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5,246자) · 명지수 · 8월 22일(일)

이름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2일 0314, 골짜기 건너편 능선이 한 번 밝아졌다. 소리는 4초 뒤에 왔다. 지수는 사격지휘차 지붕 해치에 상반신을 내놓고 그 빛을 봤다. 그저께 밤까지 대대가 있던 자리였다. 0316에 두 번째 빛이 올랐다. 이번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능선 위에서 한참 붉게 남았다. 버리고 온 위장망이 타는 것 같았다.

“대위님, 두 발입니다. 그저께 그 자리 갱도 입구 쪽입니다.”

도현이 해치 아래에서 무전기 수신기를 귀에 대고 말했다. 방공 분대가 서해 쪽에서 들어온 순항미사일 둘이라고 알렸다. 셋이었는데 하나는 떨어뜨렸다고 했다. 지수는 시계를 봤다. 대대가 그 자리를 떠난 지 27시간이었다. 저쪽이 아는 것과 이쪽이 움직인 것 사이에 27시간이 있었다. 7월에는 그 사이가 엿새였다.

0322에 세 번째 것이 왔다. 이번에는 능선이 아니라 골짜기 아래 저수지 둑 쪽이었다. 빛이 물에 한 번 더 비쳐서 두 번 터진 것처럼 보였다. 방공 분대 무전에서 누군가 욕을 했다. 셋이 아니라 넷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하나는 아무도 못 봤고, 어디를 노렸는지도 몰랐다. 저수지 둑에서 대대 진지까지 직선으로 1.4킬로미터였다. 지수는 해치 테두리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쇠 테두리가 밤이슬에 젖어 미끄러웠다.

0330에 지수가 인원을 불렀다. 열여덟 명 전원이었다. 능선 위의 붉은빛은 0400이 넘어서야 꺼졌다. 크레인 운전병이 비닐 조각을 접으며 저쪽이 늦잠을 잤다고 했다. 몇이 웃었다. 지수는 웃지 않았다. 늦잠이 27시간에서 다음엔 열 시간이 될 것이었다.

0420에 대대장이 해치 밑에 와서 섰다. 그는 능선 쪽을 한 번 보고 지수에게 물었다. 거기 두고 온 게 뭐였지. 지수는 셌다. 찢어진 위장망 둘, 고장 난 발전기 하나, 빈 연료통 여섯.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은 오늘 아침 위성으로 그 발전기 조각을 볼 것이었다. 발사대 조각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 하루가 걸릴 것이었고, 그 하루가 이쪽 몫이었다. 대대장은 그 하루를 어디에 쓸지 말하지 않고 반합 뚜껑을 들고 내려갔다.

*

0710에 전문 한 장이 들어왔다. 대대장이 출력해서 사격지휘차로 들고 왔다. 발신은 합참 사이버과였고 제목에 잠정 통보라고 적혀 있었다. 대대장이 소리 내어 읽었다.

“연합 자료 회선의 발신자 미기재 자료 다섯 건은 회선 중계 노드(여러 자료가 한데 모였다가 다시 갈라지는 길목 장비) 한 곳을 거친 외부 침입으로 잠정 판단함. 다섯 건 모두 표적 상태를 올리는 방향. 대상 표적 전부 서쪽. 의도는 아군의 대중국 타격 유도로 추정.”

지수는 그 줄을 듣고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7월 2일에 산둥으로 나간 두 발이 머릿속에서 다시 흰 줄을 그었다. 발신자가 비어 있던 두 줄을 누가 한 칸 올렸고, 엿새 뒤 그 두 줄에 사격이 붙어 내려왔다. 지수는 그 사격에 절차대로 손을 움직였다. 확인 요청을 넣었고, 18분 만에 이름이 붙은 회신이 왔고, 셋 가운데 둘을 보냈다. 그날 지수가 지킨 절차는 처음부터 누군가 열어 둔 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이름이 없었고, 그 문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이름이 있었다. 명지수.

대대장이 한 줄을 더 읽었다.

“해당 시각에 부대 자체 기록이 있으면, 수기 포함, 사진으로 송부 바람.”

차 안이 조용해졌다. 지수는 도현을 봤다. 도현은 방탄복 안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덮고 있었다. 8월 3일 아침, 전략사 보안장교가 개인 기록 전량 파기 명령을 들고 왔을 때 지수는 확인서에 서명했다. 전량 파기 완료. 도현의 종이는 그 목록에 없었다. 그 서명은 거짓이었다.

“그 종이 아직 있나?”

대대장이 물었다. 지수가 대답하기 전에 도현이 먼저 종이를 꺼냈다.

“있습니다. 대대장님, 이거 제 겁니다. 대위님은 모르셨습니다.”

“하사, 그 확인서 사본은 보안장교가 내 손에 쥐여 주고 갔어. 나도 읽고 서랍에 넣어 뒀다.”

대대장은 도현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 폈다. 앞뒤로 빈 줄이 없었고 여백까지 세로 글씨가 차 있었다. 대대장은 한참 들여다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럼 셋이 같이 거짓말한 거다. 셋이 같이 사진 찍으면 되겠네.”

그는 화면을 몇 번 눌렀다. 찍는 소리 대신 손전등이 켜졌다.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사격지휘차 안이 하얗게 번쩍했다. 플래시였다. 통신병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고, 운전병은 해치 쪽을 올려다봤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대장이 머쓱하게 화면을 들여다봤다.

“이거 어떻게 끄냐?”

도현이 받아서 플래시를 끄고 대대장에게 돌려줬다. 대대장은 종이 앞면과 뒷면과 여백을 한 장씩 찍었다. 0741에 사진 석 장이 사이버과로 나갔다.

*

0800, 지수는 사격지휘차에 혼자 남아 셋째 표적을 다시 지도에 얹었다. 학교에서 190미터였다. 나흘 전 정정 요청은 35분 만에 돌아왔고, 돌아온 한 줄에는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이 찍은 좌표를 다시 묻는 길은 하나였다. 입력자 확인서였다. 좌표를 사격통제 장비에 넣는 사람이 그 칸에 이의를 적으면, 상급이 그 좌표를 처음부터 다시 결재해야 했다. 규정에 있는 칸이었다. 지수는 사격통제 규정집을 꺼내 그 조항이 있는 쪽을 폈다. 책장이 빳빳했다. 앞뒤 쪽은 손때가 묻어 귀퉁이가 둥글게 닳았는데 그 쪽만 모서리가 날카로웠다. 지금까지 지수가 그 칸을 쓴 적은 없었다. 쓰는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0830에 전략사 참모가 먼저 화상을 걸어왔다. 사이버과 통보를 봤다고 했다. 그는 지수가 무엇을 할지 이미 아는 얼굴이었다.

“명 대위, 입력자 이의는 기록에 영원히 남는다. 진급 심사 때도 나온다. 전쟁 중에 상급 결재를 다시 돌린 장교로.”

“압니다.”

“그리고 이의를 달면 그 좌표는 상급이 다시 결재할 때까지 대기에서 안 움직인다. 그 사이에 저쪽이 먼저 오면, 그것도 대위 이름으로 남아.”

“그것도 압니다. 참모님, 7월 2일 회신에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도 남아 있습니다.”

참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이 꺼졌다.

지수는 대안부터 찾았다. 같은 비행장 북쪽 울타리 안쪽에 탄약고가 있었다. 지도로 보면 둘레 600미터 안에 민가가 하나도 없었다. 활주로 끝에서 출격 준비를 하는 기체들은 여기서 무장을 받아 갔다. 탄약고가 터지면 그 비행장은 8월 하순에 아무것도 달고 뜨지 못했다. 지수는 거리를 다시 쟀다. 탄약고 동쪽 울타리 너머에 길쭉한 네모가 여섯 줄로 늘어서 있었다. 병력 막사였다.

0920에 지수는 입력자 확인서를 채웠다. 셋째 표적 좌표, 이의 있음. 사유란에 한 줄을 적었다. 부수 피해 기준 미충족, 교육 시설 190, 표적 상향 경로에 외부 침입 잠정 통보 있음. 대안 좌표란에 탄약고를 적었다. 그 아래 입력자 칸이 있었다. 계급과 성명. 지수는 볼펜을 세웠다. 6월 8일에는 요청자 칸에 이름을 썼고, 7월 13일에도 썼다. 그때는 묻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오늘 이 칸의 이름은 묻는 사람이 아니라 막는 사람의 것이었다. 지수는 썼다. 대위 명지수. 획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눌러 썼다.

1015에 대대장이 확인서를 받아 읽었다. 대안 좌표란에서 오래 멈췄다. 막사 여섯 줄이 지도에 같이 찍혀 있었다.

“명 대위, 여기는 민가가 없는 대신 사람이 있다.”

“압니다. 군인입니다.”

“그걸 네가 골랐다는 게 이 종이에 남는다.”

“학교를 고른 것도 누가 고른 겁니다.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저도 남겠습니다.”

대대장은 대답 대신 부서장 확인 칸에 서명했다. 결재란에 쓰던 작은 글씨보다 조금 컸다. 1032에 확인서가 올라갔다. 사이버과 잠정 통보의 문서 번호를 사유란 끝에 붙여서 보냈다. 절차 안의 길이었고, 절차를 하나도 어기지 않은 길이었다.

1110에 사이버과에서 짧은 회신이 왔다. 사진 수신 확인, 원본 보존 요망. 대대장이 그것을 읽어 주고 도현을 봤다.

“하사, 그거 이제 네 종이 아니다. 증거다. 잃어버리면 영창이야.”

“주머니 단추를 두 개 더 달겠습니다.”

“세 개 달아.”

운전병이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도현은 정말로 방탄복 안주머니 단추를 손끝으로 하나씩 세어 봤다.

*

1200에 답이 없었다. 지수는 점심을 먹지 않고 사격지휘차에 앉아 있었다. 도현이 반합에 담아 온 밥이 의자 옆에서 식어 갔다. 1500에도 없었다. 6월에는 12분, 7월에도 12분, 8월 3일에는 한 시간, 나흘 전에는 35분이었다. 지수는 시계를 볼 때마다 지난 숫자들을 머릿속으로 다시 세었다. 1730에 방공 분대가 서쪽 상공에 무인기 둘이 지나간다고 알렸다. 대대는 위장망 밑에서 숨을 죽였다. 지수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둘은 진지 위에서 돌지 않았다. 새벽에 불탄 옛 자리 쪽으로 곧장 갔다. 맞힌 자리를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거기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저쪽이 아는 데 얼마나 걸릴지 지수는 셌다. 오늘 밤이면 알 것이었다. 1750에 해제가 났다. 1800에도 답은 없었다.

1840, 도현이 사격지휘차로 들어와 지수 앞에 섰다. 손에 종이를 쥐고 있었다. 아침에 사진으로 찍혀 나간 그 종이였다.

“대위님, 확인서 사본 한 장 주십시오.”

지수가 복사본을 건넸다. 도현은 그것을 네 번 접어 손바닥만 하게 만들었다. 앞뒤 칸이 다 찬 자기 종이 뒷면 아래 귀퉁이에 대고 절연 테이프로 네 귀를 붙였다. 테이프는 3호차 배선에 감던 흰 것이었다. 붙이고 나서 도현은 그 옆에 작게 한 줄을 적었다. 8월 22일 0920, 셋째 표적 입력자 이의, 대안 탄약고. 여백의 셋째 세로줄이었다. 확인자 칸에는 늘 쓰던 대로 임도현을 적었다. 그리고 사본 위에 적힌 입력자 이름을 엄지로 한 번 눌렀다. 테이프가 들뜨지 않게 누르는 것이었는데 엄지가 이름 위에서 조금 오래 있었다.

“하사, 그러면 네 종이에 내 이름이 들어가.”

“원래 대위님 종이였습니다. 저는 적기만 했습니다.”

도현은 종이를 접어 안주머니 깊이 밀어 넣었다. 단추 두 개를 잠그고 나서, 단추가 없는 그 아래 천을 엄지로 한 번 더 눌렀다. 아침에 대대장이 세 개 더 달라고 한 자리였다.

*

2300, 지수는 사격지휘차 불을 끄고 작은 독서등 하나만 켰다. 탄약고 동쪽 막사 여섯 줄이 지도 위에 있었다. 지수는 계산 용지를 폈다. 막사 한 동의 크기를 쟀다. 그런 막사에 대개 몇 명이 자는지 교범 부록에 있었다. 출격 준비가 몰리는 8월 하순에는 그 숫자가 늘었다. 판단서가 말한 8월 하순은 짧게 잡으면 엿새 뒤였다. 탄두가 터지는 자리와 막사 사이의 거리를 쟀다. 지수는 숫자를 하나씩 곱하고 더했다. 한 번 끝내고 처음부터 다시 했다. 두 번 다 같았다. 계산이 끝났다. 지수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용지 맨 아래 합계 칸은 비어 있었다.

3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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