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5,297자) · 강태우 · 9월 5일(일)

전원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9월 5일 0700, 진천 마지막 진지의 갱도 앞 공터에 대대가 두 줄로 섰다. 철수 차량이 임도 끝에 시동을 걸어 놓고 있었고, 배기 연기가 아침 안개에 섞여 참나무 사이로 낮게 흘렀다. 지수는 명단을 들고 줄 앞에 섰다. 석 달 동안 쓴 명단이었다. 귀퉁이가 닳아 종이가 천처럼 부드러웠다.

어제 저녁 전문이 왔다. 9월 4일부로 전시 작전 상황 종료. 정부는 같은 시각 전시 복무 연장 포고를 거두었다. 서해에서 총소리가 멎은 지 이레째였다. 평양은 국지 사격 중단을 방송했고, 베이징은 작전 종료를 짧게 발표했다. 전쟁이 끝났다. 전문은 그 말을 쓰지 않았지만 대대 안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했다.

같은 날 저녁 22일에 올린 정정 요청서의 회신도 데이터망으로 들어왔다. 승인. 날짜는 8월 29일 0455였다. 지수는 그 회신을 출력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름을 불렀다. 승재가 대답했다. 유건이 대답했다. 정한솔, 하민재, 탁인호가 차례로 대답했다. 열일곱째 이름에서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명단에 적힌 대로 읽었다. 임도현, 청주 군 병원 입원 중. 줄 끝의 누군가가 대신 있다고 대답했다. 하나가 대답하자 몇이 따라서 같은 대답을 했다. 대답이 줄을 따라 한 번 굴러갔다가 멎었다.

대대장이 일지를 펴고 한 줄을 적었다. 열여덟 명 전원. 그 밑에 괄호를 열고 1명 입원이라고 적은 뒤 괄호를 닫았다. 명단에는 빠진 이름이 없었다. 지수는 명단을 접어 방탄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거기에는 피가 마른 모서리를 가진 종이 한 장이 먼저 들어 있었다. 오늘 오후 청주에 들러 돌려줄 종이였다.

0730에 차들이 임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2호차가 앞에 섰고, 그 뒤로 사격지휘차가 따랐다. 위장망을 덮었던 차는 사흘 전 밤에 왔던 길로 먼저 떠나고 없었다. 임도 굽은 자리에는 공병이 깎아 낸 비탈과 바퀴 자국 두 줄만 남았다. 지수는 사격지휘차 계단에서 마지막으로 갱도 입구를 돌아봤다. 무너졌다가 다시 쌓은 모래주머니 벽 위에 참나무 잎 몇 장이 얹혀 있었다. 사격 위치의 꺾인 참나무 밑동에서는 벌써 새순이 손가락만큼 나와 있었다.

*

0900, 군산. 태우는 전대 인사과 사무실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전역 신고는 0830에 끝났다. 8월 24일 보류 도장이 찍혔던 행정반 서류철에 오늘 날짜의 해제 도장이 새로 찍혔다. 두 도장이 한 종이 위에 겹쳐 있었다.

인사과 대위가 버스 시간표를 내밀었다. 7월 어느 날 오식도동 아파트 7층까지 손전등을 들고 걸어 올라갔던 사람이었다. 태우는 그것을 몰랐다.

“1200 버스다. 전역자는 오늘부터 민간인이야. 기지 안에 오래 둘 수 없다.”

“김도영 일병이 1500에 복귀합니다. 그때까지 있겠습니다.”

“김도영은 내가 받는다. 너는 버스를 타.”

“공구함이 있습니다. 둘이 같이 쓰던 겁니다. 제가 혼자 열 수 없습니다.”

대위는 시간표를 든 채 태우를 봤다. 태우는 서류에 적힌 날짜보다 아흐레 늦게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 아흐레 동안 이 활주로에서 무엇을 했는지 대위는 정비 일지로 알고 있었다. 그는 시간표를 책상에 내려놓고 출입증 한 장에 볼펜으로 시각을 적었다. 1600.

“1600에 정문이다. 내가 데려다준다. 늦으면 업고 간다.”

태우는 출입증을 받아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인사과를 나오는 길에 복도 공중전화로 집에 걸었다. 아버지가 받았다. 몇 시에 오느냐고 아버지가 물었고, 태우는 저녁 늦게라고 했다. 아버지는 바로 오라는 말을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군산 버스가 다시 다니느냐고만 묻고, 다닌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0930에 그는 활주로로 나갔다. 마지막이었다. 8월 28일에 새로 난 구멍 일곱 가운데 넷이 메워졌고, 셋에서는 아직 급결 보수재가 김을 올리고 있었다. 곽 상사가 종이 배치도에 연필로 4를 적고 있었다. 미군 복구반장 델가도 상사가 그 옆에서 태우를 보고 손을 들었다. 통역하는 문 중사가 한 걸음 뒤에 따라와 있었다.

“민간인이 활주로에 들어오면 안 되는데.”

“1600까지는 아닙니다.”

복구반장은 웃지 않았다. 그는 아직 김이 오르는 구멍 셋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것들 다 굳으면 다시 전 구간이다. 다음에 누가 또 파 놓으면, 그때는 네가 없겠지.”

“도영이가 있습니다.”

“다리가 그래서야.”

“다리는 붙습니다. 손은 멀쩡합니다.”

복구반장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곽 상사의 배치도를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연필을 빌려 4 옆에 작게 5를 미리 적어 넣었다. 곽 상사가 그것을 보고 지우지 않았다.

*

1000, 태우는 정문 초소 옆에 서 있었다. 바깥 사거리는 여드레째 신호등이 꺼져 있었다. 교통경찰 둘이 수신호로 차를 보냈다. 한국전력 작업 차량이 사거리 모퉁이 제어함 앞에 서 있었고,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새 제어판을 밀어 넣고 있었다.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는 어제부터 다시 버스가 섰다.

1012에 신호등이 한꺼번에 켜졌다. 사거리 네 방향이 동시에 빨간불이었다. 한 줄로 늘어선 신호등 다음 사거리, 그다음 사거리까지 빨간 점들이 차례로 붙는 것이 정문에서 보였다. 차들이 섰다. 교통경찰이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잠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다음 초록불이 켜졌고,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건너기 시작했다. 차가 한 대도 오지 않는 길이었는데도 노인은 초록불을 끝까지 기다렸다가 건넜다.

정문 초병이 그것을 보고 웃었다. 태우는 웃지 않았다. 8월 28일 새벽 이 사거리의 불이 꺼진 뒤로 처음 보는 빨간불이었다. 그는 그 불을 한참 봤다.

*

같은 날, 여섯 나라에서 그날의 시각이 저마다 흘렀다.

폴란드 동부의 농가에서는 불탄 헛간 터에 새 문이 달렸다. 기둥도 지붕도 아직 없이 문틀만 서 있었다. 할리나가 그 문을 한 번 열었다가 닫았고, 경첩이 삐걱거리지 않자 고개를 끄덕였다. 손녀 주자가 못 상자를 들고 그 문을 통과해 마당으로 나갔다. 문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였는데, 아이는 꼭 그 문으로 드나들었다.

모스크바의 한 기차역 승강장에서 일리야의 어머니는 2시간째 서 있었다. 손에 든 장바구니에 빵이 한 덩이 들어 있었다.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객차 문을 하나씩 세었다. 세 번째 열차가 들어오자 그녀는 장바구니를 두 손으로 고쳐 쥐었다.

대만 서해안 어느 초등학교 강당에서 린위팅은 칠판 앞에 섰다. 반장이 분필을 들고 오늘 날짜 칸에 가위표를 치려다가 린위팅을 돌아봤다. 린위팅이 고개를 저었다. 그날부터 칠판의 날짜는 더 지워지지 않았다.

중국 동부의 항구 도시 닝보의 부두에서 쑤잉은 대추 한 봉지를 들고 기다렸다. 남편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바다 쪽에서 화물선 한 척이 예인선에 끌려 들어왔다. 갑판 난간에 기관복을 입은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쑤잉은 봉지를 쥔 손을 들지 않았다. 배가 부두에 닿을 때까지 그 사람의 얼굴을 봤다.

일본 규슈의 항구 도시 사세보의 부두에서 모리타는 크레인 운전석에서 내려와 바닥을 내려다봤다. 방수포를 걷어 낸 자리에 노란 분필 글씨가 비에 반쯤 씻긴 채 남아 있었다. 내일 서류가 오면. 그는 그 글씨를 발로 문지르지 않고 비켜 걸었다. 그 밑에 있던 상자들은 서류보다 먼저 실려 나갔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이 부두에 몇 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통신사 사무실에서 배소현은 위성 사진 한 장을 확대하고 있었다. 압록강 가 국경 도시는 석 달 동안 밤마다 검었다. 어젯밤 사진의 그 검은 자리 한가운데에 불빛 하나가 켜져 있었다. 소현은 그 점을 한참 보다가 기사 대신 사진 설명 한 줄을 썼다. 무엇이 켜졌는지는 적지 않았다.

*

1200에 버스가 정문 앞 정류장에 섰다가 떠났다. 전역자 둘이 그 버스에 탔다. 태우는 초소 그늘에서 그 버스의 뒷유리를 봤다. 뒷자리의 하나가 손을 흔들었고, 태우도 손을 들었다. 버스가 초록불을 받고 사거리를 건너갔다. 그다음 세 시간 동안 태우는 초소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초병이 두 번 바뀌었다. 두 번째 초병이 물병 하나를 벤치에 놓고 갔다.

1500에 국군병원 차가 정문에 섰다. 김도영이 목발을 짚고 내렸다. 왼쪽 다리에 무릎까지 깁스를 했고, 깁스 위에 누가 볼펜으로 날짜를 적어 놓았다. 그는 정문 초소 옆에 선 태우를 보고 목발을 한쪽으로 모아 쥐더니 경례를 하려다가 멈췄다. 태우가 민간인이라는 것을 알아본 얼굴이었다.

“형님, 옷이 안 어울리십니다.”

“너는 다리가 안 어울린다.”

인사과 대위가 둘을 정비 구역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남쪽 격납고 앞에 공구함이 있었다. 6월 4일 이후 여기서 세 번 자리를 옮겼다가 돌아온 공구함이었다. 모서리의 벗겨진 녹색 페인트가 그대로였다. 도영이 목발을 격납고 벽에 기대 놓고 한 발로 서서 뚜껑에 손을 얹었다.

“형님이 여십시오.”

태우는 주머니에서 놋쇠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뚜껑 안쪽 고무줄에 8월 27일 0900 비행단장실이라고 적은 종이가 아직 끼워져 있었다. 둘째 서랍에 10밀리 렌치가 두 자루 있었다. 하나는 손잡이에 이름 대신 날짜가 긁혀 있었다. 오상혁의 것이었다. 넷째 서랍에는 도영의 볼펜 두 자루 옆에 KF-21 교범 복사본이 접혀 있었다. 맨 위 칸에 헬멧이 있었다. 헬멧 옆에 휜 안전핀이 빨간 깃발을 단 채 누워 있었다. 도영이 그것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몸통이 휜 쪽을 햇빛에 비춰 봤다.

“이건 폐기 상자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들어가야 하는 거다.”

도영은 그 대답을 듣고 핀을 들었던 자리 그대로, 깃발 천이 헬멧 턱끈에 걸치도록 내려놓았다. 격납고 안쪽에서 발전기가 고르게 돌았고, 열린 문으로 개펄 냄새가 들어와 공구함 안의 기름 냄새와 섞였다.

헬멧 밑에 반으로 접은 종이가 있었다. 태우는 그것을 꺼내 폈다. 앞면에 이름 다섯, 뒷면에 이름 넷이었다. 줄을 두 번 그은 자리가 앞면에 넷 있었고, 그 이름들이 뒷면에 다시 적혀 있었다. 7월 2일 아침 이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른 기지로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 종이가 공구함보다 자기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종이를 다시 반으로 접었다. 헬멧 밑, 원래 있던 자리에 넣었다.

“형님, 그거 안 가져가십니까?”

“여기 있어야 하는 거다. 이 사람들 여기서 떴어.”

도영은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넷째 서랍을 열어 자기 공구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 발로 선 채 서랍을 도로 밀어 넣었다. 1550에 인사과 대위가 차 문을 열고 기다렸다. 태우는 놋쇠 열쇠를 도영의 손바닥에 놓았다. 도영은 그 주먹을 쥐었다. 태우는 공구함 뚜껑을 덮기 전에 맨 위 칸을 한 번 더 내려다봤다. 6월 4일에 무너진 격납고 잔해에서 며칠 뒤 주운 그 헬멧이었다. 흙을 털어도 한쪽이 눌린 자국은 그대로였다. 누구의 것인지는 끝내 몰랐다. 아무도 푼 적이 없었다.

헬멧의 턱끈은 채워진 채였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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