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5,319자) · 강태우 · 8월 24일(화)
돌아오는 차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4일 0610, 곽 상사가 줄자를 끌고 활주로 북쪽 끝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데 40분이 걸렸다. 그는 배치도를 펴고 맨 아래 칸에 숫자를 적었다. 2,740. 그 옆에 전부라고 썼다. 6월 4일 새벽 이 활주로에 구멍이 나기 시작한 지 여든하루 만이었다. 시설대대원들이 삽을 땅에 꽂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누가 울었고 누가 웃었는데, 우는 쪽과 웃는 쪽이 같은 사람인 경우도 있었다. 태우는 활주로 한가운데 서서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를 눈으로 따라갔다. 메운 자리마다 보수재 색이 달랐다. 6월에 메운 것은 바래서 회색이었고 어제 메운 것은 아직 짙었다. 바래고 짙은 얼룩이 2,740미터를 따라 띄엄띄엄 이어졌다. 셋째 구멍 자리를 지날 때 태우는 거기만 한 번 더 봤다. 그 옆 서쪽 풀밭은 아직 검게 눌려 있었다.
0700에 기지 방공망이 전부 켜졌다. 활주로가 다 열리면 저쪽도 다 치러 온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남쪽 끝 무장 해제 구역 옆에 새로 놓인 컨테이너 하나가 처음으로 포신을 들었다. 무인 요격 체계였다. 레이더가 들어오는 것을 잡으면 사람이 누르기 전에 스스로 겨누고 스스로 쐈다. 무인기가 떼로 오면 사람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해서 들여온 것이었다. 포신이 빈 하늘을 한 바퀴 훑고 서쪽을 향해 멈췄다. 모터 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컨테이너 옆 천막에 운용병 둘이 앉아 화면을 봤다. 화면에는 사람이 누를 단추가 있었지만, 자동으로 두면 단추를 누르기 전에 기계가 먼저 끝냈다. 운용병 하나가 태우에게 사람이 하는 일은 끄는 것뿐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태우는 그 컨테이너 뒤로 굵은 전원 케이블이 발전기까지 땅을 기어가는 것을 봤다. 쇠뭉치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0800, 행정반 인사계가 종이 한 장을 태우에게 내밀었다. 전역 신고 일정이었다. 8월 27일 0900, 비행단장실. 태우는 그것을 받아 네 번 접었다. 사흘 남았다. 접은 종이를 공구함 뚜껑 안쪽 고무줄에 끼우는 동안 손이 한 번 헛돌았다.
*
1000, 태우는 보수재 트럭을 받으러 정문에 나갔다. 정문 앞 국도가 둘로 갈라져 있었다. 군산 시내에서 나가는 쪽 차선은 이삿짐을 지붕에 묶은 차들로 2킬로미터가 막혀 있었다. 들어오는 쪽 차선은 비어 있었는데, 그 빈 차선을 따라 띄엄띄엄 차가 들어왔다. 시내에 남은 노인을 데리러 오는 자식들의 차였다. 정문 옆 공터에는 헌혈 버스가 서 있었고, 그 앞 줄이 국도 쪽 인도까지 이어졌다. 줄에 선 사람들은 대개 시내에 남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횟집 앞치마를 두른 남자, 교복 위에 점퍼를 걸친 고등학생 둘, 지팡이를 짚은 노인. 버스 옆구리에 누가 매직으로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오늘 오후 4시까지.
정문 초소 옆에 여자 하나가 보온통을 들고 서 있었다. 쉰 남짓이었고 팔에 반찬통 두 개가 든 장바구니를 걸고 있었다. 초병이 받을 수 없다고 몇 번 말했는지 초병 얼굴이 지쳐 있었다. 여자는 태우의 정비복을 보고 다가왔다.
“정비하는 분이죠? 이거 그 사람들 드세요. 소고기뭇국이에요. 아직 뜨거워요.”
“어머님, 저희가 받으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우리 아들도 군인이에요. 진천 어디 있대요. 어딘지는 말을 안 해 줘요. 좋은 소식은 작게 말해도 된다고 했더니, 요새는 아예 말을 안 해요.”
여자가 웃었다. 웃는데 눈가가 젖지 않았다. 너무 여러 번 한 웃음이었다. 태우는 보온통을 받았다. 손잡이까지 뜨거웠다. 여자는 태우의 이름표를 읽었다.
“강태우. 우리 도현이랑 비슷하겠네. 그 집 엄마도 어디서 이렇게 서 있겠지. 남의 집 애라도 누가 먹이겠지 싶어서 왔어요.”
태우는 진천이 어디쯤인지 대충 알았다. 거기 누가 있는지는 몰랐다. 여자는 반찬통도 장바구니째 태우의 팔에 걸어 주고 국도 쪽으로 걸어갔다. 나가는 차선의 줄 옆을 거슬러 걷는 사람은 그 여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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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0에 KF-21 넷이 떴다. 2,740미터 가운데 2,000미터도 안 써서 떴다. 태우는 넷을 세고 공구함 위에 앉아 보온통 뚜껑을 열었다. 국 냄새가 무장 해제 구역의 경유 냄새를 잠깐 밀어냈다. 엄 상사와 정비반 여덟이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줄을 섰다. 엄 상사가 국을 한 모금 마시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가 푹 익어 있었고 소고기는 잘게 찢겨 있었다. 집에서 끓여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을 국이었다. 보온통은 금방 비었다. 태우는 빈 통을 헹궈 정문 초소에 맡겼다. 초병이 그 아주머니가 내일도 온다고 했다고 전했다.
1407, 관제 스피커가 넷이 귀환 중이라고 했다. 1411에 바다 쪽에서 첫 기체가 낮게 들어왔다. 둘째, 셋째가 따라 들어왔다. 넷째는 늦었다. 1414에 넷째가 수평선 위에 점으로 떴다. 고도가 다른 셋보다 낮았고 방향이 조금 비틀려 있었다. 태우는 꼬리 번호를 읽으려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옆 컨테이너의 모터 소리가 바뀌었다. 포신이 서쪽에서 남서쪽으로 돌았다. 들어오는 넷째를 따라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돌았다. 컨테이너 옆 통제 천막에서 운용병이 뛰쳐나와 소리쳤다.
“피아 식별 안 뜹니다! 넷째 응답기가 죽었습니다! 자동입니다!”
피아 식별(아군인지 적군인지 가르는 신호)이 안 오면 체계는 들어오는 것을 적으로 봤다.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운용병이 천막으로 돌아가 해제 단추를 눌렀다. 화면이 멈춰 있었다. 다시 눌렀다. 포신은 넷째를 놓지 않았다. 넷째가 착륙 바퀴를 내렸다. 거리가 줄었다. 태우는 꼬리 번호를 읽었다. 17이었다.
아침에 본 케이블이 거기 있었다. 태우는 공구함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뛰었다. 엄 상사가 이름을 불렀다. 케이블 연결부는 손바닥 두 개만 한 쇠뭉치였고 잠금 고리가 걸려 있었다. 등 뒤에서 포신 돌아가는 모터 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겨눈 것을 붙잡았다는 소리였다. 태우는 고리를 젖혔다. 손에 땀이 차서 미끄러졌다. 무장 걸이를 젖히던 손이었다. 걸이는 반대로 돌려야 풀렸고, 이 고리는 위로 젖혀야 풀렸다. 다시 젖혔다. 쇠뭉치를 두 손으로 잡고 몸을 뒤로 던졌다. 연결부가 빠지며 불꽃이 한 번 튀었다. 모터 소리가 끊겼다. 포신은 넷째를 겨눈 자리에서 그대로 섰다.
1415에 17이 그 포신 앞 300미터 위를 지나 활주로에 내렸다. 바퀴에서 흰 연기가 났다. 조종석의 조종사는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채 유도로로 꺾었다. 넷이 떠서 넷이었다.
태우는 케이블 쇠뭉치를 안은 채 아스팔트에 엉덩방아를 찧고 앉아 있었다. 운용병이 천막에서 나와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둘 다 한참 말이 없었다. 운용병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계가 사람보다 빨라서 들여온 건데, 오늘은 사람이 기계보다 늦게 판단해서 산 거라고 했다. 태우는 쇠뭉치를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고리 자국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1530에 방공 포대 대위가 정비 대기실로 왔다. 무인 요격 체계를 맡은 사람이었다. 그는 태우 앞에 서서 경위서 양식을 내밀었다.
“병장, 체계 전원을 끊은 게 3분이었다. 그 3분 동안 저쪽 무인기가 왔으면 이 기지는 눈 하나를 감고 있었어.”
“그 3분 동안 17이 내렸습니다.”
“17이 뭔데?”
“넷째 기체 꼬리 번호입니다.”
대위는 한참 태우를 봤다. 화를 내려던 얼굴이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 됐다. 그는 경위서 양식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쓰기는 써. 사실대로. 응답기가 죽은 기체를 자동이 못 가렸다는 것까지 다 써. 그래야 위에서 그 기계 설정을 바꾼다.”
태우는 그날 오후 경위서를 썼다. 시각과 꼬리 번호와 케이블 연결부의 고리 방향까지 적었다. 자기 이름을 적는 칸에서는 손이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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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행정반 텔레비전에서 국방부 발표가 나왔다. 전시 복무 연장. 8월 27일 0000부터 전 군의 전역을 보류한다고 했다. 행정반에 있던 병사들이 화면을 봤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인사계가 태우의 전역 신고 일정이 적힌 서류철을 꺼내 그 위에 보류라는 도장을 찍었다. 인주가 덜 묻어 보류의 첫 글자가 흐렸다. 그는 한 번 더 찍었다.
태우는 그 도장을 봤다. 어깨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사흘 뒤에 정문을 나가 국도의 나가는 차선에 서야 할지, 들어오는 차선을 등지고 남아야 할지를 이제 고르지 않아도 됐다. 그것이 숨 하나로 빠져나갔다.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너 지금 웃었냐?”
곽 상사가 행정반 문간에 서 있었다. 보수재 결재를 받으러 왔다가 텔레비전 앞에 멈춘 참이었다.
“…안 웃었습니다.”
“웃었어. 올라갔다 내려갔어. 내가 봤다.”
행정반 병사 둘이 태우를 돌아봤다. 태우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집에 못 가게 됐는데 안도한 얼굴이었고, 그걸 들켰다. 곽 상사는 결재판을 겨드랑이에 끼고 태우 앞으로 와서 그의 헬멧을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부끄러워할 거 없다. 나는 작년에 복무 연장 서류에 도장 받을 때 딱 그 얼굴이었다. 마누라가 그걸 사진으로 찍어 놔서 아직도 혼난다.”
행정반에 웃음이 터졌다. 태우도 웃었다. 이번에는 들키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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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아버지가 전화했다. 차 안이었다. 엔진 소리와 깜빡이 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려가는 길이다. 27일 아침에 정문 앞에 서 있으려고 미리 간다. 군산 들어가는 길이 텅 비었다. 나가는 차만 줄이야. 저쪽 차선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미친놈이 들어간다고. 여관도 잡았다. 전역하면 바로 와라.”
“아버지, 오지 마세요. 전역 보류됐습니다. 오늘 발표 났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깜빡이 소리만 한참 났다. 아버지는 갓길에 차를 세운 것 같았다.
“그럼 언제 오는데?”
“모릅니다. 끝나면 갑니다.”
“…거기 활주로는 다 고쳤냐?”
“2,740미터입니다. 오늘 아침에 끝까지 열었습니다. 6월에는 1,620이었고 7월에는 0이었습니다. 1,400, 1,900, 2,300, 2,500, 그리고 오늘 2,740입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모르는 숫자들이었다. 태우가 숫자를 하나씩 말하는 동안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숨소리만 들렸다. 다 말하고 나서도 아버지는 끊지 않았다. 한참 뒤에 2,740, 하고 한 번 따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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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 격납고 문이 열리고 델가도 상사가 카투사 상병과 같이 들어왔다. 델가도는 엄 상사에게 무언가를 길게 말했고 카투사가 짧게 옮겼다. 이번 주에 크게 온다. 날짜까지는 모르지만 주말 쪽이다.
복구반장은 태우를 봤다. 오후에 케이블을 뽑은 것을 아는 얼굴이었다. 그는 영어로 한 문장을 천천히 말했다. 카투사가 옮겼다.
“목요일 밤부터 대피소에서 자라.”
복구반장이 돌아서 나갔다. 태우는 공구함 뚜껑을 열었다. 뚜껑 안쪽 고무줄에 아침에 끼운 종이가 그대로 있었다. 8월 27일 0900, 비행단장실. 그 위에 보류 도장은 없었다. 도장은 행정반 서류철에만 찍혔고, 태우가 접어 넣은 종이는 아침 그대로 네 번 접힌 채 고무줄에 물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