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5,354자) · 강태우 · 8월 16일(월)
손이 모르는 기체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16일 0310, 격납고 안에서 손전등 불빛 하나가 KF-21 날개 밑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태우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파일런(무장을 매다는 날개 밑 장착대)을 올려다봤다. 가슴 위에 교범 복사본이 펼쳐져 있었다. 7월 30일에 받은 두꺼운 바인더에서 무장 장착 4장만 뽑아 복사해 온 종이였다. 한 줄 읽고 손전등을 파일런으로 옮기고, 손가락으로 걸이를 짚고, 다시 교범으로 돌아왔다.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걸이의 고리 방향이 KF-16과 반대였다. 손은 스물두 달 동안 반대쪽으로 돌았다. 손이 아는 것을 하나씩 지워야 새것이 들어왔다.
“병장, 외우는 건 좋은데 소리 내서 외우지 마.”
KF-21 분견대 정비반장 엄 상사가 격납고 문틈에 서 있었다. 오상혁이 간 뒤로 정비반 여덟도 엄 상사가 같이 맡았다. 엄 상사는 그 일을 아직 대신 본다고만 불렀고, 오상혁의 사물함은 열지 않았다.
“생활관 애들이 그러는데 어젯밤 네 잠꼬대가 교범 4장이었다더라. 파일런 걸이 해제 순서. 옆 침상 놈이 따라 외웠대.”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옆 침상 놈이 시험 보면 붙겠다.”
엄 상사는 손전등을 하나 더 켜서 파일런 반대편을 비춰 줬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비추다가 물었다.
“열하루 남았다며. 열하루 동안 이 기체 외워서 뭐 하게?”
“제가 나가도 기체는 남습니다.”
“기체만 남냐? 나도 남는다. 너 나가면 우리 무장사 둘이 이걸 다 단다.”
엄 상사가 웃었다. 분견대 무장사 둘은 사흘째 네 시간도 못 잤다고 했다. 둘은 그 뒤로 0450까지 말없이 날개 밑에 있었다. 격납고 바닥 콘크리트의 냉기가 등을 타고 올라왔고, 손전등 둘의 불빛이 파일런 안쪽에서 겹쳤다가 갈라지기를 되풀이했다. 활주로는 어제 오후 2,500미터까지 열렸다. 오늘 아침 첫 출격이 KF-21 넷이었고, 그 가운데 둘의 무장이 태우 몫이었다.
*
0520, 미군 복구반장 델가도 상사가 격납고로 왔다. 그 뒤에 미군 무장사 하나가 공구 가방을 들고 따라왔다. 오늘 KF-21이 다는 공대공 미사일 가운데 하나는 미국 것이었다. 그 미사일이라면 자기 사람이 백 번은 달아 봤다고 델가도가 말했다. 따라온 카투사 상병이 통역했다.
“고맙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런데 이건 우리 기체입니다.”
카투사 상병이 태우를 봤다. 통역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는 얼굴이었다. 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격납고 앞을 지나가던 곽 상사가 그 장면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병장, 자존심 세우다 손가락 날아간다.”
“자존심 아닙니다, 상사님.”
“그럼 뭔데?”
태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미사일은 미국 것이어도 그걸 받치는 걸이와 신호를 넣는 커넥터는 이 기체의 것이었다. 미군 무장사가 오늘 달아 주면 내일은 누가 다는지 태우는 알았다. 저 사람은 8월 말에 평택으로 간다는 말이 돌았다. 그 뒤에는 태우가 달아야 했고, 태우가 9월에 없으면 도영이 달아야 했다.
복구반장은 통역을 듣고 어깨를 한 번 들썩했다. 화를 내지 않았다. 무장사에게 손짓으로 가방을 내려놓게 하고, 가방 맨 위 칸에서 작은 거울 하나를 꺼내 태우의 공구함 위에 올려놓았다. 손잡이가 긴 점검 거울이었다. 그는 그것을 두고 갔다.
0600에 무장 장착이 시작됐다. 태우는 미사일을 걸이에 올리고 고리를 교범 방향대로 돌렸다. 손이 한 번 반대로 가려 했다. 멈췄다. 다시 돌렸다. 커넥터를 꽂자 딸깍 소리가 났다. 손이 거기서 끝났다고 했다. KF-16은 거기서 끝났다. 태우는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0630, 태우는 안전핀 넷을 손에 들고 기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빨간 깃발이 달린 핀이었다. 6월에 박준영 소령에게 하던 순서 그대로였다. 조종석에서 조종사가 핀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넷을 셌다. 고개를 끄덕였다. 조종사의 이름을 태우는 몰랐다. 정비 기록부 조종사 서명란에 서, 하고 시작하는 글씨가 흘려 쓰여 있었을 뿐이다. 태우가 아는 것은 꼬리 번호였다.
*
0641에 넷이 떴다. 2,500미터 가운데 1,800미터쯤에서 앞바퀴가 들렸다. 태우는 넷을 셌다.
0702에 기지 확성기가 울었다. 넷이 떠난 서쪽에서 저쪽 J-16 둘이 군산 쪽으로 곧장 들어오고 있었다. 정비반은 방공호로 뛰었다. 태우는 공구함을 들고 뛰었다. 방공호 총안구로 남쪽 하늘이 보였다. 0706에 J-16 둘이 기지 위 높은 데를 한 번 긁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활주로가 몇 미터까지 열렸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고도가 높아서 엔진 소리가 한참 늦게 따라왔고, 그 소리가 방공호 흙벽을 낮게 울렸다. 0712에 해제가 났다. 사람들은 말없이 대기실로 돌아갔다.
정비 대기실 스피커에서 관제 교신이 흘렀다. 0714, 서해 중간선 남쪽에서 저쪽 J-16 편대가 내려오고 있다는 교신이 들렸다. 0719, 교전이라는 한마디가 들렸다. 그 뒤로 짧은 숫자와 방위가 빠르게 오갔다. 정비반 여덟이 대기실 의자에서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종이컵을 구기는 소리가 났다. 태우는 공구함 위에 놓인 거울 손잡이를 쥐었다 놨다 했다. 금속 손잡이가 손바닥 땀에 미끄러웠다. 0731, 교신이 끊겼다가 0734에 다시 이어졌다. 귀환 중이라고 했다. 몇 대가 귀환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0806에 첫 기체가 바다 쪽에서 보였다. 태우는 하나를 셌다. 둘을 셌다. 셋, 넷. 넷이 다 돌아왔다. 대기실에서 누가 의자를 차고 일어났다.
그런데 둘째로 내린 기체가 유도로로 들어오지 않았다. 활주로 끝 무장 해제 구역으로 꺾었다. 관제 스피커가 짧게 말했다. 2번기, 미발사 무장 한 발, 레일 잔류. 조종사가 쏘려고 눌렀는데 떠나지 않은 미사일 한 발이 날개 밑에 그대로 매달린 채 돌아오고 있었다. 그 미사일은 살아 있었다. 2번기 오른쪽 걸이는 오늘 아침 태우의 몫이었다.
*
0814, 태우는 안전핀 하나를 들고 무장 해제 구역으로 걸었다. 엄 상사가 뒤따라오다가 30미터 앞에서 멈췄다. 규정상 한 사람만 들어갔다. 기체는 엔진을 끈 채 바다 쪽을 보고 서 있었다. 날개 밑 오른쪽 걸이에 미사일 한 발이 있었다. 발사 신호를 받고도 레일을 떠나지 못한 미사일이었다. 다음 순간 떠날 수도 있었고, 영영 안 떠날 수도 있었다. 6월에도 폭탄을 달고 돌아온 기체 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손이 떨려 핀이 두 번 만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자기 손으로 단 미사일이었다. 태우는 미사일 뒤쪽이 아니라 옆에서 다가갔다. 아스팔트가 볕에 달아 있었고, 군화 밑에서 자갈 부스러기가 갈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미사일 몸통에는 서해 위 찬 공기를 맞고 온 이슬이 맺혀 있었다. 태우는 날개 밑에 반쯤 몸을 넣었다. 30미터 뒤에서 엄 상사가 숨을 참는 것이 들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들린 것은 바닷바람이 걸이 틈을 지나며 내는 가는 휘파람뿐이었다.
조종석 캐노피가 열려 있었다. 조종사가 헬멧을 쓴 채 고개를 돌려 태우를 내려다봤다. 바이저가 내려와 있어서 얼굴은 안 보였다. 태우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태우는 미사일 옆에 무릎을 꿇고 안전핀을 꽂았다. 핀이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빨간 깃발이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태우는 손을 들어 조종석 쪽으로 깃발을 보였다. 조종사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가 내렸다. 사다리를 내려온 조종사는 태우 옆을 지나 정비 기록부가 꽂힌 판으로 갔다. 비고란에 한 줄을 적고 서명했다. 3번 무장 미발사, 원인 확인 요망. 그 아래 무장 정비사 서명란에는 아침에 태우가 적은 이름이 있었다. 조종사는 판을 내려놓고 관제탑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빨랐다.
0840에 태우는 점검 거울을 들고 걸이 안쪽을 들여다봤다. 미군 복구반장이 두고 간 그 거울이었다. 커넥터가 반만 물려 있었다. 딸깍 소리는 한 번 났다. 이 기체의 커넥터는 두 번 물렸다. 첫 딸깍에서 손이 끝났다고 했고, 거기서 손을 뗀 것이 태우였다.
엄 상사가 다가와 거울을 받아 들여다봤다. 한참 봤다.
“처음 다는 기체에서는 다 한 번씩 한다.”
“처음 다는 기체에서 한 번 하면, 조종사는 한 발이 없는 채로 싸웁니다.”
엄 상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을 태우에게 돌려주고 교신 기록을 받으러 관제탑으로 갔다. 복구반장이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다가 손을 한 번 들었다. F-16에서도 한 달에 한 번은 있다는 말을 카투사가 나중에 전해 줬다. 태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으면 내일 또 한 번 딸깍에서 손을 뗄 것 같았다.
1310에 같은 넷이 두 번째로 나갈 차례였다. 태우는 2번기 오른쪽 걸이에 새 미사일을 올렸다. 고리를 돌리고 커넥터를 꽂았다. 딸깍. 손이 끝났다고 했다. 태우는 손을 떼지 않고 한 번 더 밀었다. 두 번째 딸깍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다음에 거울을 넣어 봤다. 끝까지 물려 있었다. 왼쪽 걸이와 바깥 걸이도 같은 순서로 했다. 한 기체에 7분이 더 걸렸다. 엄 상사는 시계를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1335에 넷이 다시 떴다. 1450에 넷이 돌아왔고, 날개 밑에 남은 것은 쏘지 않은 것뿐이었다.
*
2200, 태우는 생활관 침상에서 교범 복사본을 무릎에 펴 놓고 볼펜을 쥐었다. 오늘 하루 동안 교범 여백은 연필 자국으로 지저분해졌다. 태우는 그 여백 가운데 4장 첫 쪽의 넓은 자리를 골랐다. 거기에 적기 시작했다. 자기가 볼 것이 아니었다. 자기 손은 이제 알았다. 다리가 나아 정비사로 돌아올 사람이 볼 것이었다.
걸이 고리는 16과 반대, 손이 반대로 가면 멈추고 처음부터. 커넥터는 딸깍 두 번, 한 번이면 아직. 손이 끝났다고 해도 거울로 본다. 핀은 넷, 조종사가 세는 걸 끝까지 본다. 미발사로 돌아오면 옆으로 간다, 뒤로 안 간다. 모르면 묻는다, 미군한테 물어도 된다.
여섯 줄이었다. 마지막 줄을 쓰다가 태우는 아침에 곽 상사가 물은 것을 생각했다. 자존심이 아니면 무엇이었는지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여백을 읽을 사람이 언젠가 혼자 날개 밑에 누울 때 물어볼 사람이 거기 없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혼자 해 봐야 했다. 혼자 해 보고 틀린 자리를 적어 줘야 했다. 태우는 줄마다 앞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꼭 해야 하는 것은 동그라미를 꽉 채웠고, 알아 두면 되는 것은 테두리만 그렸다. 도영이 배치도에 빨강과 파랑을 칠하던 방식이었다. 도영은 이 동그라미를 설명 없이 읽을 것이었다. 마지막 줄 앞의 동그라미를 태우는 꽉 채웠다가, 볼펜을 한 번 더 눌러 더 진하게 칠했다.
옆 침상에서 일병 하나가 돌아누웠다.
“강 병장님, 오늘은 잠꼬대 하지 마십쇼. 저 4장 다 외웠습니다.”
“…자라.”
태우는 교범을 접어 공구함 넷째 서랍에 넣었다. 도영의 볼펜 두 자루 옆이었다. 그다음 상의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조종사의 이름은 끝내 묻지 않았다. 대신 오늘 아침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내린 기체의 꼬리 번호 끝자리를 적었다. 17. 수첩에 적힌 숫자 두 개 옆에 태우는 날짜를 붙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