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5,195자) · 명지수 · 팡 웨이 · 8월 29일(일)

한 발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9일 0441, 사격지휘차 안에는 지수 혼자였다. 데이터망은 아직 죽어 있었다. 결정문 3항의 좌표는 어제 새벽 0145에 지수가 팩스 종이를 보고 손으로 넣어 둔 그대로 화면에 떠 있었다. 대기 줄이었다. 대기 줄은 쏘기 전에 다시 본다고 대대장은 그때 말했다.

첫 번째는 감열지였다. 그녀는 감열지를 화면 옆에 대고 숫자를 한 자리씩 짚었다. 경도, 위도, 고도. 맞았다. 줄 끝 괄호 안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두 번째에는 거꾸로 짚었다. 고도부터 경도까지 끝자리에서 첫자리로 올라갔다. 거꾸로 읽으면 눈이 앞자리에 끌려가지 않았다. 맞았다. 0444였다.

그녀는 단추 옆에 펴 둔 도현의 종이를 뒤집었다. 22일에 그녀가 손으로 쓴 요청서의 복사본이 절연 테이프 네 귀에 눌려 있었다. 대안 좌표 칸의 숫자는 그녀 자신의 글씨였다. 그녀는 그 숫자를 화면과 나란히 놓았다. 경도가 맞았다. 위도의 앞자리가 맞았다.

위도의 끝 세 자리가 달랐다.

지수는 숨을 쉬지 않고 다시 봤다. 달랐다. 감열지를 들었다. 화면과 같았다. 손글씨만 달랐다. 그녀는 지도를 펴고 감열지의 숫자를 얹었다. 연필 끝이 북쪽 울타리 안쪽의 탄약고에서 남쪽으로 미끄러졌다. 활주로를 건너고 연료 저장고를 지나, 남쪽 울타리 너머 지붕들 사이의 하얀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0446이었다.

*

0447에 유선으로 대대장을 불렀다. 대대장은 위장망을 걷어 낸 차 옆에서 임도를 뛰어 올라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의 군화에서 흙이 떨어졌다. 지수는 종이 두 장과 지도를 그의 앞에 놓았다.

“팩스가 다릅니다. 위도 끝 세 자리입니다. 팩스대로면 학교입니다.”

“어느 쪽이 맞나?”

“손글씨입니다. 제가 22일에 쓴 겁니다. 도현이가 그날 이 뒷면에 붙였습니다.”

“명령은 팩스다. 괄호 안에 네 이름까지 찍혀 있어.”

“이름은 그대로 두고 숫자만 바꿨습니다. 이름이 있으니 제가 안 볼 줄 알았던 겁니다.”

대대장은 감열지를 들어 불빛에 비췄다. 흐린 활자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는 시계를 봤다. 0449였다.

“확인이 0500까지 안 오면?”

“안 쏩니다.”

“명령 불이행이다.”

“예. 일지에 제 이름으로 적겠습니다.”

“그 칸은 내 거라고 했지.”

대대장은 그렇게 말하고 유선 수화기를 들었다. 상급 부대를 불렀다. 서울 위기관리센터에 결정문 원본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원본을 읽어 달라. 종이에서, 사람 목소리로.

*

0453에 수화기가 다시 울렸다. 낯선 목소리였다. 군인 말투가 아니었다. 서울에서 원본을 결재판째 들고 통신실로 온 사람이라고 했다. 목소리는 숫자를 한 자리씩, 한 번 읽고 쉬었다가 다음 자리를 읽었다. 지수는 도현의 종이 위에서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경도, 위도의 앞자리, 그리고 끝 세 자리를 읽었다.

손글씨와 같았다. 수화기를 쥔 손바닥이 땀에 젖어 플라스틱이 미끄러웠다. 지수는 수화기를 다른 손으로 옮겨 쥐고, 젖은 손을 바지에 한 번 문질렀다.

목소리가 마지막에 괄호를 읽었다. 괄호, 명지수, 괄호 닫고.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중계를 거친 사본에서 숫자 셋이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지난번에 닫은 문 말고 다른 문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그 목소리 뒤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같은 숫자를 낮게 한 번 더 불렀다. 지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0455에 상급 부대가 원본대로 입력하라는 지시를 유선으로 내렸다. 지수는 화면의 끝 세 자리를 지우고 손글씨의 숫자를 넣었다. 대대장이 감열지 여백에 시각과 정정 사유를 적고 서명했다. 그다음 지수는 처음부터 다시 했다. 화면과 원본의 숫자를 맞추고, 거꾸로 한 번 더 맞추고, 도현의 종이로 세 번째를 맞췄다. 0458이었다.

차 옆의 다섯에게서 유선으로 보고가 올라왔다. 관이 섰다. 차는 사격 위치에 있다. 사람은 모두 이격선 밖이다. 지수는 그 세 마디를 받아 되불렀다. 0459에 초침이 숫자판 맨 아래를 지나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추 덮개를 열었다. 덮개 경첩이 작게 삐걱였다.

“나간다.”

대대장이 수화기를 들고 차 옆의 다섯에게 말했다. 그는 사격지휘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지수 옆 빈 의자에 앉았다.

0500에 지수가 단추를 눌렀다.

갱도 밖에서 땅이 한 번 내려앉았다. 발사관에서 밀려 올라온 탄이 나무 꼭대기 높이에서 한순간 멈춘 듯이 걸렸고, 그다음 불이 붙었다. 숲 전체가 대낮보다 하얗게 밝아졌다. 소리는 그다음에 왔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가슴뼈로 받는 소리였다. 사격지휘차 창이 떨었고, 계기판 위의 볼펜이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불기둥은 북서쪽 하늘로 기울어지며 가늘어졌다. 0501에 숲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다음은 아무것도 없었다. 데이터망은 죽어 있었다. 유선은 울리지 않았다. 지수는 단추에서 손을 떼고 무릎 위에 두 손을 얹었다. 대대장도 말하지 않았다. 0510이 지났고, 0530이 지났다. 그 탄이 어디에 닿았는지 이 차 안의 누구도 알 수 없었다.

0540에 갱도 안쪽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임도 굽은 자리에서는 차를 맡았던 다섯이 발사 자리의 그을린 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무 꼭대기 잎들이 한쪽으로 누렇게 익어 있었다. 누군가 하늘을 올려다봤고, 그 사람을 따라 다들 올려다봤다. 하늘은 새벽빛으로 희어지고 있었을 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대대장이 일지를 펴고 결정자 칸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 아래에 0500 현무-5 1발 발사, 결과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미확인이라는 세 글자를 적는 데 그의 볼펜이 한 번 멈췄다.

*

0406, 산둥. 팡 웨이는 작전실 지하에서 두 번째 파의 출격 명령서를 앞에 두고 있었다. 0600 출격. 표적 군산. 어제 0408 이후 손으로 다시 연 활주로라는 정찰 보고가 첨부돼 있었다. 그의 서명란만 비어 있었다.

천장이 아래로 쳤다. 형광등이 한꺼번에 흔들렸고 재떨이 대신 쓰던 찻잔 받침이 미끄러져 연필 부스러기를 바닥에 쏟았다. 그다음 폭발이 연달아 왔다. 한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이 다음 번을 부르고, 다음 번이 또 다음 번을 불렀다. 쑨 상위가 벽에 손을 짚고 북쪽이라고 외쳤다. 탄약고였다.

0420에 팡 웨이는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갔다. 활주로 북쪽 울타리 쪽이 통째로 타고 있었다. 탄약고가 있던 자리에서 불기둥이 몇 개씩 솟았다가 주저앉았고, 그 동쪽 막사 두 동은 지붕이 없었다. 사람들이 불빛 속을 뛰었다. 들것이 지나갔다. 또 지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화약과 그을린 고무 냄새가 한 덩어리로 밀려왔다. 쑨 상위가 뒤따라 올라와 손에 든 종이를 읽었다. 막사 두 동, 사상자 집계 중.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세 자리 숫자였다. 팡 웨이는 그 숫자를 되묻지 않았다. 그는 불빛 속을 지나가는 들것의 수를 셌다. 열을 넘기고 나서 세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남쪽을 봤다. 활주로와 연료 저장고 너머, 남쪽 울타리 바깥의 관사 마을은 어두웠다. 창이 깨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붕들은 서 있었다. 3번 격납고의 정비 준위가 그 마을 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준위의 집이 거기 있었다. 20분 뒤 준위가 돌아와 팡 웨이 앞에 섰다. 숨이 차서 말을 끊어 했다.

“다 살아 있습니다. 운동장에 다 나와 있습니다. 유리만 깨졌습니다.”

*

0500에 쑨 상위가 묶음 하나를 가져왔다. 밤사이 올라온 다른 부대들의 성과 보고였다. 맨 끝 장, 정보지원부대라는 이름 옆에 두 줄이 있었다. 적 표적 체계 교란 작전 2차, 좌표 주입 완료. 결과, 이탈. 이번에는 날짜가 있었다. 그리고 좌표가 있었다. 쑨 상위가 그 좌표를 기지 지도에 얹었다. 자를 대는 손이 한 번 미끄러져 다시 대야 했다. 그의 가족은 이 도시에 없었지만, 관사 마을에 누가 사는지 그는 이름까지 알았다. 연필 끝이 관사 마을의 운동장에서 멈췄다.

팡 웨이는 문서철을 열었다. 뒤표지 안쪽의 엽서 밑에, 7월 17일 참모 회의 자료 맨 끝 장이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적 표적 체계 교란 작전 — 성공. 날짜도 장소도 없던 그 한 줄이었다. 7월 2일 새벽 이 기지의 3번 격납고에 떨어진 두 발의 좌표가 어디서 왔는지, 그는 여섯 주를 들여 산 너머 도로 끝까지 쫓았다. 좌표는 거기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 줄에서 왔다. 한국의 손으로 이 기지를 치게 한 것이 그 줄이었다. 오늘 새벽에는 한국의 손으로 이 마을을 치게 하려 했다. 한국이 그 손을 멈췄다.

0520에 부사령관이 작전실로 들어왔다. 전구 사령부의 재촉이 세 번째라고 했다.

“두 번째 파는 0600이다. 대령, 서명해.”

“보내지 않겠습니다.”

“명령이다.”

“더 보내면 돌아올 기지가 없습니다. 탄약고는 타고 있고, 활주로 북쪽은 파편 밭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은 우리 쪽이 표적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는 성과 보고의 맨 끝 장을 부사령관 앞에 놓았다. 부사령관은 그 두 줄을 읽었다. 오래 읽었다. 그러고는 수화기를 들어 전구 사령부를 불렀다. 선은 지하 어디선가 끊겨 있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시 들지 않았다.

팡 웨이는 서명란이 빈 출격 명령서를 반으로 접었다. 문서철 뒤표지 안쪽, 부치지 않은 엽서 옆에 끼워 넣었다. 문서철을 덮었다. 0600이 지났다. 활주로 남쪽 끝에서 대기하던 편대는 엔진을 켜지 않았다.

1100에 베이징에서 한 장짜리 전문이 내려왔다. 서해 방면 작전 중지, 전 편대 귀환. 해협 호위 전대 귀항. 이번에도 서명 대신 도장이었다. 부관이 그것을 철하면서 1104라고 적었다.

1130에 팡 웨이는 3번 격납고로 갔다. 지붕을 다시 덮은 지 한 달이 된 격납고였다. 정비 준위가 바닥에 깔아 둔 모래 위를 비로 쓸고 있었다. 새벽의 폭발로 지붕 틈에서 떨어진 녹 부스러기였다. 준위는 팡 웨이를 보고 비질을 멈추지 않았다. 팡 웨이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쓴 엽서는 여전히 문서철 뒤표지 안에 있었다. 8월 말에 간다는 줄이 거기 적혀 있었고, 오늘은 8월 29일이었다.

*

1800, 진천. 데이터망이 1700에 살아났다. 살아난 화면이 처음 띄운 것은 밀린 전문 마흔 몇 장이었다. 지수는 하나도 열지 않고 상황판 창을 먼저 켰다. 사격지휘차 화면에 서해가 떴다. 어제 이 시각까지 붉은 점들이 엉켜 있던 자리였다. 지수는 화면을 한참 봤다. 대대장이 그 옆에서 같은 화면을 봤다.

중간선 위에도, 그 북쪽에도, 산둥 반도 앞바다에도 점이 없었다. 화면 가득 푸른 바다색만 깔려 있었다. 서해 상공에 아무것도 없었다.

계기판 아래 바닥에는 0500에 굴러떨어진 볼펜이 그대로 누워 있었다.

3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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