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5,357자) · 명지수 · 8월 2일(월)~3일(화)
스무 줄
독침 (3차대전 3부작 제3부) · 네오
8월 2일 0300, 진천의 버려진 채석장 바닥에서 사격지휘차 화면이 새 목록을 띄웠다. 7월 21일 밤에 옮겨 온 자리였다. 지도에 남아 있던 마지막 동그라미였고, 깎아 낸 돌벽이 삼면을 막아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안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빠져나갈 길도 하나뿐이었다. 돌벽 틈으로 밤새 물이 스며 바닥에 고였고, 차 안까지 젖은 돌가루 냄새가 배어 있었다.
사격 셋이었다. 둘은 연평도 건너편 해안포였다. 지수는 둘을 지도에 얹었다. 산비탈이었다. 셋째는 줄 맨 위에 있었다. 우선순위 1, 산둥반도 해안의 레이더 기지였다. 지수는 좌표를 넣기 전에 늘 하던 대로 원문을 열었다. 발신자란이 비어 있었다.
도현이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둘 다 그 빈칸을 알았다. 산둥 두 줄이 대기로 올라왔다가 참고로 내려간 날, 그 두 줄이 목록에서 사라진 날, 7월 2일 새벽 대기를 거치지 않고 내려온 사격이 다 도현의 종이에 있었다. 이름 없는 자료에서 시작된 줄이 거기 넷이었다. 이번 것이 다섯째였다.
발사대는 둘이었다. 2호차와 3호차에 한 발씩. 크레인이 없어서 다시 채우려면 탄약 지원대의 크레인 트럭이 새벽에 와야 했다. 오늘 밤 쏠 수 있는 것은 두 발이었고, 목록은 셋이었고, 맨 위의 하나는 이름이 없었다.
“확인 요청 넣어. 발신자 미상, 입력 보류.”
0306에 요청이 나갔다. 0310에 화면 귀퉁이에 화상 연결 창이 떴다. 전략사 작전과 참모였다. 7월 20일 피해 보고를 받아 적던 그 중령이었다.
“명 대위, 우선순위 1 입력이 안 들어왔다. 왜인가?”
“발신자란이 비어 있습니다. 확인 요청을 올렸습니다.”
“확인은 위에서 했다. 목록에 올라왔으면 확인된 거다.”
“위에서 누가 했는지 이 원문에는 없습니다. 이름 없는 자료로 중국 땅을 칠 수는 없습니다.”
“명 대위, 그건 판단이 아니라 명령 불이행이다. 0340 발사다. 30분 남았어.”
지수는 화면 속 참모의 얼굴을 봤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시계를 보고 있는 얼굴이었다.
“북쪽 둘은 0340에 쏘겠습니다. 산둥은 확인이 오면 쏘겠습니다.”
“발사대가 둘이다. 북쪽 둘을 쏘면 산둥은 오늘 못 쏜다. 그걸 알고 하는 말인가?”
“알고 하는 말입니다.”
*
0318에 대대장이 차 문을 밀고 들어왔다. 셔츠 단추가 하나 어긋나 채워져 있었다. 그는 화면을 보지 않고 지수를 봤다. 지수가 일어서려 하자 손바닥을 내렸다. 그는 화상 창 앞으로 몸을 숙였다.
“대대장입니다. 산둥 건은 대대장 판단으로 보류합니다. 입력 단말 사유란에 제 이름으로 넣겠습니다.”
참모가 무어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대장은 지수 옆 의자를 끌어당겨 앉더니 입력 단말에 직접 적었다. 대대장 판단 보류, 발신자 확인 전. 그 아래 계급과 이름. 7월 20일 일지의 결정자 칸과 같은 글씨였다. 작고 곧았다.
지수는 그 손을 보고 있었다. 말리고 싶었다. 확인 요청을 넣은 것은 자기였고, 그 칸에 이름이 들어갈 사람은 자기였다. 그런데 손을 뻗지 않았다. 대대장의 손은 이미 다 쓰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그 칸을 가져가려고 하면 대대장은 또 손바닥으로 누를 것이었다. 지수는 볼펜을 쥐고 있던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화상 창이 꺼졌다. 대대장이 일어나며 말했다.
“북쪽 둘 쏴. 그건 우리 일이다.”
*
0340에 관 둘이 섰다. 0342에 쐈다. 채석장 돌벽에 발사 불빛이 부딪혀 사방이 한꺼번에 하얘졌고, 그 빛이 돌벽을 타고 위로 빠져나가는 동안 진동이 발바닥에서 무릎까지 올라왔다. 흰 줄 둘이 북쪽으로 휘었다.
“철수, 90초. 전원 동굴로.”
채석장 안쪽에는 옛날 광부들이 파 놓은 굴이 있었다. 열여덟이 거기로 들어갔다. 도현이 맨 뒤였다. 지수는 시계를 봤다. 48, 44, 41, 39. 그다음 숫자가 올 것이었다.
0418에 첫 포탄이 채석장 입구 쪽 비탈에 떨어졌다. 쏘고 나서 36분이었다. 굴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졌다. 두 번째는 채석장 바닥 한가운데였다. 사격지휘차를 옮겨 둔 자리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돌벽이 소리를 가두어 폭음이 두 번 세 번 되울렸고, 굴 안에서 누군가 귀를 막은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세 번째는 오지 않았다. 도현이 무전기에 붙인 종이 끝에 36을 보탰다.
0450에 점검을 했다. 열여덟 명 전원이었다. 2호차 측면에 돌 파편 자국이 났다. 관은 멀쩡했다.
0505에 벌 떼 소리가 하나 지나갔다. 높았다. 채석장 위를 한 바퀴 돌고, 돌벽 가장자리를 따라 한 번 더 돌았다. 열여덟이 굴 입구 안쪽에서 숨을 죽였다. 소리는 내려오지 않고 북쪽으로 멀어졌다. 대대장이 지도를 펴고 손전등을 비췄다. 동그라미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채석장이 마지막 동그라미였고, 그는 그 자리에 연필로 점 하나를 찍어 두었을 뿐이었다. 그는 지도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확인 회신은 오지 않았다. 0306에 넣은 요청이 한 시간이 지나고 또 한 시간이 지나도 화면 귀퉁이의 상태 칸은 처리 중이었다. 지수는 30분마다 그 칸을 봤다. 볼 때마다 같은 세 글자였다.
*
0612에 지수는 목록을 다시 열었다. 산둥 줄이 없었다. 보류도 삭제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줄 하나가 빠지고 나머지 줄이 한 칸씩 올라와 있었다. 이력을 열었다. 0558, 산둥반도 1건, 삭제. 바꾼 계정은 시스템이었다. 확인 요청 상태 칸은 처리 중에서 종결로 바뀌어 있었다. 회신은 없었다.
0620에 대대장이 와서 같은 화면을 봤다. 줄은 없어졌는데 입력 단말의 사유란 기록에는 그가 적은 한 줄이 남아 있었다. 대대장 판단 보류, 발신자 확인 전. 보류한 대상이 사라진 보류였다. 대대장은 그 줄을 한참 보다가 짧게 웃었다.
“표적은 없어지고 내 이름만 남았네. 나중에 누가 보면 내가 뭘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0700, 도현이 단추를 풀고 가슴께에서 접힌 종이를 펼쳤다. 네 번 접은 선이 닳아 거의 끊어질 것 같았다. 앞뒤 칸은 다 찼고, 가장자리 여백에 7월 20일의 세로줄이 하나 있었다. 도현은 그 옆에 둘째 세로줄을 적었다. 8월 2일 0300, 산둥 1건 사격, 발신자 없음, 대대장 판단 보류. 0558 삭제, 시스템.
적고 나서 도현은 종이를 펼친 채 한참 들여다봤다. 앞면 위에서부터 손가락으로 줄을 짚어 내려갔다. 참고에서 대기, 대기에서 참고, 목록에서 삭제, 사격, 삭제. 손가락이 여백으로 넘어갔다.
“대위님, 이 줄들을 누가 한 번에 보면 모양이 나옵니다.”
“무슨 모양?”
“이름 없는 게 올라올 때마다 우리가 안 쏘면 시스템이 지웁니다. 쏘면 남고요. 이름 없는 걸 넣는 쪽하고 지우는 쪽이 같은 데 같습니다.”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자기도 했다. 했는데 말로 꺼내지 않았다. 말로 꺼내면 그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같은 데가 어디냐는 질문이었다.
*
8월 3일 0805, 새 목록이 왔다. 북쪽 해안포 셋이었다. 셋째 좌표에서 지수의 손이 멈췄다. 해안 마을 끝, 민가 지붕 넷이 붙어 있는 자리에서 160미터였다. 지수는 양식을 채웠다. 셋째 좌표 재확인, 사유 민가 160. 7월에 대대장이 셋째가 오면 더 짧게 쓰라고 했다. 그 말대로 썼다. 0807에 전송했다.
0830에 위장망 밖에서 차 소리가 났다. 전략사 표지를 단 승용차였다. 소령 하나가 내렸다. 서류 가방 하나와 빈 철제 드럼통 하나를 실은 소형 트럭이 뒤따라왔다. 소령은 보안장교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대대장에게 명령서 한 장을 내밀었다.
작전 관련 개인 기록 전량 파기. 대상, 개인 수첩, 메모, 사진, 개인 출력물. 파기 방법, 현장 소각. 확인, 각 부대 사격통제장교 서명.
“보안 점검 결과 일부 부대에서 작전 자료를 개인 기록으로 남긴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적에게 노출되면 진지와 표적 체계가 같이 드러납니다.”
대대장이 명령서를 다 읽고 지수에게 건넸다. 지수는 첫 줄과 대상과 방법을 읽었다. 읽는 동안 보안장교는 드럼통을 트럭에서 내리게 했다.
“소령님, 이 기록을 다 태우면 다음에 이름 없는 자료가 내려와도 견줄 것이 없습니다. 어제 새벽에도 한 건 있었습니다.”
“견주는 일은 위에서 합니다. 부대는 쏘는 일을 합니다.”
“위에서 견주는 자료도 지워졌습니다. 이력에 시스템이라고만 남았습니다.”
보안장교는 지수를 잠깐 봤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류 가방에서 파기 확인서 양식을 꺼내 사격지휘차 접이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양식 귀퉁이가 바람에 들리자 그는 볼펜을 올려 눌러 두었다. 지수는 명령서를 읽으면서 도현이 있는 쪽을 봤다. 도현은 이미 방탄복 단추에 손을 대고 있었다. 보안장교에게 내놓으려는 손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하사였다.
“임 하사, 그거 나 줘.”
도현의 손이 멈췄다가 종이를 꺼내 지수에게 건넸다. 지수는 그것을 받아 자기 전투복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그다음 바지 옆 주머니에서 자기 수첩을 꺼냈다. 7월 6일부터 시스템 계정이 무엇을 지웠는지 직접 적어 온 수첩이었다. 지수는 그것을 보안장교의 서류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0912에 사격지휘차 화면에 회신이 떴다. 셋째 좌표 정정 완료, 북쪽 200미터 이동. 받아들여졌다. 보안장교가 지수 어깨 너머로 그 화면을 봤다. 지수는 정정 확인란에 서명했다. 명지수.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일지를 펴서 정정 누계 칸의 2를 두 줄로 긋고 옆에 3을 적었다. 6월 8일과 7월 13일, 그리고 오늘. 일지에 없는 칸이었고 지수가 만든 칸이었다.
보안장교가 책상 위의 파기 확인서를 지수 앞으로 밀었다. 목록 칸이 비어 있었다. 지수가 직접 채웠다. 개인 수첩 1권, 명지수. 개인 출력물 3매. 무전 시각 메모 1매, 임도현. 무전기 옆에 붙여 숫자를 적던 그 종이였다. 48, 44, 41, 39, 36. 그것은 진짜로 내놓았다. 지수는 목록을 거기서 끝냈다. 가슴 주머니의 종이는 목록에 없었다.
그녀는 확인자 칸에 서명했다. 30분 사이에 같은 볼펜으로 두 번째였다. 첫 서명은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사실이 아니었다. 두 이름은 글씨가 똑같았다.
0940, 채석장 바닥에서 드럼통에 불이 붙었다. 보안장교가 목록을 한 줄씩 부르며 물건을 던져 넣었다. 지수의 수첩은 표지가 먼저 오그라들었고, 그다음 종이가 한 장씩 들려 올라가며 검게 말렸다. 시스템이라는 글자가 적힌 장이 어느 것이었는지 지수는 보지 않았다. 도현의 숫자 종이는 한 번에 탔다. 젖은 돌가루 냄새 위로 종이 타는 냄새가 덮였다. 도현은 드럼통을 보지 않고 지수의 가슴 주머니를 봤다가 시선을 돌렸다.
1010에 보안장교가 확인서 사본을 대대장에게 남기고 차에 올랐다. 차가 채석장 길을 빠져나가자 지수는 대대장 손에 들린 명령서를 다시 받아 봤다. 아까는 내용만 읽었다. 이번에는 맨 아래 칸부터 읽었다. 발신자란이었다. 비어 있지 않았다. 합참 작전본부 소속, 계급과 이름이 인쇄 글씨로 또박또박 찍혀 있었다.