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5,122자) · 명지수 · 8월 28일(토)
명령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8일 1200, 진천 갱도 입구의 모래주머니 틈으로 한낮의 열기가 들어왔다. 0400에 두 발을 쏜 뒤로 대대는 8시간째 갱도 안에 있었다. 2호차는 입구 안쪽 그늘에 관을 눕히고 들어와 있었다. 3호차는 들어오지 못했다. 관을 반쯤 세운 채 시동을 끄고 사람만 뛰어 들어온 그 자리, 사격 위치의 참나무 밑에 그대로 서 있었다.
갱도 안은 사람 열여덟의 숨과 경유 냄새와 젖은 흙냄새로 차 있었다. 환기 팬은 전기를 아끼느라 한 시간에 10분만 돌았다. 팬이 멎어 있는 동안에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컸다. 누군가 전투식량 봉지를 뜯었다가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손을 멈췄다. 임도 굽은 자리의 위장망 밑 차는 아직 한 번도 시동을 걸지 않았다.
유선 전화가 울렸다. 상급 부대가 아침 상황을 몇 줄로 내려보냈다. 0408 군산 상공 전자기탄. 기지와 시내 전원 없음, 통신 두절. 1112 군산에서 기체 하나 이륙. 지수가 받아 적는 동안 등 뒤에서 도현이 숨을 멈추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받아 적은 종이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 도현이 그것을 읽었다.
“시내 전원 없음이면, 병원도입니까?”
“모른다. 전화로는 거기까지만 왔어.”
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 가슴께 단추를 손끝으로 한 번 만지고, 갱도 벽에 붙여 둔 진지 측량 대장 옆으로 가서 앉았다. 휴대전화는 모두 쇠 상자 안에 있었고, 쇠 상자 밖으로 꺼내도 군산까지 닿을 길은 없었다.
*
1310, 군산. 서쪽 바다에서 돌아온 KF-21은 둘이었다. 넷이 떠서 둘이 내렸다. 둘째 기체가 손으로 연 1,200미터 끝에서 겨우 섰을 때, 정비병 하나가 받침목을 들고 그 앞바퀴로 뛰어갔다. 강태우였다. 그는 조종석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꼬리 번호를 봤다. 수첩에 적어 둔 끝자리와 같았다. 나머지 두 꼬리 번호는 서쪽 하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는 그 두 번호를 아직 아무 데도 옮겨 적지 않았다.
*
1340에 대대장이 3호차를 들이자고 했다. 관을 눕히고 시동을 걸어 50미터만 올라오면 갱도 그늘이었다. 하민재와 도현이 나섰다. 둘이 참나무 밑에 닿았을 때 능선 너머에서 무인기 소리가 왔다. 지수가 갱도 입구에서 손을 크게 저었다. 돌아오라는 손짓이었다. 하민재가 운전석 문을 열다가 멈췄다. 시동을 걸면 열이 나고, 열이 나면 무인기 화면에 차가 하얗게 떴다. 그는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한 번 갱도 쪽을 돌아봤다. 도현이 그의 방탄복 어깨끈을 잡아끌었다. 둘이 비탈을 뛰어 올라오는 동안 무인기는 3호차 위에서 원을 그렸다. 원이 작아졌다.
1418에 경보가 유선으로 왔다. 순항미사일 셋, 내륙 방향. 하민재와 도현은 아직 비탈 중간에 있었다. 지수는 입구 모래주머니 위로 몸을 반쯤 내밀고 둘의 이름을 불렀다. 계급을 붙이지 않았다. 둘이 굴러들어오듯 입구를 넘은 것이 1419였다.
1420에 첫 발이 3호차에 떨어졌다. 갱도 안으로 뜨거운 공기가 밀려 들어와 모두의 귀를 막았다. 둘째와 셋째는 비탈 아래 임도에 떨어졌다. 흙이 비처럼 쏟아지다 그쳤을 때 천장에 매단 전등 하나가 줄 끝에서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지수는 모래주머니 틈으로 밖을 봤다. 참나무가 반으로 꺾여 있었다. 그 밑에 있던 것은 형체가 없었다. 흰 테이프 감은 이음매가 있던 뒤칸도 거기 같이 있었다.
발사대는 둘에서 하나가 됐다. 지수는 일지에 시각과 함께 그렇게 적었다. 도현은 꺾인 참나무를 오래 봤다. 그 배선을 처음 이은 사람이 그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2호차 쪽으로 걸어가, 2호차 뒤칸 문을 열고 자기 종이를 꺼내 그 안의 배선과 한 줄씩 맞춰 보기 시작했다. 다음은 여기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
1650에 두 번째가 왔다. 이번에는 무인기 소리가 먼저 오지 않았다. 경보와 착탄 사이가 40초였다. 한 발이 갱도 입구 위 비탈을 쳤다. 입구의 모래주머니 벽이 안으로 무너졌고, 그 너머 2호차 뒤칸 문짝이 휘었다. 쇳조각과 돌조각이 갱도 안쪽 벽을 긁으며 날아 들어왔다.
먼지가 가라앉기 전에 지수는 2호차로 기어갔다. 도현이 뒤칸 문 앞에 모로 누워 있었다. 왼쪽 허벅지의 바지가 검게 젖어 가고 있었다. 옆구리 쪽 방탄복 천도 찢겨 있었다. 손에는 종이가 쥐여 있었다. 그는 종이를 놓지 않았다.
“대위님, 2호차는 괜찮습니다. 문만 휘었습니다.”
“말하지 마.”
지수는 지혈대를 꺼내 허벅지 위쪽에 감았다. 탁인호가 기어 와서 반대편을 잡았다. 조였다. 도현이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대신 종이를 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지수는 시계를 보고 감은 시각을 지혈대 끝에 볼펜으로 적었다. 1653. 볼펜 끝이 젖은 천 위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1700에 다시 인원을 셌다. 열여덟이 다 대답했다. 하나는 누워서 대답했다.
구급차는 1시간 반 뒤에 온다고 했다. 임도 아래 다리가 1420에 무너져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동안 도현은 갱도 안쪽 들것 위에 누워 있었다. 탁인호가 15분마다 그의 발끝을 꼬집어 감각을 물었고, 도현은 매번 있다고 대답했다. 세 번째부터는 대답 대신 발가락을 움직였다.
1750에 그가 지수를 불렀다. 지수가 들것 옆에 쪼그려 앉았다.
“군산은 불이 켜졌습니까?”
“아직 모른다. 들어오면 너한테 제일 먼저 말한다.”
“좋은 소식이면 작게 말씀하십시오.”
도현은 그 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입가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
1830에 구급차가 임도 끝까지 올라왔다. 들것에 도현을 싣는 동안 그의 얼굴은 종이처럼 희었고, 입술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들것이 지수 앞을 지날 때 도현이 손을 들었다. 방탄복 안주머니에서 꺼낸 종이가 그 손에 있었다. 앞뒤로 빈 줄이 없었고, 여백에 세로로 적힌 줄까지 있는 종이였다. 한쪽 모서리에 피가 번져 있었다.
“대위님이 세 번째 보세요.”
지수는 종이를 받았다. 맨 마지막 줄 끝에 대위님 두 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가 두 번 보고 나면 그가 세 번째를 봤다. 석 달 가까이 그랬다. 뒷면에는 22일에 붙인 정정 요청서 사본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그녀는 종이를 접지 않고 자기 방탄복 안주머니에 펴진 채로 밀어 넣었다. 구급차 문이 닫혔다. 바퀴가 임도 흙을 물고 내려갔다.
지수는 일지를 폈다. 인원 열여덟, 1명 후송, 생존. 그렇게 적었다. 처음으로 열여덟 옆에 다른 숫자가 붙었다.
*
2300, 평양.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실의 벽 쪽 의자 하나가 비어 있었다. 중국 연락관은 저녁에 본국 전문을 받고 방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수첩도 가져갔다. 커튼은 여전히 두 겹이었고, 천장 등 하나가 전압이 떨어질 때마다 노랗게 흐려졌다가 돌아왔다. 그 빈 의자 앞에서 외무성 배석자가 윗옷 안주머니에서 두 번 접은 메모지를 꺼내 탁자 위에 폈다. 우리는 멈췄는데 저들이 쏘았다.
“연락관이 보지 않습니다.”
총참모장은 빈 의자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연평도 쪽 해안포 부대의 오늘 사격 일지를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남은 포탄이 적힌 칸이었다.
“우리 해안포는 오늘 새벽 연락관 앞에서 세 번 쐈소. 연락관이 나간 뒤로는 한 번도 안 쐈고. 새벽부터 남쪽은 우리 쪽으로 한 발도 안 쐈소. 저들이 쏜 데는 바다 건너요. 이 문구는 거짓말이오.”
“거짓말인 것을 저쪽도 압니다. 서울이 알아들을 말이 그것뿐입니다. 서울은 지금 바다 건너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시선 밖으로 나가겠다는 말을, 서울이 체면을 안 다치고 받아 줄 문장이 이것입니다.”
“베이징은?”
“베이징은 내일 아침 연락관 의자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알 겁니다. 의자를 비운 것은 베이징입니다.”
총참모장은 사격 일지를 도로 자기 앞으로 당겼다. 남은 포탄 칸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쓸었다. 그 숫자는 나흘이었다.
탁자 끝의 등은 이번에도 지도를 향해 있었다. 배석자가 그 곁에서 허리를 굽혔다가 돌아왔다.
“보내라. 짧게.”
외무성 배석자는 메모지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우리는 빠진다. 2340, 오래 쓰지 않던 선으로 그 두 줄이 남쪽으로 나갔다.
*
0020, 서울 위기관리센터. 판독된 전문이 한 장으로 들어왔다. 한도겸이 먼저 읽고 합참의장에게 넘겼다. 합참의장은 두 줄을 읽고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제 서해만 남았다고 그는 말했다. 한도겸은 대답하지 않고 결재판의 원본을 봤다. 북쪽이 빠지면 남쪽은 현무-5를 북쪽 걱정 없이 쓸 수 있었다. 평양은 그것까지 셈에 넣고 보냈을 것이었다. 그 셈이 무엇을 부를지, 그는 이 방에서 가장 먼저 알았다. 그는 원본의 맨 아래 줄을 손가락으로 한 번 짚었다가 뗐다.
*
0430, 진천. 유선으로 위성 판독이 내려왔다. 산둥 집결 비행장 북쪽 울타리 안쪽, 탄약고 앞에 차량 수십 대. 두 번째 파를 싣고 있었다. 대대장이 그 판독지를 받아 지수 쪽으로 돌려 보였다. 판독지의 좌표가 가리키는 자리가 결정문 3항의 그 자리였다. 북쪽 울타리 안쪽, 학교에서 활주로를 건넌 반대편이었다. 사진 속 탄약고 앞마당에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었고, 트럭 사이로 사람 그림자가 개미처럼 찍혀 있었다. 지수는 그 그림자를 세지 않았다. 22일에 막사의 숫자를 계산했을 때 이미 다 셌다.
0440에 유선이 다시 울었다. 지수가 받았다. 상급 부대의 목소리가 한 마디씩 끊어 읽었다. 현무-5, 사격. 결정문 3항 표적. 발사 0500.
“현무-5 사격, 결정문 3항, 0500. 받았습니다.”
지수가 되불렀다. 대대장이 일어섰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 갱도를 나가 임도 굽은 자리로 향했다. 7종(장비) 차량을 맡을 다섯이 그를 따라갔다. 2호차의 셋은 입구로 갔다. 나머지는 더 깊은 쪽으로 들어갔다. 대대장은 갱도 입구에서 돌아서서 사격지휘차 쪽을 봤다.
“단추는 네가 누른다. 나는 저 차 옆에 있는다. 차에서 무슨 일이 나면 유선으로 부른다.”
“예.”
“세 번 본다고 했지. 세 번째는 누가 보냐?”
지수는 대답 대신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종이가 거기 있었다. 도현이 하던 버릇이었다. 대대장은 그 손을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위장망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승재가 통신 상자 옆에서 헤드셋을 벗어 지수에게 건네고, 대대장의 손짓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사격지휘차 문이 닫혔다. 화면 셋과 단추 하나와 유선 수화기가 남았다. 의자는 넷이었고 셋이 비었다. 지수는 방탄복 안주머니에서 도현의 종이를 꺼내 단추 옆에 펴 놓았다. 피가 마른 모서리가 계기판 초록 불빛에 검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