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5,958자) · 강태우 · 8월 12일(목)

공구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12일 0540, 덤프트럭 여섯 대가 줄지어 활주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짐칸마다 자갈이 수북했고 배기구에서 나온 검은 연기가 해무에 섞여 아스팔트 위에 낮게 깔렸다. 맨 앞 트럭 발판에 곽 상사가 매달려 배치도를 흔들었다. 오늘 열 구간은 1,900미터 끝에서 2,300미터까지였다. 그 400미터 안에 7월부터 있던 구멍이 셋 남아 있었다. 사흘 전 밤 1,900을 끊어 놓은 새 구멍 넷은 그제와 어제 이틀 동안 메워 되살렸다. 곽 상사는 그 넷을 배치도의 숫자에 넣지 않았다. 원래 있던 구멍만 센다고 했다. 새로 난 것까지 세면 끝이 안 보인다고 했다.

태우는 공구함을 들고 트럭 뒤를 따라 걸었다. 그제 아침 남쪽 파편 더미에서 도로 들고 온 공구함이었다. 모서리 페인트가 한 군데 더 벗겨졌고 뚜껑 경첩 하나가 휘어 있었다. 열쇠는 군번줄에 같이 꿰어 목에 걸었다. 들것 위에서 도영이 형님 거라며 손바닥에 쥐여 준 열쇠였다. 그제 아침 자물쇠를 열자마자 태우는 반으로 접은 종이를 꺼내 앞면 맨 아래 노정민에 줄을 두 번 긋고 뒷면에 옮겨 적었다. 앞면 다섯, 뒷면 넷이 됐다. 넷째 서랍은 열지 않았다. 거기에는 도영의 볼펜 두 자루와 색칠한 배치도 사본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0600에 도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님, 후송 병원 밥이 기지보다 맛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리는 붙어 있습니다.”

태우는 답을 쓰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다리 붙어 있으면 됐다, 밥 남기지 마. 보내고 나서 화면을 끄려는데 문자가 하나 더 왔다. 반장님께 담배 끊으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태우는 그 문자를 오상혁에게 보여 줬다. 오상혁은 불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문 채 화면을 읽고 코로 웃었다.

“한 달째 안 피우고 있는 사람한테 끊으라네.”

“무는 것도 피우는 걸로 친답니다.”

“그럼 오늘 2,300 열면 한 대 피운다. 진짜로.”

곽 상사가 트럭 발판에서 뛰어내리며 경보가 울리면 시동부터 끄고 뛰라고 소리쳤다. 지난주 평택에서 저쪽 드론이 시동 걸린 차부터 골라 쳤다는 말이 돌았다. 엔진 열이 표적이 됐고, 급유차 한 대가 그렇게 탔다고 했다. 곽 상사는 같은 말을 세 번 했다. 세 번째에는 대원들이 그의 입 모양을 따라 하며 웃었고, 곽 상사는 웃는 놈 이름을 적어 두겠다고 했다.

*

0710부터 첫째 구멍을 팠다. 들린 아스팔트 가장자리를 굴착기가 뜯어내자 밑에서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사흘 전 비가 구멍 바닥에 고였다가 빠지면서 흙을 개펄처럼 무르게 만들어 놓았다. 자갈을 붓기 전에 그 진흙을 다 퍼내야 했다. 시설대대원 넷과 정비반 셋이 삽을 들고 구멍 안으로 내려갔고, 태우는 가장자리에 서서 퍼 올린 흙을 받아 넘겼다. 삽이 진흙에서 빠질 때마다 빨려 나오는 소리가 났다. 8월 아침 볕이 벌써 목덜미를 눌렀고, 방탄복 안쪽으로 땀이 등줄기를 따라 허리띠까지 내려가 고였다.

0920에 미군 복구반이 둘째 구멍으로 왔다. 델가도 상사가 도면을 펴고 손가락으로 순서를 짚었다. 이번에는 순서가 태우의 배치도와 같았다. 지난주에 두 도면을 겹쳐 놓고 한 장으로 다시 그린 뒤로는 그랬다. 델가도가 영어로 뭐라고 하자 카투사 상병이 옮기기도 전에 곽 상사가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태우가 무슨 말이었는지 묻자 곽 상사는 빨리 하자는 말이었을 거라고 했다. 미군 말은 다 빨리 하자는 말이라고 했다.

1105에 셋째 구멍에서 굴착기 삽날이 멈췄다. 들린 아스팔트 밑에 원통 하나가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7월에 깃발을 꽂을 때 아스팔트 조각에 가려 아무도 못 본 것이었다. 날개 하나가 꺾여 있었고 몸통 반이 흙에 묻혀 있었다. 굴착기 기사가 레버에서 손을 떼고 운전석에 얼어붙었다. 태우가 쌍안경을 들었다. 3미터 밖에서 오래 봤다.

“빨강입니다.”

곽 상사가 무전기를 들었다. 로봇이 오는 데 20분, 끝내는 데 40분이 걸렸다. 그동안 트럭 여섯 대가 구멍 둘레에서 시동을 끈 채 기다렸고, 사람들은 그늘 없는 활주로에 쪼그려 앉아 수통 물을 나눠 마셨다. 1210에 짧고 둔한 폭음이 났다. 흙이 한 삽 솟았다가 떨어졌다. 셋째 구멍은 조금 더 커져 있었다.

“커진 만큼 자갈 더 부어. 시간은 안 늘어나.”

오상혁이 말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트럭 시동이 다시 걸렸다.

*

1318에 셋째 구멍의 보수재가 김을 올리기 시작했다. 곽 상사가 줄자를 끌고 활주로 끝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그는 배치도에 볼펜으로 숫자를 적었다. 20. 그 아래에 2,300을 적고 동그라미를 쳤다. 시설대대원 하나가 헬멧을 벗어 흔들었고, 미군 복구반 쪽에서도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오상혁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반장님, 진짜 피우십니까?”

“말했잖아.”

라이터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기지 확성기가 울었다.

1336, 첫 파는 드론 넷이었다. 바다 쪽에서 낮게 들어왔고 대드론 기관포가 둘을 떨어뜨렸다. 태우와 오상혁은 같은 배수로에 엎드렸다. 바닥에 고인 흙탕물이 무릎을 적셨고, 머리 위로 기관포 탄피가 쏟아지는 소리가 양철 지붕에 우박 떨어지듯 이어졌다. 오상혁은 라이터를 쥔 채였다. 뚜껑은 열려 있었고 불은 켜지 않았다.

“보름 남았냐?”

“예. 8월 27일입니다.”

“보름이면 2,740까지 간다. 끝까지 다 열고 나가. 그게 네 전역 선물이라고 했지.”

6월 말 그날, 도영의 시험 신청서에 추천인 이름을 쓰고 나서 오상혁이 한 말이었다. 그때 그 선물의 단위는 비행기 대수였다. 오늘은 활주로 길이로 바뀌어 있었다. 남은 드론 둘은 활주로 위를 한 바퀴 돌고 아무것도 치지 않고 서쪽으로 빠졌다. 오상혁이 라이터 뚜껑을 탁 닫았다.

“지금 붙이면 재수 없다. 이따 붙인다.”

사람들은 배수로와 방공호에서 나왔다. 셋째 구멍의 보수재는 아직 굳지 않았고, 그 위에 비닐을 덮어야 했다. 넷째 트럭이 남은 자갈을 가장자리에 붓기 시작했다. 짐칸이 반쯤 들렸을 때 확성기가 다시 울었다.

1402, 두 번째 파였다. 소리가 달랐다. 아까 것이 벌 떼였다면 이번 것은 낮은 데서 끊기지 않는 휘파람이었다. 곽 상사가 시동 끄라고 소리쳤다. 트럭 기사들이 키를 돌리고 뛰어내렸다. 넷째 트럭에서 시설대대 변 일병이 뛰어내렸다. 짐칸은 반쯤 들린 채였고 엔진은 돌고 있었다. 짐칸을 올리는 유압이 엔진에 물려 있어서 키를 돌리면 짐칸이 그 자리에 섰다. 변 일병은 그것을 알았고, 알아서 손이 키 앞에서 한 번 멈췄고, 그다음에 뛰었다.

태우는 활주로 서쪽 배수로에 엎드렸다. 오상혁이 바로 옆에 있었다. 둘은 고개만 들고 넷째 트럭을 봤다. 트럭은 셋째 구멍 가장자리에 서서 배기구로 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 뒤 2미터에 아직 김이 오르는 보수재가 있었다.

“저거 서 있으면 오늘 연 거 다 날아간다.”

오상혁이 일어섰다. 태우가 방탄복 어깨끈을 잡았다.

“반장님.”

“놔.”

“제가 가겠습니다. 저 차 짐칸 내리는 거 압니다.”

“강태우, 엎드려 있어. 오지 마.”

오상혁이 손을 털어 냈다. 그는 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뛰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늦는다는 걸음이었다. 휘파람 소리가 서쪽 바다 위에서 커지고 있었다. 하늘 높은 데서는 흰 줄 여럿이 엉켜 돌았다. 우리 편대가 저쪽 편대와 붙은 것이었고, 그 아래로 낮게 들어오는 것들은 아무도 막지 못하고 있었다. 오상혁이 트럭 발판을 밟고 운전석에 올랐다. 짐칸이 유압 소리를 내며 천천히 내려왔다. 자갈 몇 알이 짐칸 끝에서 굴러떨어져 보수재 위에 박혔다.

트럭이 후진해 셋째 구멍에서 멀어졌다. 활주로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서쪽 풀밭으로 들어갔고, 바퀴가 마른 풀을 짓이기며 100미터를 더 가서야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엔진 소리가 멎었다. 배기구의 연기가 한 줄 남았다가 바람에 흩어졌다.

오상혁이 뛰어내려 배수로 쪽으로 뛰었다. 이번에는 뛰었다. 태우는 걸음을 셌다. 하나, 둘, 셋. 넷째 걸음에서 트럭이 터졌다.

*

1409까지 기관포가 울었다. 태우는 해제를 기다리지 않았다. 배수로를 기어 나와 풀밭으로 뛰었다. 곽 상사가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풀밭이 불에 그슬려 검게 눌려 있었고 트럭은 짐칸만 남아 옆으로 누워 있었다. 타는 고무 냄새와 경유 냄새가 숨을 막았다. 오상혁은 트럭에서 20미터 떨어진 풀밭에 엎드려 있었다. 헬멧은 벗겨져 저만치 굴러가 있었다. 태우가 그를 돌려 눕혔다. 눈이 반쯤 열려 있었다. 태우는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한 번 더 불렀다. 의무병이 와서 태우의 어깨를 밀어내고 목에 손가락을 댔다. 오래 댔다. 그리고 손을 뗐다.

1431에 의무 장교가 시각을 적었다. 태우는 그 옆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다. 오상혁 옆 풀 위에 담배 한 개비가 반으로 꺾여 떨어져 있었다. 필터가 누렇게 짓눌린 그 개비였다. 끝에 탄 자국이 없었다.

태우는 입을 열었다. 제가, 하고 첫 글자가 나왔다. 제가 갔어야 했습니다, 짐칸 내리는 건 제가 압니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줄을 서 있었다. 6월 4일 아침 카트 밑에서 기어 나와 제가 늦게 단 쪽이 못 뜬다고 했을 때, 이 사람이 그 말을 막았다. 그날 하면 평생 한다고 했다. 태우는 꿇은 무릎 위에 손바닥을 얹고 그 말을 자기에게 했다.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 말은 오늘 하지 마. 오늘 하면 평생 해.”

곽 상사가 뒤에 와 서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뒤로 변 일병이 헬멧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얼굴이 흙과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변 일병은 태우를 보지 못하고 곽 상사의 등만 봤다. 곽 상사가 돌아서서 변 일병의 방탄복 앞섶을 두 손으로 잡고 오래 붙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태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셋째 구멍 쪽에서 미군 복구반이 비닐을 덮고 있었다. 보수재는 금 하나 가지 않고 그대로였다.

*

1650에 활주로 남쪽 끝에서 KF-21 넷이 시동을 걸었다. 날개 밑이 꽉 차 있었다. 사흘 전까지는 이렇게 달고 뜨지 못했다. 1,900미터로는 연료를 덜어 내거나 폭탄을 덜어 내야 했고, 덜어 낸 만큼 서해 위에 오래 못 있었다. 태우는 활주로 서쪽 가장자리 풀밭 끝에 서 있었다. 등 뒤로 검게 그슬린 풀과 옆으로 누운 짐칸이 있었다. 거기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첫 기체가 활주를 시작했다. 엔진 소리가 쥐어짜는 소리가 아니라 미는 소리였다. 기체는 1,900미터 표지를 지나고도 바퀴가 땅에 붙어 있었다. 셋째 구멍을 메운 자리 위를 지나는 순간 앞바퀴가 들렸다. 태우는 꼬리 번호를 봤다. 넷이 차례로 떴다. 넷 다 셋째 구멍 위에서 땅을 떠났다.

곽 상사가 배치도의 20 옆에 작게 한 줄을 더 적었다. 무엇을 적었는지 태우는 보지 않았다.

*

2130에 행정반에서 인사과 대위가 오상혁의 개인 물품을 상자에 담고 있었다. 오상혁의 주소지로 통지가 나갔다고 했다. 태우는 그 주소를 몰랐다. 상자 옆 책상 위에 공구 벨트가 풀리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태우가 그것은 자기가 풀겠다고 했다. 대위는 잠깐 태우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벨트는 무거웠다. 파우치 다섯 개에 공구가 제자리마다 꽂혀 있었다. 태우는 하나씩 빼서 책상 위에 줄을 세웠다. 드라이버, 펜치, 토크 렌치, 안전선 집게. 맨 끝 파우치에서 10밀리 렌치가 나왔다. 태우 공구함 둘째 서랍에 있는 것과 같은 규격이었다. 손잡이에 무언가 긁혀 있었다. 이름이 아니었다. 날짜였다. 2011. 3. 14. 못 끝으로 판 글씨였고 오래 쥐어서 홈이 반질반질했다. 무슨 날인지 태우는 몰랐다.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태우는 그 날짜에서 오늘까지를 뺐다. 16년 넉 달 29일이었다.

벨트 버클 옆 작은 주머니에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었다. 태우가 폈다. 정비 자격 시험 신청서였다. 사본이었다. 신청자 칸에 일병 김도영이 있었고, 추천인 칸에 중사 오상혁이 있었다. 원본은 6월에 이미 올라갔고 도영은 붙었다. 사본을 왜 벨트에 넣고 다녔는지는 종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추천인 칸 옆 여백에 연필로 작게 적힌 글씨가 있었다. 합격.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다리 나으면 군산으로 데려올 것. 종이는 네 번 접혀 있었고, 접힌 선을 따라 자갈 먼지가 하얗게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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