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5,372자) · 서울 · 8월 27일(금)

결정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7일 2200, 대통령 집무실의 긴 탁자 위에 지도 두 장이 겹쳐 펴져 있었다. 아래 장은 서해 전체였고, 위 장은 산둥 반도의 비행장 하나를 크게 뽑은 위성 사진이었다. 합참의장이 위 장의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는데, 에어컨 바람이 지날 때마다 종이 끝이 그 손 밑에서 들썩였다.

대통령은 창가 쪽 의자에 앉아 방을 등지고 있었다. 내려진 블라인드 틈으로 경내 가로등 빛이 들어와 그 어깨 위에 가는 줄 몇 개를 그었다. 국가안보실장이 그 곁에 서 있었다. 오늘 밤 대통령의 말은 그가 옮기기로 되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저녁 일곱 시에 놓인 생수병들이 뚜껑도 안 따인 채 서 있었고, 병마다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탁자에 동그란 자국을 남겼다.

국방장관이 종이 두 장을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1안은 합참이 올린 것이었다. 새벽에 현무-3 포화로 산둥의 레이더와 활주로를 먼저 치고, 이어 현무-5 한 발로 공세 집결 비행장을 친다. 2안은 국가안보실 차장 한도겸의 이름으로 올라와 있었다. 쏘지 않는다. 공세가 오면 요격으로 받고, 받은 다음 날 세계에 사진을 보인다.

“8월 공세는 옵니다. 날짜가 오늘 새벽입니다. 맞고 나서 쏘면, 그때 쏠 발사대가 남아 있을지 장담 못 합니다.”

합참의장의 말에 한도겸은 앉은 채로 대답했다. 넥타이는 이 시각에도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현무-5를 쓰면 이 전쟁은 우리 전쟁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맞은 나라였고, 맞은 나라는 버티면 이깁니다. 그저께 안보회의에서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누가 우리 목록에 좌표를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가 중국을 치게 하려고요. 그 손이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이 방에서 1안이 나오는 겁니다.”

“그 손이 누구든, 0400에 날아오는 건 미사일입니다.”

“날아올지 아직 모릅니다.”

합참의장은 대꾸 대신 산둥 사진의 계류장을 손가락 마디로 두 번 두드렸다. 콘크리트 위에 폭격기 그림자가 열 몇 개 나란히 찍혀 있었다. 사흘 전 사진에는 넷이었다. 그는 두 장을 나란히 놓고 손을 뗐다. 비행기는 구경하려고 모으지 않는다는 말을 그는 하지 않았다. 사진이 대신 했다.

*

2250에 문이 두 번 두드려지고 국방정보본부장이 들어왔다. 그는 대통령 쪽으로 가지 않고 안보실장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안보실장이 대통령 곁에 허리를 굽혔다가 몸을 펴고 방을 향해 읽었다.

“2231 감청입니다. 산둥 비행단 지상 무선, 내일 0300 개시, 변경 없음. 베이징 시각이라 서울로는 0400입니다. 같은 묶음에 비핵 전자기탄 운용 부대 이름이 있습니다. 표적은 아직 모릅니다.”

방 안의 누구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모두 이미 시각을 알고 있었다.

한도겸이 처음으로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종이를 받아 직접 읽었다. 중국어 원문 아래 번역이 달려 있었는데, 번역이 짧아서 고칠 데가 없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한 번 닦고 다시 썼다. 목소리가 반 톤 낮아져 있었다.

“현무-3까지는 받겠습니다. 저쪽 공세와 같은 시각에 나가면 먼저 쏜 게 아니라 같이 쏜 겁니다. 현무-5는 아닙니다. 대기로 두십시오.”

합참의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 이긴 사람의 표정은 없었다.

*

2334에 탁자 위의 휴대전화들이 한꺼번에 떨었다. 화면마다 붉은 글씨가 떴다. 수도권 미사일 경보, 즉시 지하로 대피. 경호관 둘이 문을 열고 들어와 대통령 의자 양쪽에 섰다. 합참의장이 전화를 귀에 댄 채 서해에서 들어오는 순항미사일 둘이 평택 쪽이라고 말했지만, 방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좁았다. 대통령의 등이 맨 앞에서 경호관 어깨 사이로 내려갔고, 한도겸은 지도 두 장을 둘둘 말아 겨드랑이에 끼고 뒤따랐다. 계단참 창 너머로 시내가 보였다. 교차로에 선 차들이 일제히 비상등을 켰고, 인도에는 휴대전화 불빛을 턱 밑에 받은 사람들이 멈춰 서 있었다. 누군가는 뛰었고 누군가는 하늘을 올려다봤으며, 편의점 앞 파라솔 밑의 노인 하나는 끝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2351에 위기관리센터 문이 닫히자 공군 쪽 연락이 들어왔다. 평택으로 가던 둘을 서해 위에서 떨어뜨렸다고 했다. 경보는 수도권 전체에 울렸지만 저쪽이 노린 것은 수도권이 아니었다. 오늘 밤 저쪽이 미리 한 번 찔러 본 것이라고 합참의장이 말했다. 한도겸은 말아 온 지도를 탁자에 펴고 손등으로 말린 끝을 눌렀다. 끝은 자꾸 도로 말렸다. 찔러 본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는 이 방의 누구도 묻지 않았다. 다들 같은 시각을 생각하고 있었다.

*

0012에 벽 화면 한쪽이 공군작전사령부 상황판으로 바뀌었다. 서해 중간선 위로 붉은 점 넷이 한 줄로 내려오고 있었다. 중국 전투기 J-16 편대였다. 서산에서 뜬 우리 KF-16 둘이 푸른 점으로 그 앞을 막아섰고, 두 색의 점 사이에 뜬 거리는 60킬로미터에서 55로, 다시 48로 줄었다.

“저쪽이 일찍 오는 겁니까?”

국방장관이 물었다. 공군 연락장교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고개를 저었다. 긁으러 온 것이라고 했다. 매일 밤 하는 일이고, 오늘 밤은 수가 하나 많을 뿐이라고 했다.

0015에 화면 구석에서 경고 표시가 깜박였다. 저쪽 레이더가 우리 2번기를 잠갔다. 연락장교의 목소리가 수화기 쪽으로 낮게 깔렸다. 먼저 쏘지 마. 그 말이 서해 위 조종석까지 내려가는 데 몇 초가 걸리는지 방 안의 누구도 몰랐다. 한도겸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보십시오. 저쪽도 먼저 안 쏩니다. 서로 겨누기만 하고 돌아가는 밤이 쏘는 밤보다 많습니다. 그게 버티는 겁니다.”

“오늘 밤까지는요.”

합참의장이 말했다. 0019에 붉은 점 넷이 꼬리를 돌렸다. 푸른 점 둘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원을 그리다가 남쪽으로 내려갔다. 거리 숫자가 지워졌다. 국방장관이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고, 아무도 그것을 이긴 장면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서산 쪽 조종사 둘은 오늘 밤 세 번째로 내리는 길이었다.

*

0040에 마지막 쟁점은 좌표 한 줄이었다.

합참 작전본부장이 현무-5 표적 목록을 벽 화면에 올렸다. 맨 위 줄의 좌표는 집결 비행장 남쪽 울타리 바깥의 연료 저장고였다. 저장고와 학교 사이에는 길 하나뿐이었고, 거리는 190미터였다. 학교 둘레로 지붕 수십 개가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 흙 운동장이 하얗게 찍혀 있었다. 비행단 사람들의 가족이 사는 관사 마을이었다.

그 아래에 회색 줄 하나가 붙어 있었다. 입력자 이의, 정정 요청 — 검토 중. 같은 비행장 북쪽 울타리 안쪽의 탄약고였고, 그 동쪽에 병력 막사 여섯 줄이 붙어 있었다. 마을은 활주로 건너 반대편에 있었다.

“연료 저장고를 쳐야 폭격기가 못 뜹니다. 위 줄이 유효 표적입니다.”

작전본부장은 그렇게 말하고 손에 든 종이를 한 장 넘겼다. 그저께 안보회의에서 이번엔 우리 이름으로 쏜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그는 종이에 적힌 대로 읽었다.

“대안 좌표의 막사는 수용 인원 추정 1,800명입니다. 예상치입니다. 새벽이면 대부분 침상에 있습니다.”

환기구 돌아가는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국방장관이 볼펜 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한도겸이 화면 앞으로 가서 회색 줄 끝의 작은 글씨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입력자란에 대위 계급과 이름 세 글자가 있었다.

“그 숫자를 먼저 계산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진천의 사격통제장교입니다. 이 사람은 숫자를 알고도 마을 대신 막사를 골랐습니다. 자기 이름을 걸고요.”

“차장님은 지금 군인 수천을 고르시는 겁니다.”

“예, 압니다. 저는 쏘자는 쪽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 그런데 쏘기로 한다면 이 줄입니다. 위 줄을 고르면 저 운동장이 내일 아침 저쪽 방송에 나옵니다. 1년 내내 나옵니다. 우리를 밀어 넣은 손이 처음부터 바란 사진이 그겁니다.”

“탄약고로는 폭격기 첫 파를 못 멈춥니다.”

“첫 파는 어차피 0400에 떠 있습니다. 두 번째 파가 실을 미사일이 거기 쌓여 있습니다.”

합참의장은 한동안 화면 속 운동장을 봤다. 그러고는 작전본부장에게 정말 첫 파가 0400이면 이미 떠 있느냐고 물었다. 작전본부장이 그렇다고 했다. 합참의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긴 사람이 아니라 계산을 끝낸 사람의 동작이었다.

*

0105에 안보실장이 대통령 곁에서 허리를 폈다. 지하에서도 대통령은 화면 쪽을 향해 앉아 있었고, 방에서 보이는 것은 등과 의자에 걸친 윗옷뿐이었다.

“0400 현무-3 포화. 현무-5는 대기. 대기 표적은 입력자 이의가 달린 좌표로 한다.”

국방장관이 받아 적었다. 합참의장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한도겸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벽 쪽에 선 행정관을 불렀다.

결정문 초안이 화면에 떴다. 행정관은 손톱을 바짝 깎은 손가락으로 표를 맞추고 있었다. 한도겸이 그 등 뒤에 섰다.

“현무-5 대기 표적 줄 끝에 괄호를 여세요. 입력자 이름을 넣습니다.”

“결정문에 위관 장교 이름이 들어간 전례는 없습니다.”

합참의장이 말했다. 막는 말투가 아니라 확인하는 말투였다.

“전례가 없으니 넣는 겁니다. 이 줄은 그 사람이 고친 줄입니다. 나중에 누가 이 결정을 읽으면 누가 그 마을을 뺐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간에서 누가 이 줄을 건드리면, 이름 붙은 줄이라 눈에 걸립니다.”

프린터가 데워지는 동안 지하의 공기는 마른 종이 냄새와 사람 땀 냄새로 무거웠다. 환기구는 한 시간째 같은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익숙해진 귀에는 이제 자판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행정관이 괄호를 열고 세 글자를 쳤다. 명지수. 괄호가 닫혔다. 한도겸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출력된 원본에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서명하는 동안 그는 종이 맨 아래 줄만 내려다봤고, 서명이 끝나자 한 가지를 덧붙였다.

“원본은 이 방에 둡니다. 나가는 건 사본입니다.”

*

0125에 한도겸은 지하를 나와 기자실이 있는 건물 쪽 통로를 걸었다. 경보가 풀린 뒤라 기자실 불이 다시 켜져 있었다. 문 앞에 배소현이 노트북을 가슴에 안고 서 있었다. 그녀는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반쯤 열린 노트북 화면에 쓰다 만 기사가 떠 있었는데, 제목 칸만 비어 있었다.

“차장님, 결정이 났습니까?”

“종이가 아직 안 나갔습니다.”

“나가면요?”

“그때는 내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소현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켜고, 폴란드에 있는 번호 하나를 한참 내려다봤다.

0130, 위기관리센터 옆 통신실에서 암호 팩스가 사본을 삼켰다. 행정관이 수신처 목록을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갔다. 전략사, 공군작전사령부,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롤러가 종이를 끝까지 끌어당긴 뒤 초록 불 하나가 켜졌다. 원본은 결재판에 끼워져 위기관리센터 탁자 위, 대통령 의자에서 가장 먼 자리에 놓였다. 맨 아래 줄 끝의 괄호가 형광등 밑에서 반듯했다.

통신실 팩스가 발송 확인 용지 한 장을 밀어냈다. 수신처 맨 아래 칸에 진천이라는 두 글자가 찍혀 있었다.

3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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