒤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마흔 중반쯤, 회색 머리를 단정하게 넘기고, 소매 끝에 잉크 얼룩 하나 없는 남자였다. 남자의 책상 위에는 펜과 주판과 봉투 몇 개가 줄을 맞춰 놓여 있었다.
“왕실 탑 감독관 오스왈드요. 앉으시오.”
의자는 둘이었다. 하나에는 이미 칼렌이 앉아 있었다. 칼렌은 오늘 망토를 걸치지 않았다. 대신 어깨에 은도금 어깨받이 두 짝만 차고 있었다. 47층부터 시오의 배낭 밑바닥에 들어 있던 어깨받이를, 칼렌이 어젯밤 사람을 보내 조합에서 찾아갔다.
노아는 앉지 않았다. 가렛이 남은 의자에 앉았다. 마님을 책상 다리에 기대 놓으면서 가렛이 중얼거렸다.
“어깨받이만 차니까 닭 날개 같네.”
칼렌의 귀가 붉어졌다. 오스왈드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서류 한 장을 폈다.
“하웰 부리더의 보고서요. 47층에서 짐꾼 하나가 헌터 장비를 협곡에 던졌소. 48층에서는 다친 짐꾼을 업고 돌다리를 건너 파티 전체를 위험하게 했소. 맞소?”
“던진 건 맞습니다. 위험하게 한 건 아닙니다.”
“던진 건 맞다.”
오스왈드가 펜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방 안에 오래 남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셀린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외투 어깨에 밀가루 같은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세관 창고로 들어갔어요. 옆 건물이요. 소금 자루 사이에서 십오 분 헤맸어요.”
“바크 리더시군.”
“예. 47층과 48층에 저도 있었어요. 증언하러 왔어요.”
“S급 리더의 증언은 받겠소. 앉으시오. 의자는 없소.”
셀린은 노아 옆에 섰다. 외투에서 소금 가루가 떨어졌다.
*
오스왈드가 서류를 덮었다. 그러고는 펜을 내려놓고 두 손을 책상 위에 모았다.
“솔직하게 말하겠소. 나는 47층에서 무슨 갑옷이 어디로 굴러갔는지에는 관심이 없소. 이 금지령은 안전 때문이 아니오.”
칼렌이 몸을 돌려 오스왈드를 보았다. 처음 듣는 말인 얼굴이었다.
“아르센의 등반세는 헌터 등급으로 매기오. S급은 층마다 은화 다섯 닢, A급은 넷, 그 아래로 내려가며. 짐꾼은 화물이라 세금이 없소. 왕실이 짐꾼을 화물로 센 건 짐꾼이 가난해서요. 세금을 매겨 봐야 걷을 수가 없으니까.”
오스왈드가 노아를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똑바로 보았다.
“그런데 짐꾼이 층을 열면 짐꾼은 화물이 아니오. 등반자요. 등반자는 등록해야 하고, 등록하면 세금이 붙소. 짐꾼 한 사람이 40층 위를 한 번 오를 때마다 층마다 은화 한 닢. 그 돈은 누가 내겠소? 짐꾼이 내겠소?”
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짐꾼은 못 내지. 그럼 짐꾼을 쓰는 파티가 내오. 그러면 짐꾼 값이 오르오. 짐꾼 값이 오르면 S급 파티는 계속 짐꾼을 쓰고, F급 신참은 짐꾼을 못 쓰오. 신참은 혼자 탑에 들어가오. 혼자 들어간 신참이 몇 명이나 돌아오는지 나는 숫자로 알고 있소.”
노아는 동화 서른 닢을 떠올렸다. 톰의 콧수염과, 12층 버섯 숲과, 바구니 다섯 개. 반값 버섯을 따러 계단 육백 개를 걸어 오른 톰의 다리.
“짐꾼이 사람으로 세어지면 짐꾼 골목은 좋아지겠지. 그 대신 다른 골목이 나빠지오. 나는 그 두 골목의 숫자를 다 보는 사람이오.”
셀린이 입을 열었다.
“그럼 짐꾼은 계속 화물로 둬요? 짐꾼이 층을 열어도?”
“짐꾼이 층을 열었다는 기록은 없소, 바크 리더. 44층은 하웰 부리더가, 45층도 하웰 부리더가, 46층은 바크 리더가 열었소. 47층과 48층은 보고가 아직이오.”
칼렌이 아주 작게 웃었다.
*
노아가 배낭을 벗었다.
청사에 들어올 때부터 메고 있던 배낭이었다. 안에는 짐꾼 조합 저울로 단 돌 열두 관이 들어 있었다. 오늘 아침 노아가 일부러 채워 왔다. 노아는 그 배낭을 오스왈드의 참나무 책상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책상이 끽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고, 줄을 맞춰 놓여 있던 펜과 주판이 한쪽으로 미끄러졌다.
“감독관님, 이게 열두 관입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오스왈드가 배낭을 내려다보았다. 칼렌이 일어서려 했지만 오스왈드가 손을 들어 막았다. 오스왈드는 일어나서 소매를 걷었다. 그러고는 배낭 어깨끈을 두 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배낭이 책상에서 한 뼘 떠올랐다. 오스왈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 뼘째에서 오스왈드의 팔이 떨렸다. 세 뼘을 들기 전에 오스왈드는 배낭을 도로 책상에 내려놓았다. 쿵 소리에 창틀이 울렸다.
오스왈드가 숨을 고르며 소매를 내렸다.
“무게는 내 일이 아니오.”
“예.”
“숫자가 내 일이오. 이 배낭에 무엇을 넣어 왔든 나는 그걸 지고 44층을 오를 수 없소. 그건 알겠소. 그래서 당신이 44층을 열었다고 내가 믿는다고 칩시다. 그래도 내 숫자는 그대로요. 짐은 짐이오.”
노아는 배낭을 다시 멨다. 끈이 어깨 붕대를 눌렀다.
“짐은 짐입니다. 그런데 짐을 지는 건 사람입니다, 감독관님. 짐이 혼자 44층에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오스왈드가 처음으로 대답을 늦췄다. 방 안에서 주판알 하나가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도 줍지 않았다.
*
가렛이 일어섰다. 마님을 짚고 책상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감독관 나리. 하나만 묻겠소. 40층 위에서 짐꾼이 죽으면, 그 숫자는 어디에 적히오?”
오스왈드가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서 끈으로 묶은 낡은 종이 묶음을 꺼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40층 위에서 일어난 사고를 왕도에 올린 보고 사본이었다. 그는 묶음을 넘기다가 한 장에서 멈췄다. 그리고 가렛을 올려다보았다.
“화물 분실로 적히오.”
오스왈드가 종이를 돌려 가렛 쪽으로 밀었다.
“20년 전 여름. 49층. 파티 「청람」. 헌터 넷 귀환, 화물 하나 분실. 분실 화물 이름, 가렛 몰.”
가렛이 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노아도 보았다. 가렛 몰이라는 이름 옆에 「분실」이라는 두 글자가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반환되지 않음」이라는 글씨가 다른 잉크로 덧붙어 있었다.
“나는 돌아왔소.”
가렛이 말했다.
“한쪽 다리를 두고 기어서 돌아왔소. 49층에서 30층까지 석 달이 걸렸소.”
“기록에는 반환되지 않았다고 되어 있소. 화물은 반환되면 다시 적지 않소. 사람이 아니라서.”
오스왈드의 목소리는 끝까지 정중했다. 가렛은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마님이 복도 돌바닥을 짚는 소리가 멀어졌다. 탁, 탁, 탁. 노아는 그 소리가 그렇게 빠른 것을 처음 들었다.
노아는 셀린보다 먼저 방을 나왔다. 복도 중간에서 누가 노아의 배낭 끈을 잡았다. 칼렌이었다. 은도금 어깨받이 두 짝이 복도 창으로 들어온 빛에 번쩍였다.
“짐꾼, 감독관 말 들었죠? 당신이 이기면 신참들이 혼자 탑에 들어가요. 당신이 지면 짐꾼들이 계속 밥을 먹고요. 어느 쪽이 사람을 더 살리는지는 숫자가 말해 주네요.”
“부리더님은 47층에서 숫자로 줄을 끊으셨습니다.”
“그래서 셋이 살았죠.”
“도르 씨도 살았습니다. 숫자에 없던 사람입니다.”
칼렌의 손이 배낭 끈에서 떨어졌다. 칼렌은 어깨받이를 고쳐 차며 웃었다. 그 웃음이 복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꺼졌다.
“다음 시즌에도 짐꾼이 화물로 남으면, 그건 오늘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그 배낭을 감독관 책상에 올려놓아서. 왕실 감독관에게 망신을 준 짐꾼을, 왕실이 사람으로 세어 줄 것 같아요?”
“망신은 배낭이 드렸습니다. 저는 들어 보시라고만 했습니다.”
복도 저편에서 셀린이 걸어오다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셀린의 외투에서 소금 가루가 또 떨어졌다. 칼렌은 셀린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셀린이 노아 옆에 서서 소금 가루를 털며 말했다.
“나 저기서 또 길 잃을 뻔했어. 복도가 하나뿐인데.”
“여기는 복도가 하나뿐입니다, 리더님.”
“그러니까 신기하다는 거야.”
노아가 청사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짐꾼 골목 쪽에서 종이 울렸다. 조합 사무실 지붕 위에 매달린 낡은 놋쇠 종이었다. 그 종은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종소리는 다섯 번 울리고 멈췄다가, 다시 다섯 번 울렸다. 길드 거리를 걷던 헌터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보았다. 짐꾼들은 그 박자를 알았다. 짐을 내려놓으라는 종이었다. 아르센의 모든 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