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5,402자) · 배소현 · 8월 14일(토)
문 앞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14일 0517, 청와대 앞 길에 서 있던 휴대전화 수백 대가 한꺼번에 울었다. 배소현의 주머니에서도 울었다. 재난문자의 날카로운 경보음이었다. 화면에 세 줄이 떠 있었다. 서울 전역 공습 경보, 미사일 접근 중, 즉시 가까운 지하 시설로 대피.
밤샘 농성을 하던 사람들이 먼저 일어났다. 분수대 오른쪽에는 쏘자는 쪽의 촛불이, 왼쪽에는 버티자는 쪽의 태극기가 밤새 서로 등을 지고 앉아 있었다. 경보음이 두 무리를 한 무리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촛불을 내던지고 깃대를 내던지고 경복궁역 쪽으로 뛰었다. 소현은 뛰지 않았다. 하늘을 봤다. 북악산 위 하늘은 막 밝아 오는 회색이었고, 방공포 진지 쪽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이렌도 없었다. 전화기만 울고 있었다.
경복궁역 출구 계단에서 누군가 넘어졌다. 태극기를 어깨에 두른 노인이었다. 뒤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그 위로 넘어지려 했다. 소현은 출구 난간을 잡고 몸을 옆으로 틀어 노인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 노인은 가벼웠다. 깃대가 계단에 걸려 있어서 노인이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버텼다. 소현이 깃대를 같이 쥐고 끌어올렸다. 노인이 난간 옆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소현은 노인을 부축해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승강장은 이미 사람으로 차 있었다. 첫차가 들어오기 전이라 선로 쪽 전광판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촛불 든 사람과 깃발 든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섰다. 밤새 서로를 향해 확성기를 틀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아이를 안고 있었고, 아이는 울지 않고 엄마의 휴대전화 화면에 뜬 경보 문구를 손가락으로 짚어 읽었다. 공습, 경보. 대학생 하나가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옆에 선 태극기 노인에게 말없이 내밀었다. 노인은 받아서 마셨다. 환기구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나왔고 사람들 숨이 섞여 승강장 공기가 금세 무거워졌다. 소현은 기둥에 등을 대고 시계를 봤다. 미사일이 오면 몇 분이면 오는지 그녀는 알았다. 그 몇 분이 지나도 천장 위는 조용했다.
노인이 소현의 가방끈에 매달린 출입증을 봤다.
“기자요? 쏘면 이렇게 된다니까. 쏘면 서울이 불탄다고.”
생수를 건넨 대학생이 노인을 돌아봤다.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 대학생의 손에는 꺼진 촛불이 아직 들려 있었다.
0528에 휴대전화가 다시 울었다. 앞의 문자는 잘못 발송된 것이니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문자였다. 11분이었다. 소현은 두 문자를 나란히 놓고 봤다. 발신 표시가 달랐고, 처음 것은 끝에 점이 하나 더 찍혀 있었다. 소현은 그 점 하나를 수첩에 옮겨 그렸다. 노인은 두 번째 문자를 읽지 않았다. 깃대를 다시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올라 분수대 쪽으로 걸어갔다. 대학생은 반대쪽 출구로 올라갔다. 승강장에서 생수 한 병을 나눈 두 사람은 지상에 올라가서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0540에 분수대 양쪽 확성기가 다시 켜졌다. 한쪽은 이것이 버티기만 하는 나라의 꼴이라고 했고, 다른 쪽은 이것이 쏘면 올 일이라고 했다. 같은 11분을 두고 둘이 반대로 말했다.
*
0610, 소현이 청와대 서쪽 담장 길을 따라 기자실로 걸어가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길가에는 새벽에 내던진 촛불 받침과 깃대 몇 개가 아직 흩어져 있었고, 환경미화원 하나가 그것을 같은 자루에 쓸어 담고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탈북민 단체 사무국장이었다. 지난주에 소현이 남겨 둔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다. 국경 너머에서 짧은 전화가 한 통 들어왔는데 녹음을 들려줄 수 있다고 했다. 이름도 도시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녹음은 31초였다. 잡음 속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빨랐다.
“불이 다 꺼졌어요. 열흘째예요. 밤에는 아무 데도 안 보여요. 배급소 앞에 줄만 서 있어요. 줄은 아침에 서서 저녁에 집에 가요. 받은 사람은 못 봤어요.”
그다음 말이 잘렸다.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녹음이 끝났다. 사무국장은 그 사람이 무사한지 모른다고 했다. 소현은 고맙다고 하고 끊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북쪽 방송을 받아 옮기고 있었다. 서해 적들이 먼저 겁을 먹고 물러섰다는 낭독이었고, 화면 속 평양 거리는 낮인데도 불이 환했다. 소현은 31초짜리 녹음을 한 번 더 틀었다. 받은 사람은 못 봤어요. 그 줄에서 멈췄다. 이 목소리를 기사에 쓰면 저 목소리는 다시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그녀는 녹음 파일 이름을 날짜로만 바꿔 저장했다.
*
0820, 청와대 기자실 맨 끝 자리에서 소현은 종이 두 장을 책상에 펼쳤다. 윤석주 중령의 수첩 사본이었다. 7월 28일 오전 국방부 정문 옆에서 그가 한마디 없이 건네고 간 흰 봉투에 든 두 장이었다. 첫 장 맨 아래에 7월 2일이라는 날짜가 따로 적혀 있었고, 그 둘레에 네모가 두 번 쳐져 있었다. 그 위로 줄 넷이 있었다. 날짜와 시각과 표적과 상태 변경이 적혀 있었고, 발신자란이라는 칸에는 넷 다 같은 두 글자가 있었다. 없음.
소현은 그 옆에 신문 두 장을 놓았다. 7월 3일 자 조간이었다. 하나는 우리 군이 산둥반도의 비행장 두 곳을 타격했다는 짤막한 국방부 발표였고, 하나는 중국 국방부 대변인의 성명이었다. 성명에는 비행장 이름이 둘 나와 있었고 7월 2일 새벽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사본의 셋째 줄은 6월 26일 2340이었다. 산둥반도, 표적 둘, 참고에서 대기로. 발신자 없음. 소현은 볼펜 끝으로 그 줄을 짚은 채 신문의 날짜로 손을 옮겼다. 6월 26일에서 7월 2일까지 엿새였다. 이름 없는 누군가가 표적 둘을 한 칸 올렸고, 엿새 뒤에 그 둘이 맞았다.
“선배, 그거 또 보세요?”
통신사 후배가 컵라면 두 개를 들고 와서 하나를 소현 앞에 놓았다. 국물이 종이 모서리에 튈 뻔해서 소현이 사본을 끌어당겼다.
“라면 냄새 묻으면 증거 능력이 떨어지나?”
“냄새 나는 증거가 더 믿음이 가죠. 근데 선배, 그거 쓰실 거예요?”
소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 보름 동안 이 기사의 첫 문장을 열네 번 썼다. 전부 노트북에 남아 있었다. 열네 개 모두 같은 데서 멈췄다. 누가 밀었는지 모르면, 독자는 한 사람만 떠올렸다. 바다 건너 비행장을 맞은 쪽이었다. 그러면 기사는 증거가 아니라 불이 됐다. 오늘 새벽 11분 동안 광장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내던지고 뛰었는지 소현은 봤다.
1110에 소현은 수첩 사본을 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직위 해제된 뒤로 그는 집에 있었다. 신호가 다섯 번 가고 나서 받았다. 목소리 뒤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중령님, 6월 26일 줄하고 7월 2일이 같은 표적입니까?”
“제가 드린 건 날짜와 칸입니다. 읽는 건 기자님 일입니다.”
“읽는 사람이 틀리면요?”
“그래서 원본은 제가 갖고 있습니다. 틀리면 제가 틀린 겁니다. 기자님은 받은 대로 읽으신 거고요.”
그는 그 말을 하고 세탁기가 다 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소현은 끊긴 전화기를 한참 귀에 대고 있었다. 받은 대로 읽었다는 말은 그녀를 지켜 주는 말이었다. 그것이 그 사람이 사본만 준 까닭이었다. 그녀는 사본 첫 장을 다시 봤다. 7월 2일. 그 날짜에 왜 네모를 두 번 쳤는지, 그 사람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
1530, 기사 대신 소현은 다른 것을 썼다. 노트북이 아니라 취재 수첩 맨 뒷장이었다. 받을 사람의 주소가 없었다. 받을 사람이 어디 있는지 소현은 몰랐다. 물속이라는 것만 알았다. 5월 24일 새벽에 잘 다녀오겠다는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윤재 씨, 오늘 새벽에 서울에 미사일이 온다는 문자가 왔어요. 가짜였어요. 11분 동안 진짜였고요. 그 11분 동안 나는 하늘만 봤어요. 그쪽 바다에는 하늘이 없겠죠. 진해에 갔었어요. 가족들이 배가 가라앉았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그것도 가짜였어요. 나는 증명도 못 하면서 가짜라고 말했어요. 지금도 증명은 못 해요.
소현은 거기서 볼펜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여기는 다들 쏘자 아니면 버티자예요. 나는 둘 다 아니고 누가 밀었는지가 알고 싶어요. 그걸 알면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르는 채로 쓰면 내가 미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돌아오면 이 장을 찢어서 줄게요. 안 돌아오면 아무한테도 안 줄게요.
다 쓰고 나서 소현은 그 장을 찢지 않았다. 수첩을 덮고 고무줄을 두 번 감았다. 우표를 붙일 데가 없는 편지였다. 그녀는 그 수첩을 사본 봉투 위에 올려놓았다. 두 개가 한 묶음이 됐다.
*
2140, 청와대 서쪽 출입문이 열렸다. 검은 승용차가 나오기 전에 사람 하나가 먼저 걸어 나왔다. 국가안보실 차장 한도겸이었다. 넥타이가 하루 종일 회의를 하고도 매듭째 그대로였다. 그는 소현을 알아봤다. 기자들이 출입문 앞에 줄을 서던 때는 끝났고, 오늘 밤 그 앞에 서 있는 기자는 하나였다.
“배소현 기자. 윤 중령이 국방부 정문 옆에서 뭘 건넸는지 압니다.”
“그러면 말이 빠르겠네요. 6월 26일 2340에 발신자 없는 자료가 산둥반도 두 줄을 대기로 올렸습니다. 7월 2일 새벽에 그 둘이 맞았습니다. 차장님, 이 둘이 같은 줄입니까?”
한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용차가 그의 뒤에 와서 섰다. 그는 차 문을 열지 않았다.
“그걸 쓰면 내일 아침 광장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오늘 새벽에 봤지요. 가짜 문자 하나에 11분 동안 서울이 뛰었습니다. 진짜 기사 하나면 11분으로 안 끝납니다. 쓰면 당신이 이 전쟁을 부르는 겁니다.”
“안 쓰면요? 이름 없는 누가 다음에 또 한 줄을 올리면요. 그게 비행장이 아니라 마을이면요?”
한도겸이 소현을 봤다. 출입문 가로등이 그의 안경알에 둘로 비쳤다. 그는 오래 말이 없었다. 운전병이 차에서 내려 문 옆에 섰다가, 한도겸의 손짓에 도로 들어갔다. 출입문 초소의 경찰이 두 사람 쪽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다. 밤바람이 북악산 쪽에서 내려와 소현의 취재 수첩 귀퉁이를 들썩였다.
“배 기자, 7월 2일 새벽에 산둥이 맞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그날 오후에 우리는 폴란드로 가는 전차 부품 수출을 전부 막았습니다. 맞은 쪽 비위를 맞추려고요. 그 결정이 바다 건너 어디서 누구 손을 묶었는지 나는 압니다. 쏜 다음 날부터는 쏜 값을 치르는 겁니다. 한 번 쏜 값이 그랬어요.”
“그 값을 누가 치르게 만들었는지가 제 기사입니다.”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서 있는 겁니다.”
그는 승용차 지붕에 손바닥을 얹었다. 차 지붕이 낮의 열을 아직 머금고 있었는지 손을 금방 뗐다.
“지금부터는 기사가 아닙니다. 받아 적지 마세요.”
소현은 볼펜을 주머니에 넣었다. 손을 빼서 그에게 보였다.
“누군가 우리 목록을 밀었습니다. 아직 누군지 모릅니다. 나는 그걸 압니다. 그래서 더 안 쏘자고 하는 겁니다. 밀린 대로 쏘면 미는 놈이 이기니까.”
“합참은 다르게 읽겠죠.”
“합참은 맞기만 하는 게 지겨운 사람들입니다. 틀린 말도 아니고.”
그는 승용차 문을 열었다. 반쯤 몸을 넣다가 다시 소현을 봤다.
“아직 쓰지 마세요. 열흘 안에 합참이 방을 잡습니다. 그때는 내가 못 막습니다.”
차가 떠났다. 소현은 가방을 열어 봤다. 고무줄을 두 번 감은 수첩이 사본 봉투 위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