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5,110자) · 명지수 · 8월 28일(토)
0400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8일 0400, 지수가 발사 단추를 눌렀다. 2호차 쪽 숲이 먼저 하얗게 밝아졌다. 나무줄기마다 그림자가 한꺼번에 반대쪽으로 넘어갔고, 그 그림자가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소리가 왔다. 사격지휘차 바닥이 발바닥 밑에서 한 번 들렸다가 내려앉았고, 문틀에 걸린 손전등이 줄 끝에서 크게 한 바퀴 흔들렸다. 탄 냄새는 한참 뒤에야 열린 문으로 밀려 들어왔다.
3호차 쪽은 어두웠다.
유선 수화기에서 하민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점화 신호가 안 들어간다고 했다. 지수는 숨을 한 번 쉬는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3호차 뒤칸에는 도현이 5호차 다발에서 잘라 와 이은 배선이 있었고, 이음매에 흰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그 배선은 그 뒤로 여러 번을 견뎠다. 오늘 밤 3호차는 나무 밑에서 사격 위치까지 비탈을 내려왔고, 비탈은 차를 흔들었다.
“다시 걸지 마. 뒤칸 열어. 흰 테이프 자리부터 봐.”
수화기 너머에서 철판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손전등 불빛이 뒤칸 안을 훑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0400을 지난 초침이 숫자판 위를 돌았다. 25초, 40초. 하민재의 숨소리가 수화기 가까이에서 거칠었다.
“이음매가 반쯤 벌어졌습니다. 테이프가 밀렸습니다.”
“한 바퀴 더 감아. 당기면서 감아.”
테이프 뜯는 소리가 길게 났다. 0401에 하민재가 감았다고 외쳤다. 지수가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능선 반대편이 밝아졌다. 흰 줄 두 개가 서로 1분 간격을 두고 북서쪽 하늘로 휘어 올라갔다. 바다 건너 곶 끝의 레이더 두 곳까지 가는 줄이었다. 도현이 사격지휘차 문틀에 매달려 그 두 줄이 구름 밑으로 사라질 때까지 봤다.
“전원 갱도로. 발사대는 관 내리고 들어와.”
*
0400, 서울 위기관리센터의 벽 화면에 가는 호가 여러 개 떠올랐다. 내륙 여러 자리에서 동시에 그어진 호였고, 모두 서해 쪽으로 휘어 있었다. 그 가운데 1분 늦게 하나가 더 떠올랐다. 합참 상황 담당이 그 하나를 짚으며 진천 3호차라고 읽었다.
“현무-5는 어떻게 합니까? 저쪽이 지금 떠 있으면 다음 결정도 지금 해야 합니다.”
국방장관이 대통령 쪽을 향해 물었다. 대통령은 지하에서도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안보실장이 그 곁에 허리를 굽혔다가 몸을 폈다.
“현무-3은 나간다. 현무-5는 대기다.”
“저쪽 첫 파가 지금 뜨고 있습니다. 두 번째 파가 언제 실리는지 보고 나서 다시 묻겠습니다.”
합참의장이 말했다. 한도겸이 그쪽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다시 물으실 때도 같은 줄입니다. 그 줄은 어젯밤에 정했습니다.”
“줄은 정했습니다. 시각을 안 정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합참의장은 상황판 옆 칠판에 시각과 함께 적었다. 0400, 현무-3 발사, 현무-5 대기 유지. 한도겸은 받아 적지 않았다. 탁자 끝 결재판에 끼운 결정문 원본을 손가락 하나로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겨 놓았을 뿐이었다. 그 종이 맨 아래 줄 괄호 안의 이름은 어젯밤까지 이 방의 누구도 몰랐다.
0402에 벽 화면 왼쪽 위, 산둥 해안에서 붉은 점들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셀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점들은 잠깐 뭉쳐 있다가 부채처럼 펴지며 서해로 나왔다. 상황 담당이 수를 부르다가 멈추고 대략이라는 말을 붙였다. 국방장관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가 도로 앉았다. 한도겸은 결재판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서명이 끝난 종이였고 더 고칠 것이 없었는데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
같은 0400, 평양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실은 커튼이 두 겹으로 쳐져 있었다. 긴 탁자에 녹색 천이 덮여 있었고, 벽 쪽 의자 하나에 중국 연락관이 무릎 위에 수첩을 펴고 앉아 있었다. 오늘 밤 연락관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적기만 했다.
“남쪽이 중국을 쳤소. 지금 연평도에서 우리가 손을 놓으면, 저 수첩에 무엇이 적히겠소?”
총참모장이 연락관 쪽은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외무성 배석자가 탁자 위에 두 손을 포개고 대답했다.
“이어 가면 남쪽의 다음 탄이 어디를 향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남쪽은 오늘도 우리가 아니라 바다 건너를 쏘았습니다. 오늘이 빠질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 있습니다.”
“빠지는 날은 베이징이 정하지 않소. 우리가 정하는 거요. 그러려면 오늘은 쏴야 하오. 오늘 손을 놓으면 남쪽 편을 든 것으로 적히고, 그러면 빠지는 날이 아니라 끌려가는 날이 오오.”
“포탄은 스무 날 치로 시작했습니다. 지금 남은 것으로는 나흘입니다. 나흘 뒤에는 쏘고 싶어도 못 쏩니다. 그때 빠지면 그것은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외무성 배석자의 말에 총참모장이 처음으로 그를 봤다. 둘 사이의 녹색 천 위에 재떨이 하나가 있었고, 재떨이에는 꽁초가 하나도 없었다. 이 방에서는 아무도 피우지 않았다.
탁자 끝의 자리는 벽에 걸린 지도 쪽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어깨와 뒷머리만 보였다. 배석자 하나가 그 곁에 가서 귀를 기울였다가 돌아왔다.
“사격은 이어 간다. 연락관이 보는 동안만.”
연락관의 볼펜이 수첩 위에서 움직였다. 앞의 반만 적는 것 같았다. 외무성 배석자는 포갠 손을 풀고 탁자 밑에서 메모지 한 장에 한 줄을 적었다. 우리는 멈췄는데 저들이 쏘았다. 그는 그 종이를 두 번 접어 윗옷 안주머니에 넣었다.
*
같은 순간 베이징은 0300이었다.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실 벽의 전자 상황판에 한반도 서쪽 내륙에서 솟은 점들이 붉게 깜박였다. 공군 쪽 배석자가 손목시계를 보며 일어섰다. 그의 앞에 놓인 서류철 첫 장에는 8월 28일 0300이라는 시각과 산둥 비행단 작전참모의 서명이 있었다.
“공세는 예정대로 나갑니다. 폭격기 편대가 2분 뒤에 쏩니다. 한국이 지금 쏜 것으로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맞은편의 배석자가 말했다. 그는 서류 대신 전문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어제까지 서해는 미국을 묶어 두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부터는 한국과 싸우는 곳입니다. 해협만 보고 짠 무게로는 두 곳을 못 받칩니다.”
“해협의 배를 빼면 상륙이 끊깁니다. 9월이 오기 전에 끝내자고 한 게 이 방입니다.”
“서해에서 밀리면 9월은 오지도 않습니다. 한국이 오늘 쏜 것은 레이더입니다. 내일은 무엇을 쏠지 모릅니다.”
공군 쪽 배석자는 대답하지 않고 시계를 다시 봤다. 남은 것은 90초였다. 상황판 위의 붉은 점들이 서해 위에서 하나씩 사라졌다. 바다 건너 해안에서 무언가가 그 점들을 받았다는 표시였다.
탁자 끝의 사람은 상황판을 향해 앉아 있었고, 방에서는 등받이 낮은 의자 위의 회색 어깨만 보였다. 그 어깨는 붉은 점들이 깜박이는 동안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배석자 하나가 그 곁에서 몸을 굽혔다가 펴고, 쪽지를 읽었다.
“한국이 쏘았다. 서해와 해협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 호위의 절반을 북으로 돌린다.”
공군 쪽 배석자는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그가 짧게 한 단어를 말한 것이 0302였다.
*
같은 순간 워싱턴은 8월 27일 1500이었다. 상황실 벽에 걸린 시계 여섯 개 가운데 서울 시계만 날짜가 하루 앞서 있었다. 한국 담당 과장은 벽 쪽 보조 의자에 앉아 노란 줄 공책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 그가 할 일은 탁자에서 나온 말을 적어 서울 대사관에 전할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해군참모총장이 서태평양 지도를 가리켰다. 항모 하나가 괌 남쪽에 있었다.
“서해로 올리면 사흘입니다. 지금 출발해야 사흘입니다.”
“지금 서해로 올리면, 한국이 쏜 것에 우리가 줄을 선 걸로 읽힙니다.”
인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말했다. 그는 서울 대사관에서 두 해를 산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국어 지명을 정확한 발음으로 읽었다.
“안 올리면 베이징이 그 빈자리를 셈에 넣습니다. 서해가 비었다고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이 있습니다. 한국은 방금 그걸 보여 줬습니다.”
둘 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과장의 볼펜은 두 사람의 말을 다 적지 못했다. 적은 것은 사흘이라는 두 글자와 한국이 있다는 한 줄이었다.
한참 뒤 탁자에서 문장 하나가 나왔다. 과장은 그것을 공책 맨 위에 적었다. 지금은 어느 쪽으로도 항모를 보내지 않는다. 지켜본다. 그는 그 밑에 서울에 전할 문장을 쓰려다가 볼펜을 멈췄다. 전할 것이 그 두 문장뿐이었다. 국방장관이 지나가며 그의 공책을 내려다보고, 서울에서 전화가 오면 받기만 하라고 했다. 과장은 볼펜 뚜껑을 닫았다.
*
0402, 진천 갱도 안의 유선 전화가 울었다. 상급 부대의 목소리가 잡음 섞인 선을 타고 짧게 왔다. 산둥 해안에서 폭격기 다수가 순항미사일을 일제히 쐈다. 수가 많다. 표적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저쪽이 이쪽과 같은 분에 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을 것이었다. 따질 사람은 서울과 베이징에 따로 있었다. 지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갱도 안을 둘러봤다. 2호차와 3호차의 사람들이 막 들어와 있었다. 모두 숨이 찼고, 아무도 앉지 않았다. 0403에 마지막으로 3호차 조종수가 들어왔다. 관을 다 내리지 못한 채 시동을 끄고 뛰어온 것이었다. 지수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90초 안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먼저였다. 도현이 손전등으로 사람을 셌다. 지수는 그가 세는 입 모양을 봤다. 열여덟까지 갔다.
0405에 다시 전화가 울었다. 항적 대부분이 내륙이 아니라 해안을 향한다고 했다. 평택, 그리고 군산. 도현의 손전등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군산은 그의 집이었다.
*
0408, 군산 시내 아파트 9층 부엌에서 임도현의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석 달째였다. 식탁에는 아들이 지난달 부친 편지가 펴져 있었다. 좋은 소식은 작게 적혀 있었고, 그녀는 그 작은 글씨를 손가락으로 따라 읽고 있었다.
소리는 없었다. 빛도 없었다. 냉장고가 웅웅거리던 소리가 먼저 끊겼다. 머리 위 형광등이 깜박임 한 번 없이 꺼졌고, 손에 쥔 휴대전화 화면이 같은 순간에 검어졌다. 그녀는 그 전화기를 두 번 눌렀다. 아무것도 켜지지 않았다. 이 전화기로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6월이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 아들은 편지만 보냈다. 그녀는 전화기를 식탁에 내려놓고 창가로 갔다. 사거리의 신호등이 노란불 한 번 거치지 않고 꺼져 있었다. 기지 담장의 조명도, 길 건너 편의점 간판도, 바닷가 공장의 굴뚝 등도 없었다.
창밖 사거리 한가운데에 택시 한 대가 시동이 걸린 채 서 있었다. 전조등만 켜져 있었다. 그 두 줄기 불빛이, 군산에서 켜져 있는 마지막 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