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5,340자) · 강태우 · 8월 9일(월)~10일(화)

피스아이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9일 2100, 활주로 남쪽 끝선에서 태우는 이동식 활주로 끝 등화 여섯 개 가운데 넷째의 배터리 단자를 조이고 있었다. 오늘 밤 KF-21 분견대가 처음으로 밤에 뜬다고 했다. 고정 등화는 6월 4일에 다 깨졌고, 그 대신 깔아 둔 것이 상자만 한 배터리 등이었다. 하나가 깜박이면 조종사 눈에는 끝선이 휘어 보였다. 도영이 손전등으로 단자를 비췄다. 공구함은 둘 사이 아스팔트 위에 열려 있었다. 뚜껑 안쪽 둘째 서랍이 반쯤 나와 있었고, 걸쇠에 걸린 놋쇠 자물쇠가 손전등 불빛에 노랗게 흔들렸다.

넷째 등이 켜졌다. 깜박이지 않았다. 다섯째, 여섯째. 남쪽 끝선을 따라 녹색 불 여섯이 한 줄로 섰다. 1,900의 반대편 끝에는 시설대대가 똑같이 붉은 불 여섯을 깔아 두었다. 그 사이가 오늘 밤의 활주로였다.

2118, 격납고 쪽에서 엔진 소리가 높아졌다. KF-21 넷이 유도로를 따라 나와 녹색 불 앞에 섰다. 첫째가 소리를 끌어올리자 배기열이 아스팔트를 쓸고 와 태우의 바지 자락을 눌렀다. 넷이 차례로 녹색 불 위를 지나 어둠 속으로 떠올랐다. 꼬리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불빛 넷이 서쪽으로 작아졌다.

“형님, 밤에 서해로 넷이 다 가는 건 처음입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다.”

*

2140, 태우는 공구함을 끝선 옆에 두고 정비 통제실에 바꿔 쓴 배터리 수를 적으러 갔다. 통제실 구석에 상황 스피커가 있었다. 출격한 기체를 관리하려고 관제 교신 일부를 받아 듣는 장치였다. 엄 상사가 그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겹쳐 나왔다. 피스아이였다. 하늘 높이 떠서 서해 전체를 내려다보며 우리 편 전투기들에게 길을 불러 주는 조기경보기였다. 그 목소리가 북서쪽에 미상 항적이 있다고 했다가, 잡혔다가 놓쳤다고 했다. 다시 잡혔다가 다시 놓쳤다. 스텔스기였다. 레이더에 비쳤다가 지워졌다. 우리 F-35A 편대가 그쪽으로 간다는 교신이 따라붙었다. 저쪽도 우리도 화면에 잘 안 잡히는 것끼리, 먼저 보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 서해 위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엄 상사가 낮게 말했다.

“저쪽이 노리는 게 전투기가 아니다. 피스아이다. 눈을 먼저 빼려는 거다.”

2207, 피스아이 목소리의 숨이 빨라졌다. 미사일 경보라고 했다. 회피한다고 했다. 2209에 스피커에서 잡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통제실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2210에 목소리가 돌아왔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피격, 엔진 하나 정지, 기체 귀환. 서해 북부 감시 공백 발생. 그 마지막 말은 누가 받아 적으라고 하는 말처럼 또박또박했다.

“서해 눈이 반이 됐다.”

엄 상사가 그렇게 말하고 시계를 봤다. 태우도 봤다. 2211이었다. 피스아이 한 대가 빠지면 서해의 절반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절반으로 무엇이 들어올지 이 방의 누구도 몰랐다.

2215에 스피커가 KF-21 분견대를 불렀다. 귀환하라는 지시였다. 눈이 반이 된 하늘에 우리 기체를 오래 두지 않았다. 엄 상사가 팔짱을 풀고 손가락 넷을 폈다. 넷이 나갔다. 그는 그 손가락을 접지 않은 채 통제실 밖으로 나갔다. 태우는 적으러 온 배터리 수를 적지 않고 그를 따라 나갔다.

*

2252, KF-21 넷이 돌아왔다. 남쪽 끝선의 녹색 불 여섯 위로 하나씩 내렸다. 넷이었다. 태우는 끝선 옆 공구함 앞에서 바퀴가 녹색 불을 넘는 것을 셌다. 하나, 둘, 셋, 넷. 넷째의 바퀴가 아스팔트를 긁자 도영이 등 뒤에서 숨을 내쉬었다. 도영은 쓰고 남은 단자 덮개를 둘째 서랍에 쓸어 넣고 공구함 뚜껑을 닫았다. 걸쇠에 자물쇠를 걸고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눌렀다. 열쇠는 도로 인식표 줄에 끼웠다.

2310에 경보가 울렸다. 서해 쪽이었다. 이번에는 사수의 외침보다 사이렌이 먼저였다. 2316에 바다 위에서 벌 떼 소리가 여러 겹으로 깔려 왔다. 기관포가 울었다. 그 소리 사이로 더 굵고 빠른 소리가 낮게 들어왔다. 순항미사일이었다. 무인기들은 미끼였다. 기지 방공이 작은 것들을 쫓는 사이 큰 것들이 들어왔다. 방공 진지에서 요격탄이 솟았다. 하나가 바다 위에서 불꽃이 됐다. 또 하나가 불꽃이 됐다. 피스아이가 반만 보는 하늘이었다. 들어오는 것을 늦게 봤고, 늦게 본 만큼 요격탄은 바다가 아니라 기지 담장 근처에서 그것들을 만났다.

“엎드려! 배수로!”

태우는 도영을 끌고 끝선 옆 배수로로 뛰어들었다. 공구함은 끝선 옆에 잠긴 채 남았다. 2319에 첫 번째가 활주로 가운데쯤에 떨어졌다. 2320에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잇달아 남쪽 끝선 북쪽에 떨어졌다. 네 번째는 공중에서 터졌다. 터지는 소리가 이상했다.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의 작은 소리가 우박처럼 한꺼번에 흩어졌다. 자탄이었다. 쇠붙이가 아스팔트와 흙 위로 쏟아지는 소리가 남쪽 끝을 덮었다. 몇 개는 떨어지면서 터졌고 몇 개는 터지지 않고 굴렀다. 2321에 다섯 번째가 1,900의 북쪽에 떨어졌다.

2345에 해제가 났다. 배수로 위로 고개를 내밀자 녹색 불 여섯 가운데 둘이 꺼져 있었다. 활주로 위에 새 구멍이 넷이었다. 그리고 남쪽 끝 일대에 손바닥만 한 쇠붙이들이 흩어져 손전등 불빛에 반짝였다. 사람 발목 높이에 떨어진 것도 있었고, 아직 연기가 나는 것도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로봇은 날 밝아야 온다. 밤에 카메라로는 저걸 못 가린다.”

곽 상사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왔다. 태우는 배수로 턱에 손전등을 올려놓고 흩어진 것들을 하나씩 비췄다. 쌍안경이 없었다. 공구함 안에 있었다. 공구함은 끝선 옆, 쇠붙이 몇 개 사이에 서 있었다.

2350, 도영이 배수로 턱을 넘었다.

“형님, 공구함만 가져오겠습니다. 안에 종이 있습니다. 헬멧도요.”

“김도영, 들어와.”

도영은 태우의 손전등이 비춘 길을 따라 한 걸음씩 갔다. 발밑을 보며 갔다. 공구함까지 10미터였다. 태우는 손전등으로 도영의 발 앞을 비추며 가는 길에 쇠붙이가 있는지 봤다. 없었다. 도영이 6미터를 갔을 때, 길 옆 3미터 떨어진 어둠 속에서 짧고 둔한 소리가 났다. 손전등이 비추지 않던 자리였다.

도영이 옆으로 쓰러졌다.

*

태우는 생각하지 않았다. 손전등을 입에 물고 배수로를 넘었다. 도영이 간 길을 그대로 밟았다. 도영의 발자국이 아스팔트 먼지 위에 찍혀 있었다. 그 발자국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도영은 왼쪽 다리와 왼팔을 감싸 쥐고 있었다. 전투복 바지가 무릎 아래로 검게 젖어 갔다. 쇠 냄새가 났다. 화약 냄새가 아니라 피 냄새였다.

“형님,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입 다물고 있어.”

태우는 도영을 등에 업었다. 도영의 무게가 한꺼번에 등에 실리자 허리가 접힐 뻔했다. 넉 달 차 일병인데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는 도영의 발자국을 거꾸로 밟아 배수로까지 돌아왔다. 공구함은 거기 두었다. 돌아볼 손이 없었다. 구급차는 활주로 밖, 남쪽 정문 안쪽 공터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서 있었다. 쇠붙이가 깔린 길로는 차가 못 들어왔다. 400미터였다.

태우는 배수로를 따라 뛰었다. 콘크리트 배수로 바닥에 고인 물이 군화 안으로 들어와 걸음마다 철벅거렸다. 등 뒤의 도영이 숨을 짧게 쉬었다. 그 숨이 태우의 목덜미에 뜨겁게 닿았다가 식었다. 200미터에서 태우의 허벅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300미터에서 오상혁이 맞은편에서 뛰어와 도영의 다리 쪽을 받쳤다. 둘이 한 사람을 지고 마지막 100미터를 갔다.

2358, 구급차 뒷문 앞 들것에 도영을 눕혔다. 위생병이 가위로 바지를 잘랐다. 태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쇳조각이 여럿 박혀 있었다. 위생병이 지혈대를 감으며 뼈는 모르겠지만 목숨은 괜찮다고 했다. 시내 병원으로 갔다가 거기서 후송이라고 했다.

도영이 오른손을 들어 목을 더듬었다. 인식표 줄이었다. 손가락이 떨려 한 번에 줄을 못 빼냈다. 두 번째에 줄을 머리 위로 넘겼다. 쇠 인식표 두 장 사이에서 놋쇠 열쇠를 빼내려고 손톱으로 고리를 벌렸다. 고리가 손톱에 걸려 미끄러졌다. 세 번째에 열쇠가 빠졌다. 그는 그것을 태우의 손바닥에 놓았다.

“형님 거.”

“같이 쓰는 거다.”

“그러니까요. 이제 형님 차례입니다.”

구급차 문이 닫혔다. 경광등을 끄고 출발했다. 불을 켜면 하늘에서 보였다. 태우는 열쇠를 쥔 주먹을 펴지 않았다. 열쇠 모서리가 손바닥 살에 박혔다.

*

0130, 태우는 다시 남쪽 배수로로 돌아와 앉았다. 오상혁이 옆에 앉았다. 곽 상사의 대원들은 활주로 가장자리 여기저기 배수로에 흩어져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누구도 활주로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손전등도 껐다. 불을 켜면 하늘에서 보였고, 불을 켜도 쇠붙이와 자갈은 잘 가려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공구함이 보이지는 않았다. 끝선의 녹색 불 넷이 그 둘레를 희미하게 비췄고, 태우는 공구함이 있을 자리를 그 불빛의 그림자로 짐작했다. 안에는 둘째 서랍의 10밀리 렌치와 넷째 서랍의 도영 볼펜과 맨 위 칸의 헬멧이 있었다. 헬멧은 6월 4일 그대로였다. 반으로 접은 종이도 거기 있었다. 열쇠는 태우 주먹 안에 있었다. 공구함과 열쇠 사이가 10미터였다. 태우는 그 10미터를 밤새 셌다.

오상혁은 불 안 붙인 담배를 물었다가 뺐다가 했다. 0300쯤 그가 한 번 말했다. 도영이는 시험 붙었으니까 다리 나으면 정비사 된다고. 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상혁도 더 말하지 않았다. 담장 너머 오식도동에서는 불 켠 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경보가 울린 밤에는 촛불도 켜지 않았다.

*

8월 10일 0440, 오상혁의 휴대전화가 짧게 떨었다. 내륙 비행단에 있는 동기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상혁은 화면 불빛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읽은 다음, 화면을 보여 주지 않고 읽어 줬다.

“어젯밤 피스아이 엄호 나간 KF-16 편대에서 하나 안 돌아왔다. 7월에 군산에서 내륙으로 보낸 일곱 중 한 사람이다. 노정민 대위.”

태우는 그 이름을 알았다. 태우가 외운 편성표 아홉 이름 중 하나였고, 6월에 박준영이 사다리를 오르기 전 늘 먼저 뜨던 사람이었다. 앞면 여섯 가운데 맨 아래 이름이었다. 태우는 공구함 쪽을 봤다. 그 이름이 거기 있었다. 지금 지울 수 없었다. 종이는 잠긴 공구함 안에 있었고 공구함은 쇠붙이 사이에 있었다. 지금 그것을 가지러 가면 도영이 간 길을 또 누가 가야 했다.

“날 밝으면 로봇이 온다. 그때 가.”

오상혁이 태우 손을 봤다. 주먹이 여전히 쥐어져 있었다. 오상혁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8월 10일이었다. 8월 27일까지 열이레였다. 오늘부터 앞면에 다섯, 뒷면에 넷이 될 것이었다. 아직 종이 위에서는 여섯과 셋이었다.

0500, 개펄 너머 동쪽에서 하늘이 묽어지기 시작했다. 꺼진 녹색 불 둘과 켜진 넷 사이로 밤사이 흩어진 쇠붙이들이 하나씩 모양을 드러냈다. 새 구멍 넷의 가장자리에서 아직 김이 올랐다. 그 사이, 끝선에서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녹색 칠이 벗겨진 공구함이 자물쇠를 건 채 파편 속에 서 있었다.

2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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