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5,292자) · 강태우 · 8월 28일(토)
손으로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8일 0408, 태우는 3번 보호 격납고 안에서 KF-21 왼쪽 날개 밑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제가 전역일이었다. 8월 27일 0900 비행단장실이라고 적은 종이는 공구함 뚜껑 안쪽 고무줄에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보류 도장은 행정반 서류철에만 찍혔다. 지난밤 그는 복구반장의 말과 달리 대피소에 가지 않고 이 격납고에서 이 기체의 무장을 달았다. 2350에 조종사가 와서 기체를 한 바퀴 돌고 날개 밑 걸이 하나를 손으로 흔들었는데, 걸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0352에 출동 명령이 떨어졌을 때 분견대 넷 가운데 셋이 먼저 나갔다. 이 기체만 남았다. 무장 시험기가 왼쪽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에 이상 신호를 띄웠고, 태우는 시험기 선을 다시 꽂고 있었다. 조종사는 조종석에 앉은 채 기다렸다. 둘은 서로 말하지 않았다. 말할 일은 시험기 화면이 했다.
그 화면이 꺼졌다. 소리는 없었다. 머리 위 조명이 한꺼번에 나갔고, 문 옆 전원 차의 엔진 소리 위에 얹혀 있던 전기 웅웅거림이 사라졌다. 손목의 전자시계는 숫자 없이 회색이었다. 어둠 속에서 조종석 계기 불빛이 한 번 꺼졌다가, 조종사가 무언가를 누르자 몇 개만 도로 켜졌다. 두꺼운 문이 닫혀 있던 덕인지 기체는 살아 있었다. 기체 바깥의 것들이 죽어 있었다.
*
0410에 태우는 문으로 갔다. 개폐 단추를 눌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틈으로 밖을 봤다. 활주로 등도, 탑의 불도, 담장 너머 시내의 불도 없었다. 군산 전체가 바다처럼 검었다.
0413에 쇳소리가 났다. 미군 복구반장 델가도 상사가 손잡이를 돌리는 수동 사이렌을 끌고 격납고 사이 통로를 뛰어오고 있었다. 돌릴 때마다 사이렌이 짐승처럼 길게 울었다. 기지에 남은 경보는 그것 하나였다. 그가 문틈에 대고 영어로 소리쳤다. 짧은 말이라 통역이 없어도 다 들렸다.
“전자기탄이다. 비핵이야. 다음은 미사일이다. 30분 안에 온다. 안에 있어. 문 열지 마.”
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은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다. 조종사가 조종석에서 내려와 격납고 안쪽 벽에 등을 붙였다. 태우와 정비반 셋이 그 옆에 섰다. 아무도 앉지 않았다. 손전등은 기계식 스위치라 켜졌다. 그 동그란 빛이 바닥의 기름 얼룩 위에서 떨렸다.
0436에 첫 번째가 떨어졌다. 땅이 아래에서 위로 쳤다. 격납고 콘크리트 아치 위로 흙과 자갈이 쏟아지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고, 천장에서 먼지가 내려와 손전등 빛 속을 하얗게 채웠다. 두 번째, 세 번째는 멀었다. 네 번째는 가까웠다. 다섯 번째부터는 세지 않았다. 0451에 멎었다. 조종사가 벽에서 등을 떼고 헬멧을 고쳐 썼다. 그 손이 턱끈 버클을 한 번 더 눌러 확인하는 것을 태우는 봤다.
0455에 태우는 문틈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2번 격납고 지붕이 내려앉아 검은 연기를 토하고 있었고, 연료 타는 냄새가 바닷바람에 섞여 목구멍을 긁었다. 유도로 위에는 미군 연료차 한 대가 옆으로 누워 바퀴를 천천히 헛돌렸다. 담장 너머 시내 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이렌도, 차 경적도 없었다. 신호가 죽은 사거리마다 차들이 서로 머리를 들이민 채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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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 옆 벽에 비상 핸들이 있었다. 한 사람이 돌리면 문이 한 뼘쯤 움직이는 데 몇 분이 걸렸다. 복구반장과 곽 상사가 밖에서 와서 문짝에 어깨를 댔다. 안에서 태우와 정비반 셋이 돌아가며 핸들을 돌렸다. 여섯이 땀을 흘렸고, 8월 새벽의 습기가 열린 틈으로 밀려 들어와 땀과 섞였다. 0540에 기체가 지나갈 만큼 열렸다. 태우의 손바닥에 핸들 모양대로 붉은 줄이 났다.
0600에 날이 밝았다. 활주로에 새 구멍 일곱이 있었다. 나흘 전 전 구간을 다 메운 활주로였다. 곽 상사가 종이 배치도를 펴고 연필로 구멍을 하나씩 그려 넣었다. 컴퓨터로 그리던 배치도였는데 컴퓨터가 없었다. 구멍과 구멍 사이 가장 긴 성한 구간이 1,500미터였다. 그 구간 남쪽 끝에 노란 깃발이 꽂혔다.
0630에 정문 쪽이 소란스러웠다. 시내에서 걸어온 사람들은 초소 앞에 모여 있었다. 전화가 안 되고 방송이 안 나오니, 무슨 일이 났는지 물을 데가 기지 정문밖에 없었다. 잠옷 위에 점퍼를 걸친 남자, 꺼진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쥔 여자, 아이를 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사람이 있었다. 초병이 아는 것은 그들보다 많지 않았다. 활주로로 돌아가는 길에 태우는 그 줄을 한 번 돌아봤다. 줄 맨 끝에 선 노인이 기지 안쪽의 연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0700에 그 구간 한가운데서 자탄 하나가 나왔다. 아스팔트에 반쯤 박혀 있었다. 처리 로봇은 창고 앞에서 서 있었다. 시동은 걸렸지만 화면이 죽어 조종할 수가 없었다. 폭발물 처리반 중사가 맨눈으로 다가가 들여다보고 돌아왔다. 손으로 빼는 데는 반나절이 걸린다고 했다.
“반나절이면 저쪽 두 번째 파가 먼저 와.”
복구반장이 말했다. 곽 상사가 고개를 저었다.
“덮고 지나가면 바퀴 진동에 깨어날 수 있습니다. 거기서 터지면 기체 하나가 아니라 활주로 한가운데가 또 날아갑니다.”
“안 지나가. 넘어가서 시작해.”
복구반장의 말에 곽 상사가 배치도 위에 연필을 세웠다. 자탄 자리에서 북쪽으로 1,200미터가 남았다. 자탄은 모래주머니로 덮고, 기체는 자탄 너머에서 굴러 나가기로 했다. 1,200미터로 뜨려면 기체가 가벼워야 했다. 분견대 정비반장 엄 상사가 날개 끝 미사일 둘을 내리라고 했다. 태우는 그 말을 엄 상사에게서 들었다. 조종사는 같은 말을 엄 상사에게 했을 것이었다. 태우는 날개 끝 미사일 둘을 내리는 동안 손으로 무게를 느꼈다. 하나가 사람 하나 무게였다. 그 둘을 내려야 1,200미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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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에 태우는 왼쪽 파일런 앞에 섰다. 무장 시험기는 회색 상자였다. 남은 것은 손과 공구와 종이였다. 그는 주머니의 놋쇠 열쇠로 공구함 자물쇠를 열고, 넷째 서랍에서 교범 복사본을 꺼냈다. 8월 16일 밤새 외운 교범이었고, 여백에 도영이 알아볼 순서를 여섯 줄로 적어 둔 그 종이였다. 볼펜 글씨가 그새 기름에 번져 몇 글자는 손가락 자국 밑에 묻혀 있었지만, 태우는 그 글자들을 읽지 않고도 알았다. 도영은 여기 없었다. 그 여섯 줄을 읽는 사람은 태우 자신이었다.
한 줄씩 짚었다. 고정 볼트를 손으로 돌려 본다. 걸이를 흔든다. 신관 배선 연결부를 눈으로 본다. 그는 첫 줄부터 셋째 줄까지 짚고 넷째 줄에서 멈췄다. 안전핀이 뻑뻑했다. 시험기가 띄운 이상 신호의 자리가 여기였다. 핀이 끝까지 들어가 있지 않고 반쯤 비틀려 박혀 있었다. 손가락으로는 빠지지 않았다. 그는 펜치를 꺼내 핀 고리를 물고 돌리면서 당겼다. 핀이 빠져나왔다. 몸통이 눈에 보이게 휘어 있었다.
휜 핀은 다시 쓰지 않는다. 폐기 상자에 넣고 폐기 대장에 적으면 끝이었다. 폐기 상자는 정비 구역 창고에 있었다. 태우는 새 핀을 꽂아 다섯째, 여섯째 줄까지 마쳤다. 그러고는 휜 핀을 빨간 깃발째 손에 쥐고 일어섰다. 파일런 밑에서 걸어 나오는 동안 핀은 손 안에 있었다.
0850에 정찰 무인기 하나가 높이 떠서 기지 위를 지나갔다. 날개가 햇빛에 한 번 반짝였다. 레이더가 죽어 있어 아무도 그것이 오는 것을 몰랐다. 대드론 사수가 기계식 조준기로 올려다보며 두 번 쐈다. 무인기는 높이를 바꾸지 않고 북서쪽으로 빠졌다. 저쪽이 이 활주로를 다시 보았다. 1,200미터가 언제까지 1,200미터일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복구반장이 출발 시각을 1100으로 당기자고 했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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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군산 시내 의료원 중환자실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뿐이었다. 비상 발전기는 돌았지만 그것을 제어하는 판이 타서 전기가 병상까지 오지 않았다. 인공호흡기 넷이 멎어 있었다. 그 넷 옆에 사람이 하나씩 붙어 손으로 짜서 숨을 불어 넣는 주머니, 앰부 백을 쥐고 있었다. 간호사가 둘, 아침에 걸어서 출근한 행정실 직원이 하나, 환자의 딸이 하나였다. 딸은 셋을 세고 한 번 짰다. 하나, 둘, 셋. 손목이 저려 오면 옆 사람이 말없이 손을 겹쳐 받았다.
*
1040에 기체가 격납고를 나왔다. 견인차는 시동이 걸렸다. 엔진은 전기가 아니라 기름으로 돌았다. 견인봉을 거는 손이 셋이었고, 하나가 고리를 잡고 둘이 핀을 박았다. 바퀴 밑 받침목을 빼는 일은 태우가 했다. 받침목이 빠지자 기체가 앞으로 한 뼘 기울었다가 섰다. 관제탑은 죽어 있었다. 복구반장이 깃발 두 개를 들고 1,200미터 출발점에 섰고, 곽 상사는 자탄을 덮은 모래주머니 옆에 섰다. 탑 대신 사람이 섰다.
조종사는 1050에 기체 앞에 왔다.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고, 비행복 무릎에 격납고 바닥의 먼지가 아직 하얗게 묻어 있었다. 그녀는 지난밤처럼 기체를 한 바퀴 돌았다. 왼쪽 날개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걸이를 손으로 잡아 흔들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사다리를 올라가기 전에 정비 기록부를 받았다. 무장 장착자 서명 칸에 태우의 이름이 있었다. 조종사는 그 칸을 한 번 보고 기록부를 돌려주었다. 태우는 꼬리 번호를 봤다. 수첩에 적어 둔 끝자리, 17과 같았다. 둘은 말하지 않았다.
1112에 기체가 출발점에서 엔진을 올렸다. 소리가 활주로를 다 덮었다. 복구반장이 깃발을 내렸다. 기체가 굴렀다. 자탄 모래주머니를 지나 북쪽으로, 구멍 사이 1,200미터를 곧게 갔다. 태우는 끝에서 셋째 구멍 깃발을 보고 있었다. 기체 앞바퀴가 그 깃발을 지나기 전에 들렸다. 뒷바퀴가 들렸다. 그 사이로 하늘이 들어갔다.
엔진 소리가 한참 늦게 머리 위를 지나갔다. 뜨거운 배기 바람이 활주로 위의 먼지를 쓸어 와 태우의 얼굴을 때렸고,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정문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드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아침부터 그들이 들은 소리 가운데 이 기지에서 나온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기체는 개펄 위에서 오른쪽으로 기울며 서쪽으로 돌았다. 꼬리 번호가 햇빛에 한 번 번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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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에 태우는 정비 구역으로 걸어갔다. 공구함은 남쪽 격납고 앞 제자리에 있었다. 뚜껑을 열자 맨 위 칸에 헬멧이 있었다. 그는 주먹을 폈다. 휜 핀이 손바닥에 빨간 깃발과 함께 눌려 있었다. 폐기 상자는 창고에 있었고, 창고는 여기서 50미터였다. 그는 핀을 헬멧 옆에 눕혔다. 깃발 천이 헬멧 턱끈 위에 걸쳤다. 뚜껑을 닫았다.
1130에 탑 쪽에서 병사 하나가 뛰어왔다. 철제 탄약통에 넣어 두어 살아남은 휴대 무전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넷이 붙었다고 했다. 서해 상공에서 KF-21 넷이 중국 전투기 J-16 편대와 붙었다. 정비반 셋이 한꺼번에 서쪽을 봤다.
태우도 봤다. 개펄 너머 하늘은 맑았다. 소리도 불빛도 없었다. 거기에는 비행운 한 줄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