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90자)
45층은 기울어 있다
S급 헌터들의 짐꾼입니다만 · 백해원
30층 하역장의 석탄 연기는 아침이면 더 짙었다. 증기 엘리베이터가 밤새 식었다가 새벽에 다시 불을 넣기 때문에, 첫 운행 전 한 시간 동안은 쇠문 틈마다 검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짐꾼 넷은 그 김 속에서 배낭을 점검했다. 노아는 끈 고리 하나하나에 엄지를 걸어 당겨 보았고, 피나는 물통 마개를 다 열었다 닫았고, 시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밧줄 매듭을 지었고, 도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었다. 도르는 어젯밤에 다 해 두었다.
칼렌은 쇠문에서 내리자마자 짐꾼 넷을 세었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천천히. 그러고는 셀린을 돌아보았다.
“리더님 이름으로 고용하셨다고요. 부리더인 저한테는 한 말씀도 없이.”
“말하면 반대했을 거잖아.”
“당연하죠. 짐꾼이 넷이면 몫이 넷 더 나갑니다.”
“몫은 내 몫에서 나가. 네 몫은 그대로야.”
칼렌은 웃었다. 그 웃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는 자기 짐꾼 상자에서 가죽 자루 하나를 꺼냈다. 자루 입구로 은도금한 어깨받이가 삐죽 나와 있었다. 칼렌은 자루를 도르 앞에 내려놓았다.
“덩치값은 해야죠. 이건 거기다 얹어요.”
“그게 뭡니까, 부리더님?”
노아가 물었다. 칼렌이 노아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승급 심사 때 입을 갑옷이에요. 심사관이 50층 표석 앞에서 기다리는데, 거기서 갈아입고 서야 그림이 나오죠.”
“여섯 관입니다. 도르 씨는 이미 열여섯 관을 지고 있습니다.”
“그럼 스물두 관이네요. 산수 잘하네요, 짐꾼.”
도르가 자루를 들어 배낭 맨 위에 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아가 다가가려 하자 도르가 큰 손을 들어 노아의 가슴을 가볍게 막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내민 손이었다. 노아는 도르의 배낭이 위쪽으로 불룩하게 솟은 것을 보았다. 무거운 것이 위에 있으면 짐이 사람을 끌고 다닌다.
*
31층부터 43층까지는 하루가 걸렸다. 31층에서는 소금 바람이 눈을 따갑게 했고, 시오는 그 바람을 맞으며 짠물 노래를 지어 불렀다. 37층에서는 돌 가재 떼가 계단을 막아 하름의 방패가 반나절 동안 쉬지 못했다. 41층에서 처음 누름바람이 머리 위에 얹혔을 때, 피나가 무릎을 굽힌 채 숨을 몰아쉬었다.
“선배, 이게 그거예요? 누가 머리 위에 솥뚜껑 얹어 놓은 것 같은 거?”
“솥뚜껑은 아직이다. 지금은 냄비 뚜껑이다.”
“냄비 뚜껑이 이 정도면 솥뚜껑은 어떤데요?”
“44층에 가 보면 안다.”
44층은 이미 열린 층이었다. 노아가 표석에 손을 얹은 뒤로 바람은 다시 오지 않았다. 송진 냄새만 그대로였다. 짐꾼들이 그 넓은 방을 지나는 동안 셀린이 한 번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남은 밧줄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돌바닥에 송진이 굳으면서 밧줄이 끌린 자리를 그대로 붙잡아 두고 있었다. 다섯 줄의 긴 홈이 계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칼렌은 그 홈을 밟고 지나갔다.
*
45층 계단을 올라서자 몸이 먼저 기울었다.
방은 넓고 밝았다. 천장의 틈으로 흰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바닥은 흰 대리석처럼 매끄러웠다. 그런데 그 바닥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처음에는 탁자를 한쪽만 괸 것처럼 조금 기울었다가, 일행이 열 걸음을 들어서자 조금 더 기울었다. 오른쪽 끝에는 벽이 없었다. 바닥이 그대로 끝나고, 그 너머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있었다. 허공에서 차가운 바람이 거꾸로 올라왔다.
“무게를 따라 기우는 층입니다.”
노아가 낮게 말했다. 지난 시즌 46층까지 올라오며 한 번 지나간 층이었다. 그때는 바닥이 지금처럼 빨리 기울지 않았다.
“다들 왼쪽 벽에 붙으세요. 무거운 사람이 왼쪽, 가벼운 사람이 오른쪽에서 걸으면 바닥이 덜 기웁니다.”
“짐꾼이 지휘를 하네.”
칼렌이 말했지만 왼쪽 벽 쪽으로 붙었다. 하름이 방패를 비스듬히 들어 균형을 잡았고, 루카는 하름의 허리띠를 붙잡았다. 셀린은 오른쪽으로 걸었다.
“리더님, 왼쪽입니다.”
“지금 가벼운 사람이 오른쪽이라며.”
“리더님은 갑옷까지 하면 무거운 쪽입니다.”
“…….”
셀린이 말없이 왼쪽으로 건너왔다. 피나가 웃음을 참느라 볼을 부풀렸고, 볼을 부풀린 채로 미끄러질 뻔해서 시오가 그 팔을 잡았다.
방 한가운데쯤 왔을 때 도르의 발이 미끄러졌다.
도르의 배낭 맨 위에 얹힌 갑옷 자루가 오른쪽으로 쏠리면서 도르의 상체가 같이 기울었다. 도르는 무릎을 굽혀 버텼지만 매끄러운 바닥에서 짐꾼 신발 바닥이 끽 소리를 내며 반 뼘 밀려났다. 반 뼘 밀려나자 바닥이 그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 스물두 관에 사람 무게까지 한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도르의 숨소리가 커졌다. 소처럼 길고 낮은 숨이었다.
노아가 배낭을 진 채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몸을 낮춰 도르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도르의 배낭 아래 끈을 붙잡고 자기 몸무게를 왼쪽으로 실었다. 도르의 미끄러짐이 멈췄다. 둘은 그 자세로 멈춰 숨을 몰아쉬었다.
“시오, 피나, 이쪽으로.”
노아는 짐꾼 둘을 부른 다음, 도르의 배낭 위에서 갑옷 자루를 끌어 내렸다.
*
칼렌이 벽에서 떨어져 노아 앞으로 왔다. 기운 바닥 위에서도 칼렌의 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A급 헌터의 다리였다.
“그거 뭐 하는 거죠?”
“이 갑옷을 풀겠습니다.”
“내려놓는다고요? 여기에요?”
“여기 두고 가시든지, 아니면 풀어서 나눠 담겠습니다. 무거운 게 위에 있으면 이 층을 못 건넙니다. 도르 씨가 떨어집니다. 도르 씨가 떨어지면 갑옷도 같이 떨어집니다.”
“그건 승급 심사용이에요. 금화 마흔 닢짜리 갑옷을 짐꾼 손이 풀어 헤친다고요?”
“금화 마흔 닢이 저 아래로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노아가 오른쪽 허공을 턱으로 가리켰다. 칼렌의 눈이 잠깐 그쪽을 갔다가 돌아왔다. 칼렌의 목소리가 한 단 낮아졌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깎이는 소리가 났다.
“짐꾼이 헌터 짐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압니다. 조합에서 제명입니다.”
“그런데도요?”
“예.”
노아는 대답하면서 자루 끈을 풀었다. 칼렌의 손이 창대로 갔다. 하름이 방패를 반쯤 들었고, 루카가 숨을 들이켰다. 셀린은 벽에 등을 붙이고 팔짱을 낀 채 보고만 있었다. 말리지 않았다. 노아가 그걸 보았다. S급 리더는 짐꾼이 이 층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했다.
노아가 갑옷을 한 조각씩 꺼냈다. 은도금한 어깨받이 둘, 가슴판, 팔 보호대 넷, 무릎 보호대 둘. 조각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칼렌 하웰, 칼렌 하웰, 칼렌 하웰. 노아는 가슴판을 자기 배낭 밑바닥으로 밀어 넣었고, 어깨받이는 시오에게, 팔 보호대는 피나에게, 무릎 보호대는 도르의 배낭 맨 아래에 넣었다. 짐을 다시 꾸릴 때마다 바닥이 조금씩 흔들렸고, 그때마다 짐꾼 넷이 동시에 무릎을 굽혀 몸을 낮췄다. 말로 맞춘 것이 아니라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그 사이 노아의 배낭 옆에 매달린 물통 하나가 끈이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물통은 매끄러운 바닥을 따라 오른쪽으로 굴러갔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다음에는 빠르게. 노아가 손을 뻗었지만 짐을 진 채로는 닿지 않았다. 물통이 바닥 끝에서 한 번 튀어 오르더니 허공으로 사라졌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두 관 버렸네요.”
칼렌이 말했다.
“갑옷 대신 물을 버렸어요, 짐꾼. 46층에서 목마르면 누구 원망할래요?”
“제 물통입니다. 제가 마시겠습니다. 덜.”
노아가 배낭 끈을 다시 조였다. 도르의 배낭은 이제 아래가 무겁고 위가 가벼웠다. 도르가 일어서자 바닥이 조금 덜 기울었다.
*
45층 표석에는 칼렌이 먼저 손을 얹었다. 표석까지 스무 걸음 남았을 때 그는 혼자 앞으로 달렸다. 짐이 없는 헌터의 다리는 빨랐다. 표석에서 흰 빛이 번지고, 기울었던 바닥이 천천히 수평으로 돌아왔다.
“45층, 칼렌 하웰.”
칼렌이 소리 내어 말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시오가 노래를 지으려다가 피나의 눈치를 보고 그만두었다.
46층은 얼음이었다. 계단을 올라서자 숨이 하얗게 얼어 눈앞에 걸렸다. 지난 시즌에 어느 헌터가 벽에 박아 둔 유리 온도계가 영하 18도를 가리켰다. 얼음 계단은 표석이 있는 층 끝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계단마다 얇은 물이 흘렀다가 얼고, 다시 흘렀다가 얼어서 유리처럼 반들거렸다. 해가 지는 시각이 탑 안에서도 느껴졌다. 천장 틈의 빛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셀린이 계단 앞 평평한 얼음 바닥에서 손을 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잔다.”
짐꾼들이 배낭을 내렸다. 40층 위에서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은 열린 층의 계단 앞뿐이었다. 노아는 배낭을 내리자마자 어깨를 돌렸고, 오른 어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피나가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선배 어깨에서 마른 장작 소리 나요.”
“장작은 불을 피우면 된다.”
“그런 말 하면 멋있는 줄 알아요?”
“조금.”
피나가 노아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아픈 데를 피해서 쳤다.
*
야영 불은 작았다. 짐꾼들이 지고 온 숯 한 자루로 피운 불이 얼음 바닥에 동그랗게 녹은 자국을 만들었다. 헌터 넷이 불 가까이 앉았고, 짐꾼 넷은 그 바깥에 앉았다. 정해진 자리는 아니었지만 다들 그렇게 앉았다.
하름이 육포를 뜯다가 엉덩이를 들어 짐꾼 쪽으로 반 뼘 옮겨 앉았다. 그러고는 육포 한 줄을 노아 앞에 툭 던졌다.
“지난번 빵 값이다.”
“빵은 두 개 드셨습니다.”
“육포가 빵보다 비싸다.”
루카도 따라서 반 뼘 옮겨 앉으려다가 칼렌과 눈이 마주치고는 도로 제자리에 앉았다. 하름은 옮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노아는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오래 삼키지 않았다. 남은 물로는 내일 하루가 빠듯했다.
칼렌이 창날을 숫돌에 갈며 말을 꺼냈다. 날을 가는 소리가 얼음 벽에 부딪혀 두 번씩 울렸다.
“리더님, 내일 47층 말인데요.”
“말해.”
“루카가 그러더군요. 47층은 소리로 사냥하는 짐승이 있는 협곡이라고. 짐꾼이 그린 지도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요.”
칼렌이 숫돌을 내려놓았다.
“그럼 줄은 따로 매죠. 헌터 넷 한 줄, 짐꾼 넷 한 줄. 협곡에서 하나 떨어지면 줄 전체가 끌려갑니다. 짐꾼 줄이 끌려갈 때 헌터 줄까지 끌려가면 파티가 끝나요.”
“줄을 따로 매면 짐꾼이 떨어질 때 아무도 못 잡습니다.”
노아가 불 바깥에서 말했다. 칼렌이 처음으로 노아를 똑바로 보았다.
“줄은 끊으라고 있는 겁니다, 짐꾼. 다 같이 떨어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셀린을 보았다. 셀린은 불을 보고 있었다. 불 위에서 숯 하나가 붉게 갈라졌다. 셀린이 오래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따로 매.”
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배낭 밑바닥에서 칼렌의 은도금 가슴판을 꺼내 불빛에 비춰 보고, 다시 넣었다. 가슴판에 새긴 이름에 얼음물이 고였다가 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