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5,199자) · 명지수 · 8월 6일(금)
이상 징후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6일 0240, 채석장 사격지휘차 화면에 새 목록이 떴다. 북쪽 해안포 둘이었다. 지수는 둘을 지도에 얹기 전에 일지를 넘겨 지난 며칠의 첫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7월 마지막 주에는 밤마다 다섯이었다. 8월 4일에 넷, 5일에 셋, 오늘 둘. 사흘째 줄고 있었다. 줄어드는 목록은 처음이었다. 6월부터 목록은 늘거나 바뀌었지 준 적이 없었다. 채석장 돌벽에서 밤새 스민 물이 바닥에 얕게 고여 있었고, 사격지휘차 바퀴 둘레에 화면 불빛이 푸르게 비쳤다. 지수는 차 문을 조금 열어 둔 채 바깥 공기를 들였다. 젖은 돌 냄새 사이로 멀리 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났다. 전쟁 전 여름밤과 같은 소리였다.
“임 하사, 연평도 쪽 어젯밤 교신 몇 번이었지?”
“대피 방송 두 번입니다. 그저께는 일곱 번이었습니다.”
도현이 무전 일지를 넘기지 않고 대답했다. 외우고 있었다. 지수는 둘을 지도에 얹었다. 산비탈이었다. 학교도 마당도 없었다. 발신자란에는 연합사 표적 담당의 이름이 있었다.
0310에 관 둘이 섰다. 0312에 쐈다. 채석장 돌벽이 두 번 하얘졌다. 흰 줄 둘이 북쪽으로 휘었다.
“철수. 굴로, 90초 안에.”
열여덟이 굴로 들어갔다. 지수는 시계를 손목 안쪽으로 돌려 차고 숫자판을 봤다. 48, 44, 41, 39, 36. 다음은 서른 몇일 것이었다. 굴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0348이 됐다. 36분이 지났다. 0355가 됐다. 0400이 됐다. 포는 오지 않았다.
“대위님, 안 옵니다.”
“기다려.”
굴 안은 숨소리로 찼다. 열여덟이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고, 누군가의 무릎이 떨리다 멈추기를 되풀이했다. 크레인이 없어진 뒤로 할 일이 없어진 운전병은 비닐 조각을 접었다 폈다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손바닥을 무릎에 붙였다. 지수는 시계의 초침이 한 바퀴 도는 것을 끝까지 봤다. 또 한 바퀴를 봤다. 포가 오는 시각을 기다리는 것보다 포가 안 오는 시각을 세는 것이 더 길었다.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에는 적어도 무엇이 오는지 알았다.
0410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굴 입구 쪽에 앉은 통신병 하나가 고개를 빼고 밖을 봤다. 대대장이 그의 뒷덜미를 잡지 않았다. 대대장도 입구 쪽을 보고 있었다. 쏘면 반드시 왔다. 6월 이후 한 번도 안 온 적이 없었다. 안 오는 것이 오는 것보다 더 길었다.
*
같은 시각, 평양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실의 커튼은 지난달과 같은 두께로 창을 막고 있었다. 탁자 위 찻잔들도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다른 것은 탁자 끝 중국 연락관의 의자가 한 뼘쯤 탁자에서 물러나 있는 것이었다.
작전국장이 종이를 읽었다. 0315, 남쪽 미사일 두 발. 연평도 건너편 해안포 진지 둘, 갱도 입구 붕괴. 갱도 안 인원 확인 중. 그는 한 줄을 더 읽었다. 그 진지 하나의 포반장 이름이었다. 지난달 훈장을 받은 사람이었다. 읽고 나서 그는 종이를 내려놓지 않고 들고 있었다.
외무성 배석자가 먼저 말했다. 지난달 이 방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앞에는 여전히 러시아어 문서가 있었다. 오늘은 그 위에 손을 올려놓지 않았다.
“더 끌려가면 한반도가 전면이 됩니다. 남쪽 미사일이 밤마다 우리 갱도를 하나씩 찾아냅니다. 우리는 남쪽을 동족이 아니라 적대적인 다른 나라라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섬 하나를 두고, 남의 시간표에 맞춰 우리 포반장을 갱도에 묻을 까닭이 없습니다.”
총참모장이 붉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포탄은 어디서 옵니까? 갱도에 쌓인 건 스무 날 치였고 그 스무 날은 지났습니다. 지금 쏘는 건 저쪽이 준 겁니다. 저쪽 시간표는 8월 말까지예요. 우리가 먼저 멈추면 다음 배는 안 옵니다. 배가 안 오면 겨울에 무엇으로 버팁니까?”
“겨울은 포탄으로 버티는 게 아닙니다.”
연락관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통역 없이, 이 방의 말로 했다.
“8월 말까지라고 했습니다. 지금 멈추면 우리 쪽 계산이 하나 틀어집니다. 틀어진 계산은 다른 데서 메웁니다.”
다른 데가 어디인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외무성 배석자가 그 말을 받았다.
“메우는 데가 우리 섬이 아니면 됩니다.”
연락관이 찻잔을 들었다. 마시지 않았다. 그는 이 방의 말을 알아들었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수첩에 적지 않았다. 적지 않는 것이 이 방에서는 적는 것보다 무거웠다.
상석의 등받이 높은 의자는 오늘도 창을 향해 있었다. 0438에 서기가 몸을 숙였다가 허리를 폈다.
“먼저 멈추라고 하십니다. 오늘 0500부터. 저쪽이 쏘아도 대응 사격은 하지 않는다. 문구는 외무성이 고른다.”
총참모장이 붉은 연필로 지도 위 동그라미 셋에 하나씩 가위표를 쳤다. 외무성 배석자는 러시아어 문서를 반으로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연락관은 찻잔을 내려놓고 의자를 한 뼘 더 뒤로 뺐다.
*
0452, 진천의 서쪽 하늘에서 낮게 깔리는 소리가 났다. 무인기의 벌 떼 소리가 아니었다. 더 굵고 더 빨랐다. 굴 안의 열여덟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지수는 반사적으로 사람 수를 셌다. 다 안에 있었다. 소리는 채석장 위를 지나가지 않았다. 남쪽으로 비켜 가며 멀어졌다. 0453에 땅이 울렸다. 발밑 돌바닥이 한 번 들렸다 내려앉는 느낌이 엉덩이뼈로 올라왔고, 굴 천장에서 돌가루가 한 줄기 흘러내려 도현의 헬멧 위에서 갈라졌다. 도현이 헬멧을 손바닥으로 털었다. 아무도 북쪽이라고 하지 않았다. 북쪽은 0348부터 조용했다.
0530에 날이 밝아 공병이 보고를 올렸다. 순항미사일 한 발이 임도 끝, 7월 20일에 4호차가 누운 다섯째 진지 자리에 떨어졌다. 누운 4호차 잔해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없는 자리였다. 북쪽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서쪽 바다를 건너왔다.
대대장이 지도를 폈다. 연필 점 하나뿐인 채석장과 임도 끝 사이를 손톱으로 쟀다. 3킬로미터였다. 저쪽은 7월 20일에 알아낸 자리를 열이레가 지나서 쳤다. 저쪽의 지도는 그만큼 늦었다. 늦은 만큼 다음은 덜 늦을 것이었다. 대대장은 지도를 접으면서 지수에게 말했다.
“저쪽도 목록이 있는 거다. 우리 목록처럼 줄이 늘었다 줄었다 하겠지.”
*
1100, 무전기에서 연평도 해병부대 교신이 들렸다. 짧았다. 건너편 해안포가 0500부터 한 발도 쏘지 않았다고 했다. 섬 초등학교 체육관에 모여 있던 주민들이 처음으로 밖에 나와 햇볕을 쬐고 있다고 했다. 교신 뒤편으로 아이 목소리 하나가 섞여 들렸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웃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교신병이 송신 단추를 놓자 그 소리도 끊겼다. 지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화면을 봤다. 북쪽 줄이 없는 목록을 상상해 봤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1300, 지수는 상황 보고서 양식을 열었다. 이상 징후 칸이 있었다. 북측 해안포 사격 0500 이후 중단, 북측 대응 사격 없음, 북측 표적 사흘간 감소. 쓰다 말고 대대장에게 갔다. 대대장은 지휘 천막에서 반합 뚜껑에 커피를 따르고 있었다.
“대대장님, 북쪽이 멈췄습니다. 보고하겠습니다.”
“멈춘 걸 보고하면 위에서는 북쪽 목록을 접는다. 그러면 남는 게 뭐냐. 발사대 두 대. 그 두 대를 놀릴 것 같아?”
“서쪽으로 돌린다는 말씀입니까?”
“돌린다는 말은 안 했다. 늘 그렇게 됐다는 말이지. 6월 4일 새벽에 서울에서 내려온 말 기억하나. 북쪽만, 중국은 안 된다. 그 말은 북쪽이 있어야 서는 말이다. 북쪽이 빠지면 만이 빠진다. 오늘 새벽 서쪽에서 하나 왔다. 그쪽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이제 3킬로미터 안까지 안다.”
“보고 안 하면 북쪽 좌표가 계속 내려옵니다. 멈춘 데를 우리가 치면 저쪽이 다시 쏩니다. 섬 사람들이 체육관으로 도로 들어갑니다.”
대대장은 반합 뚜껑을 입에 대지 않고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돌렸다. 둘 다 맞았다. 보고하면 서쪽이 컸고, 보고하지 않으면 북쪽이 다시 붙었다. 어느 쪽이든 이 대대의 두 발은 어딘가로 갔다.
“명 대위, 보고하면 보고자 칸에 네 이름이 들어간다. 나중에 서쪽 좌표가 내려올 때마다 누가 그 문을 열었는지 사람들이 기억할 거다. 그래도 하겠나?”
“하겠습니다. 멈춘 사람을 계속 쏘는 건 제 이름으로는 못 합니다.”
대대장은 커피를 한 번에 마셨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1500에 지수가 보고서를 전송했다. 보고자 명지수, 확인 대대장.
1640에 화상 연결 창이 떴다. 전략사 작전과의 그 중령이었다. 나흘 전 새벽 명령 불이행이라는 말을 쓰던 얼굴이 오늘은 보고서를 한 장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징후 보고 접수, 상급 부대 검토 중.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한 가지를 물었다. 발사대 둘의 재장전 지원이 하루 몇 번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북쪽 이야기는 더 묻지 않았다. 지수는 탄약 지원대 크레인 트럭이 하루 한 번 새벽에 온다고 대답했다. 중령은 그것을 받아 적고 화면을 껐다. 꺼진 화면에 지수의 얼굴이 검게 비쳤다.
*
2300, 새 목록이 떴다. 북쪽 줄이 없었다. 처음이었다. 목록 맨 아래에 줄이 하나 있었다. 산둥반도 해안의 대함 미사일 진지 한 곳, 대기. 발신자란에는 전략사 표적과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이 있는 서쪽이었다. 지수는 좌표를 지도에 얹었다. 해안 절벽 위였다. 축척을 두 번 키웠다. 가장 가까운 지붕이 900미터 밖에 있었다. 도현이 옆에서 한 번 더 키웠다. 지붕 둘레는 밭이었다. 지수는 그 밭을 한참 봤다. 민가에서 멀다는 것이 이 좌표를 덜 무겁게 하지는 않았다. 중국 땅이었다. 지수는 좌표를 넣었다. 대기는 넣어 두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 좌표는 2호차의 관 안에서 숫자로 앉아 있을 것이었다.
2310, 도현이 가슴께 단추 둘을 풀고 접힌 종이를 펼쳤다. 넣을 자리가 없는 종이였다. 앞뒤 칸도 여백도 다 찼다. 도현은 오늘 일을 줄로 적지 않았다. 종이 오른쪽 위 귀퉁이, 접힌 선 두 개가 만나는 작은 자리에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8.6이라고 적었다. 동그라미가 조금 찌그러졌다.
“그건 뭐야?”
“북쪽이 멈춘 날입니다. 줄로 적으면 일지랑 똑같아서요. 오늘 우리는 덜 쐈습니다. 그건 표시해 두고 싶었습니다.”
지수는 동그라미를 봤다. 줄 하나보다 작았는데 종이 전체에서 그것만 둥글었다. 다른 줄은 다 무언가가 올라가거나 지워진 날이었다. 이 표시 하나만 무언가가 멈춘 날이었다. 도현은 종이를 접어 넣었다. 주머니 단추가 한 번에 안 물려서 한 번 더 눌렀다.
2330, 대대장이 사격지휘차 문을 열고 화면 맨 아래 대기 한 줄을 봤다. 그는 그 줄을 한동안 보다가 문틀에 손을 짚은 채 말했다.
“한 쪽이 빠지면 다른 쪽이 커진다. 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