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5,253자) · 강태우 · 8월 4일(수)
복구 순위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3일 1600, 워싱턴 백악관 지하 상황실의 화면 셋에는 지도가 셋 떠 있었다. 폴란드 북동쪽의 좁은 회랑, 대만 해협, 그리고 한반도 서해. 화면 앞 긴 탁자에 열 명 남짓이 앉아 있었고, 의자 등받이마다 벗어 걸린 양복 윗도리에서 하루 묵은 냄새가 났다.
국방부에서 온 차관보가 서해 지도를 가리켰다.
“한국이 7월 2일에 산둥 비행장 둘을 쳤습니다. 그 뒤 중국의 서해 출격이 늘었습니다. 한국이 한 번 더 치면 중국은 우리 기지를 핑계로 삼을 겁니다. 군산과 평택은 우리 기지이기도 합니다.”
국무부 쪽 배석자가 고개를 저었다.
“한국은 맞았습니다. 맞은 나라에게 치지 말라고 하려면 대신 무엇을 줄지 말해야 합니다. 빈손으로 말리면 한국 국회가 우리 대사관 앞에서 그 말을 읽게 됩니다.”
“줄 게 있습니다. 서해 하늘을 우리가 맡습니다. 한국 공군이 산둥을 칠 이유가 우리 비행장이 닫혀서라면, 우리 비행장을 먼저 엽니다. 군산 복구를 미군 운용 구역부터 합니다.”
국가안보보좌관은 그 말이 끝날 때까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회랑 지도 쪽에서 누군가 유럽에도 공병이 모자란다고 낮게 말했다. 보좌관은 그 말을 들은 척하지 않았다. 세 전선을 한꺼번에 볼 수는 없었다. 그는 손가락을 멈췄다.
“한국에 전하세요. 산둥을 다시 치지 말 것. 그리고 군산은 우리가 먼저 엽니다. 둘은 한 문장으로 보내세요. 따로 보내면 앞 문장만 읽힙니다.”
누군가 시계를 봤다. 워싱턴은 오후 네 시였고 군산은 이튿날 새벽 다섯 시였다. 이 방에서 정한 것이 지구 반대편 활주로에 닿는 데는 서너 시간이면 됐다. 그 활주로에서 누가 삽을 들고 있는지는 이 방의 누구도 몰랐다.
*
8월 4일 0740, 같은 문장이 군산에 공문으로 도착했다. 서울에서 한 번 번역됐고 공군 작전사령부에서 한 번 줄었다. 곽 상사의 손에 들린 것은 한 장이었다. 군산 기지 활주로 복구 순위, 미 공군 운용 구역 우선, 한미 협조하에 즉시 시행, 금일 일몰 전 미 공군 출격 가능 상태 확보. 일몰은 1932였다. 앞 문장, 산둥 이야기는 거기 없었다.
곽 상사는 공문을 두 번 읽고 델가도 상사에게 넘겼다. 카투사 상병이 옮기기도 전에 델가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픽업 보닛 위에 자기 도면을 폈다. 굵은 검정 펜의 1번이 활주로 북쪽 끝에 찍혀 있었다. 6월 4일에 남쪽 강화 격납고 두 동이 무너진 뒤, 미군 F-16은 북쪽 끝 엄체호(적 공습을 피하도록 흙과 콘크리트로 덮은 항공기 대피호)로 옮겨 가 있었다.
“북쪽 셋부터랍니다. 그러면 미군 엄체호에서 바로 활주로로 나갈 수 있답니다. 우리 도면이 먼저랍니다. 공문도 그렇게 왔고요. 오늘 밤 서해 초계를 미군 F-16이 맡기로 했답니다. 일몰 전에 하나라도 떠야 한답니다.”
태우는 도면을 봤다. 북쪽 끝 세 구멍 둘레에 곽 상사의 배치도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둘 남아 있었다. 로봇이 아직 못 간 자리였다. 남쪽 끝, 무너진 격납고 앞의 구멍 셋은 사정이 달랐다. 깃발이 가장 많이 몰렸던 자리였고, 그래서 가장 늦게까지 아무도 못 들어갔다. 어제 해 질 무렵 로봇이 거기 마지막 빨강을 끝냈다.
“상사님, 북쪽은 빨강이 둘 남았습니다. 로봇이 둘을 끝내려면 배터리를 한 번 갈아야 하고, 그러면 오후 세 시가 넘습니다. 거기서부터 구멍 셋이면 일몰에 못 댑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람이 빨간 깃발 옆에서 삽질해야 합니다. 남쪽 셋은 어제 깃발이 다 빠졌습니다. 남쪽 셋을 메우면 1,400이 남쪽으로 500 늘어서 1,900이 됩니다. 지난주에 미군이 치운 남쪽 유도로로 F-16도 그 1,900에 들어옵니다.”
카투사가 옮겼다. 델가도는 도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공문은 미군 먼저라고 했답니다. 남쪽 셋은 미군 구역이 아니랍니다.”
“무너진 격납고가 미군 격납고였습니다.”
카투사가 옮기자 델가도가 처음으로 도면에서 눈을 들어 태우를 똑바로 봤다. 그는 짧게 끊어 말했다. 카투사가 한 마디씩 따라갔다.
“격납고는 6월에 없어졌답니다. 지금 미군 비행기는 북쪽에 있답니다. 자기는 죽은 격납고가 아니라 살아 있는 비행기를 띄우러 일곱 주를 걸려 왔답니다.”
태우는 거기서 말을 멈추려 했는데 입이 먼저 갔다.
“6월 4일 0457에 저기 앞에서 제가 카트 밑에 있었습니다. 미군 하나가 굴러 들어와서 제 헬멧 턱끈을 채워 줬습니다. 저는 손이 떨려서 못 채웠습니다. 그 사람은 남쪽으로 굴러 나갔습니다. 그날 미군이 아홉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카투사 상병이 그 말을 옮기는 데 오래 걸렸다. 중간에 한 번 멈추고 단어를 골랐다. 델가도는 다 듣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으로 도면 위를 쓸어 비닐에 앉은 모래를 털었다. 그리고 검정 펜으로 북쪽 끝 1번 위에 가위표를 치고, 남쪽 끝 구멍 셋 옆에 새로 1, 2, 3을 적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곽 상사가 공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공문대로였다. 1,900의 첫 바퀴는 미군 것이 될 것이었다.
*
1310, 남쪽 셋째 구멍에 자갈이 반쯤 찼을 때 사수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점 둘이 아니었다. 바다 쪽 하늘에 검은 점이 흩뿌린 깨처럼 떠 있었다. 열둘이 넘었다. 떼였다.
사수가 안테나 다발을 들었다. 앞쪽 몇이 흔들리며 개펄로 떨어졌다. 나머지는 흩어졌다. 흩어지는 모양이 새 떼 같았다. 하나가 맞으면 나머지가 그 자리를 비켜 다시 줄을 섰다. 누가 하나하나 모는 것이 아니었다. 흩어진 것들이 서로 다른 높이로 기지 위로 들어왔다. 기관포가 울었다. 붉은 예광탄 줄이 하늘을 긁었다. 하나가 공중에서 터졌고 하나가 굴착기 운전석 지붕에 떨어져 터졌다. 운전석 유리가 하얗게 금이 갔다.
태우는 도영의 어깨끈을 잡고 무너진 격납고 콘크리트 덩어리 뒤로 뛰었다. 델가도는 반대로 뛰었다. 굴착기 쪽이었다. 그는 운전석 문을 열고 미군 병사 하나를 끌어내 땅바닥에 눕혔다. 병사의 왼팔 소매가 그을려 있었다. 머리 위로 또 하나가 지나갔다. 델가도는 병사 위로 엎드렸다. 그것은 그들을 지나쳐 보수재 드럼통 더미 옆에 떨어졌다. 드럼통 하나가 찢어져 회색 반죽이 쏟아지고 불이 붙지 않은 채 연기만 올라왔다. 남쪽 셋째 구멍에 부을 몫이었다.
1322에 소리가 멎었다. 기관포 탄피가 방공 진지 둘레에 수북했다. 화약 냄새와 젖은 시멘트 냄새가 남쪽 끝을 덮었다. 사수가 떨어진 것을 셌다. 열넷이었다. 하나도 안 남았다고 하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은 몇이 올지 아무도 몰랐다.
굴착기는 운전석 유리를 깨 내고 다시 시동이 걸렸다. 다른 미군 병사가 그 자리에 앉았다. 팔을 덴 병사는 위생병에게 붕대를 감으면서 자기 굴착기를 보고 있었다.
곽 상사가 찢어진 드럼통 앞에 쪼그려 앉아 쏟아진 반죽을 손가락으로 찍어 봤다. 벌써 굳기 시작해 있었다. 쓸 수 없었다. 남은 드럼통으로는 셋째 구멍의 반밖에 못 채웠다. 골재장 창고까지 트럭으로 왕복 40분이었고 창고에 남은 것이 있는지는 가 봐야 알았다. 델가도가 시계를 봤다. 1330이었다. 그는 카투사에게 짧게 말했다.
“북쪽 엄체호 옆에 미군 몫으로 쌓아 둔 게 여덟 통 있답니다. 그걸 가져오랍니다.”
북쪽 셋을 위해 쌓아 둔 몫이었다. 미군 트럭이 북쪽으로 달려갔다. 1415에 여덟 통이 남쪽 끝에 부려졌다. 태우는 그 드럼통 뚜껑마다 영어로 적힌 북쪽 구멍 번호를 봤다. 1, 2, 3. 델가도는 그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
*
1500, 델가도가 헬멧을 벗어 보닛 위에 놓았다. 머리가 땀에 젖어 납작했다. 헬멧 안쪽 뒤통수 자리에 비닐로 싼 사진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주유소 앞이었다. 간판 아래 여자 하나와 아이 둘이 웃고 있었고, 아이 하나는 주유기 손잡이를 장난감 총처럼 들고 있었다. 카투사가 태우의 눈길을 보고 대신 물었다. 델가도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텍사스랍니다. 아내가 저 주유소 계산대에서 일한답니다. 지난주에 기름값이 두 배가 됐고 줄이 길에서 길까지 섰답니다. 손님들이 계산대에서 아내한테 묻는답니다. 왜 우리가 세 군데서 싸우느냐고. 아내는 모른다고 대답한답니다. 남편이 그중 한 군데에 있다는 말은 안 한답니다.”
델가도는 헬멧을 다시 썼다. 사진이 그의 뒤통수에 붙어 활주로 쪽을 봤다.
*
1810, 남쪽 셋째가 굳었다. 곽 상사가 그 위에서 두 번 굴렀다. 배치도에 17을 적었다. 기지 운영과에서 사람이 와서 흰 롤러로 새 끝선을 그었다. 1,400의 남쪽 끝선에서 다시 남쪽으로 500미터, 무너진 격납고 바로 앞이었다. 1,900이었다. 6월에 김도영이 타이어 종이 한 장으로 계산해 냈던 그 숫자였다. 8월 4일이었고, 8월 27일까지 스무사흘이었다. 태우는 그 셈을 끝선 위에서 했다.
1840에 미군 F-16 둘이 남쪽 유도로를 따라 나와 1,900에 섰다. 첫째가 엔진을 높였다. 뜨거운 배기가 활주로를 쓸고 와 서 있던 사람들의 바지 자락을 흔들었다. 그 기체가 메운 자리 열일곱을 지나 북쪽으로 떠올랐다. 둘째가 따라 떴다. KF-21 둘이 그 뒤였다. 태우는 꼬리 번호를 읽었다. 외워 둔 넷 가운데 둘이었다. 일몰까지 50분이 남아 있었다.
오상혁은 활주로 동쪽 가장자리에 서서 뜨는 기체를 보지 않고 담장 너머를 보고 있었다. 오식도동 아파트 창에 하나둘 작은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촛불인지 손전등인지는 여기서 가릴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움직여 그것을 셌다. 태우도 같이 셌다. 여덟이었다. 둘은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오상혁이 불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도로 주머니에 넣고 격납고 쪽으로 걸어갔다.
1910, 사람들이 흩어진 뒤 델가도가 태우 옆에 와 섰다. 카투사도 따라왔다. 델가도는 무너진 격납고 쪽을 보며 무언가를 짧게 말했다. 카투사가 옮겼다.
“6월 4일 그 시각에 남쪽 격납고 무장 장착조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루이스 오르테가 하사랍니다. 헬멧을 손에 들고 뛰어다니는 버릇이 있었답니다. 쓰라고 해도 안 쓰고 들고 다녔답니다.”
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트 밑으로 굴러 들어온 사람은 헬멧을 손에 들고 있었다. 명찰은 흙에 덮여 있었다. 그게 그 사람이냐고 물으면 델가도는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맞다고 하면 그 사람은 아홉 가운데 하나가 됐다. 아니라고 하면 다시 아무도 아니게 됐다. 태우는 묻지 않았다. 그 이름을 입속으로 한 번 따라 하고, 공구함 뒷면 종이에는 적지 않았다. 그 종이는 우리 조종사의 것이었다.
델가도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둘은 한참 1,900의 끝선을 봤다. 해가 개펄 너머로 내려앉으면서 흰 줄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다 델가도가 무언가를 생각난 듯 덧붙였다. 카투사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8월 말에 크게 온다는 말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