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42자)

백야 짐은 지지 마라

S급 헌터들의 짐꾼입니다만 · 백해원

짐꾼 숙소 골목은 아침마다 끓인 보리 냄새와 덜 마른 가죽 냄새가 섞였다. 골목 양쪽으로 이 층짜리 나무 숙소가 열두 채 붙어 있었고, 집집마다 창틀에 배낭 끈이 걸려 말라 갔다. 끈에서 떨어진 물이 돌바닥 홈을 따라 골목 끝 하수구로 흘러갔는데, 그 물에도 짐꾼 땀내가 났다.

노아는 셋째 숙소 이 층 창가에 웃통을 벗고 앉아 있었다. 피나가 뒤에서 붕대를 풀었다. 어제 감은 붕대가 피딱지에 붙어 있어서, 피나는 물에 적신 헝겊으로 한 뼘씩 불려 가며 떼어 냈다.

“선배, 이거 끈 자국이 아니라 낫에 베인 자국 같아요. 오른쪽은 살이 아예 없어요.”

“있다. 안에.”

“안에 있는 건 뼈예요.”

피나는 짐꾼 4년 차였고 노아보다 한 살 많았지만, 조합에 들어온 순서대로 노아를 선배라고 불렀다. 그러다가도 흥분하면 반말이 튀어나왔다. 피나가 고약을 손가락으로 듬뿍 떠서 어깨에 바르자 노아의 등이 한 번 굳었다.

“아파요?”

“차갑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요. 선배는 아파도 차갑다고 하고, 무거워도 괜찮다고 하잖아요.”

방 한구석에서 도르가 보리죽을 먹고 있었다. 키가 문틀보다 머리 하나 큰 도르는 숟가락을 작게 쥐고 아주 천천히 먹었다. 짐꾼 17년 차인 도르는 말이 없었다. 대신 피나의 말이 끝날 때마다 고개를 한 번씩 끄덕였다.

창틀에는 은화 세 닢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노아가 어젯밤 배낭 옆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그대로였다. 피나가 붕대를 감다 말고 은화를 노려보았다.

“그거 쓸 거예요?”

“돌려줄 거다.”

“그럼 저 줘요. 제가 대신 돌려줄게요. 술집에다가.”

도르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게시판.”

피나와 노아가 동시에 도르를 보았다. 도르는 더 말하지 않고 창밖 길드 거리 쪽을 숟가락으로 가리켰다.

*

길드 거리는 짐꾼 골목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나왔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돌바닥이 대리석으로 바뀌었고, 끓인 보리 냄새가 향유 냄새로 바뀌었다. 헌터 길드 본관 앞에는 사람 키 두 배짜리 게시판이 서 있었는데, 시즌 첫 달이라 게시판 앞은 아침부터 사람으로 붐볐다.

맨 위 칸에 새 종이가 붙어 있었다. 먹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아 글자 가장자리가 번져 있었다.

「등반 시즌 첫 개방 — 44층. 파티 백야. 선두 칼렌 하웰(A급).」

게시판 앞에 선 헌터들이 칼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창 한 자루로 누름바람을 뚫었다더라, 셀린 바크가 쓰러진 걸 칼렌이 끌고 나왔다더라, 이번 승급 심사는 볼 것도 없다더라. 노아 옆에 선 피나가 이를 갈았다.

“끌고 나왔대요. 선배, 끌고 나왔대요. 칼렌이요. 그 망토 끝에 송진 묻을까 봐 치마처럼 들고 다니는 사람이요.”

“목소리 낮춰라.”

“낮췄어요. 이게 낮춘 거예요.”

노아는 게시판을 지나 길드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홀 천장이 높아서 발소리가 위로 올라갔다가 한참 뒤에 내려왔다. 홀 오른쪽 벽을 따라 창구가 다섯 개 있었고, 그중 「등반 기록」이라고 쓴 나무패가 걸린 창구 앞에 노아가 섰다.

창구 안의 직원은 안경을 코끝에 걸친 중년 여자였다. 그녀는 노아의 얼굴보다 노아의 차림을 먼저 보았다. 무릎이 해진 바지, 어깨에 붕대 자국이 비치는 셔츠, 허리에 찬 짐꾼 조합 놋쇠 패.

“무슨 일이세요?”

“44층 개방 기록에 진술을 내려고 합니다. 표석에 처음 손을 얹은 사람은 칼렌 하웰이 아니라 저입니다.”

직원이 안경을 한 번 밀어 올렸다. 그러고는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꾼이시죠? 짐꾼 진술은 화물 신고 창구로 가세요. 저기 맨 끝이요.”

노아는 맨 끝 창구를 보았다. 「화물 반입·반출」이라고 쓴 나무패 아래에서 직원 하나가 상자 무게를 저울에 달고 있었다.

“저는 상자가 아닙니다.”

“등록상으로는 그래요. 왕실 등반세 규정에 짐꾼은 파티가 반입하는 화물로 잡혀요. 화물은 등반 기록에 안 들어가고요. 저도 규정이 이상하다는 건 알아요.”

직원은 정말 미안한 얼굴이었다. 미안한 얼굴로 다음 사람을 불렀다.

*

뒤에서 박수 소리가 났다.

칼렌이 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새 망토였다. 이번에는 은실 자수였고, 그 둘레를 젊은 헌터 여남은 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칼렌은 박수를 두 번 더 치고 나서 노아 쪽으로 걸어왔다. 걸음이 느렸다. 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보도록 느리게 걸었다.

“짐꾼, 어깨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창구에서 무슨 소리를 한 거죠? 내가 들은 게 맞다면, 44층을 연 게 자기라고 한 것 같은데요.”

홀이 조용해졌다. 짐꾼이 헌터 길드 홀에서 헌터와 말싸움을 하는 일은 아르센에서 보기 드문 구경거리였다. 창구 직원들이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고, 게시판 앞의 헌터들이 문간으로 몰려들었다.

“제가 표석에 손을 얹었습니다.”

“증거는요?”

노아는 셔츠 단추를 두 개 풀고 오른 어깨를 드러냈다. 피나가 아침에 감아 준 붕대 위로 피가 다시 배어 나와 있었다.

“헌터 넷을 밧줄로 끌고 백 걸음을 갔습니다. 이게 그 밧줄 자국입니다.”

“끈 자국이 표석에 손 얹은 증거가 됩니까? 짐꾼들은 다 그런 어깨로 살잖아요. 무거운 걸 지는 게 일이니까요.”

칼렌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젊은 헌터 몇이 웃었다. 칼렌은 그 웃음이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목소리를 한 단 높였다.

“루카, 하름. 너희가 말해 봐. 44층에서 누가 먼저 계단까지 갔어?”

홀 기둥 뒤에 루카와 하름이 서 있었다. 하름은 팔짱을 끼고 바닥을 보았고, 루카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꽉 쥔 채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루카의 눈이 노아를 한 번 보고, 칼렌을 한 번 보고, 창구 위의 「등반 기록」 나무패를 보았다.

“저는…… 그때 정신이 없어서요.”

“그렇지. 다들 정신이 없었어. 정신이 있었던 건 나 하나였고.”

노아는 루카를 오래 보지 않았다. B급 마법사의 등급은 백야 파티에 붙어 있어야 유지됐다. 파티 부리더의 말을 거슬러서 얻을 게 루카에게는 없었다.

노아는 바지 주머니에서 은화 세 닢을 꺼내 기록 창구 대리석 위에 하나씩 올렸다.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어젯밤 칼렌이 배낭에 넣을 때와 같은 소리였다.

“이건 돌려 드립니다. 짐이 아니라서요.”

칼렌이 은화를 내려다보았다. 잠깐 웃음이 굳었다가 다시 풀렸다.

“그럼 길드에 기부한 걸로 하죠. 짐꾼이 길드에 기부를 다 하고, 오늘 좋은 날이네요.”

칼렌은 창구 직원에게 은화를 밀어 주고 돌아섰다. 젊은 헌터들이 그 뒤를 따랐다. 노아는 홀 문을 나설 때까지 아무도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일부러 안 보고 있었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피나가 노아의 셔츠 단추를 대신 채웠다.

“선배, 저 사람 오늘 밤에 술 마시고 계단에서 넘어지라고 빌어 줄게요. 계단 몇 개 정도 넘어지면 될까요?”

“빌지 마라.”

“세 개만요.”

다리를 다시 건너 짐꾼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누가 노아의 소매를 잡았다. 콧수염을 억지로 기른 스물두엇의 사내였다. 가죽 갑옷은 남이 입던 것을 줄여 입은 티가 났고, 허리의 칼은 칼집보다 손잡이가 새것이었다.

“짐꾼 노아 렌 맞죠? 저 톰이라고 합니다. F급이요. 지난달에 등록했어요.”

“무슨 일이세요?”

“12층 버섯 채집을 가려고 하는데 짐꾼이 필요해서요. 조합에 물어보니까 하루에 은화 한 닢이래요. 저는 동화 서른 닢밖에 없어서요.”

톰이 주머니를 열어 보였다. 동화가 정말 서른 닢쯤 들어 있었다. 은화 한 닢이면 동화 백 닢이었다.

피나가 노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선배, 안 돼요. 조합 값 밑으로 지면 조합장님이 선배 배낭 끈을 다 잘라 버린대요.”

“배낭 끈은 제가 다시 꿰매면 됩니다.”

노아는 톰에게 하는 말인지 피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말했다. 톰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노아의 다음 말에 조금 내려앉았다.

“오늘은 안 됩니다. 조합장님을 먼저 뵈어야 해서요. 사흘 뒤에 오세요.”

“사흘 뒤면 버섯이 다 펴서 값이 반으로 떨어지는데요.”

“그럼 반값 버섯을 따러 가시죠.”

톰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그 얼굴을 등 뒤에 두고 조합 사무실 쪽으로 걸었다. 짐꾼 값이 오르면 저런 얼굴이 늘어난다. 노아는 셈하지 않아도 그걸 알았다.

*

조합 사무실은 짐꾼 골목 맨 안쪽에 있었다. 문을 열면 낡은 나무 책상 하나와 저울 둘, 벽에 걸린 배낭 끈 견본 서른두 가지가 보였다. 책상 뒤에 앉은 가렛 몰은 왼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무릎 아래가 참나무 의족이었다. 가렛은 그 의족을 「마님」이라고 불렀다. 마님은 비가 오기 전날이면 삐걱거렸고, 오늘도 삐걱거렸다.

책상 위에는 편지 한 장과 술병 하나가 있었다. 편지에 찍힌 밀랍 인장은 백야의 흰 달이었다.

“앉아라.”

노아는 앉지 않았다. 가렛이 편지를 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칼렌 하웰이 보냈다. 조합 짐꾼 하나가 길드 홀에서 백야 파티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그 짐꾼을 계속 보내면 30층에서 40층 사이 보급 계약을 다른 조합으로 넘기겠다고.”

“오늘 아침 일입니다. 편지가 벌써 왔습니까?”

“어젯밤 날짜로 써 놓은 거다. 네가 길드에 갈 줄 알았던 거지.”

가렛이 술병 마개를 뽑았다. 독한 보리술 냄새가 사무실에 퍼졌다. 가렛은 잔에 따르기 전에 의족 무릎께에 술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마님도 한 잔 하셔야 덜 운다는 것이 가렛의 지론이었다. 조합 짐꾼들은 그 한 방울을 두고 마님이 조합에서 제일 오래 일한 짐꾼이라고 놀렸고, 가렛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님 대신 화를 냈다. 오늘은 놀리는 사람이 없었다.

“백야 보급 계약에 짐꾼 열두 명이 붙어 있다. 도르 놈 딸 학비가 거기서 나오고, 피나 년 어미 약값이 거기서 나온다. 네 배낭 하나 때문에 열두 놈 밥줄을 끊을 수는 없다.”

“제가 44층을 열었습니다, 조합장님.”

“안다.”

가렛이 너무 빨리 대답해서 노아는 할 말을 잃었다. 가렛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의족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네가 열었겠지. 네 어깨 보면 안다. 그 바람에서 헌터 넷 끌고 갈 놈은 아르센에 너밖에 없다. 그래서 뭐? 길드가 그걸 받아 주냐? 왕실이 짐꾼을 사람으로 세 주냐?”

“그럼 계속 화물로 남습니까?”

“화물이 밥은 먹는다.”

가렛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님이 바닥을 짚는 소리가 사무실을 한 번 울렸다. 그는 노아 앞에 섰다. 키는 노아가 더 컸지만, 노아는 6년 전 처음 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가렛의 눈을 내려다보지 못했다.

“앞으로 백야 짐은 지지 마라.”

2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