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5,238자) · 명지수 · 8월 18일(수)
대기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18일 0208, 진천의 진지 위로 무인기 소리가 세 번째로 지나갔다. 대대에 붙은 방공 분대가 재머(전파를 쏘아 무인기의 조종 신호를 끊는 장비)를 켰다. 소리가 한 번 흔들렸다. 그런데 셋 가운데 하나는 흔들리지 않고 갱도 위 능선을 따라 내려왔다. 지수는 사격지휘차 문틈으로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2호차 위장망 쪽으로 낮아졌다.
“2호차 인원 갱도로. 지금.”
2호차 요원 셋이 위장망 밑에서 기어 나와 갱도 쪽으로 뛰었다. 방공 분대 사수가 갱도 입구 모래주머니 위에 기관총을 올리고 소리 나는 쪽 하늘에 대고 짧게 끊어 쐈다. 예광탄 줄이 참나무 우듬지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가 사라졌다. 맞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수는 갱도로 들어가지 않고 사격지휘차 문을 반쯤 연 채 소리를 셌다. 소리가 한 번 끊겼다.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더 낮았다.
0211에 위장망에서 40미터 떨어진 참나무 둥치가 터졌다. 나무가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졌고 불붙은 잎이 위장망 위로 쏟아졌다. 도현이 소화기를 들고 뛰어나갔다. 2호차 요원 둘이 갱도 입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지수의 손짓에 도로 들어갔다. 위장망 한 귀퉁이가 타들어 갔고 도현이 거기에 하얀 분말을 끝까지 뿌렸다. 매캐한 냄새가 갱도 안까지 밀려 들어왔다. 0230에 소리가 멀어졌다. 0240에 지수가 인원을 불렀다. 열여덟 명 전원이었다. 위장망은 귀퉁이 하나가 검게 오그라들었고, 2호차는 멀쩡했다. 둥치 하나가 2호차 대신 맞았다.
“대위님, 이번 놈은 재머에 안 흔들렸습니다.”
“조종하는 사람이 없는 놈이었겠지. 찍어 둔 자리로 혼자 오는 놈.”
도현이 쓰러진 나무 쪽을 봤다. 불 꺼진 둥치 옆 흙 위에 검은 프로펠러 조각 하나가 박혀 있었다. 끊을 신호가 처음부터 없는 놈은 재머로 못 막았다. 찍어 둔 자리가 있다면 이 능선을 찍어 둔 누군가가 있었다. 도현이 그 조각을 장갑 낀 손으로 뽑았다가, 지수가 보는 것을 알고 주머니에 넣었다.
0310에 대대장이 갱도에서 나와 쓰러진 둥치를 한참 내려다봤다. 그는 지도를 펴지 않고 말했다. 모레 밤에 자리를 옮긴다. 어디로 가는지는 그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다. 찍힌 자리에서 지도를 펴면 지도까지 찍힌다는 것이 대대장의 버릇이었다.
*
0500에 새 목록이 내려왔다. 목록 머리에 처음 보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현무-5. 그 아래 상태 칸은 전부 대기였다. 사격도 참고도 아니었다. 표적은 다섯이었고 다섯 다 서쪽이었다.
“대위님, 우리 대대엔 현무-5 발사대가 없지 않습니까?”
“사전 계산용으로 전 대대에 뿌린 거야. 계산은 우리가 해.”
지수는 다섯을 하나씩 지도에 얹었다. 첫째와 둘째는 산둥반도 북쪽 해안의 비행장 활주로 한가운데였다. 넷째와 다섯째는 해안 레이더 기지였다. 셋째는 첫째 비행장의 남쪽 울타리 바깥이었다. 지도에 회색 네모가 여럿 붙어 있었다. 도현이 축척을 키웠다. 네모 사이에 마당 하나가 있었고, 마당 옆 네모에 글자가 떴다. 학교였다.
“거리.”
“190미터입니다. 좌표는 울타리 너머 연료 저장고를 찍었는데 저장고하고 학교 사이에 길 하나뿐입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빨라지지 않았다. 세 번을 거치는 동안 목소리가 거기에 익었다. 지수는 그게 더 싫었다. 지수는 화면을 보는 대신 일지를 폈다. 좌표 정정 누계 3건. 6월 8일, 7월 13일, 8월 3일이었다. 세 번 다 12분에서 한 시간 사이에 답이 왔고, 세 번 다 점이 학교에서 멀어졌다. 지수는 양식을 채웠다. 셋째 표적 재확인 요청, 학교 190. 대대장이 일러 준 대로 짧게 썼다. 0512에 전송을 눌렀다.
기다리는 동안 위장망 밖에서 새가 울기 시작했다. 6월 4일 새벽, 군산 쪽 하늘이 조용하던 그 아침에도 참나무 어딘가에서 새가 울었다. 그날도 새는 아래에서 무엇이 정해지는지 모르고 울었다. 도현이 화면 귀퉁이 날짜를 봤다.
“대위님, 8월이면 저쪽도 방학 아닙니까? 학교가 비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연평도 생각나? 7월에 섬 초등학교 체육관에 주민들이 모였다는 교신.”
도현이 입을 다물었다. 방학이면 학교는 비었다. 전쟁이 나면 학교는 찼다. 사람을 한데 모을 만큼 넓고, 마당이 있고, 누구나 위치를 아는 건물은 어느 마을에나 그것 하나였다. 지수는 화면의 회색 네모를 다시 봤다. 저 네모 안에 지금 누가 있는지는 위성 사진에도 나오지 않았다.
0547에 답이 왔다. 35분 만이었다. 이번에도 한 줄이었다. 표적 유효. 부수 피해(표적 둘레의 민간인과 민간 시설이 입는 피해) 판단은 상급 소관. 지수는 그 한 줄 아래 발신자란을 봤다. 부대와 계급과 이름이 다 있었다. 합참 작전본부였다. 지수는 일지 사이에 끼워 둔 7월 2일 자 회신 사본을 꺼내 나란히 놓았다. 산둥 두 발을 시행하라던 그 한 줄이었다. 발신자 이름이 같았다.
*
0700에 전략사와 화상이 연결됐다. 화면 속 참모는 중령이었고, 손에 쥔 종이를 카메라 쪽으로 돌려 보였다. 정보 판단서 첫 장이었다. 8월 하순, 산둥반도 비행장들에서 서해안 기지 셋을 동시에 치는 출격, 첫날에만 300회 남짓으로 예상. 그 아래 줄에 셋째 표적의 비행장 이름이 집결지로 적혀 있었다.
“명 대위, 질문이 있다고 들었다.”
“셋째 표적에서 190미터에 학교가 있습니다.”
“알아. 판단서에 있어.”
“아시면서 그대로 두신 겁니까?”
참모의 얼굴이 화면에서 잠깐 굳었다. 화상이 한 박자 늦게 따라와서 표정이 두 번에 나눠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
“대기는 쏘라는 게 아니다. 준비하라는 거다. 명 대위 일은 계산이야.”
“계산하면 그 학교가 들어갑니다. 현무-5는 탄두가 다릅니다. 지금까지 정정받은 좌표하고 같은 거리에 떨어져도 같은 결과가 아닙니다.”
“7월 2일에 산둥 쏠 때는 아무 말 없더니.”
“그때는 표적 둘레에 민가가 없었습니다.”
“그때 쏜 것 때문에 저쪽이 8월에 온다. 그 비행장에서 8월 말에 뭐가 뜨는지 대위는 아나? 판단서에 있는 그 300회가 어디로 오는지 아나? 군산이고 평택이다. 거기에도 학교가 있어.”
지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지난달 갱도 앞에서 대대장도 섬에서 누가 그 값을 치르느냐고 물었다. 그때는 연평도였고 지금은 군산이었다. 값을 치르는 곳의 이름만 바뀌었다.
“표적은 유효하다. 계산 결과는 오늘 1800까지 올려.”
대대장이 지수 옆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참모님, 입력자가 이의를 달면 어떻게 됩니까?”
“이의는 상급이 다시 본다. 그런데 중령님, 지금 그걸 물으시는 건 아니죠?”
“물은 거 맞습니다.”
참모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화면이 꺼지기 직전, 그는 다른 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 한 줄을 빠르게 읽었다. 전 부대 공지였다. 대대장이 그 줄을 받아 적어 지수에게 밀어 줬다. 사이버작전사령부, 연합 자료 회선 침입 정황 조사 중, 관련 부대 협조 대기. 판정은 없었다. 조사 중이라는 네 글자뿐이었다. 지수는 그 종이를 수첩에 끼웠다.
*
0820, 지수는 사격지휘차를 나와 대대장을 따라 지휘 천막으로 갔다. 대대장은 천막 기둥에 걸린 반합 뚜껑을 내려 식은 커피를 따랐다. 아침 볕이 천막 천을 노랗게 데우고 있었고, 그 안의 공기는 땀과 등유 냄새로 무거웠다. 지수는 천막 문을 닫고 섰다.
“대대장님, 이 좌표 누가 넣었습니까?”
대대장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반합 뚜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6월 중순, 산둥 비행장 두 줄에 처음 참고가 붙었을 때 지수가 누가 요청했느냐고 물었고 그는 짐작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때 지수의 짐작은 저쪽에 보여 주려고 넣었다는 쪽이었다. 쏘지 않고 쓰는 방법이었다. 그 짐작은 맞기를 바라는 짐작이었다. 오늘 지수의 짐작은 반대였다. 알면서 쏘려고 넣었다는 쪽이었다.
“그거 물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압니다.”
“그런데 네가 짐작하는 게 맞아. 이번엔 실수가 아니다. 학교가 거기 있는 걸 알고 넣었어. 판단서에 같이 적혀 있잖아.”
지수는 그 말을 오래 서서 들었다. 대대장은 그 말이 지수의 귀에 다 들어갈 때까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커피 위에 기름 막이 엷게 떠 있었다.
“1800까지 계산은 해. 계산을 안 하면 다른 대대가 해. 다른 대대 사격통제는 거리를 안 볼 수도 있어.”
“계산을 하면 그 학교가 숫자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네가 해. 숫자로 들어가는 걸 아는 사람이 해야 다음 칸이 생긴다.”
다음 칸이 무엇인지 대대장은 말하지 않았다. 지수는 경례를 하고 나왔다.
1300, 사격지휘차 안은 한증막이었다. 위장망 밑이라 볕은 안 들었지만 장비 열이 빠질 데가 없었다. 지수는 군복 상의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고 셋째 표적의 계산을 시작했다. 계산은 탄두와 거리와 각도를 넣으면 화면이 했다. 화면은 탄착 둘레에 원 하나를 그려 주었다. 그 원은 연료 저장고를 덮었고, 길 하나를 덮었고, 회색 네모의 절반을 덮었다. 화면은 그 네모가 학교라는 것을 몰랐다. 원은 그 안에 무엇이 있든 같은 색이었다.
도현이 수통 둘을 들고 들어와 하나를 지수 앞에 놓았다. 물이 미지근했다.
“크레인 운전병이 그러는데요, 크레인이 없으니까 자기는 이제 비닐 접는 담당이랍니다.”
“그 비닐 아직 갖고 있어?”
“갖고 있습니다. 접는 솜씨가 늘었습니다.”
지수는 웃으려다 말았다. 화면의 원이 아직 그대로였다. 지수는 원의 지름을 노트에 적고, 원과 회색 네모가 겹친 넓이를 손으로 다시 쟀다. 화면이 한 계산을 손으로 한 번 더 하는 것은 규정에 없었다. 손으로 재면 원이 덮은 것이 무엇인지 손이 알았다.
*
1750에 지수는 계산을 올렸다. 다섯 표적의 수치가 칸을 채웠고 셋째 줄도 채워졌다. 숫자는 숫자였다. 계산서 끝에는 비고라는 좁은 칸이 있었다. 대개 비워 두는 칸이었다. 지수는 셋째 줄 비고에 여섯 글자를 적었다. 교육 시설 포함. 그 칸은 위에서 아무도 안 읽을 수도 있었다. 읽으면 누군가는 그 여섯 글자를 지나가야 했다. 지수는 일지를 폈다. 좌표 정정 누계 3건 아래에 줄 하나를 더 그었다. 정정 요청 1건, 불수용, 발신자 합참 작전본부. 누계라는 칸이 일지에 없었던 것처럼 불수용이라는 칸도 없었다. 지수가 만든 칸이었다.
1810에 도현이 사격지휘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새벽의 그 프로펠러 조각이 들려 있었다. 도현은 그것을 의자에 내려놓고 화면의 셋째 줄을 봤다.
“대위님, 이 좌표도 발신자가 비어 있었습니까?”
“아니. 이번엔 이름이 있다.”
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 화면 셋째 줄 상태 칸의 대기라는 두 글자 위에서 커서가 깜박였다. 의자 위에 놓인 프로펠러 조각은 한쪽 날이 그을린 채 화면 불빛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